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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백수거사 베짱이의 중남미 유람기 11편(2017. 12. 15. 금) - 페루 바예스타섬. 이까 사막투어

by 베짱이 정신 2018. 1. 21.

백수거사 베짱이의 중남미 유람기 11(2017. 12. 15. ) - 페루 바예스타섬. 이까 사막투어

 

  4시에 기상하려니 힘들다. 5분전 5시에 식당에 가니 문을 안 열었다. 2분전에 후문을 통해 들어가니 오픈 시각이 안되었으니 나가란다. 우리가 바빠서 조금 일찍 왔다고 하니 조금 못마땅한 표정이지만 허락을 한다. 그 시각도 저들 시계로 말이다. 일행들 모두 부지런하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간단히 먹을 수 밖에 없다) 가방을 정리해서 로비로 나왔다. 오늘은 장거리 여행으로 수만마리의 새때와 물개들이 살고 있는 바예스타 섬과 아타카마 사막에 있는 이카의 와카치나 사막 투어를 한 다음 나스카로 향하는 장거리 일정이다.

 

  이까로 가는 길은 남태평양 해안선을 따라 칠레로 이어지는 판 아메리카 고속도의 일부이다. 한편으로는 태평양의 바다가 이어지고 다른 편은 사막이 끝없이 이어진다. 이 사막의 기후는 남태평양 고기압 기단에 의해 형성된 건조기류의 하강으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건조한 지역이 되었다. 해안가의 불모지대 형성에는 남극해에서 오는 한류인 페루(훔볼트) 해류도 큰 작용을 했다. 한류는 해수면의 찬 공기와 높은 곳의 안정되고 더운 공기의 온도를 역전시키는 원인이 된다. 이러한 기상조건은 안개와 층운을 만드나 비를 내리게 하지는 않는다. 큰 비는 안토파가스타에서만 100년에 2~4차례 올 뿐이다. 사막의 기온은 비슷한 위도의 다른 사막들과 비교하면 낮은 편이다. 이키케에서는 여름평균기온이 19이고, 안토파가스타에서는 18에 불과하다. 그러나 지하에는 안데스의 눈 녹은 물이 흘러 지하수가 풍부하다고 한다.

 

 

  사막하면 주인도 없고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곳이란 선입견이 작용하는데 이 페루의 아타카마 사막에는 가는 곳마다 다 울타리가 있고 대규모 농장들과 판자촌들이 들어오고 평지에는 포도, 채소 등 푸른 작물들이 자란다. 풍부한 지하수를 이용한 이 사막 농업에서 생산된 농산물은 수출용이란다. 이 사막을 이용하여 중국이민자들은 면화농장에서 시작하여 직물공장, 잡화상(리마 근처)으로 발전했고, 일본인 이민자들은 농업 이민으로 땅과 집을 사고 채소농사를 짓고 양계장을 대규모로 하여 성공한 이민이 되었다고 한다. 한국은 대사관 직원들이 관리 나리가 되어 동포들을 상대로 갑질을 많이 해 교민들로부터 외면을 받는다고 한다. 대사관이 왜 있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마인드 부족.

 

 

  약 2시간을 달려 중간 휴게소로 아시아라는 지역의 주유소 휴게소에 들렀다. 여기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소문이니 그냥 소문으로 받아들이면 될까? 옛말에도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능력있는(?) 한국남성 이민자가 고단한 이민 생활하다가 현지 능력있는 변호사와 만나 결혼을 하면서 법과 제도를 최대한 잘 활용하여 한국인의 초능력과 현지인의 능력이 조화를 이뤄 임자없던 사막을 자기 땅으로 만들고 하면서 거대 부자가 되어 사막 가운데에 휴게소도 짓고 사는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화장실이 밖에 있는 것만 빼고는 유럽의 휴게소와 동일하다. 주유소 주변을 보니 길가 노점에서 간단한 아침과 음료를 판다. 노동자들이 사먹는다. 영화 속의 한 장면이 내 눈앞에서 실제 일어나고 있다.

 

 

  예정 시각보다 일찍 바예스타 섬으로 들어가는 빠라까스(Paracas) 선착장에 도착하여 바다를 바라보니 바람 한 점 없는 잔잔한 바다다. 보트를 타기 전에 구명복을 입고 지붕이 없는 보트를 타고 나가는데 안개가 끼었지만 금방 사라진다. 알 수 없는 바다 날씨로다. 해안선을 따라 가다가 사막 언덕에 촛대인지 나무인지가 그려진 곳에 멈춰 바라보면서 도대체 왜 저 사막언덕에다 저런 촛대같은 그림을 그려놨을까? 궁금해 해봤자 답이 안나온다. 지금도 해석이 분분하단다. 높이 174m에 그 폭이 72m 인 이 그림무늬(El Candelabra/'촛대'), 골은 60cm로 이 지역이 건조지역인데 바람이 뒤에서 불고 앞쪽은 모래를 쓸어줌으로 지금까지 지워지지 않고 있다. 이 그림은 멀리 40km에서도 보여 등대의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라는 설과, 의식을 위해 그렸다는 설, 해적들이 보물을 숨겨놓은 표시라는 설 등이 있다고 한다.

