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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悠悠自適 베짱이 나라
여행기

2005년 베짱이의 상해, 항주, 소주 유람기 1편

by 베짱이 정신 2013. 1. 28.

 

2005년 베짱이의 상해, 항주, 소주 유람기 

 

2005년 1월 4일 인천 출발 - 항주 도착

 

오전 9시 50분 인천공항에 집결.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지. 나와 우리 식구들은 단체 비자였고 나머지 12명은 일반비자여서 서먹서먹했지. 어차피 여행이란 처음은 서먹서먹하지만 나중엔 친해지는 법이니까.

 

하늘은 청명이란 말이 어울리게 말고 가슴 시원한 날이었지. 우리 식구들은 순진해서 약속된 시각과 장소에 정확히 도착했지. 좀 뺀질거리면 좋으련만 전혀 그럴 수가 없으니...

 

세관을 통과하고 나니 시간이 많이 남아 면세점을 구경했지. 별것도 아니지만, 결국은 필요에 의해서 눈에 보이는 것이니까.

 

12시 20분에 탑승하니 177인승의 조그만 비행기였다. 제주도를 다니는 국내선으로 활용할 만한 비행기지.

 

다행히 창가에 앉아 내려다 본 나의 조국은 수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작은 땅덩어리지. 중국은 수 많은 민족들이 어우러져 사는데 우리는 이 작은 땅덩이에서도 동서남북으로 갈라져 저 잘났다고 서로 상대방의 굴복만 바라는 노름꾼 같은 나라가 되어 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지.

 

짧은 시간에 남해안까지 가고, 금방 제주도를 지나고 얼마 안 있어 중국땅이 보이고...

 

상해를 지나 항주에 도착, 공항에서 시내까지 가는 도중에 본 집들은 한결같이 비슷했지만 다들 2~3층집, 습기가 많아서 다들 2~3층에 산다나?

 

하긴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 나라에 와보면 내가 항주에서 느낀 바와 똑같겠지. 똑같은 건물에 일정한 모습들...

 

가이드 아저씨는 연변 용정 출신. 눈매가 상당히 매서운 사람이었지. 상당히 독특하게 생긴 사람.

 

제일먼저 간 곳은 성황각. 아이구~~ 아무 것도 아닌 곳에 콘크리트 누각을 지어놓고 입장료를 받고... (우리 나라 같으면 입장료 안 받을 곳이지.) 참으로 중국인 다운 발상임을 다시한번 느꼈다.

 

단지 이국 땅에 왔다는 기분으로 봐야겠다. 역으로 곰곰이 생각해보니 통제 사회에서 인민들의 숨구멍을 튼 곳이 이런 곳이 아닐까 혼자 생각해 보았다. 들판에 갈 곳이 어디 있겠는가... 입장료는 한국보다도 더 비싸다. 다 이유가 있겠지. 먹고 사는데 힘써야 불평불만들이 없겠지.

아니, 그런데 왠 하늘이 이리도 흐린건가? 내가 중국에서 맑은 하늘을 본 것은 하얼빈에서 뿐이다. 북경이고 어디고 다 흐렸다. 하늘은 역시 우리 나라?

 

항주에는 산이 보여 다행이었다. 소동파가 지사 노릇을 하던 곳이라나? 그 당시도 아름다운 곳이었을까? 하긴 농경시대였으니까... 물 많고 들 넓고... 그러니 역사적으로 싸움이 많을 수 밖에...

 

성황각 관광을 마치고 저녁 식사하러 출발. 식당에 너무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준비 불비. 저들이 정한 시각이 되니 그때서야 움직였지. 기름에 들들 볶은 음식으로 한 상. 먹을 것은 없어도 먹어야지. 특미라고 나온 동파육? 아이고 우리 나라 갈비찜이 훨씬 수준이 높지. 비게 덩어리에 살 조금 붙어 있고, 그것을 푹 쪄서 나온 것이지. 주변의 눈치를 보니 다들 실망. 우리 식구랑 같이 식탁에 앉은 젊은 소저(처녀) 2명은 거의 먹는 둥 마는 둥...그래도 이 베짱이는 맨날 놀고 먹는게 꿈이기에 48도짜리 술 한병 사서 마셨지. 위스키 Go home! 독주가 좋지.

