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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베짱이의 호남유람기 2편 - 담양, 전주편(2015. 1. 14. 수)

by 베짱이 정신 2015. 1. 16.

베짱이의 호남유람기 2- 담양, 전주편(2015. 1. 14. )

 

  담배냄새 은은한(?) 뜨끈한 방에서 화장실 문을 열때마다 들리는 귀신 잡아끄는 소리는 마치 귀곡산장 같았지만 물 매끄럽고, 방 따뜻하게 충분히 수면을 취하고 나니 일어나는데 가볍다. 정리를 하고 죽녹원을 향해 길을 나섰다. 몇 년전 여름에 와봤던 아름다운 기억이 있어 대나무 부대끼는 소리 바람소리를 추억하며 아침 길을 걸어서 나섰다. 밤이나 낮이나 여전히 고요한 담양시내. 이 풍경은 어느 지방 소도시의 똑같은 풍경이리라. 관방제림의 나뭇잎은 다 떨어져 나목이 되었어도 그 길은 여전히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다.

 

 

  죽녹원에 들어서니 녹색의 대나무가 겨울나라가 아님을 보여준다. 입장료 2000원을 내고 들어서니 아니.. 이 곳도 공사가 여러 군데에서 벌어지고 있네. 세계대나무박람회가 열린다나? 그러다보니 군데군데 파헤쳐 집을 짓고 그러네. 내 생각으로는 인공이 최소화되어야 정말 멋들어진 정원이 되는데 자꾸만 군데군데 집을 짓네. 아쉽다. 우리가 어려서 학교에서 배울 때 담양하면 죽제품 이렇게 외웠던 기억이 있는데 세월에 밀려 가격경쟁에 밀려 중국산에 자리를 내 주고 무얼하나 했더니만 오히려 부가가치가 더 높은 휴양사업, 관광사업으로 다시 태어났네. 죽순요리 또한 꽤 가치가 있으니 담양의 새로운 돈벌이가 된거 아닌가? 대나무 숲길을 걷노라니 평화와 고요가 내 몸과 마음을 감싸 무척이나 행복하더군. 그런데 한 가지 왠 놈의 인간들이 대나무에다 칼로 낙서를 해 놓는건지... 산책로 주변의 대나무들이 몸살을 앓고 있었다. 대나무를 하도 만져서 색이 변했네. 주변에서 대나무를 보지 못하다가 봤으니 만지고도 싶고 어떻게 해보고 싶기도 하고.. 충분히 이해는 가지만 그래도 칼로 긁어 제 흔적을 꼭 남겼어야했는가 말이다. 쯧쯧... 그게 뭐라고... 겨울이라 여름철에 무성했던 초록색 식물들이 다 말라버렸지만 자연의 순환과정이려니 생각하며 돌아보니 우리네 생로병사 인생사와 같네 그려. 흙길을 밟으며 죽녹원의 대숲도 거닐고 군데군데 있는 역사적 사연이 있는 건물들을 보면서 바쁠 것 없이 여유롭게 산책을 하다 보니 연못도 있고 몇 년 전 12일에서 얼음연못 건너는 게임을 하던 곳도 있어 기억이 떠올라 그 당시 철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출연진들을 생각하며 살며시 웃어봤다. 아무리 역사적 사연이 있는 집이라도 사람이 살지 않으면 무너지게 되어있다. 빈 집이 아닌 사람이 적절하게 사용하고 오래 유지 관리되어 모든 사람들에게 역사를, 이야기를 계속 전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녹원의 꼭데기에 오르니 담양을 둘러싼 풍경이 참 아름답게 다 보이네. 무등산, 병풍산, 담양의 명물 메타스퀘어 거리 등등... 이러니 이곳 사람들의 심성이 어쩌랴. 짐작이 가지 않은가.

