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이다 가버린 나날들
그 첫 한 마디를 시작하지 못해
머뭇거리다 지나간 어떤 저녁이 있습니다.
그 첫 한 마디를 꺼내지 못해
망설이다 가버린 어떤 사랑이 있습니다.
따뜻한 물 한 대야 발 밑에 준비하여
무릎 꿇고 누군가의 발을 씻겨 줘야 할 저녁이 있습니다.
무언가 용서를 청해야 할 저녁이 있습니다.
나지막히 무언가 고백해야 할 어떤 저녁이 있습니다.
흰 발과 떨리는 손의 물살의 울림에 실어
누군가에게 사랑을 전해야 할 설레이는 저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저녁이 다 가도록 첫 한 마디를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누군가의 마음의 맨발을 차고 맑은 물로 씻어주지 못했습니다.
어떤 용서도 청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런 사랑도 전하지 못했습니다.
아, 그 저녁은 두 번 오지 않습니다.
그 저녁은, 단 한 번밖에 없으므로...
한번 가버린 시간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떠나버린 사람처럼 떠나버린 옛 그림자처럼
오늘 저녁이 바로 그 저녁이길 바랍니다.
맑고 따뜻한 물 한 대야 발 밑에 준비하여 무릎 꿇고
누군가의 거친 발을 오래오래 씻겨 주는
행복한 저녁 만들어 가시길 바랍니다.
<혜인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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