  바다 위를 나는 수 많은 새들을 보면서 새와 물개의 천국인 바예스타 섬에 진입. 이 곳은 작은 갈라파고스라고도 한다. 수많은 종류의 새들의 천국이고 해조류가 많아 작은 물고기(멸치, 정어리)들이 많이 살고 묵개가 좋아하는 문어도 많단다. 이러니 바다 동물들에게는 천국이지. 입구부터 새똥 냄새가 작렬한다. 이 새똥이 구아노 라는 최양질의 비료란다. 섬 전체가 새와 새똥으로 덮여있다. 섬은 해수와 비바람의 침식작용으로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먹이활동을 마친 물개들이 바위에 올라 앉아 휴식을 취하고 펭귄들은 화면에서처럼 한 줄로 줄지어 뒤뚱뒤뚱 걸어가고... 동물들이 인간의 눈치 보지 않고 마음놓고 살 수 있는 곳이다. 바닷물과 맞닿은 곳에는 다양한 조개류와 게들이 맘껏 살아가고 있다. 섬 이곳 저곳 낭떠러지에는 새똥들이 바다로 떨어지지 말라고 돌을 쌓아놓았네. 그러면 왜 이 섬 주변에 그렇게 많은 새들과 물개들이 살고 있을까? 먹이가 풍부하기 때문이란다.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니 각종 생선들이 풍부하단다. 자연이 오묘한게 스스로 개체 조절을 하는건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인간과 먹이 다툼은 없는 듯 하다. 물론 인간이 백전백승이지만 인간은 법과 제도라는 것이 있어 스스로 제한을 하기에 지금의 평화가 유지되고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엄청난 새똥 냄새를 맡으며 20분간 이곳 저곳 섬 주변을 돌아보고 나왔다.

 

 

  점심은 현지 식당에서 현지인들이 먹는 것을 먹었다. 커다란 쟁반에 해산물초무침, 튀김, 볶음밥 세종류가 나오는데 각자 덜어서 먹는 것인데 다 맛있다. 짜지도 않고. 이 곳도 역시 점심시간에 노래를 부르고 팁을 받는 현지 가수들이 있는데 그 중 한 젊은이는 김범수의 보고싶다라는 한국노래를 제법 한다. 알고 봤더니 아버지가 한국선원이었는데 자식과 현지처를 내팽게 치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소식 뚝. 이 아이가 커서 결국 부랑아처럼 돌다가 공부는 안하고 한국인을 상대로 노래를 부르고 팁을 받아 먹고사는 처지의 현지인이 되었단다. 씨를 함부로 뿌리고 다닌 그 사람도, 그 씨를 받고 태어난 젊은이도 현지인 아내도 모두 불행이 아니냐? 점심 후 해변 주변을 거닐며 사진도 찍고 불쌍하게 생긴 행상 아주머니와 이야기 나누는데 이 행상들 팔리건 말건 천하태평이다. 행상을 하는 젊은이들과 이야기 하며 그들이 갖고 있는 악기를 소리내 보는데 야들이 내가 신기한가보다. 열심히 사진도 찍혔다.

 

 

 

  이까에 있는 사막투어를 위해 출발. 와카치나 오아시스 근처에 있는 모래산을 버기카를 타고 롤러코스트 타듯이 신나게 오르락 내리락 하며 모래먼지 마시고 샌드보드도 타는 체험이다. 버기카는 모래산을 달릴 수 있게 만든 4륜구동 수제차다. 푹푹 빠지는 곳이 아닌 그래도 단단한 모래밭을 달리는데 이게 무척 재미있다. 모래바람이 온 몸으로 파고 들어오고 차는 이리저리 날 뛰듯 달리고 함께 탄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고 햇볕은 따갑게 내리쬐고... 하여튼 스릴 만점이다. 샌드보드도 타는데 높은 곳에서 내리꽂는 식으로 타는데 이것도 재미 만점. 어디가서 이런 것을 타보랴. 모래산 위에서 와카치나 오아시스를 내려다 보니 정말 아름다운 그림이다. 지금은 천연 오아시스가 아닌 인공 오아시스란다. 오아시스에 물이 말라 물을 갖다 붓는다고 한다. 자연의 변화를 언제까지 인공으로 되돌리려는지는 모르겠다. 이 와카치나 오아시스가 벌어들이는 관광수입이 대단할 것이다. 그나저나 구멍이라는 구멍에는 모래가 다 들어앉았네... 카메라가 작동 불량되고 주머니엔 모래가 한 가득씩 들어 있고...털어도 털어도 어디에서 나오는지 계속 나오네...

