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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수양

신앙은 맑은 내면의 소리입니다

by 베짱이 정신 2015. 3. 7.

신앙은 맑은 내면의 소리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이 두 영역이 있습니다.
하나는 신앙의 매너리즘(mannerism)입니다.
굳이 우리말로 옮기면 꼬리타분한 형식주의라고 해도 좋습니다.

또 하나는, 영적(靈的)인 교만입니다.
자신의 공부와 신앙이 깊어졌으므로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신비로운 영적인 세상을 자신이 경험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신앙의 메너리즘이 외형적인 측면이라면,
영적인 교만은 좀 더 심각한 내면적 측면입니다.
하지만 이 둘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동전에 앞 면과 뒷 면이 있지만,
앞 면도 뒷 면도 모두 그 동전 하나를 이루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신앙은 형식이 아닙니다.
촛불을 이렇게 켜든 저렇게 켜든 상관 없습니다.
향을 이렇게 꽂든 저렇게 꽂든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신앙은 내면적인 영역이므로 모양(형식)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정신에 모양(형식)이 없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내가 신앙생활을 40년을 했는데,
난 다른 사람 향을 뽑을 때는 절을 세 번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리고 40년을 그렇게 해왔다.
그러니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은 잘못이다...
하는 생각이 바로 신앙의 매너리즘 즉, 형식주의 입니다.

내가 다니는 절에서는

공양을 알리는 커뮤니케이션으로 목탁이나 종을 사용합니다.
내가 20년 동안 그렇게 보아왔습니다. 그런데 당신네 절간을 보니,
공양주 아줌마가 정지마루에 서서는,
입에 두 손을 모아 나발을 만들더니, 진지 드시랑게~~ 하며 외치든데.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아주 전형적인 매너리즘입니다.

물에 먹가루를 뿌려두면,
처음엔 수면에 가볍게 떠 있다가 시간이 자날수록
점차 물 깊은 곳까지 확산이 되어서

나중이 되면 물 전부가 시커멓게 흐려집니다.
매너리즘은 먹가루입니다.
처음엔 내 영혼의 수면 위에만 머물러 떠 다닙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내 정신영역
아주 깊은 부분까지 확산되어 결국엔 전부를 검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렇게 형식주의로 시커멓게 물든 상태가 바로 영적인 교만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형식을 지나치게 따지는 매너리즘을 방치해 두면,
무서운 영적 교만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경계하셔야 합니다.
일단 영적인 교만상태가 깊어지면,
그 어떤 명약도 별로 소용없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니까요.

초기 증세는 그다지 심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향을 왜 그렇게 켜세요?"
"당신은 절도 참 이상하게 하네요." 라고 말합니다.
이러던 사람이 조금 증세가 깊어지면,
"당신은 향을 그렇게 켜는 걸 보니,
신앙생활 아직 멀었구랴!" 이렇게 말합니다.
조금 더 가면 "당신 사는 걸 보니 영혼이 병들었군요."
조금 더 진행되면, "당신 영을 보니 마군이 끼었구려... 쯧쯧"
하며 아주 슬퍼하기도 합니다. ㅎㅎㅎ

다소간의 억지와 비약이 섞인 말이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앙생활하는데 있어

너무도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요소이므로
더 이상 강조를 해도 전혀 지나침이 없는 대목인 것입니다.

특히 내가 영적으로 좀 예민한 사람이다...
이렇게 자신을 파악하고 계시는 분들은

상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저 자신도 영적으로 굉장히 예민한 점이 있어
특히 그런 분들을 잘 알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저 사람에게 마(摩)가 끼었구나

훤히 보이네

느껴지는걸

이렇게 생각이 되시면,

아,

내가 영적인 교만으로 가고 있구나 하고 번떡 정신을 차리셔야 합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것은 수양을 필요로 한다는 말씀입니다.

