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고
사람이 가정경제를 꾸려 나가려면 일정 규모의 돈이 매달 필요하다. 매 달 지출되는 돈의 대부분이 필수불가결한 부분이니 매월 일정분의 고정소득이 없다면 살아가기가 곤란해진다. 이렇듯 수입보다 지출이 더 많아 마이너스 가정경제를 꾸려갈 때 가정의 평화가 깨지고 극심한 곤란에 빠져 불행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생활고를 겪는 가정의 대부분은 여러 요인들로 인해 자신들의 이상과는 다르게 밑바닥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발버둥 치며 노력해도 밑바닥을 헤쳐 나오지 못할 때 사람은 좌절하게 되고 자포자기하게 마련이다. 여기서 국가가 필요한 것이고 국가의 도움이 나라를 살리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잘못된 복지관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선별적 복지를 떠벌리고 있는 데 이들의 논리는 도덕적 해이란다. 이는 사람이 먼저임을 모르는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가 보편적 복지로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삶을 보장할 수 있도록 국가가 기본소득을 보장해줘야 한다. 이것이 인간에 대한 기본 도리이고 예의다. 선진복지국가와 우리가 다른 점이 바로 이 점이다. 이제는 국력도 세계 상위에 랭크된 선진국인 대한민국에서 복지를 선심쓰듯 하고, 인간을 존중할 줄도 모르고, 아직도 우리 식의 복지모델을 만들지도 못하고, 타국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는 좋은 제도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얼마나 창피한가? 이러고도 인간존중이란 말이 나오는가?
지금은 누구나 밥은 먹고 산다. 그러나 인간은 밥만 먹고살 수는 없다. 인간의 자아실현, 가치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그 노력과 가치를 인정받았을 때 삶의 희열을 느끼며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선진국이 된 21세기에 생활고에 지쳐 저 세상으로 가는 자살률이 OECD 최고라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고 우리 스스로가 인간 대접을 안 하는 야만국가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세상은 급속도로 변하는데 여전히 19세기적 사고로 복지를 대하면 이 세계적 모든 변화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생활고는 어느 특정 계층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가 어느 순간 닥칠 위험이다. 입장바꿔 생각해 보자. 얼마나 자존심이 땅에 떨어지고 살아갈 희망을 잃을까... 생활고에 마주치는 순간 인간의 존엄성은 사라지고 개 돼지가 되는 것이다. 아주 작은 희망의 불씨라도 다시 살릴 수 있게 제도적 보완과 시민의 성숙한 인식 또한 고양시켜야 한다. 다같이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살아갈 수 있는 기본을 만들고 그렇게 사는게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임을 알아야 한다.
- 광법 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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