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쌍계사 - 1
불명산(佛明山)에서 흘러내리는 두 갈래의 계곡이 서로 합쳐지는 곳에 사찰이 있다. 역사적으로는 고려 초기에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을 건립한 혜명(慧明)스님이 창건했다고 하지만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옥황상제의 아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절터를 잡아 건립했다고 한다.
<쌍계사에 얽힌 설화>
전국 최고의 목재 구해와 하늘지시로 법당 세워
‘칡넝쿨 기둥’ 안고 돌면 무병장수 이야기 전해
아득한 옛날 옥황상제가 산수가 수려한 곳에 절을 한 곳 지어야 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래서 자신의 아들을 인간 세상으로 내려 보냈다.
“아들아, 네가 구름을 타고 인간세상으로 내려가 풍수가 가장 좋은 자리에 절을 짓도록 하라.”
“예, 아버님.”
옥황상제의 아들은 하늘에서 산세를 본 뒤 현재 논산의 어느 산 아래로 내려왔다. 이 산은 예로부터 ‘부처님의 참 모습을 밝힌다’는 의미에서 ‘불명산(佛明山)’이라 불러왔다.
“그래, 이곳이면 되겠어. 맑은 두 갈래의 계곡이며 울창한 숲은 사찰이 서기에 알맞은 곳이야. 아버님도 이곳을 보면 분명히 기뻐하실 거야.”
이렇게 결심한 옥황상제 아들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여기에 부처님의 도량을 건설할 것이오. 그러니 여러분들은 이 나라에서 제일가는 목재를 가져 오도록 하세요. 비용은 얼마든지 드리겠소.”
이 말을 들은 백성들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찰 건립에 필요한 최고의 목재를 구해왔다.
“이 나무는 백두산에서 제일 오래된 소나무이옵고, 이 느티나무는 전라도에서 베어 왔는데 둘레만도 10척이 넘사옵니다. 이 주춧돌은 치악산에서 구해왔는데 가지고 오는 데만 100명의 장정이 동원됐습니다.”
사찰을 건립하기 위해 각자가 구해온 부재들은 실로 대단했다. 그러다보니 법당 규모도 엄청나게 클 수밖에 없었다. 다시 전국에서 사찰건축에 일가견을 가지고 있는 장인(匠人)들을 중산리로 불러모았다. “누가 여기에 최고의 사찰을 지을 수 있겠소?”
저마다 분야에서 최고라고 자부했던 장인들이었지만 엄청난 재목과 부재를 보고 아무도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는 수 없지. 하늘에 물어볼 수밖에….”
옥황상제의 아들은 기둥과 주춧돌, 문짝, 건물 안의 벽화 등 건물 장식 하나하나의 배치를 일일이 하늘에 물어 사찰을 건립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곳에 와서 사찰을 건립하겠다고 모였던 장인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대작불사를 돕겠다고 나섰다.
드디어 사찰이 완공되고 회향식이 거행됐다. 사찰이름은 두개의 계곡이 만나는 곳에 건립됐다는 의미에서 ‘쌍계사(雙溪寺)’로 정했다. 이곳에 절이 세워지자 소문을 들은 온 백성이 구름같이 몰려들어 기도했다. 일심으로 기도한 사람들이 뜻하는 바를 성취하자 사찰의 명성은 더 높아갔다. “옥황상제 아드님이 내려와 지은 절이라 다르긴 달라. 진심으로 발원해 기도하니 원하는 것 한 가지는 꼭 이뤄주신단 말이야.”
세월은 흘러 고려 말이 되었다. 하루는 쌍계사 주지 스님이 잠을 자고 있는데 꿈속에서 한 스님이 나타났다.
“스님, 요즘 세상사가 어지러워 민심이 참으로 흉흉합니다. 이 땅에서 수행해야 할 스님들이 계율을 어기기도 하니 앞으로 쌍계사에는 쫓기는 사람들이 많이 숨어 들어올 것 같습니다. 그러니 스님께서도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특히 이곳 쌍계사에 임금왕(王)자의 성을 가진 사람이나 말을 타고 들어오는 사람은 화를 입으니 절대 들이지 말아 주세요.”
