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동묘와 벼룩시장
서울 동관왕묘(서울 東關王廟) 또는 동묘(東廟)는 중국 촉나라의 장수 관우, 즉 관왕를 모신 관왕묘로, 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묘앞역 근처에 있다. 1963년 1월 21일에 보물 제142호로 지정되었다. 줄임말을 써 '동묘'라고 부르기도 하고 공자를 모시는 문선왕묘(文宣王廟)를 줄여 부르는 문묘(文廟)에 대응해 무묘(武廟)라고도 불린다.
임진왜란 때 조선 땅에서 싸운 명나라 장수들은 이후 조선에 주둔하면서 조선 땅에 관왕묘를 세우고자 하였다. 조선 조정에도 협력을 요청하고 명나라 조정은 이에 호응하고 적극 지원을 하면서 명나라는 조선에 관왕묘를 지으라고 하였다. 이중 동관왕묘는 경리장수 양호의 후임으로 와 있던 명 장수 만세덕(萬世德)이 권유하여 만든 것이다. 임진왜란이 끝난 다음해인 선조 32년(1599) 공사를 시작하여 선조 34년(1601) 동관왕묘를 완공하였다. 명 신종이 친필 현판과 함께 건축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공사를 짓는 중에 신하와 유생들, 그리고 언론삼사는 백성들이 고생한다고 관왕묘를 짓는 것을 반대하였다.
어쨌든 논란이 많던 건축은 무사히 끝났지만 선조와 신하들은 동관왕묘를 홀대했다. 선조의 왕위를 이은 그 아들 광해군은 동관왕묘의 수리를 명하고 제례를 자내게 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후 동관왕묘에 관한 기록은 실록에 나오지 않다가 숙종 때에 가서야 나온다. 숙종은 관우의 충절로 시도 지었고 동관왕묘에 참배도 하였다. 숙종 17년(1691) 2월 17일에는 무안왕묘(동관왕묘)를 보수하라고 하기도 하였다. 이후의 왕인 영조도 동관왕묘에 자주 참배를 했고, 영조 15년(1739) 6월 9일에 동관왕묘를 중수하도록 하였다. 정조도 관왕묘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정조는 동관왕묘에 비석을 세우가 하기도 했다. 그리고 대한제국 때에는 고종이 관왕묘를 적극 지원하고 관왕을 관제(關帝)로 높여 관제묘라고도 하였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에는 수많은 관왕묘들이 훼손, 철거되었다. 원래 동대문 밖에 동관묘, 남대문 밖 도동에 남관묘, 명륜동에 북관묘, 서대문 밖 천연동에 서관묘, 종로네거리 보신각 뒤에 중관묘의 다섯 곳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동관묘만 그 위치에 그대로 남아있고 남관묘는 일제가 목멱산(남산)에 조선신궁을 세우면서 헐어버린 것을 지금의 사당동으로 옮겨지어 지금에 이르고, 다른 세 곳은 전하지 않는다. - 출처 : 나무위키 -
돔묘 앞 담장을 둘러싸고 전부 중고품을 파는 난전과 가게들이 즐비
온갖 중고 생활용품들이 어딜가도 가득
1호선, 6호선 동묘앞역 3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동묘와 동묘 벼룩시장
도대체 식품들이 어찌 그리도 쌀까?
재봉틀도 있고 자전거도 있고
건강식품도 아주 싸게 팔고
CD도 팔고
온갖 그릇도 자리하고
골목 골목마다 한 자리씩 차지하고 중고 물건을 내 걸고 손님을 기다리고
외국인들이 상당히 많이 보이더군
신품도 사게 파네
대로변에도 중고의류를 쌓아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옛날 기와집도 심심찮게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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