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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백수거사 베짱이의 중남미 유람기 8편(2017. 12. 12. 화) - 쿠스코

by 베짱이 정신 2018. 1. 14.

백수거사 베짱이의 중남미 유람기 8(2017. 12. 12. ) - 쿠스코

 

  4시반 기상 5시 반 아침 식사. 620분 공항으로 출발 일정인데 간 밤에는 완전히 선잠을 잤다.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참 이상하다. 도로에서 쓰레기차가 쓰레기 치우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어쨓든 일어나 세면하고 2분전에 식당으로 가니 아직 준비중이다.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시계 기준으로 하나보다. 간단한 아침식사 후 방을 정리하고 내려와 물값 2달러를 지불했다. 도대체 자기네 호텔에 온 손님에게 물대접도 안하는 무례한 경우가 있네.

 

  일찌감치 공항으로 출발. 쿠스코행 국내선을 타기 위해서이다. 리마의 교통 체증이 대단하여 일찍 출발한다고 하더니만 운전수가 골목 골목을 다니며 재빠르게 공항에 도착했다. 이래서 현지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이는 전쟁에도 통용되는 것이다. 게릴라들은 현지 사정을 잘 알기에 이리 저리 잘 피해다니고 기습적인 공격도 가능한 것으로 정규군들이 애를 먹는 것이다. 공항으로 오면서 보는 다양한 삶의 모습이 TV 속의 화면과 같다. 정비되지 않은 거리 쓰레기가 날리는 거리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

 

 

  탑승권을 발급받아야 되는데 데스크에서 하면 쉬우련만 잘 작동도 안되는 셀프 발급기를 이용하라고 하여 가이드가 시도를 해도 안되는데 공항 직원들은 바라만 볼뿐 도와줄 생각 조금도 않는다. 자립심을 키워주기 위해서? ~~이건 서비스 정신의 절대 결여다. 그보다 직급이 낮은 듯한 여직원이 재빠르게 이리저리 하더니 작동을 시킨다. 같은 20대 같은데도 하나는 고자세이고 하나는 친절하며 재빠르고.. 개인차라고 해야하나?

 

  여권과 탑승권을 보여주며 검색대를 통과해야 하는데내가 선 줄이 짧아 섰더니만 아 글쎄 여직원이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길레 안간다고 여기에 있겠다고 말했다. 가이드말로는 이곳은 자기 중심이란다. 우리 한국은 손님을 환대하잖은가? 이게 기본 아닌가? 이런걸 문화차이로 돌리기에는 좀 그렇다. 손님을 배려하는게 인류애를 실천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실천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문화도 정치 경제적 힘이 있어야 한다. 지금 세계가 우리의 친절에 대해 저들 문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문화적 충격을 받지 않는가 말이다. 이게 다 유교의 영향인데 같은 유교권이라도 중국과 일본의 것과는 확실히 다름을 우리는 자랑스러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친절에는 인간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따뜻한 정문화를 전세계에 전파해야 한다. 지금 한류가 세계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좋은 전통을 자부심있게 지켜 나가며 역동적인 모습으로 세계를 감동시켜 나가며 모든 인류가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는 지상낙원을 이루는데 모두 노력하면 좋겠다.

 

  어제 밤부터 속이 안좋더니 불편하여 화장실을 찾아갔다. 남녀표시 그림이 불분명하여 난생처음 실수를 했네. 여자 화장실을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어째 이상한 기운이 돈다. 여성이 나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일여? 순간 어리둥절하여 정신차리고 둘러보니 여자 화장실이네. 아이쿠~~멋적게 미소를 지으며 얼른 나오는데 그 여성도 나를 보고 웃는다. 소리를 안 지른게 다행이다. 여행을 나오면 시차로 인해 물이 많이 먹힌다. 물은 1리터 짜리가 3.25달러란다. 거스름돈으로 달러가 아닌 페루 돈으로 주는데 550센트다. 아휴~ 이걸로 뭘해 하다가 껌을 하나 샀다.

