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은 예술이다
창덕궁은 조선 시대에 역대 임금이 살며 나라를 다스리던 궁궐의 하나이다. 조선시대 5대 궁궐 가운데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와룡동에 있으며, 북쪽으로 이어져 있는 후원인 비원까지 합해서 사적 제122호로 지정되어 있는 중요 문화재이다. 태종 초에 별궁으로 지었는데 계속하여 궐내에 정전인 인정전을 비롯하여, 선정전 · 소덕전 등 여러 전각과 돈화문을 세워 본궁같이 사용하게 되었다.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에 다른 궁과 함께 거의 불타 버리고 말았다.
1608년에 왕이 된 광해군은 1615년에 불타 버린 경복궁 대신에 창덕궁을 다시 지어 여기에 머물렀다. 이 때부터 1868년에 대원군이 경복궁을 재건할 때까지 창덕궁은 정궁 구실을 하였다. 광해군 때 다시 지어진 궁도 인조 반정과 몇 차례의 화재로 헐고 다시 짓는 등 많은 변화를 거쳤지만 비교적 잘 보존되었다. 1908년에 일본인들이 궁궐의 많은 부분을 변경했으며, 1917년에 큰 불이 나자 일제는 불탄 전각들을 복구한다는 명목 아래 경복궁의 수많은 전각들을 헐어내고는 이 가운데 극히 적은 재목들을 사용하여 창덕궁을 변형·복구했다.
임진왜란 이후 법궁인 경복궁이 복구되지 못하면서 창덕궁은 고종 때까지 법궁의 기능을 하였다. 이처럼 오랜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사용되면서 다양하고 복잡한 왕실 생활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정전인 인정전과 그 주위의 전각, 그리고 대조전을 중심으로 한 내전, 후원으로 구성되었으며, 낙선재 등 중요한 전각이 많이 남아 있다. 특히 금원은 우리 나라의 유일한 궁궐 후원이라는 점과 우리 나라의 정원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1912년부터는 후원인 금원과 함께 인정전을 관람할 수 있게 하였고, 광복 후에는 창덕궁과 후원을 공개하고 있다.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
인정문
인정전
드므(방화수)와 인정전
선정문
희정당
선정전
선정전
선정전
희정당
희정당 내부
선평문과 대조전
흥복헌
대조전 - 용마루가 없음
창덕궁 수라간
경훈각
우물과 경훈각
소나무뿌리가 드러난 경훈각 앞 마당
경훈각 내부
경훈각 내부 복도
대조전 뒷모습
경훈각 옆 모습
아름다운 담장
희정당 앞 마당
희정당
희정당
창덕궁 내의원 영현문
내의원 보춘정
희우루
희우루
승화루와 아름다운 전각
내의원
승화루
낙선재
낙선재 장락문
낙선재
낙선재 뒷뜰
낙선재 뒷뜰
석복헌
수강재
정자 = 삼삼와 또는 육우정
그림같은 전각
칠분서 = 복도,회랑, 삼삼와(육우정), 승화루 - 이곳은 세자의 공부터와 도서관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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