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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베짱이의 동유럽 유람기 4 - 넷째날(2015년 7월 31일 금- 오스트리아 비엔나, 헝가리 부다페스트)

by 베짱이 정신 2015. 8. 11.

베짱이의 동유럽 유람기 4 - 넷째날(2015년 731일 금- 오스트리아 비엔나, 헝가리 부다페스트)

 

어젯밤 포도주를 마신관계로 푹 자다가 아 글쎄 새벽 3시에 눈이 딱 떠지네... 이런... 뒤척이다가 세면을 하고 아침 산책을 나왔다. 캠프장에는 차들로 가득하고 이른 아침인데도 자전거를 타는 사람, 출근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기차도 사람을 실어 나르고 시내버스도 분주하게 실어 나른다. 그런데 사람들의 표정이 그리 밝은 것은 아니다. 화난 표정이 많다. 왜 그럴까? 그냥 원래 표정일까?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궁전-쉔부른 궁전으로 출발. (비엔나)은 오스트리아의 수도로 1세기에 로마 제국의 군영지가 축조된 이래 20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빈(비엔나)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650년에 걸친 영광의 도읍지였으며, 과거의 화려한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 오페라극장, 대학 등의 웅장한 건물을 간직하고 있다.

 

다뉴브강 연안에 위치해 있는 빈은 오스트리아의 수도로 행정, 금융, 상업의 중심지이다. 총면적 414에 인구는 약 160만명 살고 있으며,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손꼽히고 있는 음악의 도시이다. 언어는 독일어이지만 영어가 널리 쓰여지며, 60%의 시민이 크리스쳔이다.

 

 

쉔브룬이란 이름은 1619년 마티아스 황제가 사냥 도중 '아름다운 샘 Schonner Brunnen'을 발견한데서 유래한다. 1400실이 넘는 방 중에서 39실만 공개하고 있는데 특히 6세 때 모차르트가 연주하고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구혼했던 '거울의 방 Spiegelsaal'과 마리아 테레지아의 비밀 만찬실인 '중국식 작은 방 Chinesisches Rundkabinett' 등이 특색있다. 궁전의 한 방은 벽이나 가구를 온통 금으로 발라 놓아 금값만도 원화로 16억 정도나 된다고 한다. 이러니 해가지지 않는 나라로 군림하지 않았을까?

 

 

궁전 건물을 지나면 약 1.7에 달하는 널따란 왕궁 정원이 나온다. 화단의 기하학적인 아름다움과 많은 분수, 조각상 등이 한데 어우러진 멋진 정원이다. 정원 끝에는 1747년 프러시아와 싸워 이긴 것을 기념해 세운 건축물인 글로리에테 Gloriette가 있다.

쉔부른 궁전 정원은 막시밀리안 2세에 의해 1569년 만들어졌으며 건물은 1700년에 완공된 것을 1744~1749년 증축하였다.

 

 

쉔부른 궁전의 주인 마리아 테레지아는 대단한 권력의 소유자였다. 남편이 황제였지만 왕가의 혈통은 자기였으니 말이다. 그녀는 욕망도 컸고 사치도 넘쳤다. 16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자식들을 정략결혼 시켜 합스부르크 왕가의 세력을 확장하고 역사상 가장 넓은 식민지를 보유하였다. 이 궁전은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의 16명 자녀 중 막내딸인 '마리 앙뜨와네뜨'15세까지 지내던 곳이기도 하다. '마리 앙뜨와네뜨'는 당시 정략결혼으로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가 되어 무관심한 남편과 주위의 시기심으로 늘 외로워 하다가 프랑스 혁명으로 30세의 나이에 국고를 낭비한 죄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던 비운의 인물이다.

 

 

궁 내부를 보는데 입장할 때 가방은 입구에 맡겨야 한다고 한다. 사진촬영도 절대 No! 정확한 관람시간을 지켜야 한다나? 상당히 복잡하네그려. 별것도 아니더구먼... 단지 이야기가 있으니 흥미진진할 뿐이다. 그리고 마리아 테레지아 라는 인물을 상상하면서 그 시대를 막연하게나마 간접경험을 함으로써 세계사의 흐름을 짐작하게 한다. 사진도 못 찍게 하는 것은 보호차원도 있지만 다시 한번 더 오게 만드는 역할도 하리라.

 

스테판 성당을 구경갔다. 스테판 교회 광장에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바글바글하다. 트램도 다니니 조심해서 건너 골목길로 들어서니 번화가이다. 가게와 까페 등이 성당 근처까지 깍 찼다. 성당 주변은 우리의 명동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한다. 이 성당에서 모차르트의 화려한 결혼식과 초라한 장례식이 거행된 성 슈테판 대성당은 빈의 상징이기에 많은 인파가 찾는 곳이기도 하는데, 12세기 초 바실리카 양식으로 건축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외세의 침략으로 파괴와 재건축으로 현재는 바로크의 도시 빈에서 최고의 고딕 성당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137m의 높이의 남쪽 탑은 고딕양식으로 현재에도 보수를 진행 중이다. 성당외벽이 검게 보이는 것은 사암이 오랜 시간 변색되어 검게 변한 것이란다.

