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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백수거사 베짱이의 무작정 호남 유람기 1편(2017. 1. 3)

by 베짱이 정신 2017. 1. 7.

백수거사 베짱이의 무작정 호남 유람기 1(2017. 1. 3)

 

  지난해(2016)는 같지도 않은 것들이 나라를 뿌리째 흔들어 놓고도 뻔뻔하게 잘못한 게 없다고 철면피하게 구는 역겨운 꼴을 보느라 대한민국 시민들은 모두 피곤했다. 나 또한 그런 것들을 보면서 울화가 치밀어 오르고, 내가 이럴려고 현직에 있을 때 열과 성을 다해 아이들을 가르쳤나? 하는 자괴감도 들었다. 내가 사랑하고 상식과 법이 통용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모든 시민들에게는 통탄과 탄식의 한 해를 보낸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그런 되먹지 않은 것들이 설쳐대도 그것들을 인간답게 가르치면서 같이 살아가야 할 새해가 아니더냐? 이리하여 베짱이는 존경하는 부인과 함께 무작정 호남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남는게 시간이니 여유있게 차를 몰고 제1 목표지인 전주로 출발. 그런데 방송을 들으니 길이 막힌다나? 그래서 우회하기로 하고 광명-수원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길은 사통팔달로 뚫려있어 이정표만 보고 따라갔다. 처음 가는 길도 나오고 이상한 곳으로도 가지만 차가 없어 아주 여유롭게 평택까지 가고 경부를 타고 가다가 천안 논산 민자고속도로를 지나는데 어? 예전에는 요금을 따로 지불하고 표를 새로 받아 갔는데 논스톱 통행이네? 공주 탄천 휴게소에서 잠시 쉬어 가는데 우리 부부는 쌍화차를 두잔 사서 마셨다(5000). 쌍화차는 진하고 좋았다. 역시 나이가 들었나보다. 보약차가 좋으니...하하하!!! 가는 내내 하늘은 미세먼지로 뿌옇게 흐려있고 주변 산하는 황량하기만 하다. 논과 밭은 비닐하우스가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사료용 볏집을 묶어놓은 둥근 뭉치들이 하얀 비닐 옷을 입고 있어 새로운 그림이 된다.

 

 

전주에 들어서니 점심 때가 되어 전에도 가본 적이 있고 한옥 마을 근처에 있는 비빔밥집인 한국집에 갔다. 여전히 볼품없는 외관이지만 한국적 색을 만들려고 노력한 흔적이 있다. 비빔밥(11000)과 모주(2000) 두 잔을 시켰다. 비빔밥은 나와 존경하는 부인에게는 좀 양이 많았지만 나는 다 먹었다. 밥을 먹으면서 느끼고 생각한 점은 이렇게 비싸게 주고 먹는 비빔밥인데 과연 그 값을 하는가? 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이 집의 브랜드 값을 지나치게 주고 먹는 게 아닌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 실내 장식이며 집 주변 환경을 둘러보니 고급 음식점의 환경이 아닌 것이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단지 밥만 먹는게 아니다. 실내외 조경 및 환경을 보면서 즐겁게 먹어야 되는데, 이건 완전히 밥 못먹어 죽은 귀신들처럼의 대접을 받는게 싫었다. 따라서 하나 제안을 하고자 한다.

 

<베짱이의 제안>

1. 식당 건물 자체를 하나의 고급 음식처럼 여기게 한옥으로 깨끗하고 편리하게 지어서 손님을 귀빈처럼 모시게 해보자.

- 어떤 이는 음식 맛만 좋으면 됐지 뭔놈의 집이 중요하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맛있는 음식도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품위가 달라지지 않는가. 음식의 질에 자부심이 있다면 그릇뿐만 아니라 손님을 맞는 식당 자체도 품위있게 오는 손님을 환영하고 대접하기에 알맞은 옷을 입어야하지 않겠는가? 언제까지 허름한 집에서, 또 그것을 아름답고 정겹다고만 강요할 것인가? 시대가 변하면 사람도 변한다. ,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켜줘야 한다. 품위있게 살자.

