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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悠悠自適 베짱이 나라
고귀한 말씀

죽음에 대하여

by 베짱이 정신 2015. 3. 18.

죽음에 대하여 

 

 

우리가 죽을 것이라는 한 가지 사실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죽을런지는 확실치 않고

그래서 우리는 약간 느슨하게 됩니다.

우리는 영원히 살 것으로 생각을 해서

삶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통찰력을 잃어버립니다.

 

실제로 죽는 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숨을 내쉬고 들이쉬지 못하면 그것이 죽음입니다.

죽음의 임박성을 의식하면서 살기 시작할 때

당신은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만일 내가 내일 죽을 것이라면,

그렇다면 내게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불행히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늦게,

실제로 그들이 죽어가고 있을 때에만

죽음에 대하여 생각합니다.

나에게 아주 특이하게 보이는 것은

그들에게는 갑자기 삶이 더 분명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다른 관점에서 삶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그때에는 불행히도 후회할 일이 많습니다.

그런 종류의 통찰력을 가지고 살 수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죽을 때까지 기다려서 엄청난 후회를 하는 대신에

죽음이 오기 전에 죽음을 들여다봄으로써

우리의 삶을 순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붓다의 말씀처럼,

그것은 당신이 현재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은

바로과거에 당신이 어떤 사람이었는가 하는 것이고,

미래의 당신은 지금당신이 행하는 바에 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티벳 죽음의 책(티벳 사자의 서)」을

쓴 파드마삼바바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대의과거 삶을 알고 싶으면

현재 그대의 행동을 들여다보아라.

그대의 앞날을 알고 싶으면

현재 그대의 행동을 들여다보아라.”

 

죽음의 순간에 우리가 어떻게 죽는지,

우리가 어떻게 되는지가 죽음 뒤뿐만 아니라

미래의 환생에서 우리가 어떻게 될지를 결정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하는 것이

우리가 어떻게 죽을지 그 방식 속에 들어 있을 것입니다.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티베트의 책」에 붙인

머리말에서 달라이 라마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대부분이 평화롭게 죽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 삶이 폭력에 차 있고 우리 마음이대체로

분노와 집착과 두려움과 같은 감정으로 움직이고 있다면

우리가 평화롭게 죽기를 바랄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잘 죽기를 바란다면 잘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평화로운 죽음을 바라면서, 우리는 마음과 삶의 방식 속에서

평화를 가꾸어 나가야 한다.”

 

만일 모든 것이 죽는다면

우리가 기댈 수 있는 무엇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만물이 덧없다고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별 희망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가르침’에 따르면

보통의 마음의 ‘구름’의 수준은

늘 바뀌고 계속해서 죽어가지만,

마음의 ‘구름’ 수준을 넘어가면

태어남과 죽음을 넘어선

하늘같은 마음의 본성이 있습니다.

 

하늘에는 영토도 경계도 없기 때문에

우리가 경계를 만나는 것은

오직 이곳, 땅 위에서 뿐입니다.

그러니 어떤 뜻에서 삶과 죽음, 그리고 모든 것은

마음의 하늘같은 본성 가운데 존재합니다.

 

죽음의 순간은 굉장한 기회입니다.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밝게 이해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위해 살아가는 동안 준비가 잘 되어 있다면,

‘낱낱의 나[個我]’라는 의식은 본질 속으로 사라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진리 속에서 깨달음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직 살아 있는 동안

수행을 통해 마음의 진정한 본성과 친숙하게 되면

죽음의 순간에 그 본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날 때

우리는 더 잘 준비되어 있게 됩니다.

 

그러니까, 깨달음은 아이가

어머니의 무릎 속으로

달려들어가듯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보통의 마음과 그 미망(迷妄)은 스러지고,

그 사이에 경계가 없고

하늘 같은 마음의 본성이 드러납니다.

 

이 마음의 본질이 되는

성질이 온 우주를 품에 안고 있는

하늘처럼 삶 전체의 배경입니다.

늘 깨어 있으면

그것을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죽을 때

우리 존재의 두 가지 국면이 또한 드러납니다.

하나는 우리의 감추어진 본성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우리 삶에서

어떻게 존재해 왔는가라고 하는

우리의 상대 조건입니다.

 

바로 이 뒤의 결과가 죽은 뒤에

다시 깨어난 우리를 환생으로 이끌어갑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뚜렷한 선택이 가능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본성을 인식하도록 살아왔다면,

우리는 죽음을 맞으면서

그 본성을 의식을 지니고 선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소걀 린포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