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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베짱이의 스페인,모로코,포루투칼 유람기 10편(2012년 8월 9일)

by 베짱이 정신 2013. 2. 24.

베짱이의 스페인,모로코,포루투칼 유람기 10편(2012년 8월 9일)

 

열흘 째 날 - 89() 맑음. 파티마 - 리스본

 

어제 밤의 행복한 포도주 음주도 늦잠을 허용치 않네. 일찌감치 일어나 아침산책을 나섰다. 성모발현지라 유명해서인지 이른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뭔가를 열심히 기도하고 어떤 애들은 부모의 도움을 받으며 무릎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무엇이 그리도 간절할까? 애들이... 죄를 많이 지었나? 아니면 뭔가 간절한 소원이 있나?

<사진 설명 - 무릎으로 걸으며 고행하는 신도들의 모습>

성당 주변을 한 바퀴 멀리 돌아 상쾌한 아침을 맞았다. 텐트 속의 사람들도 인기척이 나고 떠오르는 햇살처럼 사람들의 움직임이 바빠진다. 건조한 기후라서 그런지 습기가 없는 아침은 마치 가을 날씨같이 선선하고 상쾌하다.

<사진 설명 - 기도하러 온 가족단위 사람들이 묵는 텐트촌>

7시 반 아침 식사를 간단히 하고 8시 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도시인 천년 고도 신트라로 이동.

이 신트라는 위도가 38도로 우리와 비슷하다. 덥지도 춥지도 않아서 휴양지로 유명하단다. 산속에 자리 잡은 도시라 산의 경사를 이용 집을 짓고 사는 이곳은 왕들의 여름 별궁이 있었던 곳으로 현재는 다른 기관(박물관)으로 이용. 이곳도 외관만 구경. 내부는 입장료 지불 후 각자 가란다.

<사진 설명 - 왕실의 여름 거주지 궁전- 지금은 박물관으로 활용>

이 별궁을 기준으로 산 위에 자리 잡은 아기자기한 집들과 예쁜 골목들은 옛날 달력속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이곳도 관광객들로 바글바글하다. 이곳은 리스본에서 전철이 연결되어 있어서 근접성이 좋다. 관광지 어디든지 많은 기념품 가게와 카페가 여유로움을 보여주고 있다. 골목은 사람들이 하도 다녀서 반들반들 윤이 났다. 보기에는 좋지만 노인들이 걷기에는 위험하다. 이게 바로 대리석 조각을 깔은 길의 이면이다. 하긴 젊은 사람들도 가끔 휘청 거리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자연을 이용하다보니 돌을 이용했겠지. 이곳도 사람이 살지 않는 집들은 금방 표시가 난다. 집을 갖고 있는 것도 좋지만 그 집을 최소한 흉하지 않게 유지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스페인이나 포루투칼이나 어딜 가든 담배연기로 고역이다. 이건 개나 소나 담배를 다 물고 다니네? 하여튼 흡연 천국이다.

<사진 설명 - 반들반들 윤이 나는 골목길 - 미끄러지면 큰일 난다>

산꼭대기에는 아랍세력들이(무어인) 지배했을 때 지은 성이 신비를 더 하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림 같은 집들은 휴양지로서 더할 나위 없는 곳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여행 일정상 우리는 무어성과 페나성을 가지 않았다. 셔틀버스를 이용하고 뭐하고 하면 일정에 차질이 생긴다나? 하긴 일정에도 잡지 않았었지만.

시간적 여유가 많을 때 정말로 휴식을 할 때 오르면 참 좋겠다. 이 골목 저 골목 다니며 이곳 사람들의 삶을 느끼며 사진에 담았다.

다음으로 유럽대륙의 최서단인 까보 다 로까로 갔다. 가는 길은 꼬불꼬불. 주변의 집들은 한결같이 깨끗하고 아름다워 그림같이 평화로움을 준다. 대서양의 바람이 불어오니 로까곶 주변의 나무들은 다 키가 작고 누워있다. 이곳이 유럽대륙의 최서단이라면 거창한 기념물이나 표식이 있어야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는데, 이곳은 그렇지 않네. 아주 소박하게 돌로 쌓아 올리고 그 곳에 포루투칼 시인 까몽이스가 지은 글 이곳에서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는 판이 붙여져 있다. 글의 전후가 짤리고 이 말만 써 붙여져 있어 감동은 없다. 당연한 사실이 아닌가? 바다가 시작되는게? 절벽 아래로는 푸른 대서양 파도가 몰아치고 이 바다를 항해한 포루투칼의 뱃사람들을 상상해 본다. 진출 할 곳이라고는 이 바다밖에 없으니... 아프리카로 남미로 목숨 걸고 나갔으리라. 그러니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은 애가타고 가슴에 뭔가가 턱 걸려있는 듯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으리라. 그래서 한이 서린 포루투칼 노래 파두가 탄생하지 않았을까?