 

  리마공항은 마치 시장처럼 사람들이 엄청 붐빈다. 중남미의 허브공항이란다. 천만이라는 인구가 몰려사는 리마는 원주민 보다는 백인, 혼열들이 더 많은 듯 하다. 이 나라도 자연조건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원주민들의 활약이 없고 스페인, 이태리계가 15%이지만 정치 경제의 70%를 독차지 하고 있다고 한다. 이 나라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했지만 진정 독립을 했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이는 원주민들의 능력 즉, 교육력이 뒤따르지 못하니 여전히 백인계들의 지배를 받고 사는 것이리라. 여기에 일종의 혁명인 후지모리 대통령이 백인을 누르고 당선되었던 것은 페루 원주민들의 의식이 깨어나고 있음이 아닐까? 지금은 그 딸이 대를 이어 대통령 선거에 나왔지만 0.2% 차이로 낙선했다고 한다. 아버지 후지모리가 국가 건설을 위해 제일 먼저 한 것이 의무교육확대란다. 그래서 지금 30대까지는 스페인어를 할 수 있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일본 이민자가 패루 원주민의 의식을 깨운 것이다. 그런데 부정부패 혐의로 일본으로 도망갔다가 다시 돌아와 산다고 한다. 참 불가사의한 나라다. 왕조국가를 경험한 우리로서는 정적을 섬멸하는 것을 너무도 당연히 봐왔기 때문이리라. 어찌되었던간에 이 나라도 모든 국민들이 인간답게 살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면 좋겠다. 이를 위해서 국제 외교, 국제간의 압력들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지구촌의 일원으로 서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출발 게이트 앞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는데 원주민 아줌마들이 6명이 앉아서 이야기 하길레 내가 먼저 다가가서 보디랭기지로 이야기를 나눴다. 얼굴이 나와 닮았다고 하고 먼 조상들이 태평양 바다를 건너 이주한 당신들이나 나랑 형제라고 말했지만 못알아듣는데 결국 자기 말만 하는 것이다. 못알아 듣고 그래도 서로 이야기 나누며 깔깔 거리고 웃고, 손자가 몇 명이냐는 질문도 하고 내가 가져간 누룽지를 주면서 몸짓으로 설명해주니 호불호가 갈리는데 어떤 아주머니는 맛있다고 하고 이가 없는 분은 시큰둥하고,,,하여튼 몸짓을 하면서 누룽지 만드는 법을 설명해 줬다. 그리고 가져간 건자두를 드셔보라고 나누어주니 맛있게 잘 먹는다.기다리는 동안 심심하지 않게 모두들 구경거리가 되게 했다. 노래도 같이 부르고 싶었는데 스페인어 노래는 모르나 보다. 그 아주머니들의 얼굴은 자외선으로 인해 새까맣다. 그래도 웃음을 잃지않고 즐겁게 상대해 주니 고맙다.

 

 

  보딩시간이 되어 나가니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비행장의 매연은 참 역겹다. 처음으로 앞자리(3A)에 앉았다. 시야가 확보되니 창밖 구경을 할 수 있으리라. 비행예정 시간이 1시간 30분인데 사실 1시간도 못되어 쿠스코에 도착. 하늘에서 본 쿠스코는 안데서 산맥의 높은 산 사이에 아주 넓은 평지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곳이다. 쿠스코는 해발 3400m로 고산지대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자연환경은 그리 좋은 것이 아니다. 척박함 그 자체다. 이러니 잉카인들이 법과 제도를 갖춘 국가 형성이 안 될 수밖에. 또한 생존 그 자체가 삶의 목표가 되었으리라. 당장의 오늘을 걱정하며 살기에 내일의 풍요와 행복은 꿈이었을까? 여기에서 지도자의 통찰력과 개척정신 등 지도력이 요구되는데 잉카의 지도자들은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일까? 현상유지에 급급? 스페인 침략자들에게 땅도 뺏기고 문화는 궤멸되고.. 남은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지독한 가난과 희망없는 내일이 아닐까? 우리도 지도층의 무능과 부정으로 나라를 빼앗겼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꿈과 희망을 일구어 지금은 세계인들이 매우 부러워하는 잘 사는 나라가 되지 않았나 말이다.

 

  잉카제국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면 13세기경~16세기까지 현재의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콜롬비아에 이르는 남아메리카 중앙 안데스의 광대한 지역을 지배했던 통일국가로 전성기에는 2천5백 만 명의 인구에 중앙집권적인 전제정치를 시행했고 평민을 위한 사회보장이 완비되었기 때문에 ‘신권적 사회주의’라든가 ‘사회주의 제국’이라고 정의되기도 한다. 자연 숭배의 다신교로 농업과 직물, 금세공업이 발달하였고 16세기초 에스파니아의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이끄는 군대에게 멸망하였다.

