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悠悠自適 베짱이 나라
여행기

베짱이의 인도 네팔 유람기 7편 – 바라나시 갠지즈강, 사르나트

by 베짱이 정신 2019. 4. 1.


베짱이의 인도 네팔 유람기 7바라나시 갠지즈강, 사르나트

 

일곱째날(2019. 3. 14. ) - 바라나시 갠지즈강, 사르나트

 

430분에 기상 510분에 갠지즈강으로 일출을 보면서 인도인의 아침모습을 보러간다. 새벽공기를 가르며 쓰레기 거리를 차를 타고 가다 걸어가야 되는 부분부터 걸어가는데 새벽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강가로 향하면서 경전을 외우고 걸어간다. 무슨 간절함이 있어서 저렇게 경전을 외우며 가는 것일까? 그냥 생활의 일부가 되어 습관처럼 저렇게 하는 것일까? 가는 길 내내 길 옆 처마 밑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또한 인도에서 제일 늘어진 개들도 널푸러져 자고 있다.


   

<이른 새벽 갠지즈강가의 모습>

 

강가에서 기도하며 신께 바칠 꽃과 촛불을 파는 상인들은 일찍부터 나와 장을 펼치고 있다. 많은 인도인들과 같이 걸어서 강가에 도달하여 불빛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붐빈다. 일출도 보고 갠지즈강의 여러 가트 새벽풍경을 보기 위해 노젓는 보트를 탔다. 어두워서 강물이 검은색으로 보인다. 강가의 100여개의 가트는 빨레하는 곳, 목욕하는 곳, 화장하는 곳 등등 생사여일(生死如一)의 장소이다.


 <촛불공양 재료를 파는 아이>

 

힌두의 성지인 이 갠지즈강에 와서 목욕을 하면 죄가 씻긴다고 인도의 힌두교도들은 믿기 때문에 강물이 더러워도 몸보다는 마음을 깨끗이 하기 위해 목욕을 한다고 한다. 화장터 가트에서는 망고나무 사고나무를 사용해서 화장을 하는데 나무에서 향이 나와 시체 태우는 냄새를 없에준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은 나무를 사용하지 못하고 전기로 화장한다고 한다. 저승길도 빈부의 차이가 있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른 새벽인데도 화장한 숯을 강에 뿌리는 모습을 보았다. 부디 해탈하여 다음 생에는 윤회의 덫을 벗어나소서. 옴 마니 반메 훔~~


<목욕하는 신도들>


 <해가 떠오르는 갠지즈강>

 

뱃사공이 노를 젓는 보트를 타고 갠지즈강의 여러 모습을 밝아오는 햇살 맞으며 보노라니 세상 사람들의 마음은 다 똑같다. 보다 나은 개인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강가에는 가족끼리 와서 강물에 몸을 씻는 아니 죄를 씻는 사람들,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들, 보트를 타고 이런 모습을 보는 관광객들.. 이 모두가 한 폭의 그림이 되고 노래가 된다. 모두 복 많이 받으시고 천국가세요. 또 한편으로는 일명 사두 복장과 차림을 한 사람이 벌거벗고 하얀 재를 온 몸에 바르고 앉아서 카메라를 들고 가는 내게 돈을 내라고 소리를 지른다. 아마 직업거지일 것이다. 눈치가 백단이다. 하긴 이런 눈치도 없다면 어디 밥 빌어먹을 수 있겠나?


 <화장터>

 

갠지즈강의 생사여일의 모습을 실감나게 보고 아침을 먹기위해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아이를 안은 가족 거지 여인들이 따라 다니며 (구역별로) 돈을 달라고 한다. 인도 돈이 없으니 그냥 지나칠 수 밖에. 방에 있는 먹을 것을 가지고 나와 줄걸....후회했다. 또한 기념품을 들고 끝까지 따라 다니며 파는데 이 역시 살 것이 없다. 저분들은 저것이 직업이니 하나라도 팔아야 될 것이지만 내게는 필요가 하나도 없으니 살 이유가 없다.

 

호텔로 돌아와 아침을 먹는데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젊은이 헤어스타일이 독특한데 나이가 18살인데 외국인 손님과 이야기하며 사진찍는 것을 매우 좋아하네. 그래 뚜하니 골난 사람처럼 있는 것보다는 백배 낫지. 아침 역시 난과 커리로 맛나게 먹었다.


 <사르나트(녹야원) 부처님이 득도 후 처음 설법하신 곳>

 

오늘의 일정이 한가하여 아침식사 후 10시까지 방에서 휴식 후 부처님이 득도 후 처음 설법을 하신 사르나트로 출발했다. 관광도시지만 시내길은 쓰레기와 많은 사람들, 각종 차들의 경적소리가 끊임없이 울려대도 화를 내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네. 요리 조리 곡예운전을 하며 사르나트(녹야원)에 도착하니 탑의 흔적만 남아있다. 그 많던 탑들이 사라진 것은 벽돌을 뜯어다가 집을 지어서란다. 또한 타 종교에 의해 파괴되기도 하고. 이 녹야원 주변에는 불교가 퍼진 나라들의 절이 세워져 있다. 한국의 절은 온통 금박을 입혀 멀리서 보아도 금방 알아 볼 수 있다. 오전인데도 여름 날씨처럼 덥다.