 

 

  죽녹원을 내려와 아침겸 점심을 먹으려 대통밥집을 갔다.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우리가 첫손님인가 보다. 주인아주머니의 목청 큰 소리와 아무런 조심성 없는 소리가 오히려 더 정겹게 느껴짐은 어쩐 일인고? 대통밥을 시키니 한상 가득 나온다. 대접받는 느낌이라는게 바로 이거구나. 반찬 하나하나 백제의 멋과 맛, 혼이 들어 있는 산 역사를 먹는 것이었다. 대통밥에 죽순요리까지 기분좋게 먹고 소쇄원을 가려니 직접가는 차가 없어서 광주나가서 다시 들어가야 한다고 한다. 소쇄원은 담양의 반대쪽에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나에게는 불편했지만 광주가는 버스의 기사분이 친절하게 안내도 해주시고 정겨운 호남말로 재미있게 해주시니 얼마나 고마운지. 도로가 사통팔달로 뻗어있어 광주진입도 금방이다. 광주병원 앞에서 내려 225번 버스를 기다리며 40분 이상을 서 있는 동안 군밤도 한 봉 샀다. 군밤장수 아저씨 참 친절도 하고 정겨웠다. 이런 게 사람 사는 것이 아닌가? 서울서 느끼는 것이지만 사람마다 인상 쓰고 화가 잔뜩 난 사람들처럼 건드리면 곧 터질 것 같은 폭탄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보다가 노점상을 하지만 여유있고 친절한 이런 분들을 만나니 참으로 옛말 틀린 게 하나도 없다. 마음이 부자인 사람이 정말 부자로다.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동안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와 이야기도 나누는데 할아버지가 편찮으셔서 할머니가 병원 모시고 왔다가 집에 가는 길이라며 소쇄원 가는 길등을 친절하게 안내해주시고, 다른 할머니들도 어떻게 가라고 알려주시고... 한참을 기다려도 안오네. 차가 자주 없다나? 마침 할머니 부부의 버스가 도착하여 그 분들이 몸이 우둔하니까 버스가 한참을 기다려야한다. 그러는 동안 뒤에 225번 버스가 온지도 모르고 있다가 언뜻 보니까 그토록 한참을 기다리던 버스가 아닌가. 그런데 이 버스가 그냥 가려고 하네, 그래서 내가 뛰어가며 정지시키고 마누라와 같이 탔지. 소쇄원은 가는 길의 주변 경관을 보면서 가는 길은 여유로웠다. 이래서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는 것이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것이 인생사. 그러나 새로운 것이 눈에 들어오니 더 이득이 아닌가.

 

 

  소쇄원 입장료 2000원을 내고 들어서니 입구가 약간의 언덕인데 양 옆으로 대나무숲이 우거져 정말 멋진 풍경을 자아낸다. 짧은 길이지만 정말로 멋진 길이다. 대나무 잔가지로 울타리를 쳐 놓아 단정하게 만들어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길이 되었네.

짧은 길이지만 고요와 평화로움으로 그 길을 지나니 자연골짜기에 세워진 정자들이 눈에 보인다. 녹음이 우거진 여름이면 더 멋진 운치있는 풍경이 되었겠지만 겨울이라 다 벌거벗은 속살만 보이네. 그래도 계단 하나하나에도 인공을 최소화하여 자연과 하나되는 느낌을 받게 하며 조그만 자연계곡을 그대로 살린 전체적인 풍경은 인공이 아닌 자연 그 자체였다. 큰 공간은 아니지만 이리저리 다니면서 옛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이 곳에서 있었을까 내나름대로 상상을 해 보았다. 아마 지금이나 그 때나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벼슬? 자아완성? 가정문제?

