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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베짱이의 북유럽, 러시아 유람기 11편(모스크바) - 열한째 날(2016. 8. 12. 금)

by 베짱이 정신 2016. 8. 31.

베짱이의 북유럽, 러시아 유람기 11편(모스크바) - 열한째 날(2016. 8. 12. )

 

오늘이 모스크바 여행 날이며 밤 비행기로 집으로 가는 날이다. 일어나 세면을 하는데 더운 물이 나온다. 어제 밤에는 나오지 않더니만. 흐이~~. 밖으로 나오니 가을 같은 날씨에 상쾌하다. 공기 중에 습기가 없으니까. 주변을 둘러보니 볼 것이 없다. 앞 마당이나 왔다 갔다 하다가 보니 이상하게 생긴 차들이 있다. 영화 속에 나오던 엄청 긴 승용리무진이다. 결혼식에서 신랑, 신부와 친구들이 타고서 파티를 벌이는 그런 차이다. 회사가 이곳에 있나? 그런 차들이 제법 있다.

 

 

 

<아파트 출입구>

<아파트 단지 동과 동 사이의 공간 활용>

어제 가이드로부터 중국인들이 많아 아침 먹기도 힘들테니 아예 늦게 먹든지, 일찍 먹든지 하라고 했지만 제 시간에 아침을 먹으러 갔다. 사람들이 많다. 음식은 간소하다. 빵 한 조각에 채소를 넣어 센드위치를 만들어 홍차와 함께 먹는데 홍차의 수준이 야생이다. 둘러보니 군인들이 많은데 주로 공산권 군인들이 모여 회의를 했나? 어제 상트 페때르부르크에서도 중국 군인들은 많이 봤는데 여기서도 본다. 사람들이 많으니 식탁이 부족하여 중국 군인 한 사람이 우리 식탁에 앉았다. 중국말로 대화를 시도하는데 한국식 중국어를 전혀 못 알아 듣는다. 중국의 인민해방군가, 즉 중국의 국가 작곡가 정율성에 대해 물어보고 모른다면 한국 광주 출신이고 해마다 음악제도 열리고 중국과 한국은 같은 형제라고 말해 주려고 했더니만 아쉽다. 이 놈이 영어로 말하자고 하네? 이상하네? 보통 중국인들은 중국어로 말하면 좋아하는데....군인이라 그런가? 그래서 영어가 짧다고 하고 말을 안했다. 이 중국 군인 놈 제법 영리한 놈 같던데...

간소한 아침을 먹고 짐을 챙겨 내려오는데 우려와는 달리 시간이 걸리지 않고 내려왔다. 이거 내가 순진하게 속은건지 아니면 다행히 중국인들이 예상보다 적게 투숙해서 그런지...

 

<붉은 광장>

<레닌 묘> 

여행 마지막 관광을 나선다. 크레믈린 궁과 붉은 광장으로 간다. 말로만 듣고 사진과 TV로만 보던 그곳이다. 러시아의 심장인 모스크바지만 어째 야생의 분위기가 있는 듯하다. 북유럽처럼 깨끗하고 깔끔한 면은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눈이 마치 금방이라도 싸울듯한 모습이다. 다 선입견이길 바라노라. 모스크바도 평지인데 붉은 광장 부분은 약간 낮은 언덕에 자리한 듯하다. 제일먼저 붉은 광장과 바실리 성당, 굼백화점 등을 먼저 구경한다.

 

크렘린 주변에는 북동쪽의 붉은 성벽, 붉은 벽돌로 만든 국립연사박물관, 굼 백화점, 둥근 양파처럼 생긴 성바실리성당으로 둘러싸인 붉은 광장 이 광장의 넓이는 73000제곱미터에 이른다. 붉은 광장이라는 이름은 소비에트정권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크라스나야(krasnij)’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는 본래 아름답다는 뜻이었는데 근래 붉은으로 뜻이 바뀐 것이다. ‘화재의 광장’, ‘교역의 광장으로 알려져 있는 붉은 광장의 중심에는 화강암 건축물인 레닌영묘가 자리하고 있다. 레닌의 묘에는 사망한 모습 그대로 방부 처리된 레닌이 잠자고 있다. 이 곳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광장에는 무슨 행사가 있을 건지 스탠드를 설치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어수선했다. 광장이 무척 넓을 줄 알았더니 그건 상상이었음을 실감한다.

