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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2003년 북경유람기(1월19일~22일)

by 베짱이 정신 2013. 1. 28.

 

2003년 북경유람기(1월19일~22일)

 

2003년 1월 20일(월)

피곤한 잠을 깨어 정리한 후 4층에 있는 식당에 들어갔다. 역시 한국인이 주류. 식사의 품질은 별것 아니지만 그래도 열심히 먹었다.

 

8시 명13릉을 향해 출발했다. 출근길의 북경은 도로마다 차들로 사람들로 자전거로 가득찼다. 북쪽을 향해 달리는 길 양옆의 집들 색깔이 모두 회색이다. 이 빛깔이 일반 백성들의 색깔이라나? 황제는 붉은색과 노란색이고. 중국인들이 붉은 색을 좋아하는 이유는 악귀를 몰아낸다나? 하긴 우리나라도 전에는 붉은 색을 많이 사용하고 좋아했던 거로 기억된다.

명나라 15명 황제 중 13명의 능이 있는데 재위 48년 중 28년을 술과 기생으로 놀다간 주익균 황제의 능인 정릉의 지하 궁전을 보러 가는 길이다. 가는 도중에 어김없이 물건 판매장을 들렀다. 2년전에도 들렀던 옥판매장이다. 이곳 역시 온통 한국인. 하긴 부족한 여행비를 보충하려면 이 방법이라도 써야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이곳 물건 역시 비싸고 만약 사더라도 집에 가져다 놓으면 멋이 사라지는 게 이곳 물건이라 생각된다. 나의 여행 철칙이라면 철칙인 것이 가능하면 물건을 사지 않는다. 단지 구경만 한다. 여행사나 상인들이 알면 얼마나 얄미울까? 다만 먹고 마시는 것에는 안 아낀다. 왜? 술을 사고 음식을 시키다보면 현지인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정을 나누기 때문이다. 눈빛만 보면 서로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고 통할 수 있으니까. 눈으로 구경을 하고 나왔더니만 일행 중 할머니 한 분이 가이드하고 흥정해서 옥매트를 우리돈 60만원을 주고 사셨다. 우리 가이드 한 건 올렸다. 加油(파이팅)!

 

정릉은 우리 서울에도 있는데? 중국에도 정릉이? 지하 27미터에 자리잡은 지하궁전은 대리석과 옥으로 만들었다나? 아니 죽어서도 통치하길 원했나? 권력의 맛이 그렇게도 좋은가? 중국과 우리는 음양5행설, 풍수지리설 등등 같은 문화라 우리와 거의 흡사하다. 다른 점은 성질 급한 것??? 1시간 정도의 관람이 끝나고 점심 먹으러 가기 전에 약방을 들렀다. 이곳은 화상연고와 파스 전문이라나? 아니 그렇게 효과가 좋고 우수하면 전 세계 약시장을 주름잡았어야지? 사실 파스를 붙여보았지만 우리나라 파스만 못하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은 한보따리씩 샀다. 그래도 난 안 산다. 그 돈으로 차라리 술을 산다. 젊은 부부는 돈이 어디서 나는지 약을 몇 십만원어치씩 산다. 아니 아픈 사람들이 그 집에는 그렇게 많나?

 

점심은 정말로 잘 나왔다. 역시 한국인 잔치지만. 조그만 이과두주 2병을 남자 셋이서 나

눠 마셨다. 나는 술을 좋아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도 모르고 조금 미친척하면서 권했

다. 조금 모자란 듯이 처신하는 것도 괜찮지만 술을 권하는 게 조심스러워야 하는데 미친척했다. 아니? 우리 일행 중에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았으니??? 할머니 빼고.

 