 

<해결책> - 하드웨어를 품위있고 한국적으로 만드는 데에는 엄청난 돈이 들으니, 전주 시청이나 아니면 문화 관광부에서 각 지역에다 그 곳 특성을 살리고 스토리가 있는 멋진 식당을 지어 각 지역 우수 업체에게 일정분의 임대료를 받고 빌려주어 맛과 서비스에 충실하도록 하자. 물론 공정한 안전견제장치를 만들어 항상 맛과 서비스에 최선을 다하도록 해 놓으면 된다.

 

2. 종업원의 복장도 시대와 전통에 맞게 갖추고 그 음식에 대한 설명도 충분히 할 수 있게 교양도 강화시켜보자. 지금의 복장과 복무태도는 고객들이 음식을 즐기고 문화를 누리는 것이 아닌 주린 배를 채우고 종업원들 일의 효율성만 강조한 것이다. 주방의 시끄러운 소리와 종업원의 소리 등이 없는, 시장바닥 같지 않은 임금님의 수라상을 받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여 종업원도 손님도 모두 멋진 환경에서 맛난 음식으로 그 지역의 스토리를 느끼며 인생의 멋과 맛을 느끼게 해보자.

 

전주를 여러 번 가보았지만 처음에만 새롭게 느껴지지 두세번 가면 시들한 게 사실이다. ? 거기엔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한옥마을이 예전엔 살림집 위주였는데 관광객들이 몰려오니 이제는 하나의 시장같이 변했다. 그래 이런 변화는 어쩔 수 없다고 치자. 그러나 이런 시장같은 분위기로는 한계에 다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요즘 다행인 것은 서울의 고궁과 전주 한옥마을에 한복을 입고 다니는 관광객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볼거리, 먹을거리, 할 거리, 즐길 거리 등등이 시대에 맞게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 예술가들의 끼와 능력 발휘가 필요한 것이다. 전주시에 기대해 본다. 아니 대한민국 문화관광부에 기대해 본다. 기대하지 말라고? 시장원리에 맡기라고? 흐유~~,,,지금은 21세기다. 시민들의 분출하는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잠재울 수는 없다. 관공서는 뒤치닥꺼리만 하는 게 아니다. 문화, 사업적 선도를 해야 한다. 이끌어 주고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 주고 등등.

 

? 이거 뭔 이야기가 이리도 거창하게 시작되었나? 못 말리겠네. 베짱이!!!

 

 

점심을 먹고 한옥마을 주차장으로 차를 대러 갔더니만 평일인데도 만차. 그래서 남원 가는 길 양옆의 노상 주차장으로 갔더니만 얼라리요? 이 곳도 만차일세? 차를 돌고 돌아서 시내방향 노상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제일 가까운 오목대를 향해 출발. 육교가 있어 안전하게 건널 수 있다. 그 육교를 향해 가는데 예전에 달동네 같았던 그 작은 동네가 이젠 완전히 벽화와 작은 가게들이 있는 멋진 동네로 탈바꿈했네. 바로 이것이다. 사람의 능력은 무한대. 박제된 시각으로 보면 볼품없는 동네 무질서하게 보이는 동네지만 열린 시각으로 보고 예술적인 감각이 더하니 아기자기 멋진 동네가 되어버렸네. 아주 좋아요.

