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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수양

내가 사회를 바꿀 수 있는 묘술

by 베짱이 정신 2024. 1. 28.

내가 사회를 바꿀 수 있는 묘술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우리 사회를 무도의 정글이라 부른다. 예와 의가 상실한 무도한 사회이고 적자생존의 강력한 야만사회가 되었음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무도한 사회가 된 원인이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예와 의가 살아있는 사회가 될 것인가를 찾아야 하는데 백가쟁명식의 말만 무성하지 실제로 행동하지 않는다. 즉, 내 것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다른 것이 문제라는 인식이 팽배하기에 원인도 해결책도 나올 수가 없다.

 

한 때 "내 탓이오" 운동이  일어나 사회적 관심이 되었지만 지금은 "니 탓이오"를 아주 강력하게 증오와 저주를 담아 말하는 사회가 되었다. 각 직업군별로 아주 튼튼한 철옹성을 쌓고 새로운 진입을 허락하지 않는 끼리끼리 잘 먹고 잘 살자 식의 사회가 되었다. 즉, 기득권 강화 카르텔 사회가 되어 숨도 쉬기 어렵게 만들고 자신들의 이익을 보장하고 지켜줄 수 있는 자들만 선별적으로 받아들이고 모두 배척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런 야만적이고 비민주적이며 반문명적 시대에 씨알도 안 먹히는 방법인 공자왈 맹자왈의 방법을 제시한다.

실낱같은 희망이지만 이 방법이 먹혀든다면 이 야만적 밀림에서 살아갈 아주 작은 힘이라도 얻지 않겠나.

 

첫째, 얼굴과 어깨의 힘을 빼자.

화난 얼굴 찡그린 얼굴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사회 분위기지만 하루 몇 번이라도 아니 집안에서만큼은 부드러운 얼굴로 웃으며 대화를 해보자. 아무 말이나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웃으며 마구마구 하는 거다. 이러면서 마음속 울분을 가라앉혀보자.

 

둘째,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자주 하자

모든 게 손해 보고 사는 것 같은데 무슨 감사냐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태양을 보고 나무와 꽃이 있어 마음을 다독여 주기 않는가? 또한 친구가 있고 말할 이웃이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찻집이나 음식점에서 대접받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나를 위해 일해주는 사람이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셋째, 부드러운 눈길

적자생존의 밀림에서 상대에게 기를 뺏기면 안 되기에 무서운 레이저를 쏘고 다니는데 그 결과가 무엇인가? 상호 불신과 저 놈이 나를 해치려고 하나 등의 부정적인 생각만 드는데 내가 먼저 사랑의 눈길로 무장해제를 하는 것이다. 다정한 눈길로 아이들을 보고 덕담도 해주고, 따뜻하고 측은한 눈길로 내 가족을 대한다면 콘크리트처럼 굳어진 야만적 분위기를 녹이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넷째, 양보하자

지금과 같은 야만적이고 가혹한 밀림에서 양보는 죽음이지만, 한번 죽어보면 죽는 것도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참 많다. 어째 전부 이기려고만 하는가? 가끔은 져주며 살아야지 나보다 못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한 번이라도 기를 펴고 살 것 아닌가? 양보하는 게 지는 게 아니다. 결국은 이기는 것이다.

 

위와 같은 말을 하면 순진하고 바보 같은 짓이라고 하겠지만 이 세상은 바보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어째 전부 똑똑한 사람 영악한 사람이 되려고 안달하는가? 조금 바보처럼 보여 주위를 편안하고 따뜻하게 만들면 영악한 놈들보다 인생을 정말 보람 있게 사는 게 아닐까? 내 마음만 조금 바꾸면 짐승우리 같은 사회변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 광법 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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