 

 

  쿠스코는 케추아어로 세계의 배꼽이라는 뜻으로 쿠스코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었다. 잉카인들은 하늘은 독수리, 땅은 퓨마, 땅속은 뱀의 신이 지배한다고 믿었는데 1438년에 18대 황제인 파차쿠티에 의해 잉카족이 신성시했던 퓨마의 형상을 따라 도시전체가 만들어 졌다. 태양 신전 코리칸차는 퓨마의 허리, 제사를 지내던 무언카파타 대 광장은 퓨마의 심장 위치라고 한다. 그 후 잉카제국이 스페인의 정복자들에게 패한 후 쿠스코의 금박을 입힌 성벽과 보석이 달린 조각상들은 약탈당하고 잉카제국의 궁전과 신전 자리에 유럽풍의 성당과 궁전을 세웠다. 태양 신전 코리칸차 터에는 산토도밍고 성당, 와이나 카파쿠 궁전 터에는 라 콤파냐 헤수스 성당을 세웠고, 태양 처녀의 집 터에는 산타 카타리나 수도원이 들어서 있다. 따라서 쿠스코에는 잉카문명의 유적이 없고 다만 기초로 사용했던 석벽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어째 일본 놈들이 우리에게 저지른 만행과 비슷하지 않나? 역사는 되풀이 되는 것인가?

 

 

  쿠스코에 내려쬐는 태양은 정말 작열하는 태양, 살갗에 닿으면 따가운 태양이다. 이곳은 옛 잉카의 수도로 사람들은 키가 작고 상체가 기형적으로 발달되어 있고 얼굴이 자외선으로 인해 갈색이 검은색화 되어있다. 32인승 버스를 타고 태양의 신전(Korikancha) = 산토도밍고 성당으로 향했다. 잉카제국의 가장 최고의 신 태양신에게 제사를 드리기 위한 신전으로 모두 금으로 덮여 있었다고 전하는 황금의 장소. 잉카시대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신성한 장소 꼬리깐차(Coricancha)였지만 잉카인들로부터 성전을 빼앗아 금을 모두 벗겨 스페인으로 가져가고 신전을 파괴했고 신전의 토대 위에 가톨릭 교회를 세움으로써 잉카 제국의 정복을 과시했다는 태양 신전위에 세워진 산토 도밍고 성당(Santo Domingo). 인간의 무지가 자아낸 최대의 문화파괴 현장이다. 침략자들도 의식이 있는 자들이었다면 문화궤멸 등의 악행이 조금 덜했을텐데.. 불행히도 그들은 자신의 부귀영화와 권세만을 생각하는 소인배들인데도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세계 역사를 뒤흔들어 놓는 주인공이 되었다. 참 아이러니 하다.

 

 

  성당은 스페인의 것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했지만 그 당시로는 거대한 건물이 되어 원주민들은 상당한 위압감을 느꼈으리라. 4개의 신전 흔적이 남아있어 잉카인들의 종교관과 돌을 다루는 신비한 자취를 엿볼 수 있다. 신전 내부는 광장을 중심으로 태양, 무지개, 달의 신전, 별의 신전(특히 금성을 신성시했다), 천둥과 번개의 신전, 희생의 신전 등의 신전의 방이 자리하고 있다. 방은 아름답고 견고한 석조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벽에는 움푹 들어간 자리가 있는데, 그곳은 스페인 정복자들이 들어오기 전에는 금이나 은 등의 장식이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현재 이곳에 금의 모습을 발견할 수는 없지만 어느 스페인 정복자의 글에서 신전의 벽에서 뿜어져 나오는 황금의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그때의 모습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태양의 신전 석벽위에 성당을 지었는데 1650, 1950년 대 지진에 성당이 무너졌지만 신전의 석벽은 여전히 흔들임 없이 서있다. 이런 점으로 봐서 누구의 문화가 선진인지 햇갈리지 않을 수 없다. 소위 정복자들의 논리가 무너지지 않나? 하여튼 그 논리라는게 승자의 논리로 말도 안되지만 되게 믿는게 승자 논리가 아닐까?

