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는 원수인가?
그 젊은 날엔 생존을 위해 애들 키우고, 집 장만하느라 정열을 쏟고, 온갖 신경을 다 쓰면서 살면서 진작 부부간에 정을 돈독히 하는 일을 소홀히 했으니, 은퇴 후 둘이 매일 같이 붙어있다 보니 다툼만 벌어지고, 젊어서 서운한 일만 떠오르니 그냥 미워지고, 서로 간에 허물만 자꾸 보이니 원수같이 될 수밖에.
거기다 영양과 의료 위생상태가 급격히 좋아져 일찍 죽지도 않고, 오랜 시간 서로 바라보고 살아야 되는데 이걸 어쩌면 좋을까요? 그러하니 각 방을 쓰고 서로 따로국밥이 되어 한 지붕 아래 너는 너, 나는 나대로 사는 거지요.
거기다가 경제적 빈곤문제까지 겹치면 생존 자체가 위협받기에 매일 싸우게 되고, 서로 악담하며 증오와 저주를 퍼붓는 사이가 되는구나. 우리나라가 OECD국가 중에 노인 자살률이 최고인 대한민국이 이해 갑니다.
뭐니 뭐니 해도 내 마누라가 최고고, 이방 저 방 해도 내 서방 이상 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아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부부 외에는 아무도 없지. 그러니 서로 편하고 의지가 되고 말벗이 되고 화풀이 대상도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미운 정 고운 정 다 쌓였고 추억이 엄청나게 있는데 어찌 잊으리오.
어차피 못된 남편과 아내들은 일찍 저 세상으로 가게 되어있고 착한 여인들은 늦게 세상 뜨게 되어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안 죽고 안 아프고 살았으니 이거 정말 축복 아닌가? 게다가 웬수 같은 남편과 부인이 살아서 서로 눈을 흘기며 아웅다웅 싸울지라도 둘의 존재 자체가 엄청난 축복이지요.
이래도 부부가 원수입니까? 아니면 고마운 사람입니까? 늙었는데도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이면 그냥 놔두세요. 절대로 안 변합니다. 생긴대로 살다가 죽게 놔두세요. 아웅다웅 싸우는 것은 아직도 관심 있고 사랑한다는 마음이고 걱정하는 마음이 앞선다는 것, 즉 측은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도 해줄 수 없는 것을 부부니까 해주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있을 때는 그 고마움을 전혀 모르지요. 어느 한 편이 죽고 없어져야 잘못을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아무리 웬수 같은 부부도 의무감과 의리 때문에 끝까지 책임지려 노력하는 것입니다. 늙어서는 의리로 함께 사는 것입니다.
늙었지만 든든한 개 한 마리가 옆에 있으니 고맙다고 생각하세요. 그 개는 말도 하고 생각도 하는 의리 있는 늙은 개입니다. 원수인지 은인인지는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그 개를 버리시렵니까? 그래도 속상하지만 그냥저냥 키우며 사시렵니까?
- 광법 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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