   

이 사르나트는 원래 사슴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한쪽 빈 곳에서 사슴을 키우고 있다. 한쪽에서는 태국스님들과 신도들이 불공을 드리며 스님의 설법도 듣고 있다. 이곳도 향을 들고 와서 헌향하라는 사람이 있는데 아마 이들도 직업인가 보다. 친절하게 굴다가 마지막에는 돈을 달라고 할 것 같다. 주위에는 큰 나무들이 몇 그루 있어 뜨거운 햇살아래 아주 좋은 그늘이 되어 쉼터가 된다. 그 나무아래에서 경전을 읽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생김새가 티벳 쪽 다름살라에서 왔다고 한다. 그 분과 말을 하는데 바디 랭귀지를 해도 의사소통이 안된다. 혼자서 이 먼 곳까지 와서 경전을 읽고 기도하는 이유가 뭘까? 내세를 위해? 해탈을 위해? 부디 성불하세요.


   

녹야원을 둘러보고 부처님이 설법을 처음 하셨던 모습을 상상해 보며 나오는데 녹야원 경계철망 밖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이 있다. 철망 사이로 손을 내미는데 그 표정이 정말 불쌍하다. 그러나 줄게 아무것도 없다. 그들의 직업정신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손을 내밀며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돈을 달라고 하는 직업정신은 칭찬 할만하다. 음식이라도 드리면 좋으련만 차 안에다 놓고 왔으니... 인도에서 적선하기가 참 힘드네.


   

<박물관>

 

사르나트(녹야원)를 나와 길 건너에 있는 박물관으로 갔다. 길 옆에는 기념품노점이 길게 자리하고 엽서 등을 파는 사람들이 따라 다닌다. 박물관 내부에는 아쇼카 석주와 4마리 사자상이 있고 석가모니의 불상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힌두 관련 유물들이 있다. 시바신은 손이 8개가 있어 중생구제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힌두 조각과 불교의 조각 차이를 별로 못느끼겠다. 거의 비슷하다. 불고가 왜 힌두교에게 밀렸을까 궁금하다. 특이하게 이 박물관은 사진 촬영이 허락되어 마음대로 찍을 수 있다.


   

호텔로 점심 먹으러 돌아오는 길에 사탕수수 즙을 만들어 파는 곳에 멈춰 다같이 마시기로 했다. 쥬스 안에 소금과 향신료도 넣어 상큼하고 맛있다. 날씨가 더우니 이 사탕수수 즙이 매우 도움이 되리라. 호텔로 돌아와 점심 역시 난과 커리를 먹고 야간 갠지즈강 모습을 보러 가기까지 휴식을 취했다.

 

440분쯤 로비에 나가서 미리 기다리다가 일행과 함께 실크스카프 머플러 공장을 걸어서 갔다. 머플러를 한 장에 25달러, 5장에 100달러 하면서 다 꺼내서 펼쳐보였다. , 이래도 안살래? 하면서. 내 눈으로 보니 여기있는 제품들은 인도에서나 통용될까 한국에서는 촌스러워 보일 것이 분명하다. 다음은 스카프를 꺼내 보이며 사라고 한다. 이 역시 촌티패션. 모두 안산다고 일어서니 그 자리에서 요가체험을 한다고 한다. 요가라기 보다는 건강체조라 하는게 좋겠다. 알고는 있지만 집에서 잘 하지 않는 동작을 해보는 것이다. 20분 정도 끝내고 나올 때 보니 가이드가 강사에게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이제는 릭샤를 타고 힌두대학으로 간다. 좁은 길에 수 많은 오토바이와 각종 차들이 서로 곡예운전을 하면서 먼지를 뚫고 지나간다. 사방에서 울려대는 경적소리는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이다. 우리를 태운 릭샤꾼은 젊은이인데도 힘이 들어 보인다. 돈 내고 타는 교통수단이지만 왠지 미안해진다. 미안해 할 필요도 없는데 말이다. 힌두대학 입구에는 사원이 있는데 확성기로 경전을 읽는 소리를 내보낸다. 이 학교 건물은 마치 유럽의 성당같은 모습인데 외국인의 힘과 원조로 지은 것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잠시 들어가 입구쪽에서 건물만 구경하고 나와서 타고왔던 릭샤를 타고 갠지즈강으로 간다. 저녁 종교행사를 보기위해서이다.

