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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베짱이의 동유럽 유람기 2 - 둘째날(2015년 7월 29일 - 프라하의 낮과 밤)

by 베짱이 정신 2015. 8. 10.

베짱이의 동유럽 유람기 2 - 둘째날(2015년 729- 프라하의 낮과 밤)

 

 

현지 시각 새벽3. 한국 시각 6시면 자동으로 눈이 떠질거라던 가이드의 예언대로 술을 한 잔 마시고 자도 눈이 자동적으로 딱 떠지네. 생체 시계가 그렇게 시키나 보다. 조금더 뒹굴거리다가 아침산책을 근처로 나가 어슬렁 거렸다. 꽃이며 나무, 풀등이 우리 것이랑 별반 차이 없다. 모양만 조금 다를 뿐이다. 아침 바람 시원하고 수확이 끝난 농경지는 누런 색깔로 나무숲의 초록과 대비를 이루는 상쾌한 아침이다. 그런데 상쾌함을 방해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담배연기였다. 아니 이곳 인간들은 담배를 왜 이리도 펴대는겨? 그것도 고약한 냄새로? 남자나 여자나 젊은이나 늙은이나...

 

 

아침밥은 7시부터 먹는데 차림이 부페식이지만 훌륭하다. 하몽에다 독일제 햄 제품들과 빵 두 조각을 가져다 먹었다. 오랫만에 먹는 하몽은 참 맛나다. 여기에 포도주 한잔이면 끝내주는데...쩝쩝...이곳 음식들이 다 짠데 예상보다는 덜 짜서 맛나게 먹었다. 생체리듬을 여기에다 맞추려면 열심히 먹고 마시고 해야한다. 비행기 타고 해외로 나오면 이상하게 홍차가 땡긴다. 음식을 먹고나서 홍차 한잔을 하면 속도 마음도 편안해 지는게 좋다. 홍차를 마시기 위해 차나오는 기계에 갔더니만 내 눈이 노안이라 안 보이는 것이다. 돋보기를 안가지고 갔으니 보일리 만무해서 Hot Water비슷한 단추를 눌렀더니 오잉?? 커피가 마구 나오네 멈추려고 또 누르니 더 나오네? 이런 황당?? 내가 안한척 모르는 척 커피를 거기다 그냥 놓고 나왔다. 종업원들이 치우겠지 하면서. 그랬더니 치우더구만. 그래서 종업원에게 물었지. 뜨거운 물 어디있냐고, 다행히 홍차를 우려서 기분좋게 마시고 나왔다.

 

840분 퇴실. 수확이 끝난 밭에서 사진 한장 찍고 버스타고 체코로 출발. 가는 내내 독일 땅의 나무들은 한결같이 쭉쭉빵빵 뻗어있다. 산림을 잘 가꾼다더니 독일이 정말 그러함을 눈으로 본다. 그러나 하나가 좋으면 하나는 나쁜게 인생사. 이것 또한 자연에도 적용이 되리라. 아니 하나를 얻기 위해 열을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게 자연이다. 그런데도 독일은 숲속이 한결같이 잘 정비되어있네. 구릉지에 심어 누렇게 익은 것이 보리도, 밀도 아닌것이 바짝 말라있는도 수확을 안하네? 저게 호밀이라는 것인가? 처음보는 식물이다. 예내들 빵에 박아먹는 약간 넓적한 낱알이 바로 저것인가? 누구도 모르네 일행들이.

 

 

시골은 한결같이 깨끗하고 아름답고 가는 곳마다 풍력발전, 태양열 발전시설들이 널려 있다. 이런 작은 것들이 모여 큰 힘을 이룬다. 우리는 어떤가? 한방에 어떻게 해볼려는 노름꾼 심사가 대부분 아닌가? 독일의 이런 작고 소소한 것들에서 강대국의 저력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이 바탕이 되어 2차대전 전후 다시 독일이 유럽의 실질적 지배자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두 시간이 지나 체코 땅에 진입. 국경을 넘을 때 마다 KT에서 로밍하라고 띵동 하면서 문자가 온다. 참으로 통신기술이 상전벽해를 이루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니 인간의 능력이 어디까지 미칠 것인지 상상이 안된다. 하긴 공상과학영화를 보면 수년 내에 실현될 기술들이 미리 나오지. 체코 당에 들어서니 자연환경이 독일과는 확연히 다르다. 어떻게? 자연그대로. 아니 손이 덜 간 상태로. 이곳 나무들도 쭉쭉빵빵 뻗어있다. 휴게소 시스템은 독일과 동일하다. 휴게소에서 체코맥주 필스너 우르겔 2. 코젤 2개를 사서 바로 필스너우르겔을 한 개 마셨다. 남들이 보면 저놈 술에 걸신들렸나 하겠다. 그러나 체코에 와서 바로 체코 맛을 보는 것이니까 남의 시선 상관없이 한 잔 쭈욱 했다. 프라하로 들어서니 고전티가 막 난다. 영화속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하긴 중세배경을 찍을 때는 프라하에서 많이 찍는다고 한다. 우리 일행도 버스안에서 프라하의 예습으로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을 보면서 왔다. 멋진 장소들이 나오는데 우리가 갈 곳이다.

