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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한량 백수 무량사 유람기(2014. 10. 31)

by 베짱이 정신 2014. 10. 31.

한량 백수 무량사 유람기(2014.10.31)

 

둘쨋날 - 1031()

 

어젯밤 소맥으로 한 번도 안 깨고 내쳐 푹 잘 잤다. 일어나보니 빗소리가 들린다. 창을 열고 보니 정말 비가 오네. 세면을 마치고 정리해서 7시 반쯤해서 무량사로 갔다. 입구는 예전과 같이 길이 좁다. 길가의 은행나무들이 잎을 노랗게 떨어뜨리고 아무도 밟지 않은 것처럼 고요하다. 하도 예뻐서 차를 멈추고 내려서 길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어제 밤에는 잘 못느꼈던 새로운 느낌이다. 부여 외산면은 양기보다는 음기가 강한 곳임을 느꼈다.

 

우산을 받쳐들고 절 입구로 들어섰다. 입장료 2000원을 내고 들어서는 순간 숨이 막히네. 입구부터 이것은 완전 예술이다. 낙엽이 자연스럽게 떨어져 길을 덥고 비는 내리고 주변의 새소리는 배경음악처럼 들리고. 이건 그냥 갈 수가 없다. 사진을 박아서 기억을 저장해야지. 그런다고 다 저장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기억은 저장되리라 생각했다.

 

낙엽이 빗물과 함께 어울리는 길을 걷다가 조금가서 또 사진찍고 또 찍고하기를 엄청 반복. 무량사를 여러번 왔지만 이번처럼 이런 감동을 받은 건 처음이다. 사천왕문을 들어서기 전에 바라본 풍경은 어는 화가도 못 옮길 그런 멋진 장면이었다. 사천왕문을 지날 때 문안 인사를 올리는데 어째 기분이 조금 무서워지대?? 아무리 어느 절에 가도 하나도 안 무서웠었는데.. 이거 늙은겨? 마음이 약해진겨??? 사천왕문에서 바라본 극락전. 완전히 예술이다. 오늘 무량사 관광객 첫손님으로 들어서니 고요 그 자체. 대웅전을 비롯한 각 전 모두 문도 안 열은 상태다. 종무소에서 일하시는 분이 나오시길레 인사하고 사천왕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리 저리 사진찍고 감탄하고,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멋진 장면 보내고...

 

극락전 기둥마다 선시가 써 있는데 이곳은 예전부터 그 뜻을 풀어서 옆에 같이 붙여서 누구나 쉽게 읽어볼 수 있게 했다. 이건 아주 잘 한 일이라고 그전부터 내가 생각했다. 아무리 정보홍수 속에서 살더라도 이런 선시를 해석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할 때 문화의 전달을 제대로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대한민국 모든 절에서 본 받을 일이로다.

 

극락전 뒤편에 소원을 담은 기와불사 기왓장이 쌓여있는데 예술품이다. 기왓장마다 이름과 소원을 담은 글씨가 빗물에 젖어 있다. 모든 이들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빌어본다.

 

무량사는 조선시대 유명한 매월당 김시습선생과 관련이 깊은 곳이다. 그 흔적이 삼성각 옆에 있다. 극락전 뒤편에 있는데 그 길 또한 예술이다. 단풍든 낙엽들이 깔려있고 밟으면 자갈소리 사각사각 소리나고... 예술이다. 예술!!!

 

그 옆에 작은 계곡에 물이 빗소리와 함께 김시습의 한탄처럼 들려온다. 몇 번이나 들락날락 하면서 그 경치를 감상하고 감탄하고. 영산전 명부전 주변의 경치를 눈에 사진에 담으며 아쉬운 발걸음을 김시습 부도가 있는 무진사로 갔다. 무량사 입구에 있다. 옛 대선사들의 부도군이 있는 곳에 김시습의 부도가 있다. 그리고 아무 이름도 새겨져 있지 않은 부도가 있더군. 그런데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했다. 그래 뭐 뛰어난 인물도 아니고 그저 그런데 부도에 이름가지 새길 필요가 있나 하면서 자신을 묻어버린 이름모를 선사. 그 분이 진정 선사가 아닐가? 라는 쓸데없는 생각.

 

아무도 없는 무량사를 혼자 전세내어 감상하고 경내를 거닐고 빗소리 새소리 물소리를 들으며 엄청나게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아 나는 복 받은 놈여. 이런 멋진 광경을 나 혼자 봤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