바닥은 돌로 되어 걸을 때 조심해야 한다.

 

<굼 백화점>

<굼 백화점 내부> 

먼저 굼백화점에 들어가 봤다. 19세기 말에 건설된 굼 백화점은 모스크바의 또 다른 상징이다. 유리 지붕과 정면부로 이루어진 이 거대한 구조물은 6500평방미터에 달하는 지대에 다리와 보도로 연결된 다섯 개의 평행 통로가 있다. 아라비아의 시장 바자르를 닮았으며 150개의 상점이 들어서 있는 굼 백화점은 백화점이라기보다는 상가에 더 가깝다. 사람들은 많은데 물건을 사는 사람보다는 구경꾼이 더 많은듯하다. 공산주의가 절정기였을 때 굼에서 돈을 쓰는 것은 돈을 버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고 한다. 볼프강 쾨펜(Wolfgang Koppen, 1906~)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복도 · 휴게실 · 계단 등지에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긴 행렬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여기는 분명 사회주의사회이다. 구매자들 대부분 줄을 서 있는 동안 책을 읽는다. 그러나 그들이 무엇을 사려고 줄을 서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이랬던 곳이고 그런 나라였다. 그러나 지금은 관광명소로 많은 사람들이 관광을 오는 곳인데 중국인들이 많다. 내외부를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며놓은 멋진 곳으로 러시아 백화점 문화를 보여준다. 한국의 롯데가 모스크바에 한국식 롯데백화점을 만들었는데 러시아 문화를 모르고 고층으로만 지어 지금은 사람들이 오지 않고 파리만 날리는 백화점이 되었다고 한다. 러시아인들은 쇼핑만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산책도 하고 사색도 하며 예술이 있는 그런 백화점을 찾는다는 것이다. 이런 문화차이를 인식하지 못해 파리만 날린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러시아 문화를 수용한 제2 롯데 백화점을 건설중이라고 한다.

 

<바실리 성당>

<크렘린과 바실리 성당>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모습의 성 바실리성당은 붉은 광장에서 눈길을 끄는 건축물이다. 돌로 만들었지만 그 형태와 색채의 어울림이 기이하면서도 환상적이고 혼돈스럽지만 전체적인 구성에서는 정확하게 설계된 건축물이다. 이 성당은 이반 4세가 타타르족을 물리친 것을 기념해 건설한 것으로 당시 평민들로 붐비던 크렘린 외곽의 중앙에 의도적으로 건설되었다. 바실리라는 성당 이름은 이반 4세에게 큰 영향을 준 수도사 바실리에서 따온 것이다. 성바실리성당 앞에 설치된 기념비는 17세기 초 폴란드 · 라트비아의 점령에 대항한 미닌과 포샤르스키를 추모하기 위한 것이다. 이 역시 외세 침략에 대한 승리를 기념하는 것이다. 19세기 말 건설된 역사박물관은 크렘린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준다. 이곳도 입장료를 받는다. 사람들이 줄을서서 표를 산다. 성당 외부를 한 바퀴 돌면서 안을 슬쩍 보니 별것 아니더군. 다른 성당과 비슷. 밖에서 사진을 찍다가 중국인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양반 서울도 한번 가봤다고 하면 좋았다고 하길레 나는 중국 10번 가봤다고 했더니 놀라는 것이다. 하여튼 이야기 나누는 것은 재미있다. 아니 한국식 중국어를 민간인들은 소통이 되는데 아침의 군인 놈은 왜 안되는겨? 그 놈 눈 빛이 조금 다르더니만...

 

광장과 백화점, 바실리 성당의 외관을 보고서 점심을 먹으러 갔다. 한식이지만 별로다. 호텔 내에 있는 식당으로 종업원이 마치 중앙아시아 사람같이 생겼다. 중앙 아시아인들이 흔히 입는 옷차림을 했네. 그래도 친절하다. 어제 밤 묵었던 호텔보다는 고급이다. 1층 로비가 화려하다. 그림도 걸려있고 품위있게 만들었네.

 

오후에는 크렘린 내부로 들어간다. 다시 출발. 먼저 트로이츠카야탑을 지나 대회궁전이라는 현대식 건물을 지나니 양파모양의 지붕이 있는 교회건물들이 여러 채가 보인다.