이후 고려에서는 전란이 일어나 조정이 흔들리고 스님들도 여기에 연루되어 도망 다니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스님들도 쫓기는 신세가 되어 쌍계사에 숨기도 했다. 쌍계사 주지스님은 꿈속에 나타났던 한 스님의 이야기를 기억해 두었다가 왕(王)씨 성을 가진 사람과 말을 타고 들어오는 사람은 절대 들여놓지 않았다.
얼마 되지 않아 불명산을 뒤덮는 듯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군사들이 쌍계사를 향해 진격해 오고 있었다. 숨어있던 사람들은 모두 공포에 떨었다. 이때 쌍계사 주지 스님은 그들 앞에 당당하게 나와 목탁을 치며 경전을 염송하기 시작했다.
“나모라, 다라다나 야야 나막알략 바로기재 새바라야 사바하….”
그러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쏜살같이 달려오던 그 많은 군사들의 말들이 앞다리를 번쩍 들며 괴성을 지르며 쓰러졌다. 쌍계사로 향하던 병사들은 모두 말에서 떨어져 이리저리 도망을 쳤다. 그리하여 쌍계사에 숨어있던 사람들은 모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이런 사건이 일어난 뒤에도 말을 몰고 쌍계사로 진격해 오던 군마들은 모조리 낙마하여 대패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야. 부처님 도량이라 다르긴 달라도 한참 다르네.”
그 후 쌍계사에는 아무리 지체 높은 사람이라도 말을 타고 들어갈 수 없었다. 말이 쓰러져 죽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찰에서는 그 장소에 ‘말에서 내리라’는 뜻의 하마비(下馬碑)를 세웠다. 이 하마비는 세월이 지나면서 ‘죄 지은 사람의 죄과를 풀어 주는 영험이 있다’하여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현재 쌍계사 하마비는 유실돼 찾을 길이 없다.
옥황상제의 명에 의해 지은 사찰설화 때문인지 쌍계사 대웅전(보물 제408호)에도 많은 신이(神異)한 이야기가 전한다. 그 중 하나가 ‘칡넝쿨 기둥’에 관한 내용이다. 이 기둥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평면으로 북쪽을 향하고 있는 거대한 대웅전 정면을 바라보는 우측 뒷쪽에 서 있다.
옛날 쌍계사를 세울 때 한 장인이 거대한 칡넝쿨을 대웅전 기둥용으로 베어왔다. 그는 태백산 깊은 곳에서 수 백 년이 넘은 칡넝쿨을 보고 대웅전 기둥으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칡넝쿨을 법당 기둥으로 사용할 수 있느냐며 불가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때 옥황상제 아들이 말했다.
“저기 칡넝쿨을 대웅전 기둥으로 사용합시다. 저 기둥에는 신비한 기운이 서려 있습니다. 칡에는 단단한 실이 나오는 것을 여러분은 알 것이요. 예로부터 실은 오랜 수명을 상징합니다. 그러니 칡넝쿨 기둥을 안고 돌면 무병장수하고 왕생극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칡넝쿨 기둥은 대웅전 좌측에 세워졌다. 옥황상제의 아들의 명에 의해 칡넝쿨 기둥이 세워지자 많은 신자들이 이 기둥을 안고 돌며 무병장수를 기원하고 소원을 성취했다. 이 소문은 전국으로 퍼져 나갔고 특히 윤달이 드는 해에는 더 많은 불자들이 몰려와 인산인해를 이뤘다. 요즘도 쌍계사에는 이 칡넝쿨 기둥을 돌며 자신의 소원을 비는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출처 : 불교신문
쌍계사 입구 부도
쌍계사 앞 절골저수지
범종각
연리근
대웅전 내부
칠성각
나한전
명부전 내부
관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