술과 함께 한 점심후라 만리장성을 찾아가는 길에 조금 졸았다. 팔달령 만리장성인데, 바람이 차갑게 불고 추워 입구에는 거지들과 잡상인들이 없었다. 이곳 역시 한국인 천지. 삭도를 타고 올라갔다. 나무들이 전부 활엽수라 잎을 떨군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을 뿐 나무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근처의 산들이 모두 그렇다. 내가 본 중국의 산들은 모두 헐벗었었다. 같은 위도 상의 산에도 마찬가지, 나무라고는 맨 이태리포플러뿐. 이러니 황사가 일어나지. 그럼 부족한 목재는 어디에서 충당할까 궁금해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백두산 근처에서 공급한다나? 아니 이 놈들이 백두산을 다 말아먹으려나???? 만리장성은 토성이라는데 이곳에 있는 성은 石城이다. 이 만리 장성이 북쪽의 유목민들을 막기 위해 설치한게 아닌가? 즉, 우리와 사촌지간인 여러 북방민족들이 아닌가? 모택동 동지가 한마디 하니까 중국인들이 평생 소원 중에 하나가 장성에 오르는 게 아닌가. "남자가 장성에 못 오르면 호걸이 아니다" 라는 이 말 때문에!!!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관광자원화하는 중국인들의 뻔뻔스러움도 놀랍지만 세계적 인지도를 지닌 장성의 활용도는 정말 한족다운 은근과 끈기와 음흉의 결정체이다. 바람이 거세게 불고 추워도 아이들을 위해 여러 군데를 데리고 다니면서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나누고 했다. 집결지로 가는 도중 미국놈 2명을 만나 영어로 인사를 나누었는데 이 놈들 한국인들이 웃기게 보였는지 "빨리빨리" 등을 외치면서 키득키득 웃는 꼴이 참 기분 나빴다. 다른 일행들은 추워서 예정 시간보다 빨리 관광을 끝내고 하산을 하고 있었다. 오기 힘든 곳인데...

 

1시간의 관광을 마치고 내려와 발 맛사지하는 곳으로 갔다. 아침에 들른 옥판매장 옆이었

다. 우리 팀 13명 모두 한 방에 들어가 양말을 벗고 나무 물통에 발을 담고 상체 안마를 받고서 발을 중심으로 맛사지를 받았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 약 4-50분 정도 하는데 손으로 두두릴 때 박자를 맞추워 치는데 1. 1. 3. 3. 7 박자에 맞추어 치는게 아주 재미있었다. 이 박수가 중국인들이 월드컵 때 치던 박수가 아니었던가?? 재미있는 모습이었다. 끝마치고 나오니 한 줄로 나와서 있는게 아닌가? 팁으로 5달러를 주었다. 공식으로 지불해야 할 팁이었다. 사실 이게 정확한 맛사지값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인간의 선과 악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어제의 서커스와 오늘의 발맛사지를 보면서 생각해 보았다. 한편으로 인간의 양면성에 대해 생각해 보니 참 무서우면서도 가치있는 게 참으로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그 곳에서 장소를 바꾸어 저녁을 먹었다. 저녁은 샤브샤브인데 가이드가 그렇게 자랑하는

것과는 달리 별로다. 하여튼 중국인들의 허풍은 알아주어야 한다. 기본30%는 까고 들어가야되고 최소 50%를 생각하면 되리라 생각이 들었다. 역시 이과두주 2병을 10원(1600원)에 사서 남자들과 할머니와 함께 나눠 마셨다. 아주 상쾌하니 좋았다. 기름기 많은 음식을 먹으니 독주로 씻어야지???(그러면서 한잔하는 것이지만) 나오면서 맥주 3병을 샀는데 처음에는 5원이라고 하더니 가지고 가려니까 7원씩 달란다. 그냥 모른척하고 샀다. 그 판매원 얼굴이 발개지는 것을 보았다. 거짓말하면 그렇게 되는건데...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지단빙등제를 갔다. 정말 중국인들의 상술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별것도 아닌 것을 그렇게 치장을 하다니... 하긴 그런 얼음 축제를 실물로 보지는 못했으니 실물을 보면서 생각하게 만들었으니 그걸로 고맙게 생각해야지. 호텔로 돌아와 맥주 3병을 마시고 모자라 캔맥주 2개를 14원 주고 사왔다. 그것은 결국 못 마셨다. 피곤해서. 두 딸들을 위해 캔터키치킨집이 보여 들어갔다. 영어가 통하는 유일한 곳이었다. 그런데 그 곳 상호가 肯德基(긍덕기)였다. 자꾸 읽어보니 캔터키처럼되었다??? 우리와 값이 비슷했다. 중국의 물가가 싸다는 것은 이제 옛말. 오늘도 달이 밝았다.

아니 맛사지를 받았는데도 어찌 이리 피곤한고? 관광지마다 식당마다 한국인들로 넘쳐난

다. 이게 국력인가? 맞다. 돈이 있으니까 여행도 다니는거지. 수업료를 내야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발전하지. 하여튼 중국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올 여름에도 계획을 세워야지.

