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바로 보아 앎과 행이 같은 이
타인의 선지식으로 손색이 없으며
지혜로 광명정대해 그 어떤 번뇌도 없다
(법구경)
바보와 천재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주리 판다카는 불교사에 유명한 바보입니다. 형과 함께 출가 하였으나 워낙 머리가 모자라서 무엇 하나 외우지를 못했습니다. 마침내 승단에서 쫓겨나 문 밖에서 울고 있을 때 부처님께서 친히 그를 곁에 두시고 보살폈습니다.
어느 날 부처님은 그에게 '입을 지키고 뜻을 조섭하며 몸으로는 계를 범하지 말라. 이와 같이 행하는 수행자는 능히 위 없는 도를 얻으리라'는 게송을 주시고 그 뜻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글귀를 외우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마당을 쓸게하며 ‘비로 티끌을 쓴다'는 짧은 글귀를 외우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판다카는 앞글자를 외우면 뒷글자를 잊고, 뒷글자를 외우면 앞글자를 잊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묵묵히 그를 격려하고 외우고 또 외우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판다카가 부처님께 말했습니다. "이제는 지(智)가 있고, 혜(慧)가 있으며, 대비(大悲)의 의미를 알았나이다."
부처님께서 물었습니다.
"판다카여, 어떻게 그것을 알았는가?"
판다카가 말했습니다. '쓴다'는 것은 지혜를 이름이요, '티끌'이란 번뇌를 이름입니다." 판타카는 ‘비로 티끌을 쓴다는 것이 지혜로 번뇌를 소멸한다’는 이치를 깨치고 마침내 아라한(聖者)이 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착하다, 판다카야. 네가 말하는 바와 같도다."
어느날 바사익왕의 초청을 받은 부처님은 판다카에게 '왕에게 법문을 하라'고 했습니다. 이에 놀란 왕이 부처님에게 그 까닭을 묻자 '반드시 많이 배우는 것을 요하지 않습니다. 행하는 것이 으뜸입니다'고 왕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판다카는 바사익왕에게 다음과 같은 게송을 설했습니다. "천장을 왼들 뜻을 모르면 무슨 이익이 있으며, 경을 많이 왼다 해도 뜻을 모르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한 뜻이라도 듣고 행하여 제도됨만 같지 못하다. 한 글귀를 알더라도 행하면 도를 얻는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거의 모든 이들이 고등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예전보다 존경받는 이들은 적고 지탄을 받는 이들은 많으니 어쩐 일일까요? 참다운 교육은 많이 배우고 외우는데 있지 않습니다. 바보도 바르게 깨우치도록 도와주는 것이 참된 교육입니다.
미국의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인간을 지력으로만 교육시키고 도덕으로 교육시키지 않으면 사회에 대하여 위험을 기르는 격이 된다'고 말합니다. 깊이 유념할 일입니다.
서산대사는 노래합니다. "소상강 대나무 한 가지를 베어다가 동정호에서 피리 부네. 연꽃 핀 정자의 나그네가 아니라면 누가 이 맛을 알리오."
- 장곡스님 글 모셔옴 -
'마음 수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생은 늙는다 (0) | 2020.12.20 |
---|---|
꼴불견을 봅니다 (0) | 2020.12.15 |
오래 살고 싶어요? (0) | 2020.12.09 |
지나간 과거에 메달리지 말라 (0) | 2020.11.28 |
분노로 뒤덮인 세상 (0) | 2020.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