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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봄이 오는 청계천(마장동까지)

by 베짱이 정신 2024. 3. 25.

<사진> 봄이 오는 청계천(마장동까지)

모전교 - 1412년(태종12) 석교로 개축, 과일 가게를 이르는 옛말로 '모전'이 있던 곳

광통교 - 광통방의 넓은 다리라는 뜻으로 광통교라고 불렸다. 원래 토교였으나 1410년(태종10) 석교로 만들어진 가장 역사가 오래된 다리며 도성안에서 가장 큰 다리로 정월 대보름 다리밟기 놀이하던 곳

얼마나 눈이 뒤집혔으면 거꾸로 뒤집어 놓았을까?

부조상을 다 긁어 내고

영원한 벌을 주고 있나?

태조 때에 흙으로 축조되었다가 폭우로 인하여 무너지자 1410년 (태종 10년) 8월에 돌로 다시 축조하였다. 다시 축조했을 때 정릉의 석물로 만들었는데, 이성계가 자신의 왕위를 강씨의 소생인 이방석에게 넘겨 주려 하니 이에 화가 난 태종 왕자의 난을 일으켜 방석을 죽여 왕위에 올라 강씨의 묘를 옮기며 일부 돌들을 모두가 밟을 수 있게 옮겨 놓은 것이다. 또한 그 돌들은 모두 거꾸로 놓았고, 석교로 만들어진 이 다리가 가장 역사가 오래된 다리이다. 

신장석과 우석에 새겨진 세련된 신장, 당초, 구름 문양은 당대 최고의 석공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고려말 조선초 전통 문양 아름다움의 진수를 보여준다.

장통교 - 장통방에 있었던 큰다리, 청계천 본류와 남산에서 내려오는 물길이 만나는 지점

삼일교

전태일 기념관

수표교 - 1441년 홍수에 대비해 청계천 수위를 측정하는 수표가 있었던 자리에 만든 다리,

오리지널 수표교는 장충당공원으로 옮겼다. 영조는 청계천 준설 공사를 직접 지휘했다.

당시 57일 간 20만명이 동원되어 한양 시민의 하수문제가 해결했다.

관수교 - 조선시대 이곳에서 청계천 수위를 관측

세운교 - 세운상가와 연결된 다리

배오개다리 - 고개 입구에 배나무가 있어 배고개라고 하다가 배오개가 되었다

광장시장도 보이고

새벽다리 - 천막치고 장사하던 옛 재래시장의 이미지를 살려 디자인, 동대문 시장의 역사성과 정서를 담았다.

광장시장, 방산시장 등 새벽 시장이 열리는 곳이다.

마전교 - 방산시장앞에 있던 다리로 우마를 사고 파는 마전이 있던 곳

나래교 - 나비가 비상하는 형상으로 동대문 의류 상권이 세계로 비상하자는 염원을 담고 있다

전태일 다리(버들다리) - 오간수문 상류에 왕버들이 많았던 곳,

주변에 평화시장, 덕운시장 등 전통 재래시장이 즐비하다.

전태일은 초등학교 졸업후 1960년 평화시장 봉제공장에서 재단사로 일했다.

열악한 노동현장을 개선하기 위해 투쟁하지만 권력계층의 냉대와 무관심에 부딪쳤다.

1970.11.13.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 자살한 노동운동가로 향년 22세였다.

그의 유언대로 그의 죽음은 헛되지 않아 노동운동의 시발점이 되었고

모친 이소선여사는 생전 노동운동의 대모로 추앙받았으며 여동생도 노동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전태일은 사후에도 평화시장을 못 떠나고 노동자와 함께 하고있다.

오간수교 - 원래는 청계천 6가에 있던 다리, 다섯칸의 홍예문이 있었던 다리로 오간수교로 불렸고

오간수문은 1907 일제가 헐어버렸다.

맑은내 다리 - 청계천의 순우리말, 인도 전용 다리로 날개를 활짝 편 나비 형상의 아치다리다

다산교 - 조선중기 실학자 정약용의 호를 붙인 도로인 다산로에 인접한 다리라 하여 ‘다산교’라 명명했다.

영도교 - 단종이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귀양 갈 때 그의 비인 정순왕후 송씨가 이곳까지 나와 서로 영영 이별했다. 영도교는 영이별다리 혹은 영영건넌다리라고 불리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황학교 - 옛날 이 곳 논밭에 황학이 날아왔었다는 전설에서 유래, 근처 황학동 도깨비 시장이 있다.

비우당교 - 조선 세종 때 대표적인 청백리로 알려진 하정 유관선생. 그의 청렴함은 비가 오는 날에도 방안에서 우산을 받쳐 들고 비를 피했을 정도라 하여 그의 집을 비우당(庇雨堂)이라 하였다. 비우당교는 이 집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46.6m로 가장 긴 다리다.

청계고가의 흔적

성북천

무학교: 조선 개국 초에 이 도로의 종점지역인 왕십벌 지역에 도읍을 정하려고 태조 이성계를 따라 지상을 보러 다니던 무학대사에서 유래한 무학로. 그 길의 이름을 인용하였다.

두물다리 - 청계천 지류 두개의 물이 만나는 지점으로 다리 디자인도 두개의 물이 만나는 형상이다.

청혼 이벤트하는 장소가 마련돼 있다.

정릉천

청계천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