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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덕수궁

by 베짱이 정신 2024. 9. 18.

<사진> 덕수궁 - 대한제국의 황궁

덕수궁의 정문으로  1904년 화재로 1906년 중화전 등을 재건하면서 동쪽의 대안문(大安門)을 대한문(大漢門)으로 개칭하면서 정문으로 삼았다.

대한문의 원래 위치는 지금의 태평로 중앙선 부분이었으나, 잦은 도로 확장 등으로 위치가 수차례 옮겨졌다. 원래는 1968년에 이전할 예정이었으나, 공사비 책정이 되지 않아 1970년에야 현재 위치로 이전했다

경운궁은 본디 성종의  월산대군의 이었다가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잠시 머물던 행궁이었고, 그나마도 인조 이후엔 왕들의 흔적이 서린 즉조당과 주변 몇 채 정도만 뺀 나머지 건물들을 전부 원래 주인들에게 돌려주면서 약 270년 간 비어있었다.
그러나 1896년(건양 원년)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던 고종이 환궁을 경운궁으로 하기로 결정하면서 중건 공사를 명하여 그제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궁궐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러기 위해서 당연히 임금이 머물 정식 침전 역시 필요했고 그에 따라 1897년(건양 2년) 함녕전을 건립했다. 이 때 함녕전만 지은 것이 아니고 당연히 주변에 에워쌀 행각과 도 같이 세웠다. 함녕전의 남쪽 행각을 이중으로 만들었고 바깥 행각에 정문을 지었으니 이것이 광명문이다.

함녕전 - 덕수궁 황제 침전이다. 황제도 사람이니만큼 자신만의 생활공간이 당연히 필요한데 함녕전이 바로 그런 곳이다. 쉽게 말해 황제의 .

덕홍전 - '덕홍(德弘)' 뜻은 '덕(德)이 넓고(弘) 크다'이다. 덕홍전은 일제강점기인 1912년에 처음 지었다. 즉, 조선왕조 시절에는 없었다. 원래 덕홍전 자리에는 경소전이 있었다. 경복궁에 있었는데 1896년(건양 1년)에 경운궁(덕수궁)으로 옮긴 것. 이후 명성황후의 빈전으로 사용했으나 국장 이후에는 '경효전'으로 이름을 바꾼 뒤 혼전으로 활용했다. 이 때는 , 으로 침전 함녕전과 영역을 구분했다. 고종이 살던 함녕전과 가까워서인지 일제강점기인 1912년에 경소전을 알현실로 고쳐 짓고 이름을 덕홍전으로 바꾸었다. 이 때, 창덕궁의 알현실로 개조되었던 인정전을 참고했다고 한다. 

함녕전 - ‘함녕(咸寧)’ 뜻은 ‘모두(咸)가 평안하다(寧)’이다. 《주역(周易) - '건(乾)' 괘 단사(彖辭)》에 나오는 “만물에서 으뜸으로 나오니, 만국이 모두 평안하다”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경복궁의 만화당(萬和堂)을 옮겨 지었다. 황제의 침전인만큼 빨리 공사를 시작했지만, 1897년(건양 2년) 2월에 고종이 환궁한 후에도 완공을 못하여 고종은 한동안 석어당에서 머물렀다. 완공 이후 고종은 함녕전을 자신의 주 처소로 삼았다.

덕홍전 내부 행사 전시품

덕홍전 내부

덕홍전 내부

덕홍전

석어당 - '석어(昔御)' 뜻은 '옛날(昔)에 임금(御)이 머물던 곳'이다. 

석어당의 옆 모습

정관헌 - 덕수궁 근대에 지은 황궁이니만큼 경내에 서양식 건물, 양관(洋館)이 여러 채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정관헌이다. 다만, 다른 양관들과 달리 한국 전통 가옥의 일부 요소가 혼합된 형태이다. 러시아 제국 건축가 아파나시 이바노비치 세레딘사바틴이 설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현존하는 덕수궁 내 양관 중 가장 오래되었다.
‘정관(靜觀)’ 뜻은 '조용히(靜) 내다 본다(觀)'이다.

함녕전의 옆과 뒷 모습

석어당의 옆 모습

함녕전의 뒷 모습

정관헌의 유력한 용도는 고종 황제의 서재다. 일단 고종시대에 정관헌에서 일어난 가장 확실한 사건은 임인년에 어진과 예진을 모사한 것이다. 이 관습은 숙종때 시작되었는데 영•정조시대를 거치며 10년마다 하는 행사로 자리잡았다. 이전 임금들의 어진 도사처로는 정조대의 창덕궁 서향각, 철종대의 창덕궁 희정당이 있다. 정조에 대한 계승 의식이 투철했던 고종은 갑술년(1874)에 자신의 어진을 서향각에서 모사했다. 갑자년(1864)부터 계유년(1873)까지 왕실의 각종 책보를 서향각에 자주 봉안한 것으로 보아 고종의 서향각 또한 정조의 서향각과 마찬가지로 각종 서화를 소장하고 신하들을 접견하는 서재의 성격이 강하게 보인다.