육교를 건너 오목대를 갔다. 고려 때 이성계가 왜구를 토벌하고 돌아가는 길에 전주 이씨 종친들을 모시고 연회를 배풀었다고 하는 누각인데 여기에서 한옥마을 내려다 보면 정말 동네가 예술이다. 지붕의 선들이 끊어질 듯 이어지고, 이어질 듯 끊어진 풍경은 고궁에서 보는 풍경과는 사뭇 다르고 여유와 풍요를 느끼게 해주는 멋진 광경이다. 이런 곳에서는 노래가 절로 나온다. 전주는 소리의 고장이 아닌가? 소리꾼이 시간을 정해 놓고 나와서 관광객들과 함께 소리하며 노는 시간을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춤꾼도 나오면 금상첨화지. 이러면 국악과를 나온 젊은 인재들의 무대도 되고 일자리도 늘고 얼마나 좋은가? 이제는 문화적인 일자리가 늘어나야 한다. 혼자 아쉬움을 달래본다. 그러나 소리가 없어도 내가 전주 한옥마을을 가면 꼭 오목대에 올라서 멋진 풍경을 눈과 가슴에 담고 온다. 내가 그림을 못 그리는데도 이 곳에 오르면 그림을 그리고픈 충동이 일어나니 이를 어쩌면 좋을고? 전주시장과 문화관광부장관은 답하시오~~

오목대를 내려와 경기전을 향해 간다. 거리엔 평일인데도 인산인해다. 거기에다 젊은 청춘남녀들은 멋지고 날아갈 것 같은 한복을 입고 나풀나풀 걸어다니는 모습은 정말 신선계에 온 듯한 감흥을 준다. 이럴 때 선술집 즉, 옛 정취가 묻어나는 현대적인 간이 주점이 있어 간단히 막걸리 한잔하며 분위기를 즐길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쉽다. 저절로 옛시조가 나오는 그런 장면을 보며 학교에서 배웠던 시조를 읊조린다면 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할 것인가.

경기전에도 관광객들이 많다. 한복을 입은 청춘 남녀들이 한 폭의 그림이 되고 영화가 되어 베짱이의 눈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사적지에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설명판 내용이 아주 부실하다. 물론 외국인에게는 더하겠지만. 이 베짱이는 눈이 퇴화되어 작은 글씨는 영 안보이기에 작은 글씨로 쓰여진 것은 아예 읽을 생각을 안 한다. 경기전 경내는 콘크리트가 깔리지 않은 흙길이라 참 좋다. 어디서 흙을 밟아 보겠는가? 조선시대로 돌아가 걷는 기분으로 걸으니 운치도 있고 남쪽이라 꽃나무들이 움을 트려고 하는 것들도 보고 대나무 바람소리도 듣고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소리도 들으며 걷는 기분은 참 상쾌하다. 경기전 내에도 대문을 잠궈 놓은 건물 조경묘가 있다. ? 뭣 때문에 개방을 안하는지 그 집 앞에 써놓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봤다. 관광객 스스로가 알아서 하라는듯한 사적관리 마인드가 언제나 바뀔까?

경기전에는 전주사고가 있다. 지금은 실록 모두를 안전하게 옮겨 보관하지만 조선시대까지는 중요 책과 실록을 보관하던 곳인데 의외로 작다. 그러나 바람이 잘 통하게 누각형태로 지어져 오랫동안 보관 가능하게 지어진 건물이다. 다행히도 누각 안에는 설명이 자세히 되어있어 사고에 대한 이해도를 누구나 높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어진 박물관(입장료 3000)을 들어서니 흙길을 밟고 온 관광객들로 인해 바닥에 흙이 많은데 그거 청소하려면 무척 힘들겠다. 또한 입장객들은 기분이 안 좋을 것이고 유물 관리 차원에서도 먼지가 많이 쌓이면 좋을 리가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도 조금만 신경 쓰면 될텐데... 예를 들면 신발의 흙을 털 수 있는 발판이라든지 에어건(공기로 먼지 제거하는 총)을 설치해두면 얼마나 좋을까? 하여튼 생각해볼 문제가 엄청 많게 느껴진다. 오잉~~?? 베짱이만 그런 생각하는가? 왕의 어진(초상화)이 모셔져 있는 곳인데 몇 분의 초상화만 있을 뿐이다. (태조, 세종, 철종, 영조, 정조, 고종, 순종 임금) 전부 붉은 곤룡포(조선 시대 국왕이 집무시에 입던 상복(常服)으로 용포(籠袍망포(蟒袍어곤(御袞)이라고도 한다) 차림인데 태조 이성계는 청룡포, 고종은 황룡포, 순종은 흑룡포를 입은 어진이 전시되어 있다. 철종의 어진은 반쯤 타버렸지만 예술가들과 과학기술의 협조로 완벽 복원을 해 놓았다고 한다. 어진실 입구에 일월오봉도가 있어 관광객 누구나 기념 촬영을 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외국인도 앉아서 한 장 찰칵, 기생복장을 한 남고생들도 그 앞에서 사진 찰칵 찍는데 그 모습이 익살스럽고 재미있었다. 본인도 전주 올 때마다 옥좌에 앉아 사진을 찍으며 임금의 흉내를 내본다. 그러나 사진은 그렇게 멋지게 나오지는 않는다.