 

 

크렘린 궁은 2.4킬로미터 길이의 성벽에 둘러싸인 크렘린은 면적이 283000평방미터이고 성벽 중간 중간에는 18미터자리 뾰족탑들이 세워져 있다. 크렘린 내부에는 러시아정교회 대주교와 황제의 궁전, 성당 그리고 20세기에 세워진 행정기관들이 들어서 있고 그 주위에는 붉은 광장, 성바실리성당이 있다. 크렘린은 러시아의 권력 그 자체다. 지난 세기 세계를 좌지우지할 만한 막강한 정책들이 은밀하게 계획되고 실행된 곳이 바로 이곳이다.

 

크렘린은 1156년 처음 축성되었는데 당시에는 목재건물들이 오크 울타리에 둘러싸여 있었고 면적은 지금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크렘린은 화재로 무너지고 다시 확장되는 과정을 자주 반복했다. 1367~1368년 드미트리 톤스코이 대공이 흰색 벽의 거대한 요새와 높은 탑들을 세웠는데 이때부터 모스크바는 흰색 담의 도시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크렘린이 현재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차르라는 칭호를 처음 사용한 독재자 이반 3(Ivan , 1440~1505) 치하 때부터이다. 이반 3세는 자신의 권력을 확고하기 위해 크렘린을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1460년대 들어 크렘린의 석회암 성벽은 파손 상태가 심각해 붕괴할 위험에 처했다. 이반 3세는 자국 건축가들에게 보수시켰지만 결국 이탈리아 건축가들을 불러들여야 했다. 이탈리아 건축가들은 성벽을 길이 2235미터, 두께 3.5~6.5미터, 높이 8~19미터로 확장했고 제비꼬리모양의 독특한 이탈리아식 총안(銃眼)을 도입해 방어기능이 주였던 요새를 왕조의 중요한 근거지이자 동방정교회의 요람으로 탈바꿈시켰다. 이반 3세는 러시아 통일을 거의 완성했고 중앙집권화와 군주권 강화를 통해 독재자로 군림했다.

 

그 후 1571년 크렘린은 타타르족에게 파괴되고 약탈당했지만 1624~1723년에 주요 건물들이 또다시 증축되었다. 그런데 수도를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긴 후 1812년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략했다. 이 원정은 실패로 끝났지만 크렘린은 큰 위기를 맞았다. 나폴레옹이 모스크바를 탈출하면서 크렘린을 완전히 파괴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폴레옹의 명령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이때 파괴된 크렘린은 1838~1849년 보수되는 동시에 대규모로 증축되었다.

 

크렘린은 붉은 성벽이 감싸고 있는데 성벽은 다시 북서쪽의 네그린나야강, 북동쪽의 해자, 남쪽의 모스크바강에 둘러싸여 있다. 현재 네그린나야강은 알렉산드로프스키 공원 밑으로 흐르고 있고 볼리사야 카멘니 다리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이 강이 모스크바강으로 흘러드는 것을 볼 수 있다.

 

 

러시아정교회 중앙 성당인 우스펜스키대성당1498년부터 러시아 황제의 대관식이 거행된 곳인데 수도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전된 다음에도 계속되었고 중요한 칙령이 발표되었다. 이곳에 모스크바 총대주교와 대주교의 시신이 안치되었다. 현대판 짜르인 푸틴이 여기서 황제 즉위식(대통령 취임)을 했다지? 푸틴 좋았겠다. 영원히 권력을 잡으려 별 짓을 다 하겠지. 그렇게 좋은 권력을 아무에게도 안 줘야지 결심을 하면서 했을까?

 

아르항겔리스키성당은 대천사 미카엘에게 바친 최초의 석조 교회로 이탈리아적인 특징이 강하지만 그와 동시에 십자가가 새겨진 러시아 전통 교회양식도 보여준다. 이곳은 역대 황제와 귀족들의 유체 안치소인데 총 48개의 관이 성당 곳곳에 놓여 있다. ‘뇌제이반 4세의 관도 이곳에 있다. 하여튼 관이 많다. 관을 보러 간 것인가?