해양진출로 인해 이들이 아프리카와 브라질에 식민지를 건설하며 저지른 죄값을 치르는지 지금은 인구가 12백만이고 소득은 우리보다는 조금 떨어지거나 비슷. 물가는 더 비쌈(관광지임을 감안해도). 게다가 국가 부도위기에 처해있어 실업률이 급증하고 청년들은 희망을 잃고 헤매고, 그러다보니 일자리를 찾아 옛 식민지였던 브라질로 역이민을 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단다. 아프리카인들을 노예사냥해서 미국에 팔아먹은 악명 높던 포루투칼 상인들 그 흔적으로 앙골라, 모잠비크, 기니비사우 등의 나라에서는 포루투칼어를 공식어로 쓴다네. 전 세계 18천만이 사용하는 세계 5위의 사용 언어. 스페인사람보다는 훨씬 잘 생겼다. 그렇지만 남녀 배 안내밀고 다니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이 나라도 뚱뚱한 사람들이 많다.

<사진 설명 -로까곶에서 본 절벽과 대서양 바다>

리스보아(리스본)로 들어오니 겁나게 따가운 햇빛이 선그라스를 안 쓰면 돌아 다니지 말라고 하는 듯 작렬한다. 점심은 포루투칼 전통음식인 대구 말린 것을 잘게 찢어 감자 으깬 것을 섞어 만든 바깔랴우(Bacalho). 맛이 좋았다. 이 식당도 아마 가족끼리 하는 집 인것 같다. 부모의 직업을 대물림하는 것인 듯하다. 우리도 그렇게 되어가고 있음을 다시 생각하며 희망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본다.

점심을 먹고 밖으로 나와 주변을 돌아다녀 보니 사무실과 박물관 뿐이다. 버스를 타러 가는데 일행 중 누군가가 소리치는 것이다. 인적이 없는 곳에서 승용차 트렁크를 열었다 닫았다 하던 흑인 아줌마가 그 옆을 지나가던 여선생의 가방에 손을 넣는 것을 일행 중에 본 사람이 있었나 보다. 깜짝 놀란 당사자는 순식간에 당한거라 소매치기가 실감이 안나나 보다. 다행히 잃어버린 것이 없었다고 한다. 그 흑인 소매치기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뻔뻔하게 무관함을 항변하네?? 적반하장이라는 말이 딱 맞네 그려. 그동안 소매치기 조심하면서 다녔는데 여행 막판에 이런 일이... 모두에게 큰 경각심을 줬다.

<사진 설명 - 공원에서 내려다 본 광경 멀리 뽕발 재상의 동상>

점심을 먹고 에두아르도 7세 공원을 갔다. 가는 도중 아주 좋은 위치에 자리 잡은 멋진 건물이 있었는데 그게 글쎄 교도소 건물이라네. 아니 저 교도소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신선 놀음이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이 예술이고 떼쥬강과 리스본 항을 향해 곧게 뻗은 넓은 길은 마치 세계로 대양으로 나가자고 하는 듯 했다. 주변에는 노점상들이 있는데 특히 아이스크림 파는 아저씨는 경적을 울리며 우리더러 사라고 시위하는 듯했다. 그러나 어쩌랴 방금 밥 먹고 왔는데... 미안허요~~. 낭중에 다시 오면 팔아드리리라~~.

구시가지로 들어서니 영화 속에서나 나오는 그런 고물 전차들이 관광객들을 싣고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비고 다녀도 어느 누구 불평하는 사람이 없네. 엄청난 인파 속에서 이리 저리 다니며 강변까지 갔다.

이곳도 까페들이 중심이 되어 각종 가게들이 손님들을 부르고 있었다.

까페마다 거리 악사들이 연주를 하고 팁을 받고... 그런데 악사들이 사진을 찍을라고 하면 손사레를 치네? 그래서 몰래 찍을 수 밖에. 거리 악사는 재즈를 색소폰으로 연주하고, 무릎을 꿇어 측은지심을 유발하는 짚시여인 악사의 아코디언 소리, 모든 고민을 벗어 던진 듯 한 노숙자, 많은 흑인 관광객들...거기에 모자 쓰고 양산 쓴 노란 한국인들. 하나의 그림이다.

<사진 설명 - 거리의 철학자 노숙인>

부둣가로 이동하여 리스본 발견 기념탑(일명 : 엔리케 탑) 근처에서 설명을 듣는데 바스코 다 가마가 대 항해를 떠난 자리에 세웠다.

1960년 엔리케 왕자 사후 500년을 기념하여 세운 탑으로 높이가 53m로 마치 범선모양을 하고 각종 인물상이 세겨져 있는데 이는 그 당시 참여했던 사람들(천문학자, 선교사, 항해사 등)의 모습이 세겨져 있다. 기념탑 앞 바닥에는 대항해가 언제 어디로 이어졌는지 보여주는 포루투칼 중심의 항해지도가 있다. 그런데 이곳에 독도가 칼로 파여져 있고 한글로 독도라고 쓰여져 있네. 무뢰한 일본의 정략적 침략이 한국인의 공분을 일으켜 관광지인 이곳까지 와서 애국심을 표출하게 만드네 하아~~ 참 거시기하다. 정말로 거시기하다.

