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거사 베짱이 중남미 유람기 7편(2017. 12 .11. 월) - 쿠바 하바나에서 페루 리마
오늘의 일정은 7시 기상, 8시 식사, 9시 출발로 헤밍웨이와 관련있는 어촌마을인 코히마르와 헤밍웨이 현지처와 같이 살던 집, 지금은 박물관으로 이용되는 곳을 보는 일정이다. 간 밤에 그렇게 바람불었는데 한번도 안깨고 잘 잤다. 아마도 술 기운이 아니었을까? 어제의 음주량은 모히또 1잔과 맥주 1컵이었는데 육체의 피로도와 적절한 음주량이 숙면을 이루게 했나보다. 아침식사에는 하몽이 있었네. 한국에서도 지금은 맘껏 사먹을 수 있지만 쿠바에서 하몽을 보다니... 반가움에 하몽 두 조각에 빵 1조각 계란 스크럼블, 홍차로 마무리. 이상한게 홍차는 나와 잘 맞나보다.
첫 일정으로 헤밍웨이가 취미로 낚시를 하며 유유자적 신선처럼 지냈던 코히마르 마을에 갔다. 가는 도중의 풍경은 어디에서나 같이 따가운 햇살아래 올드카들이 거리를 누비고 표정없는 사람들이 한가롭게 길을 걷는 풍경으로 시간이 늦게 가는 듯 참 여유롭다. 어촌 마을인데 배 한척 제대로 댈 수 있는 선착장도 없고 배도 없다. 저 넓은 바닷속에 고기가 있어도 잡을 수 없는 현실이 이상하다. 제대로 된 배만 있으며 죄다 미국으로 탈출을 해서 배가 없나? 수 십 년간의 미국 경제 제재 하에 제대로 된 것이 드물 정도인데도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전혀 게의치 않는 듯하다. 아마 속 마음은 안 그러리라. 인간의 본능은 동서양 흑인 백인이 같거늘. 이래서 어느 사회든 극단 세력이 집권을 하면 모두가 피곤해진다. 중도층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실사구시의 중용이 지배하는 사회는 평화의 메아리가 오래도록 울려 퍼지지만 극단 세력이 집권하면 정쟁에 모든 사람의 영혼 메말라 간다.
작은 어촌 마을에 머물며 취미로 낚시를 했던 헤밍웨이도 처세술이 뛰어 났나보다. 지역주민들에게 밉보이지 않고 인심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게 했으니. 그 예로 취미로 낚시한 고기를 죄다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헤밍웨이는 취미지만 주민들은 생존이 걸린 생업인데 자신들이 잡아야 할 고기를 잡아서 주니 고마워했을 것이다. 이 곳에서 바라본 바다는 참으로 아름답다. 형언 못할 색의 바다와 하얀 포말을 뿌리는 파도까지 모든게 아름다운 이 곳에서 지내면서 소설 “노인과 바다”가 저절로 쓰여졌으리라. 그 소설의 첫 장면이 바로 이 바닷가라고 한다.
헤밍웨이의 가족력을 보면 우울증이 있고, 어린 시절 그의 어머니는 헤밍웨이를 여자아이처럼 치장하여 키웠다고 한다. 종군기자로 전쟁에 참여하고, 스포츠광에 낚시 사냥 복싱 등 다양하고 즐거운 인생을 살았다고 한다. 이런 활동을 통해 남부러울 것 없는 풍족한 인생을, 반면 가진 것 없던 지역주민들에 위화감 없이 대해 쿠바혁명으로 미국이 철수할 때 헤밍웨이도 미국으로 떠났지만 이 지역민들은 그를 기려 자신들의 배에 쓰던 닻을 녹여 헤밍웨이 흉상을 바닷가에 만들었다고 한다. 이를보면 서로가 진심으로 살았던가 보다. 소위 혁명을 한다는 부류들의 특징은 지역민과 하나되는 활동을 하는 것이다. 한 줌 모택동 세력이 거대한 국민당 정부를 쓰러뜨리고 중국을 접수 할 수 있었던 것도 민심을 확실히 얻었기 때문이 아닌가? 그러고보면 헤밍웨이도 혁명가적 기질이 있지만 가진게 많아 그걸 다 내려놓기는 어려웠으리라. 단지 착한 부자? 나눌 줄 아는 부자였을까? 그 속을 모르니 추측만 해본다.