세상만물의 진리를 파악하시고

자비와 광명으로 중생을 구하시는 부처님께서,
뭣 때문에 타인의 부조리와 영적인 상태를 폭로하시겠습니까?
사랑과 포용과 인내의 대명사이신

영원한 어머니 관세음보살님께서 뭐 할 일이 없으셔서,
타인의 부도덕과 타락과 어둠을 들추어 내시겠습니까?

만약

그 사람이 정말 타락하고 영적으로 병들었다면 오히려,
혹 다른 사람들에게 소문나지 않을까...
다른 사람이 알아채지나 않을까.

노심초사 일일이 가려주시며,
싸매어 주시며, 보듬어 주시고 치료해 주시겠지요.

따라서

설령 내게 그런 이상한 능력이 생겼다 하더라도 그렇다면,
그것은 이미 불교가 아닌 것입니다.
불교 밖의 이상한 세계에 대해서는 저도 알지 못하구요.
하여간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올바른 신앙,
아름다운 생활, 지혜롭고 지성적인 삶은 전혀 아닙니다.

신앙은 언행일치의 길입니다.
동양사상에 성(誠)이란 말이 있습니다.
한자 뜻 그대로 성실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 글자가, 말씀 言변에 이룰 成자로 이루어져 있듯이,
성(誠)이란, 말씀을 이룬다.

즉,

말한대로 행한다.

언행일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불교는 언행일치의 신앙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설법만 하신 것이 아니라

친히 말씀하셨던 내용들을

그대로 손수 행해 보여 주셨습니다.

밤이슬을 먹고 사는 가을벌레는 이슬처럼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며 삽니다.
짐승의 피를 먹어야 배가 부른 포유류 맹수들은

천지를 찢을듯한 포효를 하며 삽니다.

자비를 배우고 겸손을 익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런 아름다운 음성으로 인생을 노래합니다.


그러나

말과 정신이 표리부동하고 청정치 못한 사람들은 이렇게 해야한다,
아니 저렇게 해야한다.


매너리즘에 젖게 되고 나아가서는

영적인 교만에 젖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많이 아는 것은 전혀 자랑이 아닙니다.

향을 도대체 어떻게 피우라는거야?
이걸 어디다 놓고 절을 해야하나...
스님께는 어떻게 인사해야 하나...
밥을 먹을 땐 어떻게 먹어야 하나...
시주는 다른 사람이 알게해야 하나, 살짝 해야 하나....
목탁은 세번 울려야 하나 한 번을 울려야 하나???
나무관세음보살이 맞나 남무관세음보살이 맞나...
이런~ 저 사람은 감히 부처님 전에서 촛불을 입으로 풋~ 꺼버리네
쯧...절 할땐 손가락을 이렇게 해도 되나??...
아...!! 멀고도 먼 불교의 길이여.....!!!
신앙의 길은 정말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걸 어쩌나요?
백 가지, 천 가지를 아는 것보다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냥 부처님만 부르고 매달리는

초신자의 순수하고 깨끗한 음성이
부처님전에는

더욱 아름답고 가치있는 찬불가가 되니까 말입니다.

물론

그 절이나 사문에서 고고하게 명맥을 이어오는
전통이나 신앙의 규범들은

당연히 존중하고 지켜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정립된 사찰예절이나

신행방법들도 반드시 존중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우선시 되고 더 보호받아야 할 가치는,
당연히 순정하고 깨끗하며

맑디 맑은 내면의 소리에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진실과 내면의 소리보다는 형식을 더 앞세우는 것이 매너리즘이며,
영적 교만의 선봉장입니다.

다른 불자님들이 뭘 잘못하시더라도 친절하고 바르게 인도해 주세요.
뻣뻣하게 목에 힘주며,

툴툴거리고 건방떨고,

아는척 하고........

그거 올바른 방식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자비와 감로수 같은 경전과
관세음보살님의 지고하신

사랑을 먹고 사는 불자님이 당연히 하셔야할 것은,
사랑과 겸속과 아량과 포용과 근신을 실행하는 일입니다.

신앙은 지식이 아니라,
자비와 사랑을 행함으로 말하는 내면의 맑은 소리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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