 

저녁을 해결하고 숙소로 출발, 마침 퇴근길이라 자전거에 차량들의 행렬로 길은 인산인해. 사람들이고 뭐고 전부다 제 본위로 나가는게 보였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아주 딱 맞는 말이라고 생각되었지. 더불어 사는게 뭔가? 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또 하게 되었지.

 

호텔 도착 후 간단한 정리를 하고 호텔 주변 정찰을 혼자 나섰지. 멀리까지 골목 골목을 돌아다니니 야시장도 보이고 연탄공장도 보이고... 편의점에 들러서 맥주와 안주를 사들고 호텔로 돌아와 식구들을 다 대리고 야시장 구경을 나섰지. 별것도 아닌 것을 늘어놓고 팔지.

 

그 중에 혁필화를 그리는 사람에게 가서 내 이름을 한자로 써 주고 그려달라고 했지. 그랬더니 멋지게 그려주더군. 집사람 것도 같이 부탁해서 총30원 줬지. 우리 돈으로 3000원이지. 그 사람은 일당 벌었겠지. 그 사람들이 그린 혁필화는 우리 어렸을 때도 장날이나 특별한 날 장터에서 다 봤던 거 아닌가? 어쩌면 우리 어렸을 때의 모습과 똑같은지...

 

작은 딸이 배 아프다고 해서 바로 호텔로 돌아왔지. 쌀쌀하고 추운 날씨에 탈이 난걸까? 외국 여행시 말은 안 통하지만 어려울 게 없다고 봐. 바디랭귀지나 콩글리시도 다 통하거든. 단 중국에서는 콩글리시도 안됨.

내가 묵은 호텔은 4성 호텔이지만 별거 아니었다. 난방에 서비스에 모든게 실망.

첫날은 실망 속에 저물었다. 물론 중국 여행 시 매번 실망에 실망을 느끼는 것이지만.

 

2005년 1월 5일 항주 서호 관광 및 소주 이동.

 

방의 난방이 시원찮아 밤새 뒤척이다 일어났다.

습관적으로 일어나면 마시던 냉수가 생각났다.

가이드가 물을 마음대로 마시지 말라고 했지만 설마하고 한 모금 마셨다가 얼른 뱉었다.

우리 같으면 빨래 물로나 쓸 정도 지독한 소독냄새에 물 빛깔이 대단했다.

아니? 강이 있고 호수가 있는데도 어째 물이 그 모양인고?

그래서 어제 저녁에 봐둔 편의점에 가서 물(물이름 : 와하하)을 사왔지.

그 물도 우리 나라 같으면 안 마실 물이지만.

그러고 보면 우리 나라는 물 하나만큼은 복 받은 나라지.

 

아침은 24층에 있는 식당에서 먹었지.

비하면 형편없었지. 게다가 방콕에 비하면 어림도 없고... 그 중 제일 난 것은 죽이었지.

간 밤에 술도 먹었지 그러다보니 뜨끈한 국물을 먹어야 좋은데 그런게 있나?

그래서 뜨거운 죽만 들이켰지.

 

식사 후 서호로 출발 어디든 관광지에 가면 90%이상이 한국인이지.

이런걸 보니 우리 나라가 대단히 잘 사는 나라임을 다시 느꼈지.

중국에 와서 들으니까 우리 나라 말도 중국말처럼 들리는거야.

특히 경상도 억양이 그렇게 느껴졌지.

 

유람선을 타고 호수를 둘러봤지.

인민폐 1원짜리에 나오는 뒷 배경이 바로 서호의 풍경이라나? 별로 아름답지도 않던데..

서호에 얽힌 여러 가지 거짓말같은 이야기들을 들으며 50분 정도의 유람을 마쳤다.

 

차농장으로 가는데 항주를 흐르는 전단강 양 옆의 주택들은 고급스러웠지.

강의 하구이다보니 넓은 들이 발달했지만 그래도 산이 있어 차를 재배하고 그 차가 전 중국에 유명하다나?

물이 안 좋으니 차를 마실 수 밖에. 우리는 냉수고 숭늉이지만.

차 농장에서의 차 세일은 대단했다.

인도상인, 아라비아 상인, 중국상인 이라고 하더니만 정말로 그랬다.

나는 안 사지. 난 그냥 물이 좋거든. 짧은 시간에 우리 팀이 팔이 준게 우리 돈으로 60만원이 넘었지?... 여행사 까진거 복구되었겠지.