 

 

  잉카인들은 왕을 태양의 아들로 현인시하여 잉카라고 칭하고 그들의 나라를 태양의 제국이라 불렀다. 따라서 태양의 아들인 왕은 절대적 권력을 지니고 통치권을 발휘할 수 있었다. 또한 태양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한해의 풍년과 흉년을 점치는 등 태양제 기간 동안의 모든 행사를 주관하는 제사장의 역할도 맡아 하였다. 그렇게 믿고 싶었던거겠지. 일개 초라한 인간에 불과한 사람을 신의 경지로 올려놓고 모두들 지배받고 살았지만 결국에는 그 신같은 존재도 만인들 앞에서 굴욕적인 죽임을 당했으니...

성당으로 가는 골목길에 차도 올라 다니고 좁은 골목에는 인디오 상인들이 여러 가지 기념품들을 팔고 있다. 그 옛날 잉카의 영화는 어디로 갔는가?

 

 

  태양의 신전 관람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뷔페식당으로 인디오 가수가 나와 노래와 연주도 한다. 서빙하는 아가씨는 전통복장을 하고 있는데 참으로 아름답다. 고산지대이니 음식을 줄여 먹고 물을 자주 마시라는 가이드의 조언도 맛난 음식 앞에서는 실종. 사랆 이빨크기만한 옥수수. 다른 음식들은 대체로 다 짠편이다. 인디오 악사의 노래보다는 연주가 더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행복한 점심시간이었다. 현지 화페단위는 솔. 1솔은 330. 1달러는 3.2, 20달러를 64솔로 바꿨다. 이걸로 필요한 것 사면 되겠다.

 

  하늘에 검은 구름이 밀려온다. 비가 오려나? 이곳은 수시로 날씨가 변한단다. 오후의 일정으로 삭사이우아만 요새로 고지대로 계속 올라가야 한다. 가는 도중 보여지는 주변의 주택들은 흙벽돌에서 시멘트로 다 바뀌고 성냥값 같은 볼품없는 주택들만 늘어서 있다. 세월의 변화이려니. 아무리 높은 곳이라도 차가 들어가고 전기 수도도 들어 온다. 대신 몹시 구불거리고 험하다. 일반 버스들은 중형버스가 주종이다. 현대버스(24인승)가 시내. 시외버스로 많이 사용된다.

 

 

  삭사이우아만(Sacsayhuman) 요새는 쿠스코의 동쪽을 지키던 요새로 도시전체가 퓨마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머리에 해당 되는 곳이기 때문에 중요한 사무실이 있던 곳으로 추측하는데 여기서 쿠스코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위치이기도 하다. 하루 3만명을 동원하여 83년에 걸쳐 만들어졌다고 하며 높이 7m무게 120톤의 엄청난 돌을 3층으로 다른 석조들처럼 빈틈없이 정교하게 쌓아졌다. 삭사이우아만은 면도날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다라고 표현되는 잉카제국의 석조술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의 돌들은 엄청난 크기임에도 불구하고 잘 다듬어진 마름모꼴로 막쌓기를 하여 높게 축조되어 있다. 이곳에서 남미 3대 축제(브라질의 카니발, 볼리비아의 오르로)의 하나인 인띠라이미(태양의 축제)가 열린다. 하늘과 땅의 태양신의 아들 잉카의 제국을 이어주는 축제를 열었는데, 고대 잉카제국의 길흉과 안녕을 기원하는 최대의 행사가 된다고 한다.

 

 

  고산지대라서 그런지 전망대까지 가는데 힘이 든다. 머리가 조금씩 지끈거리기도 하고 숨이 매우 가뿌기도 하다. 그래도 방법은 있으니 고개를 들고 천천히 오르는 것이다. 전망대에 올라 쿠스코 시내를 내려다 보니 한 눈에 다 보인다. 옛날 잉카인들은 이곳에 서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상당히 궁금하지만 요즘이랑 별 다를게 없지 않았을까? 자식 걱정, 사는 걱정, 등등 해결도 안되는 것들을 가지고 걱정하고 그랬겠지? ? 사람이니까.