 

새벽에 갔던 길을 자동차가 아닌 릭샤를 타고 느릿느릿 가는 것이다. 저녁기도 행사에 참여하러 가는 사람들의 무리가 대단하다. 길을 매울 정도로 많고 사두 복장을 한 사람들이 깡통을 들고 길에 죽 늘어서 있는 것이다. 적선을 하라는 것인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새벽에 본 처마밑의 노숙자들이 바로 이분들이 아니었을까 퍼뜩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아침에 보지 못했던 사두 거지(?)들이 어찌 그리도 많은지.. 매일 아침 저녁으로 하는 종교행사에 참여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으니 당연히 거지도 늘어날 것 아닌가?




   

종교행사는 마치 축제 공연처럼 이루어 지는데 참관자들이 노래도 부르고 손뼉도 치고 엄청난 신도들이 계단과 강에 떠있는 배에 앉아 무대를 향해 마치 공연을 보듯 한다. 주변에는 벌거벗은 도인(?)들이 하얀 분장을 하고 앉아서 지나가는 관광객이나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들에게 돈을 달라고 한다. 관광객을 용케 알아보아 손전등을 비추며 돈을 내라고 소리를 지른다. 참으로 눈치가 백단이다. 난 그냥 웃으며 지나갔다. 두군데서 종교행사를 하는데 다른 쪽을 가보았더니 그곳에서는 촛불공연(?)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도 역시 사두 분장을 한 사람들이 벌거벗었거나 독특한 복장을 하고 돈을 받는다. 종교 공연이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다. 저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기도를 하는 것은 뭐 때문일까?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할 수 도 있고,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게 해달라고 빌 수도 있고, 현재의 고통을 잊고 내세엔 부잣집 자손으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할 것이 아닌가? 그러고 보면 전 세계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마음은 거의 대동소이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종교 때문에 수 천년 동안 전쟁을 하는 게 이상하지 않나? 처음 보는 대단한 종교행사를 이런 저런 생각하면서 보고 돌아갈 시간이 되어 모임장소로 가서 일행과 함께 레몬차를 마셨다. 다양한 향내가 나고 짭짤한게 맛이 좋다. 인도의 모든 음식이 다 잘 맞는다.

 

되돌아오는 길 역시 거지들이 따라다니며 돈을 달라고 한다. 길바닥은 울퉁불퉁하여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호텔로 가기전에 인도 맛사지 체험이 있다. 다시 릭샤를 타고 맛사지 가게 앞에서 내릴 때 난 젊은 릭샤꾼이 고생을 했다고 생각되어 측은지심에 공정가 팁보다 1달러 더 줬는데도 돈을 그냥 뺏어가듯이 가져가 버린다. 순간 내 마음이 팍 상했다. 물론 문화의 차이가 있겠지만 이 친구가 아직 젊어서 이 모양인가? 갑자기 과공비례(過恭非禮)라는 공자님 말씀이 떠오른다. 내가 릭샤꾼에게 너무한 친절을 베풀었나 보다. 내 잘못이로다.

 

아내는 인도 맛사지(30달러)를 받게 하고 나는 인도스타일로 이발을 하러 가이드와 길을 나섰다. 길가에서 하는 이발을 하고 싶었지만 밤이라 이발사들이 들어가서 할 수 없었다. 대신에 불을 환히 밝힌 이발소를 들어가는데 바라나시에서 유명한 곳이라며 근처에 있는 이발소를 놔두고 조금 더 걸어서 찾아 들어갔다. 이발사들이 다들 젊다. 붙어있는 사진을 보니 이 주인이 유명한 이발사인가보다. 가이드에게 조금만 짤라 달라고 말하고 머리를 깎기 시작했다. 물론 이발사는 유명한 사람이 아닌 종업원이 잘라주는데 이 친구 솜씨가 괜찮네. 우리 식하고는 조금 다른데도 제법 가위질을 잘 한다. 머리는 감지 않고 털어만 준다. 가이드가 루피로 지불하고 내가 달러로 가이드에게 주는 방식인데 4달러를 줬다. 우리의 이발요금과 비슷하지만 그래도 인도스타일의 컷트를 해봤다는게 하나의 색다른 경험이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은 오토릭샤 한 대에 우리 일행 5명과 기사까지 총 6명이 작은 오토릭샤를 타고 왔다. 이것 또한 경험이다. 오래전부터 생각한 것인데 우리나라도 관광지에 전기툭툭이를 관광용으로로 이용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노약자를 위해서.

호텔로 돌아와 늦은 저녁을 먹었다. 한국시간으로 말하면 밤 12시가 넘어서 먹는 것이다. 역시 난과 커리다. 인도에 와서는 거의 금주다. 술을 구할 수 없으니까. 그래도 한잔 하고 자면 잠도 잘오고 잘 자는데 말이다. 내일은 차를 타고 12시간 걸려 네팔로 간다. 5시 가상. 6시 기상, 630분 출발이다. 으아~~ 기대되네 12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