 

다음으로 영은사로 출발.

아니 중국 절들은 왜 전부 그럴까? 콘크리트 범벅에 허풍.

규모만 컸지 수도를 하거나 공부하는 기운이 하나도 없고 단지 관광지나 유원지지.

그래도 중국인들은 여전히 복을 빌지. 그렇게 복을 빌고 좋은 것을 먹는 사람들이 어째 평균 수명이 우리보다 못할까? 정말 의문이다.

빗방울이 떨어지고 날은 춥고.... 점심먹으러 갔지.

 

음식들이 어제 저녁보다는 낳았다. 소홍주 몇 잔을 마시며 먹었지. 결국엔 술 사라고 하더군. 우리 돈으로 만원이라나? 아니 그 돈으로 그런 술을 사먹어? 어림없지.

먹은 것도 없는데 배만 부르더군. 역시 이 식당도 한국인 잔치.

 

다음으로 진주공장으로 출발.

길에서 보는 중국의 교통은 먼저 들이대는 놈이 이기는 게 아닌지.

가수 김흥국이가 언제 중국에 와서 봤나? 맨날 들이대라고 하게?

진주 공장에서 하품을 하고 나왔지.

 

비내리는 가운데 소주로 출발. 별 것도 아닌 것을 관광자원화 하는 중국이 대단하다.

우리나라는 너무 소극적인가? 아니면 더 많은 것을 한 방에 노리는 것일까?

소주로 들어서니 조그만 수로와 운하가 상당히 많이 있었다.

발맛사지 하러 갔지. 아 글쎄 이놈들이 가만히 보니 소주에서 노는 놈들 비슷했지.

엉터리 발맛사지 받았지만 그래도 팁을 줬지.

다같이 맥주 한 잔 하라고 30원을 줬지. 안줘도 되는 거였지만.

 

저녁 식사는 한식이었지만 현지화 되어서인지 엄청 짰지.

된장찌개가 그 중 제일 훌륭했지.

역시 술은 빠질 수 없어 중국 소주 35도 짜리를 여럿이 나눠 마셨지.

이 여행 팀 중에서 내가 두 번째로 나이가 많더군. 내가 언제 이렇게 되었을까?

 

호텔은 공단 한가운데 있는 비즈니스 호텔이었지.

그래도 깨끗하고 넓은 호텔이고 난방이 잘 되어 좋았지.

물론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는 외딴 섬같았지만 얼른 나가보니 큰 슈퍼가 있길레 맥주 6병과 안주를 왕창 샀지. 맥주가 우리 돈으로 400원~450원 정도였고 안주로는 육포, 땅콩, 과포 등을 샀지. 중국의 과포는 맛이 있거든. 특히 사과 말린 것은 아주 훌륭하지.

 

밤에는 가이드와 함께 호텔 근처로 나가서 안주 놓고 술 놓고 마구 마셔댔지.

70원 놓고 술과 안주 실컷 마시고 왔지.

가이드 이름은 남호. 이 사람들도 나중에는 제 사업해야지 어디 직장 생활하겠는가...

같은 민족으로 걱정도 되고 잘 되길 바랄뿐이다.

이 사람이 중국인민해방군 정보요원이었다나? 중국의 애국자였다.

 

이렇게 비내리는 소주의 밤은 깊어갔다.

2005년 1월 6일 소주에서 상해로

 

어제의 과음으로 일어나기가 어려웠다. 아니 내가 어느새 이렇게 되었나?

하긴 제 나이 먹은 줄 모르고 까불었으니...

아침식사 역시 간단한 중국식 죽으로 해결하고 졸정원으로 출발.

18년에 걸쳐 완성했다고 하는데 역시 중국인다운 엉뚱한 발상이 재미있다.

평지에 있는 정원인데 그 주변은 완전한 관광지 쇼핑센터가 되어 사람들을 호객했지.

중국 영화에 나오는 그런 장면이라 익숙했지만 어째...

우리의 광한루가 훨씬 대범하고 여백의 미도 있고 철학적이 아닐까 혼자 생각해 봤지.

 

조용히 산책하고 호구산 호구탑으로 향발.

별것도 아닌 곳이지만 역시 한국인들로 버글버글.

삼국지에 나오는 장소라나?

삼국지에 나오는 장소들 하나같이 별것도 아니더니 이곳 역시 그랬다.