 

이 곳은 최고의 번화가로 인산인해. 다국적 인종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여전히 담배연기 풀풀 날리고, 이 곳에는 거지들 아니 거리의 철학자들이 눈에 많이 띄네. 성당은 어디나 비슷하다. 교회가 중심지였으니 그 당시 국력을 쏟아 호화롭게 웅장하게 지었으리라. 거리 카페에서 오렌지쥬스를 4유로 주고 먹었다. 오렌지 두 개를 직접 짜내어 주는 것이다.

 

 

음악의 도시답게 가발을 쓰고 옛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음악회 티켓을 성당 앞에서 판다. 성당 주변에는 관광 마차도 있다. 햇살은 따갑고 그늘은 써늘하고.

 

<국경 검문소>

 

점심 후 헝가리로 출발. 4시간이나 간다. 시내를 벗어나자 대평원이 펼쳐진다. 헝가리 대평원이라 일컫는 곳이다. 대단위 풍력단지를 지나자 국경이 나온다. 지금은 Eu의 회원국으로 구경검문소가 필요없지. 그래서 다 비어있고 흔적만 있다. 헝가리 대평원은 정말 대 평원이라는 표현이 맞다. 끝없는 들판을 달린다.

 

 

휴게소에 들르는데 중국식 쇼핑센터에 들렀다. 동포애를 발휘하여 올리브유와 발싸믹 식초를 340유로 주고 샀다. 올리브유를 이태리나 스페인이 아닌 헝가리에서 사다니...???

 

부다페스트로 들어가는 길가의 집들은 중세 영화 속에 나오는 그런 낡은 집들이 대부분이고 나무들은 자연스럽게 크고 가끔 올리브 나무 야생 사과나무 등이 보인다.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처럼 손질이 안된 자연스런 방치된 모습이다. 넓은 평원과 구릉에는 해바라기와 옥수수 밭이 끝없이 이어진다. 그런데 참 자연스럽게 편안하게 그 광경이 눈에 들어옴은 어인 까닭인고?

 

 

먼저 겔레르트 언덕에 올라 부다페스트 시내 전체를 조망했다. 참으로 아름답다. 이곳에서 드라마 아이리스의 첫장면을 찍었다나? 그러만도 하다. 참 새롭고 아름다우니까. 도나강을 사이로 언덕위엔 부다. 강 건너 평지는 페스트 이곳은 상업지구. 그래서 도시 이름이 부다페스트다. 부다지역이 언덕에 자리하여 풍광이 좋아 집값이 더 비싸단다. 동서고금 좋은 것은 누구나 다 알아본다.

 

동유럽의 파리라고 불리우며 야경이 아름다운 도시로, 세체니 다리, 부다왕궁, 어부의 요새, 마차슈 성당, 영웅광장 등이 관광 중심이다. 헝가리 역사에서 영광의 자리이면서도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부다왕궁은 1241년 왕궁 건설오스만트루크 족에게 점령 오스만트루크 족과 기독교 연합군과의 전투합스부르크 제국 지배헝가리 독립전쟁2차세계대전으로 독일점령소련군 점령 등으로 파괴와 복구를 반복해 온 부다왕궁은 1950년 외부는 궁전모습, 내부는 박물관 형태로 완성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부다왕궁은 13세기 몽고의 침략으로 에스테르곰에서 피난 온 빌라 4세가 방어를 목적으로 지은 왕궁으로 해발 167미터의 언덕이 있는 부다지역에 자리를 잡고 있다.

 

 

세체니 다리는 부다페스트의 도나우 강을 가로질러 놓인 최초의 다리이며, 1849년에 개통되었다. 다리의 이름은 다리 건설의 주요 후원자였던 헝가리의 국민적 영웅인 세체니 이슈트반에서 따온 것이다. 템스 강의 런던다리를 성공적으로 건설한 영국의 설계기사 클라크(William Tierney Clark)와 건축가 애덤 클라크(Adam Clark)를 초빙해 건설하였다. 건설 당시만 해도, 세계에서 경이로운 다리로 여겨졌다. 세체니 다리는 헝가리의 경제와 국민 생활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어부의 요새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마차슈 성당 옆에 있는 네오 고딕 네오 로마네스크 스타일의 테라스이다. 헝가리 애국정신의 한 상징으로 19세기 시민군이 왕궁을 지키고 있을 때 도나우강의 어부들이 강을 건너 기습하는 적을 막기 위해 이 요새를 방어한 데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 동양적인 색깔이 짙은 고깔모자 모양을 한 일곱 개의 탑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건국 당시의 7부족을 상징한다.