어진 박물관을 나오면 경기전의 부속건물들이 보이는데 멀리 전동성당의 종루가 이상하리만큼 잘 어울리게 보인다. 수복청, 마청, 용실, 조과청, 제기고, 어정, 수문장청, 동제 서제 등이 있어 조선시대에는 경기전이 매우 성스러운 곳으로 관리가 잘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경기전을 여유롭게 거닐다가 전동성당으로 갔다. 바로 가까이에 있다. 이곳 역시 관광지가 되어 사람들로 붐비는데 얼라리? 성당 내부로 못 들어가게 해놨네?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종교시설은 늘 개방되어야지...??? 내가 오해 하는겨? 그러나 이곳 성당 건물은 예술이다. 내부도 그렇고. 주변 부속 건물도 붉은 벽돌로 지어 고풍스럽고 색다른 감흥을 준다.

이제는 자유롭게 이곳 저곳을 돌아다녀 본다. 한복입은 청춘들은 자유로워 보인다. 외국인도 한복을 입고 좋아라 하고... 중심거리로 단장한 양 옆은 거의 가게로 변모했고 안쪽 조용한 곳만 주민들이 거주하나 보다. 하긴 종일 관광객들이 들락거리니 보통 신경이 쓰이지 않을 것이다. 이 곳에는 한옥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일본식 주택들도 한옥과 섞여 역사를 말해주고, 조선황실의 마지막 황태자 이석씨가 사는 승광재도 태극기를 걸어 놓고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황실은 망했어도 그 황실을 팔아 먹었던 종친들은 여전하리라?

전주에 오면 삼천동 막걸리 타운에 가서 허리 띠 풀고 마셔야 되는데 대낮인데다가 운전을 하기에 다음 기회에 마시기로 하고 남원으로 출발. 널찍한 4차선의 도로를 막힘없이 달린다. 고속도로가 따로 없다. 이래서 평일이 좋다. 평일에 놀러 다니는 족들은 백수 아니면 노인들, 계모임 등일 것이다. 이 베짱이는 백수로 아주 행복을 누리며 다닌다.

 

겨울이라 해가 일찍 지는 관계로 5시가 넘어가니 어둑어둑하다. 남원하면 춘향전과 광한루가 떠오르니 당연히 광한루원을 거닐어야지. 입장료 2500. 주차비 2000원을 내고 입장. 한적한 곳에 아이들 재잘거리는 소리가 난다. 관광객들 사진도 친절하게 찍어주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예뻐 보인다. ~ 요놈들 이쁘네.

석양의 완월정, 물에 비치는 완월정이 예술이로다. 황혼 빛이 드는 곳에 완월정이 반기네. 전에 없던 춘향관이 있어 들어가보니 소설의 내용을 IT기술을 이용해 현대식으로 보여주고 당시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네.

