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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悠悠自適 베짱이 나라
마음 수양

그림자

by 베짱이 정신 2018. 11. 26.


그림자

                                                  - 법정 스님 -

 

못가에 홀로 앉아 있다가

물 밑의 스님을 우연히 만나

말 없는 웃음으로 서로 보면서

그를 알고 말해도 대답이 없네.

 

고려 시대 진각 혜심 선사의 <그림자를 보고>라는 시다.

맑은 물 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그 느낌을 나타낸 글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그림자를 지니고 살아간다.

빛을 받아야 그 그늘에 거무스레하게 나타나는 형상.

맑은 물이나 거울에 비치기도 하는 자신을 닮은 그 형상.

 

자신의 그림자를 이끌고 한평생 살아온 자취를 이만치서 되돌아본다.

물론 그림자는 실체가 아닌 허상이다.

그러나 그림자 없는 실체는 또 무엇인가.

그 실체는, 그림자를 지니지 않은 그런 실체는 존재 의미를 잃는다.

 

먹고 마시고 입고 걸치고 머물고 다니면서 사는 우리는 알 건 모르건 간에

수많은 사람들의 은혜와 보살핌 속에서 살아간다.

'그림자 노동'이란 말이 있는데 집안에서 식구들이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보살피고 거들며 헌신하는 일을 가리킨다.

 

내가 절에 들어와 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은혜와 보살핌 속에서 살아왔는지

요즘에 이르러서 새삼스레 부쩍 마음이 쓰인다.

'그림자 노동'의 은혜 속에서 살아온 나날들이었다.

그 대신 내가 세상에 끼친 게 얼마나 될까.

받은 것에 견주면 백 분의 하나, 천분의 하나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무겁고 무겁다.

 

말 없는 웃음으로 서로 보면서 그를 알고 말해도 대답이 없네.

 

-산방한담(山房閑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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