 

크렘린에서 권력의 최고 상징은 2단으로 된 높이 60미터의 이반대제의 종루(鐘樓)’이다. 1505년 건축이 시작되어 1508년 완공되었다. 당시 모스크바에는 이 종루보다 높은 건물이 없었는데 그것은 종루보다 더 높은 건물을 세울 수 없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 종루는 수차례 화재와 재난을 견뎠는데 1812년 나폴레옹의 침공 당시 프랑스군의 포격으로 인접한 건물 두 채가 무너졌을 때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

 

높이 6미터에 무게 220톤이나 되는 차르의 종은 러시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촬영 장소 중 하나다. 이 종을 주조할 당시 화재가 발생했는데 누군가가 불을 끄기 위해 물을 뿌리는 바람에 종에 금이 가서 일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그로부터 한 세기 뒤 당시의 참사를 되새기기 위해 종을 받침대 위에 얹어놓았다. ‘차르의 대포역시 불운의 상징이다. 16세기 말 제작된 이 대포는 구경 890밀리미터, 무게 44톤으로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대포지만 단 한 번도 쏘아보지 못한 채 장식품으로 전락했다.

어리석은 짓의 결과물이 관광명소가 되는 걸 보니 인생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내가 늘 말 한 것이 생각난다. 우리도 교훈을 얻기 위해서도 실패의 역사를 기록하고 그 유물을 보관해야 한다.

 

<푸틴이 근무하는 곳> 

이제는 밖으로 나가는데 나가기 전에 푸틴이 근무하는 집무실 앞을 멀리서 보면서 지난다. 물론 화단이 앞에 있어서 접근은 못하지만 노란색 건물이란다. 저 건물 안에서 세계의 역사를 뒤흔드는 일들이 벌어진다니... 거기에 우리는 휘둘릴 수밖에 없다니...안타까운 마음을 안고 크렘린을 떠난다. 푸틴의 사위가 한국인이어서인지 세계 유일의 러시아 무비자 입국 국가가 되었다고들 말한다. 사실이라면 참 웃기는 일이지. 물론 우리야 무비자니까 편리하고 좋지만, 국가 정책이 한 사람의 말 한마디에 왔다갔다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예정 시간보다 시간이 절약되어 남는 시간을 이용하여 참새언덕에 있는 모스크바 대학교 건물과 시내 조망을 위해 갔다. 참새언덕은 모스크바에서 제일 높은 언덕이라는데 평지위에 조금 높은 언덕일 뿐이다. 우리 기준에서 보면 높지 않은 곳이지만 신시가지가 보이고 올림픽 경기장도 보이고 스키 점프대도 보인다.

 

<모스크바 국립대학 > 

돌아서면 우뚝 선 건물이 보이는 데 현재는 모스크바 국립대학 기숙사로 쓰이는 멋진 건물이 서있다. 모스크바에는 이른바 '스탈린의 7자매'가 있다. 친인척 관계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거의 쌍둥이를 방불케 하는 7개 고층 건물을 일컫는 말이다. 스탈린이 모스크바 시가지의 상당 부분을 '스탈린식 고딕' 양식으로 재건하려는 생각에서 만든 대표적인 마천루들이다. 모두 시내 중심가에 세워져 모스크바 어디에 있더라도 그중 하나가 눈에 들어오게끔 건축됐다고 한다.

 

러시아 정부 청사 맞은편에 있는 우크라이나 호텔, 코펠니체스카야 거리에 있는 강변 아파트, 쿠드린스카야 광장의 아파트, 2009년 힐튼호텔이란 이름으로 재개장한 레닌그라드 호텔, 러시아 외무부 본부 건물, 붉은 문 광장에 있는 행정부 건물, 그리고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건물이 바로 그 '7자매'라고 한다.

 

고딕양식과 현대식 건축양식을 섞어 '스탈린식 고딕' 양식 또는 '스탈린식 바로크' 양식으로도 불리는 건물들이다. 외양은 웅장하면서도 고풍스럽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미로를 방불케 할 정도로 복잡한 것으로도 악명(?) 높았던 것 같다.

 

7자매 중 엠게우(모스크바 국립대학교)의 이것이 가장 크다. 높이는 240미터로 1988년까지 유럽에서 가장 높은 마천루이기도 하였다. 높이도 그렇지만 옆으로도 엄청나게 큰 건물로 내부는 걸어 다니기에는 하도 넓어서 같은 층 안에서 횡으로 가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무빙워크도 아니고... 꼭대기에 달려있는 붉은 별은 하도 높아서 작아 보이지만 무게가 12톤에 달한다.