평지에 솟아오른 해발 64m.

입구보다는 출구 쪽에서 보는 게 훨씬 아름다웠다.

 

다음으로 실크 공장을 향해 출발.

가는 길이 정말로 진퇴양난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차들이 뒤엉켜 난리였지만 아무도 화내는 사람이 없었다. 이상하지?

아무것도 아닌 실크 공장에 가서 아무 것도 아닌 것들 보면서 주 목적인 쇼핑센터로 들어가 풀어 놓는 거였다. 여행 중에 하나는 사려고 했는데 여기서 그냥 사려고 했다.

물론 바가지지만. 알고 사는거다. 여행사 손실금 보전하라고.

실크남방을 하나샀고, 집사람의 브라우스도 하나샀지. 역시나 뒷마무리가 엉망이었지.

 

다음으로 당나라 한산스님으로 유명한 한산사를 갔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라는 시를 지은 스님.

중국 절들이 한결같이 콘크리트 덩어리였듯이 이 곳도 그랬다. 또한 완전한 관광지다.

절이 수로 바로 옆에 있었는데 수로의 물은 완전히 시궁창이었다.

이러니 물이 많아도 생수를 못마시고 차로 마실 수 밖에...

 

입장과 퇴장 시 잡상인들이 엄청 따라다녔다.

말만 하면 천원 천원하는데 이것들이 한국돈 1000원을 우습게 보는게지 어디 함부로 천원하는거여? 쓰레기를 갖다가?

그러나 이것도 다 자업자득.

 

다음으로는 파스 공장을 갔는데 아무도 안샀다. 누가 사겠는가... 안 사는게 당연하지.

점심식사 역시 중식이지만 북경이나 청도에는 못미쳤다.

정성과 맛을 치면 우리 음식이 월등 우수하다. 이건 무조건 기름에 들들 볶고, 또한 짜고...

 

점심식사 후 상해로 출발.

길 양 옆으로는 산이 안보이고 들판이었지만 집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그러니 상해 인구가 2000만 이라고 하지. 하여튼 구석 구석 안 사는 곳이 없었다.

2시간을 달려 상해에 도착하니 차량 정체가 대단하지만 나름대로 교통규칙도 잘 지키는 것 같이 보였다. 마구 들이대는 것은 똑 같지만 정도가 약한 듯 했다.

우리가 말하는 홍구 공원을 갔다. 중국인들은 노신공원이라고 한다나?

이곳 역시 한국인들로 문전성시.

우리가 대단히 잘 사는 나라인가보다. 중국에서 볼 때.

윤봉길 의사의 전시관의 전시물은 역시 중국인답게 전시했다. 그들 방식이었겠지?

그 뒤로 외탄지역을 지나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로 갔다.

화려한 길가를 조금만 지나면 바로 전통적인 중국 모습이 들어나는 여러 지역을 지나 임시정부 터를 갔다.

역시 한국인들로 버글버글.

한국인들이 먹여 살린다고 봐야지?

임정 요인들이 이런 곳에서 중국인 행세를 하며 살았겠지.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그런 고생을 하면서 찾은 나라에서 저격을 당하고 빨갱이로 몰려서 죽임을 당하고...

이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가면서 헌신할 가치가 있었을까?

흔히 후손들은 그런 분들 덕에 우리 나라가 있다고 말하지만 현실은 어디 그런가?

나는 다시한번 말 하는데 나라가 위태롭거나 말거나 관여 안 할 것이다.

 

다음으로 상해 태가촌으로 저녁 먹으러 갔다. 역시 한국인 잔치. 그 넓은 식당에 전부 한국인. 음식도 별거 아니었다. 북경 태가촌이 훨씬 낫다.

식사 후 외탄 야경 관광을 나섰다. 황포강 건너 신개발지구와 구 시가지의 야경을 볼 수 있는 곳이었지. 별것도 아니 건물에 조명을 하여 관광지로 만드는 중국인들은 정말 용광로 같은 민족이다.

이곳 역시 한국인들로 버글버글. 그런데 이상한 것은 거지와 구두닦이 거리 이발사, 귀 휘벼주는 사람 등등이 하나도 없는 것이었다. 중국의 다른 지역에 가면 다 있는데...

 

다음으로 상해서커스 관람. 역시 이곳도 98%이상이 한국인 관람객이었다.