 

 

시내를 다니는 자동차들을 보니 올드카들이 많다. 난 새로운 모습의 차보다는 옛 영화 속에 나오는 차들의 모습이 훨씬 멋있다고 생각하며 저런 차들이 다 사라지기 전에 다 수집하면 어떨까 하는 공상을 하곤 한다. 그게 나중에 보물이 되는 것은 확실한대. 프라하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관광하는데 눈으로만 봐도 참 멋있다. 거기다가 하늘마저 구름이 꼈다가 마치 비가 올 듯한 모습도 하고, 참 어울리는 풍경에 날씨가 아닐까 혼자 생각해 봤다. 체코가 이렇게 된 데에는 공산주의가 한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공산정권 하에서 전혀 투자를 하지 않고 즉, 손도 안대고 이념에만 충실한 덕분에(?) 옛 건물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이 역설. 참 아이러니 하지 않는가? 덕분에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서 세계 각국의 영화나 광고를 찍을 때 주 배경이 프라하 라는 사실. 우리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을 찍고 난 후 항공 직항노선도 생기고 관광객이 한해 50만명 정도 나온다니 대단하지 않나? 동양 관광객 중 1등은 중국. 2등은 일본, 3등은 한국이란다. 물론 유럽의 여행객들도 엄청난 숫자가 온다고 한다

 

점심식사를 위해 구시가지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으러 가기위해 먼저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상징적인 문인 새까맣게 그을린 듯한 화약탑을 보고(그을린 것이 아니라 사암이 섞여 오랜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변색된다고 한다) 식당에 들어섰다. 좁은 지하에 22명이 옹기종기 앉아 등갈비를 쪄서 구운 돼지고기와 감자 삶은 것, 거기에 코젤 맥주를 곁들여 먹으니 아주 훌륭, 이것은 순전히 맥주 때문임. 독일과 체코 음식은 도낀개낀임.

 

 

점심을 먹고 잠시 바츨라프광장으로 출발 사람들이 정말로 장난이 아니다. 바글바글, 마치 목욕탕에 사람이 많은 것같다. 우리의 광화문 광장이 이 곳 신시가지 바츨라프 광장을 본떠서 만들었다고 한다. 길 가운데를 넓은 광장으로 만들어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명소가 되고 길 양옆으로는 까페, 가게 등이 줄지어 사람들을 부르는 멋진 곳이다. 이 광장은 역사적 사건들이 벌어진 장소로 1918년 독립선포가 이 광장에서, 1968년 프라하의 봄 자유화 물결도, 1989년 벨벳혁명도 이 광장에서 시작 완성된 역사적 장소이다. 광장 가운데 멋드러진 건물이 국립박물관이었는데 유물을 다 빼앗겨 전시할 것들이 별로 없다나 그래서 지금은 자연사 박물관으로 쓴다고 한다. 건물 그 자체는 예술인데... 멀리서 봐도 눈에 확 뜨이는 멋진 건물인데... 체코도 우리처럼 침략을 하도 많이 당해서 유물 및 사람들의 정신마저 존재감이 없는데 여기서 예술가들의 엄청난 힘이 발휘된다. '체코 국민음악의 아버지' 라고 숭앙받고 있는 B.스메타나가 작곡한 나의 조국 중 두 번째 곡으로 체코인들에게는 애국가같은 곡이란다. 스메타나는 체코를 대표하는 음악가이다. 그는 민족적인 멜로디와 리듬을 살려 애국적인 작품을 많이 작곡한 민족주의 색채가 뚜렷한 이 음악가의 조국 체코는 오스트리아 제국 치하에 소외된 체코의 정체성, 체코 민족의 부활을 염원하였다. 이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이라는 곡은 체코가 1989년 벨벳혁명이 일어나 소련의 공산주의로부터 해방된 후 스메타나의 기일 512일을 기념하여 열리는 프라하 봄 음악제의 개막곡으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로 체코인들에게는 상징적인 곡이다. 이런 역사가 담겨있기에 사람들은 이 광장을 찾고 또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