 

 

다음으로 월매집 방문, 맞이하는 월매는 없어도 정겨운 기생집이다. 그래도 제법 큰 기생집이 아니냐. 당시 조선의 인구는 얼마 되지 않았으니 큰 기생집이 필요치 않았겠지. ~~? 이거 소설 속의 이야기지. 그런데 왜 자꾸 현실로 착각하지? 이상하네~~. 춘향과 이도령. ? 왜 춘향이를 먼저 말하나? 이도령을 먼저 말 않고? 그거 이상하네~~?? 하하하!!! 춘향이 마을이라서 그런가?

춘향이와 이도령의 만남을 생각하며 오작교를 건넌다. 양 옆의 물 속에는 잉어들이 날 잡아잡수 하며 여유롭게 유영을 하고 만일 내가 한 잔을 마셨다면 그 물에 풍덩 빠지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의 맑은 물과 광한루의 물그림자가 나의 혼을 빼놓는다. 송강 정철도 이곳에서 근무할 때 나와 같은 충동을 일으켰을까? 하여튼 송강 정철은 좋은 곳에서 근무를 했었네. 거기에 술은 기본으로 따르니 시가 절로 나오지 않았을까 혼자 생각해 본다.

 

 

광한루의 앞모습과 뒷모습을 보고 춘향사당으로 간다. 작고 소박하게 자리한 사당에는 춘향의 그림이 있고 향을 사를 수 있게 해 놓았다.

바쁠 것 없이 여유롭게 광한루원을 거닐며 풍경과 분위기를 즐기며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나와 오늘의 숙소를 잡으러 출발. 남원하면 추어탕인데 저녁으로 추어탕을 먹으려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될려나 모르겠네. 그 전에 지리산 온천에 가서 온천을 먼저하고 저녁을 먹을 생각이다. 구례 산동에 자리한 온천 단지는 저녁이라 그런지 조용하다. 지리산 가족호텔에 가서 72500원 주고 20평짜리 방을 얻고 올라가 짐을 놓고나서 호텔내에 있는 온천장에 갔다. 입장료는 투숙객에게 2000원 할인해 줘서 7000원을 내고 들어갔다. 평일 저녁이라 온천객들은 적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니 아~~ 행복해라. 피로가 물러가는 듯한 편안함을 느끼고 즐기다 나와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늦어서 남원에 가서 추어탕을 먹고 오기에는 너무 늦은 시각이라 온천 단지 내에서 먹기로 했다. 무얼 먹을까 고민하며 차를 몰고 이리 저리 다니는데 죄다 지리산 흑돼지구이만 있는데 다행히도 산채정식이라는 식당 간판이 있어 그 집으로 들어갔다. 이 베짱이는 고기보다는 채소가 더 좋다. 역시 손님은 우리뿐. 식당 건물은 미적 감각으로 지은 것이 아니지만 1인당 15000원짜리 산채정식을 시켰더니 다 먹음직스럽고 맛깔나는 반찬이 약 30가지가 나온다. 거기에 술이 빠질 수 있나? 이곳이 산수유로 유명한 곳이니 당연히 산수유주를 시켜 맛난 저녁을 품위있게 대접받으며 먹었다. 이런게 먹는 즐거움이고 여유로구나 느끼며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품위있는 저녁을 먹고나니 이제는 눕고 싶다. 호텔로 돌아와 여유롭게 깜깜하지만 베란다로 보이는 산그림자도 보고 불빛을 쫓아 눈길도 옮기며 고요를 만끽했다.

 

 

이곳 산동 온천단지내 건물들도 하나같이 멋없는 콘크리트 덩어리에 불과하게 집을 지었다. 시대가 바뀌고 사람이 바뀌면 생각도 바뀌어 하드웨어도 바뀔 것이니, 이 삼십년 후면 콘크리트 상자같은 식당들이 사라지고 다양한 개성을 지닌 멋진 집들로 식당을 만들어 손님들이 품위 있어지는 식당, 손님들이 대접받는 식당이 되겠지? 그런 여유있는 시대를 그려본다.

 

오늘 하루 베짱이 백수거사 애 많이 썼수다. 내일을 위해 일찍 자자요. Thank you!!~~, ~~!! 再見!! See you tomorr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