할머니 관광객들은 다리가 아프셔서 절면서 다니는걸 보니 여행도 역시 젊어서 해야되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말이 서커스지 거의 아크로바트였다. 역시 중국인다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의 서커스는 과연 있는 것일까?

오토바이 묘기가 인상 깊었다.

서커스도 역시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는 공연이었다.

그러나 한 번은 볼만하지만 두 번 볼 것은 아닌 듯 싶었다.

 

야경을 보면서 실크로드 호텔로 들어갔다.

방도 작고 모든게 일반 투숙자들과는 달랐다.

이상한게 다른 호텔에서는 여권을 보자고 안했는데 이 곳에서는 여권을 아예 거두어 보관했지.

참으로 이상했다.

그러나 이 호텔은 그나마 영어가 통하더군.

호텔 주변을 보니 E-마트가 있었다.

영업 시간이 끝나 주변의 다른 편의점에 가서 애들 돈 쓰게 했다. 물론 작은 돈이지.

시간이 많이 지나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아이구 대단히 피곤하네...

 

2005년 1월 7일 귀국길

 

오늘은 귀국하는 날. 피곤하다. 노는것도.

아침 역시 죽으로 먹고 나섰다. 죽이 그중 제일 낫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좋았다.

반윤단이 지은 예원이라는 정원을 관광하러 갔다.

들어가는 입구가 정말로 중국다운 거리였고 수 많은 가게들이 관광객을 상대로 한 가게라니...

가이드의 엄포에 따라 모두들 조용히 따라다녔지.

정말로 영화 속에 나오는 그런 곳 같았다.

아니? 이렇게 드넓은 지역에 관광지가 이 것 뿐이라니????

우리는 땅이 좁지만 마음은 대륙같이 넓고 진취적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 다음으로 상해의 명동이라는 남경로를 관광. 백화점 거리이고 차 없는 거리였다.

수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조금만 옆으로 들어가면 전형적인 냄새와 건물들로 현대와 고전이 대비를 이뤘다.

여러 곳을 가봤지만 우리 백화점과 물가가 똑같음에 놀랐다.

1시간 30분에 걸친 구경을 마치고 걸어서 상해 박물관 있는 곳으로 갔다.

주차장이 없으니 걷고 또 걸어서 갔다.

 

마지막으로 점심 먹으로 갔다. 중국식 샤브샤브였지. 엉터리였다. 그냥 먹어야지 뭐.

다들 일찍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앉아서 국물을 마셔댔지.

과음의 여파가 대단했다.

밖으로 나와 서점 비슷한 가게에 들어가 벽에 붙일 福자를 샀다.

그리고 가이드가 그렇게 먹지 말라고 말린 만두를 샀다. 만두는 맛만 있었다.

공항으로 출발. 그래도 마지막으로 농산물쇼핑센터를 들렀다. 무지하게 비쌌다.

역시 나는 아무것도 안 사지, 필요 없으니까.

 

공항으로 다시 출발.

공항에 도착하여 표 바꾸고, 짐 붙이고 세관을 지나 대기석으로 가니까 긴장이 풀어졌다. 피로가 밀려왔다. 맛사지 의자에 앉아 5분 동안 5원 내고 맛사지를 받았지.

역시 엉터리며 무지하게 비싼거였지.

그럼 왜 했냐? 아이들에게 보여줄려고, 용감하게 부딪쳐 보라고 겁먹지 말고.

아시아나 항공인데 이번 비행기는 400인승 정도로 커서 빨리 국내에 도착했다.

1시간 30분 정도? 밥 먹고 면세품 팔고 나니까 바로 착륙한다고?

이렇게 가까운 거리인데...

 

세계는 이렇게 가까워져 가는데, 우리의 사고방식도 바뀌어야겠지?

농경시대와 산업사회의 마인드를 벗어나야 무한 경쟁 시대에 그나마 살아나겠지.

중국은 우리와 경제, 문화적으로 땔래야 땔 수 없는 脣亡齒寒(순망치한)의 관계로 열심히 한자를 배우고 익혀야겠다. 단일민족의 억압된 생각에서 벗어나 용광로처럼 녹이고 새롭게 만들어 융화시키는 그런 민족과 나라가 되어야 되지 않을까 혼자 생각해 본다.

 

다음에는 장가계 쪽으로 유람을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