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批判)의 순기능
비판(批判)은 현상이나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밝히거나 잘못된 점을 지적함을 말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흔히 비난과 비판을 혼동하여 무조건 나쁜 것이며 자신을 인격모독 하는 것으로 오해하여 싫어한다.
보편적으로 사람들은 비판받는 것을 싫어하고 잘잘못을 떠나 그런 말을 듣는다는 것을 자신의 수치로 여긴다. 또한 자신의 부족함과 실수를 인정하기보다는 오히려 인격을 무시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원한의 마음을 품는다. 그러나 건전한 비판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도 엄청난 손해요인이다.
내가 비판을 받는다는 것은 냉정히 생각해 보면 나를 위해 아주 좋은 일이다. 남의 일에 무관심한데 고맙게도 나의 잘못과 단점을 지적해 주니 내가 나를 몰랐던 부분을 객관적으로 들으며 내가 그랬었나 하고 내 자신을 반성할 수 있으니 고마운 일 아니겠는가.
비판은 비난과는 다르다. 건전하고 바른 비판이 이루어질 때 사회는 건강해지고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남들이 나를 보기는 쉽다.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면 우물 안의 개구리이며 고집쟁이가 될 뿐이다. 있는 그대로의 비판을 받아들이면 모든 면에서 개인과 사회는 성장할 것이다.
그러니 비판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고 비판을 해주는 사람이야말로 개인과 사회를 성숙시키고 발전시키는 아주 고마운 사람이다. 그러하니 비판을 무조건 거부할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 나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비난 속에 사는 사람은 자존감이 무너져 매사에 자신감이 없지만, 비판을 받으며 사는 사람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이 커져 성숙한 인격을 가진 건전한 사회인이 된다. 비판이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 그래서 언론이 중요한데 비판적인 언론에는 재갈을 물리고 비판하는 사람을 매장시키는 독재의 망령이 민주 한국에 다시 살아나 교활하고 교묘하면서도 당당하게 거침없이 시민의 숨통을 조여 오고 있다.
건전한 비판이 사라진 사회는 독재가 판을 치게 되고 불법, 불공정, 부조리, 몰상식 등이 고착화되어 희망이 없는 사회가 된다. 북한, 중국, 러시아를 보라 그런 사회가 되고 싶은가? 아니 뭐가 다른가? 어쩜 이리도 못된 것만 배워 써먹는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만행이고 헌법위반이다.
헌법과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시민들 스스로가 인간의 존엄성, 공정, 정의, 상식을 지키며 꼿꼿하고 올바른 비판정신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판의 순기능을 억압하면 역풍이 불 수 밖에 없다. 소탐대실 하지마라 역사가 가르쳐 주지 않던가?
- 광법 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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