이렇게 늙고 싶다
이렇게 늙고 싶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눈은 침침해 잘 안 보이고 마누라와의 대화는 동문서답이 되고 동작은 굼떠 굼벵이가 되고 말은 하되 어줍어 참으로 이해와 소통하기 어려운 사람이 되어갑니다.
한 때는 내가 맡은 일에 자부심과 긍지로 자신만만 행동을 하고 술도 거나하게 마실 줄 알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얼굴은 쭈글거리고 볼품없이 변했습니다.
이는 세월이 주는 선물로 더욱 겸손하게 살라는 하늘의 명령이라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하늘님. 부처님. 예수님. 알라신이시여.
젊은 시절 그렇게 호기 있게 살았을지라도 늙어서는 좀 더 신중하고 어른답게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부디 고약한 늙은이가 되지 않고 넉넉히 포용할 수 있게 미워하고 시기하는 마음과 욕심을 버리게 하시고 남을 괴롭히는 늙은이가 되지 않게 해 도와주소서.
그동안 살아온 생활의 경험으로 아들, 딸과 이웃들에게 지혜를 나눠줄 수 있게 해 주시고, 대접받으려는 늙은이보다는 젊은이들과 아이들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자애로운 늙은이가 되게 도와주소서.
늙은이의 고집과 아집으로 원망과 지탄의 대상이 되지 않게 해 주시고, 솔선수범하며 부지런하고 열정적으로 살아가게 갈궈주시고 여유와 품위가 넘치는 그런 늙은이가 되게 도와주소서.
늙음을 한탄하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모든 사람의 귀감은 안되어도, 잘 살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깨어있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소서.
이 세상 떠날 때 추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떠날 수 있도록 끝없는 가르침을 주시고 항상 모든 것에 감사하는 생활이 되도록 도와주소서. 그리하여 이승을 떠나는 나를 기쁘게 저승길을 갈 수 있게 도와주소서.
하늘님, 이렇게 너무 많고 이룰 수 없는 부탁만 늘어놔서 죄송합니다. 어쩌면 이리도 인간의 욕심은 늙어 죽어가면서까지도 끝이 없을까요? 참으로 세대를 두고두고 연구대상입니다.
그렇다면 평시에 그렇게 살지 왜 늙어가면서 그동안 못하고 안 했던 것들을 해달라고 부탁, 아니 강요를 하는지 이것 또한 인간의 한계이자 어쩔 수 없는 번뇌인가 봅니다. 죄송합니다.
혼내 주소서. 마음으로는 고상하고 우아하고 품위 있게 늙어가고 싶지만 욕심이란 걸 압니다. 비록 끝없는 욕심으로 늙어가면서까지 한량없는 요구만 하니 하늘님도 무척 피곤하시겠습니다.
그저 노년에 이렇게 살고 싶다고 넋두리한 것이라고 생각하시고 냉정히 지켜보시다가 조금이라도 어긋나고 고약하게 굴면 가차 없는 날벼락을 내려주소서. 시대착오적인 꼰대짓을 할 때 불벼락을 내리소서. 자꾸만 부탁만 드려서 죄송하고 죄송합니다.
- 광법 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