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진 장군 생가
충남홍성군 갈산면 행신리
백야 김좌진이 태어나 성장하던 곳이다. 1991년부터 이곳의 성역화사업이 추진되어 생가지와 문간채·사랑채가 복원되었으며 관리사 및 전시관이 건립되었다.
1889년(고종 26) 선원 김상용의 10대손인 형규(衡奎)의 둘째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천성이 호방영민하였으며 공부보다는 말타기와 전쟁놀이를 좋아하였다. 15세 때인 1904년에는 노복 30여 명을 모아 놓고 그들 앞에서 종문서를 불태우고 농사를 지어먹고 살 만한 논밭을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용력이 뛰어나 18세 때 이미 호명학교(湖明學校)를 세워 신문학을 교육하기도 하였으며, 가산을 정리하여 학교운영에 충당하였다. 1916년 광복단에 가담하여 격렬한 항일투쟁을 하는 등 훗날 독립운동가로서 민족자주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공산당원 박상실(朴尙實)의 흉탄에 맞아 순절하였다. 1962년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김좌진 장군의 생가지 근처 백야공원에 장군의 비(충남문화재자료 167)가 있으며, 보령시 청소면(靑所面) 재정리(才井里)에 장군의 묘(충남기념물 73)가 있다.
출처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