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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날의 덕수궁

by 베짱이 정신 2015. 12. 25.

겨울날의 덕수궁

 

원래의 면적은 현재보다 넓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축소되었다.

본래 이름은 경운궁(慶運宮)이다. 조선 초기 세조가 남편을 잃고 궁궐을 떠나는 맏며느리 수빈 한씨(인수대비)를 가엽게 여겨 개인 사저로 마련해주었고, 이후 한씨의 차남 자산군이 보위에 오르게 되어 궁궐에 들어가자 장남인 월산대군이 물려받았다. 임진왜란 뒤 선조월산대군의 집을 임시로 왕의 거처로 쓰면서 궁이 되었다. 1608년 선조가 죽은 뒤 광해군이 이곳에서 즉위하였는데, 그해 완성된 창덕궁으로 떠나면서 경운궁이라는 궁호를 붙여주었다. 1623년에는 인조가 이곳에서 즉위하였다. 또한, 고종이 황제로 즉위한 곳이기도 하다. 1897년(고종 34)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이 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비로소 궁궐다운 장대한 전각들을 갖추게 되었다. 1904년 큰 화재로 전각 대부분이 소실되었으나, 1905년 즉조당(卽祚堂)·석어당(昔御堂)·경효전(景孝殿)·함녕전(咸寧殿) 등이 중건되었다. 1906년 대안문(大安門) 이 수리된 뒤 대한문(大漢門)으로 개칭하고 정문으로 삼았다. 1907년(순종 1) 순종 즉위 후 궁호가 경운궁에서 덕수궁으로 변경되었다. [1] 1611년 ~ 1615년에는 조선의 정궁, 1897년 ~ 1907년에는 대한제국의 황궁이었다.

덕홍전 - 지금의 덕홍전 자리에는 원래 경소전(景昭殿)이 위치하였다. 1896년(건양 1)에 고종황제는 러시아공사관으로 옮기는 ‘아관파천(俄館播遷)’을 하였다. 이 때 경운궁(慶運宮)을 새롭게 정비하면서 경복궁 태원전(泰元殿)에 모신명성황후의 시신을 모실 빈전(殯殿)과 신주를 봉안할 혼전으로 사용하고자 건립하였다. 곧 9월 4일에 명성황후의 시신을 경소전으로 옮겼고, 1897년 11월 21일에 명성황후의 국장을 지낸 뒤에는 경효전(景孝殿)이라고 부르면서 혼전으로 삼았다.

1904년(광무 8)에 경운궁에 큰 불이 일어나 불에 타고 말았는데, 명성황후의 신주는 준명전(濬明殿)의 서쪽 행각에 임시로 모셨고,그 뒤에는 중명전(重明殿)의 주변에 자리한 수풍당(綏豐堂)으로 옮겨 봉안하였다. 이후에 경소전 터에 이전과 같은 규모의 건물을 다시 건립하였지만, 1905년에 을사늑약의 체결로 인해 고종황제가 여전히 중명전에 머물렀기에 신주를 다시 옮기지는 못하였다. 고종황제가 함녕전으로 돌아온 뒤에도 신주는 여전히 수봉당에 봉안되었다. 1912년에 고종황제의 알현실로 고쳐 짓고서 덕홍전이라고 불렀다.

 

 

 

 

 

 

정관헌 - 덕수궁 안에 있는 양관 가운데 하나. 함령전 북쪽에 있으며 1900년 이전에 지은 것으로 짐작된다. 고종의 연유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양옥이라고는 하나 팔작지붕 등 전통목조건축의 요소가 많이 있다.

각 기둥마다 보이는 광경은 한폭의 그림이로다

 

 

 

담장에도 깃들인 예술혼

 

 

즉조당 - 1897년 고종이 경운궁(慶雲宮, 현 덕수궁)으로 옮겨온 뒤 정전(正殿)으로 사용되었고, 한때 태극전(太極殿)·중화전(中和殿) 등으로 이름이 바뀌기도 하였다. 1902년 정전인 중화전이 건립된 뒤부터는 다시 즉조당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현재의 건물은 1904년 불이 나 타 버린 것을 같은해 3월에 중건한 것이다. 고종이 상왕이 된 뒤 거처하던 궁궐로서 궁명(宮名)을 덕수궁으로 바꾼 뒤인 1907년부터 1911년까지는 후비인 엄비(嚴妃)가 이곳에 거처하였다.

즉조당(왼쪽)과 석어당(오른쪽)

 

석조전 - 덕수궁 안에 있는 근대 서양식 건물. 영국인 J.M. 브라운의 발의에 의해 1900년 착공하여 1910년에 완공되었다. 기본설계는 영국인 G.R. 하딩이, 내부설계는 영국인 로벨이 했으며 공사감독은 한국인 심의석, 러시아인 사바틴, 일본인 오가와[小川陽吉], 영국인 M.H. 데이빗슨 등이 했다. 3층 석조건물로 1층에는 거실, 2층에는 접견실 및 홀, 3층에는 황제 황후의 침실·담화실·거실·욕실 등이 있다. 높은 기단 위에 장중한 도릭오더의 기둥을 세우고 정면과 양 측면에 튀어나온 현관을 만들었다. 건물 앞의 정원과 함께 18세기 신고전주의 유럽 궁전의 건축을 모방해 지은 것이다. 1945년 미·소공동위원회 회의장으로 사용되었으며 6·25전쟁 이후 1986년까지는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사용되었다.

준명당 - 고종이 러시아공관으로부터 경운궁(慶雲宮, 현 덕수궁)으로 거처를 옮기기 위하여 많은 건물을 중건하였던 1897년에 새로 지었다. 내전(內殿)의 하나로 외국사신을 접견하던 곳인데, 현재의 건물은 1904년 불이 나 타 버린 뒤에 즉조당(卽阼堂)과 함께 지어진 것이다.

 

준명당 뒷뜰의 굴뚝과 후원

 

석조전

 

 

 

중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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