 

2003년 1월21일(화)

 

어제의 과음(맥주 3병)으로 늦게 일어났다. 8시 20분에 자금성을 향해 출발했다. 뒷문 쪽으로 가는데 전통적인 중국집들과 인파를 해치고 갔다. 자금성 근처의 집들이 허름해 보여도 안에 들어가면 잘 산다나? 그 이유는 관리들이 그 근처에 많이 살아서 아무나 차를 세울 수 없다고 했다. 아니 그렇게 평등주의를 내세우는 곳에서 그런 불평등이??? 정문에서 뒤로 나가는 코스여야 하는데 반대로 들어오니 이상했다. 자금성의 규모는 컸다. 우리의 궁전과 단지 규모 면으로 비교해서이지 예술성은 우리 궁전들이 훨씬 뛰어남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 한국인이라서 그런가? 나무하나 없는 황량한 궁궐. 인간미가 없는 게 우리와 다른 점이랄까?

 

정문으로 나오니 중국인들이 붐볐다. 그 이유는 돈 안 받는 곳까지만 와서 논다나? 또 인민해방군인들의 훈련모습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어쩌면 북한 군인들과 똑같은지. 군대 들어가기가 어려운 만큼 나오면 그만큼의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거의 고급 관리들의 자제들이 군대가고 제대하면 높은 자리에 오르고. 또 다른 세습이 아닌가? 이러니 역사가 돌고 돌지.... 천안문 광장을 걸어보았다. 강택민 동지가 천안문 위에서 손을 흔들고 기타 인민들이 함성을 지르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우두머리들은 정말로 신날 것이다. 우렁찬 함성들이 모두 자기를 위하는 줄로 착각할 수 있지 않겠나. 그러니 중국이나 북한의 수령들이 죄다 그 짓을 하지...

 

걸어서 동인당 약방을 갔다. 코스라나? 천안문 광장의 5대 건물에 속한다며 자랑을 하는데 이거 원 약 파는 가게를 갖다가 격상을 시키는 상술!!! 나와서 설명해 주는 사람이 조선족이라는 사람인데 말이 안 맞는다. 그래도 달변이라 노인들은 깜박 속아넘어가기 알맞게 말을 잘 한다. 모두가 환자다. 젊은 사람은 빼고. 약은 정해져 있고 그에 맞는 질문만 한다. 그러고는 약을 먹으라 권한다. 카드도 되니까 사라고 한다. 사실 중국인 의사라는 사람은 말을 별로 안하고 통역이라는 조선족들이 의사가 되어 설득을 한다? 아니 점쟁이들 마냥 하는 꼴이 우습다. 그렇게 유명한 명약이면 전 세계를 평정하고 남아서 구태여 이렇게 장사할 이유가 없지를 않은가? 또 웃기는 것은 최형우 국회의원 병을 자기들이 거의 다 고쳤는데 독일로 가서 못 고쳤다나? 괘씸해서 다음에 왔을 때 본 척도 안했다나? 아니 북경의 약장사들은 전부다 지들이 고쳤다고하니 이거 원???? 참 웃기는 일이다.

 

점심은 한식으로 먹었다. 북경에 오면 유명한 북경맥주 12도 짜리를 마셔야는데, 맥주 두병을 사서 남자끼리 한잔씩 나눠 마셨다. 먹을 때는 부드러운데 좀 독하다. 그러나 깨끗해서 좋다. 점심을 먹은 후 부국해저세계를 관람했다. 63수족관 같은 곳이다. 별것도 아니다. 하긴 1000만이 넘는 대도시에 그런 시설하나 정도는 있어야지. 관람료가 비싸서 중국인들이 올 수 있을까? 이곳에 근무하는 사람들 또한 많다. 남는 게 사람이니까.

 

다음으로 서태후의 여름별장인 이화원을 관람했다. 독재자 서태후의 이야기를 들으니 김일성의 이야기도 얼마 안가 통일되면 관광자원화 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장이라야 나무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다. 죄다 측백나무들로만 되어 있고 색깔까지 칙칙하니 음기가 발동하는 것 같았다. 권력이 뭐길래 자식까지도 죽이면서 놓지 않으려 했을까? 참 사연 많은 곳이다. 호수는 얼어서 사람들이 썰매도 타고 놀이하는 곳이 되었다. 아니 북경은 봄에는 황사로, 여름에는 찌는듯한 더위로, 겨울엔 추위로 사람들을 괴롭히는데 어째 이곳에다 수도를 정했을까? 우리 사촌들이???돌아오는 길 역시 진주 판매장에 들렀다. 역시 웃기는 소리만 하는 곳이다. 다른 사람들은 잘도 산다. 그러나 3팀만 안산다. 쓰레기를 사가지고 가는 것이 된다.

