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귀한 사람이 되는 법
워낙 시골이어서 그랬었나 보다.
1950년대 말의 지리산 아래였으니 말이다.
설날이 되면 동네 어른들이 아버님께 세배를 왔는데,
이상하게도 마당에 멍석을 깔고 거기에서 세배를 했다.
그이들에게는 마루로 올라오라는 말도 없이
멍석에 개다리소반이 주어졌다.
이것이 나에겐 수수께끼였다.
난 분명히 마루에서 세배를 올리고
방에 들어가 세뱃돈을 받았는데,
어째서 어른들이 나보다 두 단계 아래에서 절을 한단 말인가?
또 하나 괴이쩍은 일이 있었다.
내가 이웃 아이들과 싸우면
이웃집 어른이 자기 아이만 혼을 내는 것이었다.
돌아서 생각하면 분명 내가 잘못한 일이었는데도 말이다.
아니, 어느 부모가 제 자식만 혼내고 싶겠는가.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내 부모님 젊은 시절까지는 우리 집의 하인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때는 자유인의 신분이었지만
언감생심 맞먹을 생각은 꿈에도 못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자식인 나에게까지도 잘못에 대한
꾸지람 한번 제대로 못한 것 같았다.
자라면서 점차 궁금해졌다.
양반과 상놈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난 뒤부터였다.
그래서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하인이었다던 사람들의 언행이
내 부모님의 그것과는 판이했다.
그들은 자기 아이들을 꾸중할 때도 참 험악한 말을 했다.
“이런 빌어먹을 놈아!”
“이 호랑이가 물어갈 놈아!”
“이런 오살을 맞아 죽을 놈아!”
오살(五殺)은 몸을 다섯으로 나눠 죽이던 사형의 형태인데,
그런 말을 자식에게 막 쏘아붙이고 있었던 것이다.
가만 생각해보니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그런 욕을 들은 적이 없었다.
네 살 때쯤 동네 어른을 놀렸을 때도,
불러놓고 마치 어른 나무라듯이 하셨던 것이다.
비록 회초리로 종아리를 치셨지만.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신분상승’을 꿈꾼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 ‘신분상승’이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각종 언론에서 보도된 것을 종합해 보면 아마도 부자가 되고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을 뜻하는 것 같다.
만약 사람들이 그렇게 신분상승이 되길 바라고 있다면,
그 생각에는 여전히 귀천이 존재한다는 것 아닌가.
비록 양반과 상놈이라는 말은 사라졌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이건 아시나요?
그런 신분상승은 곧바로 추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지금도 쉼 없이 보고 있지 않은가.
부처님께서는 귀천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날 때부터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고귀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천한 언행을 하면 천한 사람이 되고,
고귀한 언행을 하면 고귀한 사람이 된다.
남에게 손가락질 받기 싫다면 스스로 천한 언행을 멈춰야 하며,
남으로부터 귀하게 대접 받으려면
자신이 먼저 고귀한 언행을 해야 한다.
사람은 말과 행동에 따라 천하게도 되고 귀하게도 되는 것이다.”
절대로 추락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건 고귀한 영혼이다.
고귀한 영혼을 지닌 사람이라면
절대로 추악한 말을 하진 않을 것이다.
더더군다나 추악한 짓거리야 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 이는 비록 못난 사람들의 질투를 받거나 오해를 살지언정,
스스로 추락하지는 않는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처럼.
이왕지사 고귀한 사람이 되면 좋겠지. 암 그렇고말고.
그러려면 서로 고귀하게 대하는 연습을
부지런히 해야 하지 않겠소이까?
자신은 남 험담이나 하고 자기 이익만 챙기면서,
남에게 귀하게 대접받기를 바랄 수야 없지 않겠소이까.
서로 서로 챙겨야지….
아, 물론 스스로의 삶이
정말 고귀해진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출처 : 송강스님 글(불교신문 2656호/ 9월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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