덕홍전의 뒷모습

즉조당 - '즉조(卽阼)'는 '즉위'와 같은 말로, 인조가 이 곳에서 왕위에 오른 것을 기념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다.

준명당 - '준명(浚眀)' 뜻은 '다스려 밝힌다', 또는 '다스리는 이치가 맑고 밝다'이다. 《서경(書經) - 고요모(皐陶謨)》 편에 나온 구절인 “날마다 세 가지 덕을 밝혀, 밤낮으로 소유한 집을 다스려(浚) 밝힌다(眀)."에서 따왔다

돈덕정 - 덕수궁은 근대에 지은 황궁이니만큼 서양식 건물, 양관(洋館)이 여러 채 있었다. 돈덕전도 그 중 하나이다. 러시아 제국의 건축가 아파나시 이바노비치 세레딘사바틴이 설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돈덕전을 지은 이유는 1902년(광무 6년) 10월에 있을 '고종 즉위 40주년 기념 칭경예식' 때문이었다. 고종은 이 예식을 통해 근대 국가 대한제국의 위용을 세계에 알리고 싶었다. 그 일환으로 각국의 외교관들을 초청해 대규모 행사를 계획했다. 바로 그 행사의 연회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돈덕전을 지은 것이다

황제와 황태자가 각국의 공사와 사절들을 만나고 연회도 열었으며, 신하들을 접견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한 예로, 1906년(광무 10년)에는 황태자 이척(순종)과 황태자비 윤씨(순정효황후)의 가례 때 연회장으로 사용했다.
외국의 국빈급 귀빈들이 묵는 일종의 영빈관으로도 활용되었다. 궁궐에 외국인 숙소가 있는 게 의외라고 생각할 수 있을텐데, 애당초 외국인과 교류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음을 생각하면 크게 의아할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대표적으로 1905년(광무 9년) 방한한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딸 앨리스와 일본 황족 후시미노미야 히로야스 왕 등이 여기서 머물렀다.

1905년(광무 9년) 11월 을사조약 이후에는 일본 경관들이 머물며 경운궁을 감시하는 공간으로 사용했다.

석조전 - 신고전주의 양식의 궁전이다. 1897년(광무 원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경술국치 직후인 1910년에 완공되었으니 대한제국과 역사를 함께 했다고 할 수 있다. '석조(石造)'는 '[石]로 만들었으므로[造]' 붙은 이름으로, 전통적인 궁궐이 목조에 기초한 것에 대비되는 이름이다. 사실 석조전은 정식으로 부여된 전각의 명칭이 아니다. '경복궁 근정전'과 같이 전각의 이름을 지을 때는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석조전은 정전이나 침전의 일부가 아니며 위에 언급했듯 그 자체로 하나의 황궁이기 때문에 굳이 전각의 이름을 부여할 필요가 없었다.
건축 당시에는 '석조궁전(石造宮殿)', '석궁(石宮)', '석조전당(石造殿堂)' 등 다양하게 불렸으며, '석조전(石造殿)'은 나중에 이러한 통칭을 정리해 붙인 것이다.  2009년부터 진행한 복원 공사 도중 붉은색 벽돌을 쌓은 뒤 석재로 외관을 포장하여 건축했음을 확인했다. 즉, 이름처럼 완전히 돌로만 지은 건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근대에 지은 덕수궁에는 서양식 건물인 양관(洋館)이 여러 채 도입되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대한제국의 근대화를 상징하고 황제국으로서의 위용을 보여주기 위해 지은 서양식 궁전이 석조전이다. 동양의 전통 궁궐에서는 정전, 편전, 침전의 기능이 각각 구분되어 있던 것에 비해, 석조전은 서양의 주거 양식을 도입하여 그러한 기능을 하나의 궁전 내부로 통합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중화전 - 덕수궁 정전이다. 중요한 국가 의식을 거행하거나 조회를 열던 곳이다. 조선의 5대 궁 정전 중 유일하게 20세기에 창건했으며 처음부터 조선 왕궁의 정전이 아닌 대한제국 황궁의 정전으로 세운 건물이다.
'중화(中和)' 뜻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바른 성정'으로, 《중용(中庸)》에서 유래한 말이다.

1904년(광무 8년) 대화재로 불탄 이후 1906년(광무 10년) 중건했는데 재정 상의 문제  망국 직전 상황때문에 이전과 달리 단층으로 지었다.
이 곳에서 일어난 중요 행사는 1907년(광무 11년) 1월에 치러진, 당시 황태자였던 순종 - 순정효황후의 결혼식과 1907년 7월에 열린 고종이 순종에게 양위하는 의식 등이 있다.

대한문 - 덕수궁의 정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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