 

  이까라는 도시는 모래먼지가 펄펄 날리는 사막의 대도시로 인구가 30만 정도가 산다고 한다. 이 도시도 구석 구석에 쓰레기가 넘쳐 날리고 있다. 이 곳은 약 2만년 전에 융기된 모래 사막으로 지하수가 풍부해 포도 등 대농장이 있는 곳으로 얼마 안있어 이 곳 포도도 한국으로 수출된다나? 칠레 포도뿐만 아니라 페루 포도도 먹게 생겼다.

 

 

 

  사막체험을 마치고 나스까 그림문자가 있는 나스까로 출발. 이까시를 지나면서 자갈사막이 시작된다. 가는 길 양옆으로 사막을 녹화하기 위해 시범적으로 가로수 식재 사업을 벌이는데 그 수종이 아카시 나무다. 이 아카시 나무는 적응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거의 다 살아 남은 듯 하다. 가로수 녹화사업을 시작한지가 3년이 지났단다. 이 드넓은 사막을 녹화하려는 사업의 첫 삽이 겅공하여 이를 바탕으로 산림지대가 되는 걸 상상해 보며 응원한다. 끝없는 사막이지만 다 길이 있고 또한 울타리도 쳐져 있는 걸 보니 다 땅임자가 있나보다. 그러나 사막 구석구석마다 쓰레기가 넘쳐난다. 몰래 갖다 버렸나? 바람에 날려 길가엔 온통 쓰레기 천지다. 안데스 산맥을 버스로 넘으면서 굽이굽이 고갯길을 돌아 내려오니 바위의 옆 모습이 원주민 옆 모습과 닮은 바위가 있어 그곳에 잠시 정차. 증명사진도 직고 차들이 오고 가는 모습을 보는데 명색이 고속도로인데 오토바이도 같이 다니네. 작은 오토바이에 셋이 타고서 웃으면서 지나간다. 허허~~~!! 나스까 도시가 멀리보이는데도 가는데 꽤 시간이 걸린다. 가는 도중에 나스까 그림의 일부를 볼 수 있는 곳이 있는데 마치 감시탑처럼 만들어 놓고 입장료를 1달러씩 받는다. 돈을 내고 철탑에 오르니 그림이 세군데 그려져 있다. 별 것은 아니더라도 기원전 100 ~ 500년전에 사막에 그려진 그림을 눈으로 봤다는데 의미가 있다.

 

 

  나스까 시내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이 나스까 사막의 그림도 사라질 뻔 했는데 마리아 라이헤Maria Reiche (19031998)라는 사람이 주축이 되어 보존 운동을 하여 존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여인은 독일 출신의 수학선생이자, 고고학자, 통역가인데 나스까 문명을 세계에 알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단다. 그녀는 1934년 쿠스코 독일 영사관에서 어린이를 가르치는 교사로 시작해서 1940년 미국인 폴 코속 Paul Kosok의 조수가 됐다. 1948 코속이 돌아간 후에도 그녀는 연구를 계속했고 사비를 털어 나스까라인을 보호하는데 앞장섰단다. 이렇듯 사물을 보는 안목은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끝없는 노력과 공부로 가치를 알아내는 것이다. 한 분야만 집중적으로 파고들면 누구나 다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이것 또한 다 마음먹기 달렸느니라.

 

 

  나스까 시내로 들어와 저녁을 먹는데 메뉴는 이곳 사람들이 먹는 닭요리란다. 페루 사람들은 한달에 25~6일은 닭고기를 먹는다고 한다. 즉 거의 매일 먹는 셈이다. 습관이 되면 모를까... 매일 닭고기를 먹는다는 생각만 해도 괴롭다. 소 염통 꼬치와 닭, 그리고 무슨 껍데기 같은 것을 감자튀김과 같이 내 놓네. 이런 음식을 먹어대니 사람들이 살이 찌지. 하여튼 음식이 다 짜다.

 

  호텔은 시내에서 떨어져 선인장 농장 가운데 있다. 건물은 고티가 줄줄 흐른다. 샤워기의 물도 안나오고 상당히 불편하다. 게다가 옆방의 소리도 다 들린다. 가이드에게 부탁하여 샤워기를 손봤다. ~~. Tv도 없는 호텔방, 커튼을 안치면 밖에서 다 보이는 방, 벌레와 같이 자는 방이다. 영화 속에 나올 법한 고티나는 호텔이다. 오늘은 편히 자야되는데... 고티나는 호텔에서의 밤잠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