 

 

프라하 중앙역을 지나 버스타고 까를교 구경을 나섰다. 중앙역은 어느 역이나 마찬가지지만 약간 지저분하다. 유럽의 역 시스템은 어디든 비슷한 것 같다. 다리근처에 가니 다리 위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중의하나라는 까를교를 걷고 있었다. 카를교는 그 사연과 역사가 천 년을 넘어선다. 9세기 초 나무로 지어졌던 다리는 홍수로 여러 차례 유실됐고. 현존하는 카를교의 모습을 지니게 된 것은 보헤미아의 왕인 카를 4(까를 4) 때다. 50년의 공사과정을 거쳐 1406년에 완공되는데, 600년이 흐른 최근에도 다리의 초석을 놓은 오전 531분을 기리며 축포를 쏘는 풍습이 남아 있다고 한다. 별걸 다 기념하네???

 

 

다리 양옆으로는 기념품을 파는 노점상들도 있고, 거리 화가도 있고, 거리의 예술가들이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주고 서로 사진을 먼저 찍겠다고 아우성치는 한국인들도 있고 중국인들도 있고.. 이 다리에는 30개의 석상이 세워져 있는데 그 중 하나만 청동으로 되어있는데 그게 바로 얀 네포코츠키 신부의 동상. 여기에 스토리가 있는데 바츨라프 4세가 전쟁으로 성을 자주 비우자 외로운 왕비가 젊은 호위병과 바람이 나 임신을 하게되고, 죄의식을 느낀 왕비가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고 이 사실을 안 바츨라프4세 왕은 신부를 붙들어다가 말하라 다그쳤지만 신부는 끝내 말하지 않자 왕은 신부의 혀를 자르고 돌을 메달아 볼타바 강에 수장을 시켰는데 아 글쎄 그 이후로 나라에 좋지 않은 일들이 자주 일어나고 골아픈데 어느 날 볼타바 강 위로 다섯 개의 별이 뜨고 그 위로 신부의 시체가 떠올라 그 신부의 시체를 성당에 안치하자 좋지 않은 일들이 점차 사라졌다는 이야기.

 

 

이런 류의 이야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권선징악, 종교의 신비 및 복종강요를 위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이 동상 기단 면에는 부조상이 있는데 이것을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나 뭐나 해서 그 부분만 반짝반짝 빛난다. 동서양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다 만지려고 난리 부르스. 난 안만진다. 만져서 소원이 이루어질 것 같으면 하하하하~~ 생각만 해도 우습다. 하긴 이래서 한 번씩 웃어보는 게 아닐까? 순수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만지신 분들 소원성취하세요.

 

까를교 다리건너 프라하 성을 눈으로만 감상하고 구시가지 광장으로 출발. 돌로 박은 도로 위로 고색창연한 트램과 현대적 트램이 공존하며 지나다니고 색 바랜 건물 사이 사이로 수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닌다. 이러한 광경이 묘한 감정을 일으킨다. 한국에서는 못 느꼈던 야릇한 감정. 이래서 여행지에서 썸씽이 생기나? 그러나 나의 감정은 그런 것이 아닌 예술적인 영감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아주 묘한 예술적 감정.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감정. 언젠가 내 스스로 깨닫게 되겠지? 기다려야지.

 

 

천문시계탑이 있는 구시가지 광장으로 가는 길은 골목길로 소매치기가 많다고 조심해야 하는 구간이란다. 이젠 소매치기도 세련되어 명품으로 치장을 하고 마치 관광객처럼 하고 다닌다고 한다. 이 천문시계탑은 1400년경에 지어진 시청사 벽에 있는 것으로 이 천문시계는 정말 과학적으로도 잘 만들어진 시계랍니다.