바닷가라서 그런지 집들이 낮으며 해풍에 녹슨 철구조물들이 쓸쓸함과 황량함을 더해주지만 파도는 하얀 포말을 연신 뿌려댄다. 방파제 근처에는 시가를 팔러 나온 이동 상인들이 따가운 햇살아래에서 모자도 쓰지 않고 시가를 사든지 말든지 아주 평화로운 표정으로 앉아 있다. 메어있는 배 한척 없고 변변한 선착장도 없는 작은 어촌 마을. 상상이 가는가? 어촌 마을에 배가 없다. 이상하지 않은가? 주민들이 탈출할까봐? 그럴 것이다. 개인의 능력을 재대로 펼 수 없는 암울한 땅에서 지식인이나 의식있는 생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커다란 고통일 것이다. 그 사회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감옥으로 여겨졌으리라. 무언가 탈출구가 필요했으리라. 그러니 쿠바 탈출이라는 영화같은 일들이 실제로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그래도 눈썹 까딱 하지 않는게 독재권력이다. 카스트로와 형제같이 지내던 김일성이 더 비인간적인 못된 짓을 제도화 한 것에 대해 참으로 안타까움과 분노가 치솟는다. 3대세습권력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와 개성을 말살하는 북한 김일성 족속보다는 쿠바의 권력들이 훨씬 인간적이라고 본다. 물론 쿠바도 독특한 사회주의 국가로 일당독재통치를 하는 나라로 북한과 비슷하지만 그래도 북한과 비교하면 천국같다. 민주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우리가 볼 적에 쿠바도 모순덩어리로 보이지만. 쿠바도 이제 서서히 잠에서 깨어날 것이다.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처럼 자유의 바람이 머지많아 잠들어있는 쿠바인들을 깨워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요구하는 날이 오리라.
신선한 파도와 바람을 맘껏 마시며 맑고 푸른 바다로 눈을 씻고 간 곳이 헤밍웨이가 미국으로 추방되기 전까지 살았던 대 저택이다. 언덕에 자리 잡은 대 저택은 현지인 여인과 동거하던 집으로 지금은 박물관으로 활용하여 많은 관광객을 끌어 모은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이 저택(Finca Vigia)에서 지내던 그는 쿠바 혁명 정권이 들어서면서 추방당하여 미국으로 돌아가서 1년 후 권총으로 자살했다. 세 차례의 이혼과 네 번의 결혼에다 알콜중독증, 교통사고 후유증과 우울증 등으로 행복한 노후는 아니었다고들 하는데 잘 해야 한 번하는 결혼을 네 번이나 했는데 능력가는 능력가이다. 헤밍웨이의 또다른 능력(?)이 부럽다. 부족한 게 없는 살림에 자연 조건까지... 이러니 헤밍웨이가 쿠바를 못잊어 할 수 밖에. 완전히 그에게는 지상낙원이 아닌가? 대 저택 안에는 수영장도 있고, 그가 낚시하며 타던 요트도 있고, 사냥을 즐겨해 잡았던 동물을 박제해 놓았고 그가 쓰던 침실, 서재, 욕실, 식당, 드레스룸, 물건들이 마치 그가 살아있는 것처럼 전시해 놓았다. 단 밖에서 눈으로만 구경해야 한다. 1940~1960년, 20년 동안 만년을 여기에서 보내고, 명작 '노인과 바다'를 여기에서 집필하고 완성하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지역민들과의 생활 차이가 엄청 났음에도 불구하고 지역민과 소통을 하며 지냈다는 것은 의식이 깨어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헤밍웨이 한 사람으로 쿠바 하바나 관광을 먹여 살린다. 이만큼 문화가 중요하다. 그럼 우리는? 소설이나 시같은 문학으로는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분이 없어 한계가 있으니 수많은 대중을 상대로한 K-pop이나 영화, 음식 등으로 스토리를 만들어 나간다면 세계가 사랑하는 한국이 되지 않을까 혼자 생각해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성숙된 시민의식과 법과 제도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으로는 절대 불가하다. 우리가 흔히 요즘 버릇없는 애들이라고 걱정을 많이 한다. 그런 애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역으로 그런 애들의 넘치는 에너지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살펴봐야 한다.
이른 점심을 먹으로 예약된 식당에 갔는데 대문을 잠궈놓고 있다.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곳에서는 일어난다. 현지 가이드가 전화해서 문을 열었다. 대형식당으로 단체손님을 받는 곳이다. 메뉴는 현지인들이 먹는 식사로 팥밥과 통닭요리인데 역시 짜다. 화장실에서는 여전히 팁을 요구한다. 아이구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가지고서리... 당연한 것을 말이야.