 

 

  광주로 다시 나가서 전주로 가려한다. 이번에도 버스를 타고 가는데 이 187번 버스기사는 젊은데도 노인들이 타면 앉을 때가지 끝까지 기다려서 안전을 확인한 후 출발한다. 인사는 필수고. 오호라 이런 운전기사도 있네. 이런 기사들이 많아야 되는데, 타고 오면서 내내 마음속으로 기사분께 고맙다는 말을 자꾸만 하고 있었다. 광주로 가는 길은 다른 노선이라 무등산길을 꼬불고불 오르고 내리고 하면서 시내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고 하더니만 무등산의 품은 상당히 넓고 포근하다. 잘 닦인 도로를 쌩쌩달려 시내로 들어가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옛길을 따라 꼬불꼬불 천천히 가는 것도 주변의 경치도 보면서 가니 더욱 운치가 있었다. 이 기사분 내가 터미널로 가기위해 환승하는 곳까지 가는동안 한결같이 안전하고 친절하게 운전을 잘 하네. 정말로 칭찬해주고 싶은 운전기사다. 그래서 내려서 인사를 하려고 했더니만 타고내리는 사람들의 안전에 신경쓰느라 나를 못 본 것 같았서 난 마음속으로 고맙다는 말을 자꾸 하고 있었다.

 

  버스에서 터미널 어떻게 가냐고 물었더니만 어떤 할아버지가 빨간놈만 타고 가면 금방간다고 한다. 1번 버스였다. 최신형 저상버스였지만 왠지 불편하다. 손잡이도 평균키보다 더 높게 매달려 있어 키 작은 사람들은 잡기가 어렵다. 그리고 폭이 좁다. 같은 인원이 타도 마치 많이 탄 것처럼 느껴진다. 버스 안에서도 뭔가를 물으면 아주 친절히 대답해주시는 어른들이 계신다. 역시 나이는 헛 먹는게 아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듯이 우리네 인간들도 그렇게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노인입네 하면서 큰소리 지르고 창피한줄도 모르는 짓을 하는 노인들을 보면 참 딱해보이는데 광주에서는 그런 분들을 못보았다. 광주라고 왜 못된 사람들이 없겠냐만은 올바른 분들이 더 많으니 그런 짓을 못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이게 바로 사회 분위기요 그 사회의 민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광주시외 고속버스 터미널은 마치 무슨 큰 비행장처럼 대단히 크다. 전주행 고속버스를 타고 출발하니 너른 들판이 보이고 들판마다 비닐하우스가 자리하고 마을에 자리한 집들의 지붕은 멋들어진 곡선을 자랑하네. 옛집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현대적이고 편리한 주택들이 대신하는 모습들이 많이 보인다. 가옥의 세대교체가 서서히 이루어지는 모습이다. 모든 물산이 풍부하니 예술도 덩달아 발전할 수밖에. 호남은 판소리, 그림, 글씨 등에 유명인이 많이 나온 곳이다. 예술가들이 많이 나올 수밖에. 저절로 수궁이 간다.

 

 

  전주에 들어서니 멋들어진 호남제일문이 반기고 여유있는 건물들이 평화로움을 말해준다. 남문시장까지 가는 택시기사분께 인구가 얼마냐 물었더니 약 64만 정도되는데 늘지도 줄지도 않는단다. 풍남문에서 내려 옛 전주성을 상상해보는데 상상이 잘 안된다. 풍남문 자체가 높지가 않기 때문에 성의 높이를 가늠해 보니 높지가 않았으리라 짐작이 된다. 전주도 관광객들이 참 많다. 길건너 전동 성당에 가니 성당 건물이 정말로 예술작품이로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니 성당 출입문을 잠궈 놓고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문만 열고 출입금지 시켰네. 주변 부속건물들도 붉은 벽돌로 지어 고티가 나고 뭔가 엄숙을 강요하는 듯하다.

아름다운 돌길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조선왕조 이성계의 영정을 모신 경기전이 나온다. 그리고 그 주변은 다 한옥마을이라 관광객이 엄청나게 많다. 경기전도 한 구석에 박물관을 지어 예전에 경기전과 회랑에 보관하던 어진과 가마 등을 실내로 옮겨 보호하고 있었다. 또한 일월오봉도를 배경으로 용상에 앉을 수 있게하여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놓아 나도 사진을 찍었다. 내가 금년에 시골에 농막을 하나 마련하면 꼭 해보고 싶은게 일월오봉도를 거실과 안방의 벽지로 붙여 운치있게 살고싶다. 경기전내에는 전주사고가 있다. 누각인데 바람이 잘 통해 보관이 잘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젊은 청춘들이 많이 경기전을 누비고 다니며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그런데 전부 셀카봉을 들고 다닌다. 그것도 좋지만 타인들에게 찍어달라고 부탁하면 더 좋을텐데... 아쉬움이 진하다.