떼쥬 강에는 1974425일 독재로부터의 해방을 기념하는 <425일 다리>가 있는데 독재자 살라자르가 건립한 다리로 총 14Km로 유럽 죄장의 다리로 1966년 미국의 금문교 제작자의 작품으로 금문교를 방불케 하며 2층 다리로 아래는 기차가 다닌다. 다리의 왼쪽은 그림 같은 집들이 있고 오른쪽은 대서양이 있어 아름다운 풍치를 자아낸다.

바다와 인접한 떼쥬강가에는 벨름탑이 있는데 스페인이 포르투칼을 지배하던 때(1580~1640년까지 60년간)부터 19세기까지 탑의 1층은 감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당시 간조와 만조 때 물이 나가고 들어오기를 반복했는데 정치범들을 이곳에 수용해 고통을 주거나 죽게 했다고 한다스페인의 지배에 저항하던 독립운동가, 나폴레옹 군에 반항하던 애국자들, 그리고 진보주의자들이 만조 때에는 물이 들어오고 간조 때에는 물이 빠지는 이 감옥에서 고통스럽기 그지없는 옥살이를 했던 것이다.

<사진 설명 - 벨름탑(넬름이 아님)>

이곳도 입장료를 받네 안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 가이드 말로는 들어가봐야 그러니까 밖에서 보는 것이 더 좋다고 하더군. 그 주변에는 군사박물관이 있고. 그러나 바다와 맞닿은 이곳에는 커다란 물고기(숭어)들이 한가롭게 유영을 한다. 우리 같았으면 투망을 던져 다 잡아 버렸을텐데... 여기도 분명 사람사는 곳이라 그런 사람들이 있으리라. 아무도 모르게. 하하하하!!!

발견기념비에서 지하도로 큰 길을 건너면 바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제로니무스 수도원이다포르투갈 사람들이 추앙하는 항해왕자 엔리케의 위업을 기리고,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 항해개척을 기념하기 위해 엔리케 왕자가 세운 예배당 터에  포르투갈 황금기의 , 마누엘 1세가 1502년에 착공했다고 한다.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 항해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던 것이 예상외로 너무 빨리 희망봉을 발견해서 성당의 건축은 감사의 건축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이 성당의 돔이 중요한 이유는, 베드로 성당을 설계하였던 미켈란젤로가 바로 이 성당의 돔을 참고했기 때문이라고.. 

<사진 설명 - 왼쪽 수도원 먼 곳은 성당. 빌려온 사진임>

아름다운 외관의 성당과 수도원 건물은 지금은 성당만 예배를 드리는 교회로 사용하고, 수도원은 1850년 철거하여 국립고고학 박물관, 해양박물관, 등 전시회장으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마누엘 양식(건축물 장식이 밧줄, , 해초, 산호, 조개껍질, 등 사용)의 최고 걸작품.. 하여튼 가는 도시마다 성당을 안 간 곳이 없네. 카톨릭 성지 순례 다닌 것도 아니건만 그렇게 되야버렸네?

포루투칼에서 유명한 것이 빵인데 170년 묵은 빵집이 있다나? 빵가게 안에는 빵을 사기 위한 사람과 그걸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만원. 시장바닥 같다. 쵸코파이보다 작고 산도 비스켓 정도의 크기인데 1개에 1.15유로. 빚 좋은 개살구.

이렇게 해서 공식적인 리스본 관광과 여행 일정이 끝났다. 내일 새벽 출국을 위해 호텔로 가기 전에 저녁은 중국식당. 제법 큰 규모로 중국 샤오지에가 봉사를 하는데 한결같이 무뚝뚝하다. 요리이름도 중국말로 물어보기도 하고 관계를 세워나가다 차 맛이 약냄새가 난다고 한마디 했더니만 그 다음부터는 싸늘~~

마지막 잠자리인 호텔도 역시 익스프레스 인 홀리데이. 이 호텔도 외곽에 자리하고 있다. 주변은 교차로가 있고 차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었고 언덕위에 자그마한 동네가 있더군. 나는 얼른 가방을 갖다 놓고 나와 동네 정찰을 했지. 가게가 있을법한 곳을 찾으니 있더군. 동네 구멍가게. 그래도 제법 많은 물건들이 있는 슈퍼더군. 물과 기타 육제품 소시지를 사 가지고 샛길로 왔더니만 나보다 1살 더 많은 여교장 부부가 나오더군. 맥주를 사러 간다고 하길레 가게 있는 곳을 알려줬지. 이 양반들도 여행 내내 계속 지켜보니 구석 구석 누비고 다니더군. 밖은 아직도 해가 중천에 떠 있어도 내일 새벽 3시반 기상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맛있는 포도주 음주는 꾸욱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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