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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悠悠自適 베짱이 나라
마음 수양

세상은 자기 업(業)대로 보인다.

by 베짱이 정신 2014. 1. 27.

세상은 자기 업()대로 보인다.

 

자기가 기쁠 때는 온 세상이 기쁘게 보인다.

자기가 슬플 때는 온 세상이 슬픔에 잠긴 것처럼 보인다.

갱년기 주부에게는 온 세상이 권태롭고 심심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팔팔한 이팔 청춘 연인들에게는 그렇게 보일 리가 만무하다.

불량한 10대들이 어울려다니는 것을 어른들이 보면

"왜 저럴까?" 싶지만, 자기네들은 그게 좋은 것이다.

 

세계는 하나다.

오직 자기 마음에 따라 이렇게 보이기도 하고 저렇게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세상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오직 자기 마음에 따라 지옥도 되고 천당도 된다.

모든 것은 자기 마음의 조작이다.

 

이것은 마치 각자가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는 것과 같다.

빨간 안경을 끼고 보면 세상이 빨갛게 보이고,

파란 안경을 끼면 세상이 파랗게 보인다.

 

세상 사람들이 서로 싸우는 것을 보면 정말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빨간 안경을 낀 사람은 세상이 빨갛다고 우기고,

파란 안경을 쓴 사람은 세상이 파랗다고 우긴다.

자기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여기기 때문에 서로 싸운다.

 

그래서 '이렇다'라고 자기 주장을 남에게 우길 필요가 없다.

남은 똑같은 세상을 나와는 '다르게' 본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너도 맞고 나도 맞고 그도 맞다.

다 맞지 틀린게 하나도 없다.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고 나면 다툴 일이 없다.

싸울 일이 없다.

  

모든 분쟁은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생각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나도 옳지만 너도 옳은데 싸울 일이 없는 것이다.

 

나와 비슷하게 보는 사람은 나와 업식이 비슷한 사람이다.

전혀 다르게 보는 사람은 나와 업식이 다른 사람이다.

  

업식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인다.

소위 유유상종이다.

직업이나 무슨 동호회같은 걸 보면 비슷한 업식끼리 모인다.

 

죽어서 다음 생의 몸을 받을 때에도 새 둥지가 대궐로 보이고 좋아 보인다.

그러면 까치같은 조류로 태어나게 된다.

연못 물이 황금물로 보이고 좋아 보인다.

그러면 물고기로 태어난다.

 

인간에게는 물로 보이는 것이 아귀들에게는 불로 보이고,

천상의 중생들에게는 유리로 보인다.

그래서 모든 인식은 현상적이다라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중생의 업식을 떠난 세상의 본래 모습,

즉 세계의 본질은 무엇일까?

 

칸트는 그것을 물자체로 정의하고 물자체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안다는 것은 인식한다는 것으로,

모든 인식은 현상적이기 때문이다.

자기 업대로 보이기 때문이다.

  

칸트는 물자체가 있다고 봤다.

다만 인식할 수 없다고 여겼다.

칸트는 그렇게 봤다.

 

불교에서는 세계의 본질을 공()하다고 본다.

즉 고정된 실체로서의 세계는 없다는 것이다.

금강경에는 무유정법(無有定法)이라고 했다.

고정된 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금강경에는

"AA가 아니라 그 이름이 A이다."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하늘은 하늘이 아니라 그 이름이 하늘일 뿐이다.

산은 산이 아니라 그 이름이 산일 뿐이다.

아무개는 아무개가 아니라 그 이름이 아무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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