 

저녁은 북경오리구이인데 북경에서 요리하니 북경오리지 뭐. 일반 백성이 먹는 오리 구이이니 이름만 요란할 뿐이다. 이곳 종업원들 역시 키가 작다. 특이한 것은 머리에 장식품을 얹고 있었다는 일이다. 마치 중국 영화에 나오는 청나라 여인들처럼. 관광 일정이 다 끝났다. 중국에서 느끼는 것이지만 관광을 하고 나면 왠지 허전하다. 속은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호텔로 돌아와 대강 정리한 후 중국 까루프(가래복)를 갔다. 완전 인산인해였다. 중국식 장식품들을 사고 과자를 중심으로 샀다. 두 아이들 친구들과 나누어 먹으라고 엄청 샀다. 약 400원(우리 돈 6만원)어치를 샀다. 다른 시장보다 가격가지고 신경 쓸 일이 없으니 편하고 한 곳에 다 몰려 있으니 좋고, 그런데 이곳에서 우리 물건들을 보았다. 죽염치약과 매실음료, 쌀 음료 등이 있었다. 반가웠다. 중국에 있는 중에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다. 중국인처럼 행동하고 물건을 고르고 생각만 해도 재미있다. 내일이면 집으로 간다. 짐 정리해야지. 과자와 음료만 한 가방이었다. 너무 재미있다. 가래복(까루프)에서 나오는데 눈발이 날렸다. 이국 땅에서 눈을 맞으며 식구들과 이야기하며 걷는 맛도 좋았다.

 

2003년 1월 22일(수)

 

아침에 일어나 보니 눈이 쌓였다. 북경에는 눈이 드물다고 했는데 눈이 아주 많이 왔다. 차들이 엉금엉금 기어다니는 중간에 용감하게 자전거를 타고 차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용감한 중국인들!! 역시 가는 길에 찻집에 들렀다. 여기도 조선족 접대원 동지들이 있었다.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인정상 보이차를 샀다.(150원-우리 돈 25000원) 호텔을 출발하고서 중간에 가이드에게 전화가 오는데 호텔에 물건을 놓고 갔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60만원 짜리 옥매트와 가방(할머니네 모녀)이었다. 찻집에 도착하니 벌써(?) 매트와 가방이 와있다(?)

 

길거리 청소부들과 각 건물의 종사원들이 모두 나와 눈을 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우리의 옛 모습이 생각났다. 정다운 모습이었다. 공항으로 가는 중에 대사관 거리를 지나는 것같아 자세히 보니 정말로 대사관 거리였다. 탈북자들이 목숨걸고 대사관에 뛰어 들던 곳. 그런 거리를 지나며 불쌍한 탈북자들을 생각해봤다. 군인들이 유난히 많고 한가한 거리였다. 눈을 치우는데 그 모습이 역시 중국인다웠다. 길거리 아무데나 마구 쓰레기를 버리듯이 눈을 치우는 모습도 비슷했다. 공항 역시 눈이 녹아 질퍽거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곳, 엄청 시끄러운 곳. 애증이 교차하는 곳, 참으로 불가사의한 나라가 중국일 것이다.

 

출국준비를 다 끝내고 면세점 구경을 했다. 2년 전 한번의 경험이 있어서인지 중국면세점

의 물건값이 비싼 것을 알아 다른 것은 안 사고 우리 돈 만원 정도 하는 러시아산 보드카와

대나무통술을 샀다. 역시 면세점 중국인들은 쌀쌀맞고 냉랭하였다. 12시 20분(중국시각) 출발인데 17번 게이트에서 갑자기 13번 게이트로 바뀌었다. 그런데 거의가 한국인 손님들이었다. 그리고 비행기는 만석!!! 집으로 오는 길이라 마음은 가벼웠다. 점심으로 기내식을 다 먹고 맥주도 2캔이나 마셨다. 아주 철저히 망가진 것이다. 3박 4일 동안.

 

하늘에서 바라본 북경의 주변은 마치 계획된 것처럼 일정 부분마다 마을이 있고 집들도 한결같이 한 방향으로 줄지어 있었다. 드넓은 평지에 일정한 거리마다 군데군데 검게 보이는 것들이 바로 집들이었다. 또 한번 느낀 것이지만 이게 통치술하고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1시간 10분 정도 되니까 인천공항에 도착. 이렇게 가까운 거리다 중국과는. 중국어는 꼭 배워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험을 즐기고, 맛을 느끼며, 인생을 돌아보려면 중국을 가라????

불가사리적 불가사의한 나라 중국. 그 엉뚱한 나라가 우리 곁에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복과 화의 양면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중국. 즉 중화인민공화국! 우리에게 과연 무엇인가????

아~따, 거시기허요이~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