 

 

  경기전을 나와 주변의 가게에 들렀다. 여러 인형들 기념품들이 유혹을 한다. 건물은 한옥 모양으로 지어져 더 멋을 준다. 게다가 불빛이 반짝이는 밤이되니 더욱 멋있다. 내가 지금 어느 시대를 걷고 있는 것인지.. 아무 시대면 어때? 전주에 오면 모주를 마셔야한다. 막걸리에 계피나 여러 약초를 넣고 끓인 것인데 알콜성분이 없어서 마치 음료수처럼 마시면 좋다. 특히 따끈하게 대워 밥먹을 때 한잔하면 금상첨화. 모주를 큰병(7000) 1, 작은병(3000)을 사서 이리저리 가게들을 구경하다가 살 것을 다 사고 나서 삼천동 막걸리 골목으로 택시타고 갔다. 리베라 호텔앞 은원슈퍼 할아버지가 나오시더니 콜택시 번호를 알려주며 여러 이야기를 하시는 거다. 영어도 하시고 대단했다. 지금은 그냥 심심풀이로 슈퍼를 하시는 것 같았다.

 

성질급한 택시기사분이 빠르게 차를 몰아 삼천동 막걸리 골목에 들어서니 와~~~ 전부 막걸리 집이네. 평일이라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막걸리집마다 왁자지껄 말소리가 세어나오고 있었다. 그냥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순간이었다. 골목을 여기저기 둘러보고 간판이 마음에 드는 집으로 들어가기로 하였다. 그곳이 고향 막걸리”, 막걸리를 시키니 안주는 그냥 자기들이 정한대로 내오는 것이다. 앗따~~ 맛나네. 막걸리를 한 잔 따라 고생한 부인에게 한 잔 주고 나도 따르고 쭈욱 한잔 들이키니 워매~~ 이곳이 지상낙원아녀??? 안주를 이렇게 맛깔나게 푸짐하게 많이 주면 남느냐고 내가 물어보았다. 주인장은 그냥 웃을뿐. 이 광경을 사진찍어 친구들과 카톡으로 나누니 친구놈이 하는 말 , 환갑잔치 하는 것 같다.” 하는 것이다. 하하하하 정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하하하~~~ 2만원 기본상만 먹고 나오기가 미안하여 막걸리를 한 주전자 더 시키되 술은 조금만 담으라고 하여 2차 안주도 맛나게 먹었다. 주인아줌아 친구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강아지를 괴롭히며 노는데 강아지 옷을 입혀놨더군, 그래서 내가 나가면서 개에게 옷을 입히는 것은 개를 고문하는 것이라고, 개는 진드기 등을 털어내기 위해 자주 제 몸을 자주 터는데 아무리 털어도 마음껏 안되니 개는 괴로울 수 밖에 없지 않는가? 개는 개답게 사람은 사람답게 각자의 모습이 있다. 그걸 거스리면 개가 주인행새하고 사람은 개만도 못한 놈, 개새끼가 되는 것이다. 즐겁게 먹고 마시고 여관을 잡으려 주인에게 물었더니 전주병원 근처에 가면 모텔촌이 있으니 그 곳으로 가보라는 것이다. 택시를 타고 가니 정말 모텔들이 참 많네. 가격도 4만원. 동해안 죽변의 이상한 모텔보다 10배는 더 좋고 가격도 5천원이나 더 싼대도 말이다. 부산 광안리해수욕장의 7만원짜리 모텔보다도 더 편리하고 좋다. 정말로 제대로 된 대접 잘 받는 느낌이다.

오늘도 잘 먹고 잘 보고 마음에 평화와 행복이 넘치게 다녔으니 이 얼마나 좋은가. 은퇴 후의 삶이 이렇게 좋을 수가... 참으로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