 

모스크바 국립대학교는 스탈린 양식의 웅장한 건물도 건물이지만 위와 같이 매우 넓고 아름다운 공원이 있어 학생뿐만이 아니라도 많은 모스크바 시민들이 여가시간에 찾는 곳이다. 단 대학 건물의 내부는 학생증을 제시해야 들어갈 수 있다. 다만 후문에선 학생증 검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에 겉보기에 너무 관광객스럽지 않게 차려입으면 몰래 들어갈 수 있다는 소문도 있다.

 

 

정문 앞 광장에는 러시아의 신혼부부들이 사진을 많이 찍으러 오나보다. 막 결혼식을 끝냈는지 사진 촬영을 위한 것인지 리무진을 빌려 친구들과 와서는 작품사진과 영화를 찍는다. 날이 추우니까 친구들은 차안에서 술을 마시거나 이미 취한 친구는 뻗어 있고, 신부만 날 살로 웃으며 사진을 찍네. 하여튼 축하할 일이로다. 그래 행복하게 잘 살아라. 가끔은 싸워가면서. 그래야 정도 더 든단다.

 

밤 비행기를 타야하니 저녁을 조금 일찍 먹으러 간다. 낮에 간 호텔 내에 있는 식당인데 이번에는 일식 도시락으로 먹는다. 이 식당에서는차가버서을 파네? 아이구 백살까지 살 마음 전혀 없슈~~ 아프면 죽으면 되니까. 이제는 생에 아무런 미련도 집착도 없으니까 다른 데 가서 파셔요~~.

밥을 먹는데 미소된장국이 나오기는 하지만 어째 익숙치가 않아서 그저 그렇다. 모든 게 익숙한 것이 좋은가 보다.

 

 

모든 관광 일정을 끝내고 비행장으로 간다. 올 때처럼 아에로플로트 항공사 비행기를 이용한다. 여행 오기 전에 여행사에서 비행기 값은 카드로 계산해도 된다고 해서 계산했더니만 1인당 왕복 100만원에 인천에서 모스크바, 모스크바에서 코펜하겐까지, 쌍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 모스크바에서 인천 까지 비행기 값이란다. 편도 50만원이라는 말인데 사긴 싸다. 하지만 모든 것은 불편. 공항에 들어가면 1차 보안검사를 한다. 비행기 좌석이 부부가 멀리 떨어져 있어 일행끼리 바꾸려해도 안된다. 알아서 가야된다네. 시간이 넉넉하여 게이트로 가기 전에 이리 저리 구경도 하고 루블화 남은 것을 다 써버렸다. 기다리는 동안 러시아 아이들을 보니 하는 짓이 동서양이 다 똑같다. 어쩌면 그리 비슷할까?

탑승시간이 되어 탑승을 하고 자리를 바꾸려니 그게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떨어져 앉아 가기로 했다. 비행 중에 기내 서비스를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역시 비효율적이다. 오늘 비행기는 만석으로 남자 승무원들이 많다. 승객은 거의 다 한국인이다. 잘 사는 대한민국이 확실하다.

 

포도주를 마신다. 그래야 잠을 자지. 석 잔을 마셨다. 비몽사몽 하다가 한 두 시간을 푹 잤나보다. 81311시 인천에 도착하니 뜨거운 바람이 훅~~!! 으아~~!! 현실이로다. 36도의 기온이 마구 반갑다고 반기네.

 

 

그나저나 백수거사 베짱이 이 양반 세상 구경 한번 잘했네. 한 해 한 해 다름을 몸으로 느끼며 다닌 여행길. 조금이라도 힘이 있을 때 멀리 다녀야지. 이런 여행을 통해 인간의 능력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 가늠이 안됨을 느끼고 반대로 인간의 잔학성 또한 절감하는 생각하는 여행이었다. 좀 더 젊어서 다녔더라면 세상을 보는 눈, 인류를 보는 눈이 더 인간적으로 변하지 않았을까? 이제 뒤 늦게 다니는 여행은 오로지 나만을 위한 것이네? 여행을 통해 배우고 느낀 것을 알릴 방법이 없네? 하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도 나의 욕심이리라. 욕심을 버린다고 늘 그러면서도 실제로 닥치면 움추려드는 내 자신이 아직도 수양이 멀었음을 알려주어 반성하며 살게 해주네. 그려 참회하며 사는거지. 늘 반성하며. 늘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