점심을 먹고 페루 리마로 가기위해 공항으로 출발. 점심시간이 되어 밥 먹으러 나온 수 많은 사람들의 표정을 보아하니 표정은 없지만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 흑인과 백인들의 다양한 모습들은 바로 쿠바의 모습이리라. 비록 건물은 날고 빛 바랬지만 그 속에 쿠바의 영욕이 담겨있다. 우아하고 멋지게 지은 집들이지만 수십년간 지속된 미국의 경제 제재로 낡고 볼품없이 보이지만 그래도 예술감각과 그들만의 자부심 같은 것도 엿보인다. 예전에 지은 집들은 스페인 풍의 예술적인 집들인데 근래에 지은 집들은 틀에 박힌 박스형 건물로 어떤 장식도 멋도 없이 단순하게 지었고 옛 집들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쿠바 혁명 전과 후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누구를 위한 화려함이고 누구를 위한 초라함인가?...하향 평준화는 곤란하다. 아니 안된다. 상향 평준화가 되어야만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유지할 수 있다. 하향평준화가 되면 생존 자체가 인생의 목표가 되어 인간답게 살 수가 없다. 이럴 때 독재가 나와도 모두다 무관심하게 되고 악순환이 계속 되는 것이다.
하바나 공항은 작고 좁다. 이것은 우리의 시각으로 봐서 그런 것이고 이곳 사람들은 불편함을 못느낄 것이 아닌가? 쿠바인들도 잠에서 깨어나면 경쟁력있는 세계 국가의 일원이 될 것이다. 모든 출국수속을 마치고 게이트를 찾아가는데 아주 쉽다. 간단한 구조니까. 면세점은 1개 주 품목이 하바나 클럽(럼주)이다. 모든 상품들의 질이 낮다. 시가판매점, 그림 파는 곳 등의 종업원들이 아줌마들인데 아주 쌀쌀맞다. 몸에 벤 사회주의 풍습인가? 특이한 것이 인텨넷, WiFi존이 있는데 유료다.
출발 게이트가 바뀌고 출발 시간이 미뤄지고...하여튼 제 시간에 비행기가 뜰지는 그때 가봐야 알지. 하여튼 고유한 문화를 잃어버리고 스페인과 아프리카의 이상한 문화만 있는 듯. 참으로 정체성이 모호하다.
중남미 항공을 독점하는 란탐항공의 비행기는 연착륙을 자연스럽게 한다. 리마로 가는 비행기 역시 중단거리용 비행기로 170석 규모로 유럽의 에어버스사의 비행기이다. 그러고보니 내가 탄 비행기들은 거의 에어버스사의 비행기다. 가까운 미국의 보잉이 아닌 것이다. 경제논리일까 정치논리일까? 궁금하네
5시가 30분의 비행으로 리마에 도착. 첫 냄새가 아주 고약하니 매쾌하다. 트랩으로 걸어 내려 이동 버스를 타고 입국장으로 갔다. 이민국을 통과할 때 직원이 친철하게 맞이하면서 “안녕하세요”라고 말을 한다. 반가움이 대단하다. 바로 이것이다. 무뚝뚝하게 있지 말고 상냥하게 한 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고 말하지 않는가 말이다. 장거리 여행으로 피곤한데 들려오는 우리 말 한마디가 피로를 씻어가네. 여권에 도장을 찍으면서 헤어질때는 어떻게 말하느냐고 묻길레 “안녕히 가세요.”라고 알려줬더니 금방 따라 하면서 웃는다. 참으로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페루 현지 가이드로부터 간단한 안내를 들으며 미라마 호텔에 도착. 꽤 좋은 호텔인가 보다. 그러나 한국의 모텔이 훨씬 좋음은 어쩔 수 없나보다. 이곳에서는 WiFi가 잘 되고 인터넷도 원활하네. 일행들(젊은이 늙은이 할 것없이)이 다 와이파이를 하니 이런 나라 사람들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곳 엘리베이터 역시 후진성을 못 면한다. 한국의 고성능에 편리한 엘리베이터를 못 파나? 방에 들어오니 이 호텔 매우 경제적인 듯. 바닥이 카페트인데 맨 발로 다녀보니 발바닥이 금방 새까맣게 되네. 엄청 비위생적이다. 내일 것을 준비하니 벌써 밤 12시네. 얼른 자야 피로가 풀려 놀러 다니지. 잘 자야 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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