 

 

  잠시 차를 타고 켄코 유적지로 갔다. 케츄아어로 지그재그라는 뜻이다. 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곳으로 거대한 바위들로 이루어져 있다. 집채만한 바위 안쪽에는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통로가 나 있고 제물을 올렸던 받침대가 남아 있다. 바위의 위쪽으로는 산 제물의 피가 흐르도록 홈이 파져 있는데 이 피가 흐르는 형태에 따라 점을 쳤다고 한다. 이곳은 신에게 제물을 바칠 때 이곳에서 사람을 마취시킨 후 심장을 꺼내는 수술을 하는 등 지하에서 즉, 태양을 피해서 했다고 한다. 들어가는 입구가 미로처럼 되어 비밀유지에 유리했으리라. 삭사이와만 유적이 돌을 쌓아 올린 것이라고 하면, 켄코 유적은 돌을 깎아 만든 것이라고 한다. 마치 뱀처럼 꾸불꾸불한 곳에 커다란 바위와 바위가 맞물려진 동굴 사이 속에서 어린아이들의 심장을 올려놓고 신에게 인신공양을 제물로 바쳤다는 암석제단이 있는데 그땐 제물로 선택된 것이 집안의 영광이었으며, 그 집안은 평생 생활이 보장되었다고 한다. 수술대 등 여러 용도로 사용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곳에서는 미라를 만들기도 하였다고한다. 밖에서 보면 돌무더기 같아보였지만 이 안에선 이런 끔찍한 일들(현재의 시각으로 볼 때)을 하는 신전이었다고 한다. 궁금한게 이렇게 인신공양을 하고 미라를 만들어 놓고 제사를 지내면 정말 뜻대로 되었을까? 물론 안 되었을 텐데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을까?

이곳 시설물들은 돌을 잘 다루는 잉카인의 손길로 돌을 잘라내고 파내고하여 지하 신전을 만들었다. 그 흔적을 본 것이다.

 

 

  다음으로 탐보마차이 즉, 물의 신전을 갔다. 이곳은 고도가 더 높아 천천히 쉬엄쉬엄 가라고 당부한다. 그러나 현지인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씩식하게 걸어 다닌다. 이곳은 왕이 사냥갔다가 올 때 쉬어가고 신에게 제사를 올리던 곳으로 이 곳에 물이 떨어지는 구멍이 있는데 그 근원이 어디인지를 아직도 모른단다. 여기도 하나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설명이 있었고 봉화대도 있었는데 지진으로 일부가 무너졌다고 한다. 탐보마차이는 잉카의 목욕탕이라고도 불리며 우기 때나 건기 때나 상관없이 1년 내내 항상 일정한 양의 물이 흘러내리는 잉카인들의 뛰어난 수로 기술을볼 수 있는 곳이라며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물이 샘 솟는다고 해서 "성스러운 샘". 이라고 부른다. 성스러운 샘 바로 앞으로는 계곡물도 흐르지만 근원지를 알 수 없는 성스러운 샘에서 내려오는 물과 계곡물은 서로 다르다고 한다. 모든 게 신비 속이다.

 

  오늘의 관광일정을 끝내고 숙소는 1000미터 낮은 해발 2800고지에 자리잡은 우르밤바이다. 산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볼 때는 별로 높아 보이지 안았는데 막상 내려와서 올려다보니 아주 거대한 산이었다. 고도를 낮추어 내려오니 갑자기 피로가 밀려와 눈을 뜰 수가 없다. 물을 많이 마셔야 피로가 풀린다고 하여 마트에 들러 물을 5병 샀다. 1병에 1.5솔씩. 어두운 밤인데 도시의 거리는 어둡다. 이 우르밤바에는 오토바이 삼륜택시가 많다. 도로는 시내에 가깝거나 인가가 있는 곳에서는 과속방지턱이 있어 서행할 수 밖에 없다.

  

  저녁은 현지 뷔페식당에서 먹는데 음식 모두 훌륭하다. 죽도 나왔다. 난 홍차와 처음보는 음식 위주로 맛을 보며 먹었다. 코카잎도 놓여져 있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늘 상비하는 비상약 수준이란다. 내일을 위해 코카잎 몇 장을 가져가야지. 코카잎은 카페인이 많아서 밤에는 씹지말고 혀 밑에 놓고 침으로 굴리면서 침을 삼키면 고산병 예방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페루에서는 합법이라 괜찮다고 한다.

 

 

  맛난 저녁을 먹고 730분 버스를 타고 호텔로 출발. 이상하게도 호텔에 대문이 있다. 종업원이 나와서 대문을 열어줘야 한다. 들어서니 아담한 곳이다 마치 별채의 펜션같다. 내부는 깨끗 깔끔하다. 오늘은 잘 자려나? 몹시 피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