시간, 일출, 일몰, 월출, 월몰까지 표시해주고 만든 지 600년 되는 시계로 처음 형태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고한다. 물론 2차대전 때 파괴된 것을 약간 보수한것임. 천문시계가 완성되자 복제품을 못 만들도록 천문시계를 만든 사람의 두 눈을 멀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것도 외관만 구경. 저녁 6시 타종과 함께 20초간 펼쳐지는 천문시계 인형들의 움직임을 보고 광장 이곳 저곳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왠 날벼락?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비가 내린다. 물론 우산을 가지고 있었지요. 얇은 바람막이 옷도 입고. 그런데 이게 왠 일? 우산을 썼지만 비바람을 맞으니 내 온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이 자동적으로 떨리는게 아닌가? 광장 옆 간이 가게에서 바비큐를 파는 곳의 불 피운 곳에 잠시 피해있으려니 점원이 비키란다. 할 수 없이 나와서 몸을 움직여 열을 내는 수밖에. 그렇지만 정말 뼛속까지 엄습하는 한 여름의 추위를 실감했다. 그러고보니 현지인들은 두꺼운 가을옷을 입고 있지 않은가? 관광객들만 짧은 옷에 비를 쫄쫄맞고, 아니면 카페에 피해 있고, 까페도 보니까 난로를 가동하네 한 여름에?? 변덕스런 비가 멈추고 해가 난다. ~~ 한 여름에 느낀 추위 대단했어요.

 

 

저녁은 근처에 있는 중국식당인데 종업원이 단 둘. 그런데 젊어서 그런지 얘들이 일당 백을 하네. 그 많은 손님들을 단 둘이 아주 빨리 재빠르게 써빙을 잘 하네 그려. 역시 젊음은 좋다. 하긴 그것도 나름이지만... 떨리는 몸을 따뜻한 자스민 차로 달래고 뜨끈한 스프로 다시한번 더 달랬다. 저녁 후 신시가지와 구시가지에서 자유시간을 가져 이 곳, 저 곳을 다니며 눈에 담았다. 하긴 여기나 저기나 비슷비슷하여 햇갈리지만 한국에서 보지 못한 여러 광경들을 눈으로 마음으로 담았다.

 

 

920. 그런데도 아직 환하다. 프라하성 야경을 보러 까를교에 다시 갔다. 멀리 보이는 프라하성의 야경은 뒷배경인 구름과 함께 멋진 광경을 연출했다. 더 어두우면 조명의 힘으로 더 멋지지 않았을까 혼자 생각해 보았다. 이곳 저곳에서 사진을 찍으며 풍경을 담았지만 눈으로 보는 것과 카메라는 다르다.

 

 

이제는 호텔로 갈 시간. 구시가지로는 대형버스가 들어오지 못하니까 외곽에다 세워두고 우리가 찾아 가야한다. 그래서 까를교에서 트램을 타고 강건너 차 대기장소까지 가야한다. 두 정거장이다. 표를 받고 안에 설치된 기계에 집어 넣다 빼면 되는 것이다. 나는 앉아서 갔다. 그림에서만 보던 트램을 탔다는 것이 중요하다. 트램이 별것 아니지만 프라하 사람들의 일상을 잠시 경험했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는가? 우리나라 5대광역시도 지하철이 아니라 트램같은 것이 훨씬 환경적이고 경제적인데 죄다 지하철만 만드니... 그 돈은 다 어디서 조달하고 어떻게 빚 안지고 운영할 것인가? 어렵지요? 죄다 빚더미에 올라 앉아놓고도 으리으리한 청사를 짓고 삐까뻔쩍한 눈에 띄는 것에만 신경을 곤두세우니 이를 어찌할고? 아 모르겠다 나라가 망하든 말든.  트램을 타면서  어려서 아버지 따라서 완행열차 타고 부산에 가서 전차를 탔는데 덜컹거렸던 것이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신기하고 놀라웠는데 유럽의 트램이 이토록 오랫동안 잘 유지되고 관광자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중심지를 벗어나니 한결 깜깜, 적막, 고요가 흐른다. 밤하늘에 달은 보름달로 둥근 얼굴을 보여주고 은은한 조명을 밝힌 프라하의 밤은 멋진 그림을 보여줬다. 그러나 호텔로 돌아오는 길은 영화속에 나오는 우울한 음습함이 넘쳐났다. 두 얼굴을 본 것이다. 하긴 인생이 다 그렇지 뭐. 우리가 묵을 호텔은 공산정권 때 세워진 성냥갑 같은 건물이다. 이 호텔 근처 역시 큰 도로만 있고 밤문화를 느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냥 자야지 뭐. 굿~~을 위해 술 한잔은 필수. 코젤 맥주를 짠 하고 마시고 푸욱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