 

 

왕궁 근처에 세워져 있는 새 동상 툴루(투룰이라고도 함)는 헝가리 건국의 아버지인 아르파드를 낳았다는 전설의 새로 '왕의 칼'을 발에 들고 있는 형상이다. 아르파드가 7개 마쟈르 부족을 이끌고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하여 건국한 나라로 현재 인구는 1천만에 국토는 우리 남한보다 조금 작고 몽고반점이 남아 있으며 검은 머리칼에 큰 머리에 짧은 다리를 가진 동양 냄새나는 나라이지만 지금은 서구화가 많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자세히 보면 동양적인 면이 보인다.

 

 

마챠슈 성당은 13세기 중반, 벨라 4세에 의해 고딕 양식의 성당으로서 건축되었다. 부다 성내에 건축되었던 당초에는 성모 마리아 성당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나, 그 후 1479년에 남쪽 탑의 건축을 포함한 증축을 명한 마차슈 1세의 이름을 따라 오늘날에는 마차슈 성당이라고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황금타일의 지붕을 가지고 있고 역대 헝가리 왕들이 대관식을 올렸던 곳이다. 마차슈라는 이름은 1470년 마차슈 왕의 명령으로 교회 첨탑이 증축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16세기에 부다가 터키에 점령당하면서 모스크로 변했다가 17세기에 다시 카톨릭 교회로 돌아왔고 18세기에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축되었다. 그 후에 슈레크의 개축으로 본래의 모습인 고딕양식을 기본으로 한 현재의 건물이 완성되었다. 고난한 역사의 흔적이 담긴 곳이다.

 

이리저리 구경을 하고 다시 버스를 타고 고전적인 마챠슈 다리를 건너 쭉 뻗은 대로를 달려 영웅광장으로 간다. 가기전에 필수코스 쇼핑센터 방문이다. 쇼핑센터는 이스트반 성당 근처에 있다. 발목이 시원찮아 악마의 발톱이라는 관절연고를 18유로 주고 샀다. 얼른 연고를 발랐더니 화~~한게 마치 안티프라민을 바른듯하다. 성당 안을 들어가 봤다. 이 곳은 영화속에서 금방 나올듯하다. 어둠이 깔린 실내에 천장 돔에서 비치는 불빛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다시 버스를 타고 영웅광장으로 달린다. 길 양옆으로는 명품상업지구 대사관지구 까페지구 등으로 나뉘어 붐빈다.

 

영웅광장은 헝가리 건국 1000년을 기념하여 1896년에 지어졌으며 한복판에는 36m 높이의 건국 천년 기념비가 우뚝 솟아 있다. 꼭대기에는 민족수호신인 천사 가브리엘 상, 그 아래로 건국 초기 부족장 7명의 기마상이 있고, 광장 둘레에는 초대 국왕 이슈트반 1세를 비롯 역대 왕들과 헝가리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운 14명의 영웅들의 동상이 늘어서 있다. 헝가리가 공산국가의 영향이 남아있지만 이 광장의 젊은이들은 개의치 않고 자유롭게 행동을 한다. 자기들의 영웅 동산위에 올라가도 누구하나 내려오라 하진 않는다.

 

 

저녁은 현지식으로 굴라쉬 스프(육개장과 비슷) 닭고기, 감자요리를 먹었다. 헝가리 맥주도 3유로 주고 한 잔 마셨다. 그냥 맥주 맛이다. 그런데 아 글쎄 이 곳의 웨이터들이 음식을 써빙하면서 전달 전달 이러는게 아닌가? 세상에??? 이것 또한 우리가 가르친 결과 아닌가? 왜 대접을 제대로 못 받는 아니 안 받는 것일까? 기가 찼다.

 

 

야경을 보기 위해 도나우 강 유람선을 타러 갔다. 아직 해가 지지않아 저녁놀과 해지는 건물의 어두운 모습을 보다가 유람선이 회항 할 때쯤 각 건물들에 불이 켜지며 야경이 점차 들어나기 시작했다. 부다 왕궁의 야경과 페스트 지역의 국회의사당 야경, 멀리 또는 가까이서 은은한 빛을 발하는 강변의 야경은 참으로 해가 지는 하늘과 어울려 참으로 멋진 광경을 연출했다. 이러니 이를 배경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찍지 않을 수 없을 것 아닌가? 유람선에 앉아 포도주 1잔을 분위기 잡고 마시며 도나우 강 세체니 다리 밑을 지나 아쉬운 마음으로 선착장에 도착. 시간이 더 지나야 정말 야경이 멋지게 나오리라는 생각에 아쉬웠다.

 

 

호텔로 가기위해 버스를 타고 가는데 호텔이 있는 곳은 페스트 지역으로 주변이 황량하다. 피곤하니 얼른 씻고 맥주 한잔 하고 잠을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