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김구 주석의 경교장, 돈의동 마을 박물관, 홍난파 집, 딜쿠샤
김구 주석이 광복 후 귀국하여 머무시던 곳. 미국에 의해 철저히 무시되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각료 회의가 열렸던 곳. 지금도 김구 주석이 아닌 김구 선생으로 불리우는 현실 이것은 무엇인가? 어떤 매국노는 김구주석을 폭탄이나 던진 사람이라고 헛소리 대잔치를 벌이니 이를 어쩌면 좋은가? 조만간 김구 공산당이라고 미친 망발을 벌이는 놈이 안나온다는 보장이 없네... 기가 막히다.
돈의동 마을 박물관 - 예전엔 저런 양옥집이 선망의 대상이 되었었지요.
구락부란 클럽(Club)의 일본식 발음
예나 지금이나 미를 추구하는마음은 동일하다. 고전미가 넘치네
시대만 달랐지 미의 추구는 똑 같다
막걸리 좋은 술이로다. 그런데 이 막걸리를 총 집대성한 막걸리 박물관이 있었던가? 가장 기본적인 것인데?
빈병 전시만 하지말고 막걸리 시음도 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골목길 - 예전엔 자가용이 대중화 되었던 시대가 아니라서 단지 리어카 지나갈 정도의 길이었지.
자금도 여관, 여인숙이라는 이름으로 존재는 하지만 시대 변화에 차츰 사라지는 추세.
옛날 양옥집 대문
성곽의 돌을 누가 어디에다 썼을까? 집짓는데 대들보와 축대 쌓는데 뜯어다 썼나?
우리가 민족 음악가로 알고 있었던 친일 음악가 홍난파. 자신은 광복 전에 죽었으니 전혀 몰랐으리라. 자신이 한 음악활동이 얼마나 반 민족적이었는지를.
구 한말 독일 대사관 근처 독일인들의 주거지에 지어진 독일인 집. 여전히 멋있고 실용적이다.
음악가로서는 폼나게 살다가 갔나보다
풍족하게 살다가 갔나 보다.
조선음악은 음악도 아니다? 서양음악만이 음악이다? 이런 생각을 했으니...
여전히 부티나는 홍난파 집
딜쿠샤 (DILKUSHA)는 페르시아어로 ‘기쁜 마음’이라는 뜻으로 앨버트 W. 테일러와 메리 L. 테일러 부부가 살던 집의 이름. 테일러 부부는 1923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924년에 딜쿠샤를 완공하였다. 1926년에는 화재가 발생해 1930년에 재건되었다. 1942년 일제가 테일러 부부를 추방한 후 딜쿠샤는 동생 윌리엄 W. 테일러가 잠시 관리하였다. 이후 1959년에 자유당 조경규 의원이 딜쿠샤를 매입하였으나 1963년에 조경규 의원의 재산이 국가로 넘어가면서 딜쿠샤도 국가 소유가 되었다. 그 후로 딜쿠샤는 오랜 기간 방치되어 본모습을 잃게 되었던 중 2005년에 서일대학교 김익상 교수가 앨버트의 아들인 브루스 T. 테일러의 의뢰를 받아 딜쿠샤를 찾았다. 2006년 브루스는 마침내 66년 만에 자신이 어린 시절에 살던 딜쿠샤를 방문하였고, 딜쿠샤는 그렇게 다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딜쿠샤 옆 15대 할아버지 권율 도원수 집 터 은행나무
딜쿠샤 1층 응접실
대 저택에 멋진 가구들까지.. 그 당시 부자의 생활모습을 엿볼 수 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예전의 가상대 자리가 박물관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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