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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2010년 유럽유람기(2010년 7월 21일~29일)

by 베짱이 정신 2013. 1. 28.

2010년 유럽유람기(2010년 7월 21일~29일)

 

첫째날(2010년 7월 21일)

 

아침 8시 50분쯤 집에서 공항으로 출발. 방송에서는 해외여행 인파가 최대이니 뭐니 하며 며칠전 떠들었는데 어떤가 하고 봤더니만 성수기니까 그렇지 뭐.

다양한 목적으로 떠나는 여행길.

몽골로 봉사활동떠나는 학생단체들, 초로의 노인들 친목회, 가족 여행, 어학연수... 가족 여행이 눈에 많이 띄더군요.

 

빠리행 비행기는 대한항공 보잉 747-400 대형 여객기. 좌석은 만석. 외국인들도 종종 있었지만 환승객들이 대부분인것 같았다.

우리 여행 팀들은 모두 21명. 4인가족 3인가족, 2인가족(베짱이)이었다. 다들 젊었다. 내가 그중 제일 연장자였다.

젊은 부부들이 아이들과 함께오는 풍경은 참으로 아름다웠고 부럽기도 했다. 1인당 400만원. 경제능력이 있어 젊은 나이에 그 많은 돈 들여 여행을 하니 어찌 부럽지 않으리오.

그런데 내 차림새가 젊어서인지 이것들이??? 인솔자가 나한테 하는 태도 보면 모르나????

 

빠리까지는 11시간. 으아 그 좁은 의자에 앉아 고문을 당할 생각을 하니... 그래도 즐겨야지. 밥주지, 술주지, 음료수도 주지, 스튜어디스는 건강하고 예쁘고 친절하지, 구름위에 떠있지 아니 이게 신선아녀?

 

대한항공 기내식의 성공작이 비빔밥이라 그것도 먹어보고, 포도주와 함께 먹으니 좋더구만. 먹고서 몸을 조금움직이며 스트레칭을 하고 한 숨 자고 나니 내리기 3시간 전에 또 밥을 주는데 그게 저녁이었다. 생선과 국수였는데 이것은 조금 아닌듯 싶었다. 아무것이나 잘 먹는 나이지만 다 불어퍼진 국수는 조금 그랬다. 그래도 감사히 먹었다. 포도주와 함께.

 

우여곡절 속에 빠리 샤를 드골 공항 2청사 E에 도착. 빠리 공항은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져 잘 찾아가야 한다나.

인솔자가 있어 다 해결해 주지만 한참을 기다린 끝에 버스 도착. 버스는 20년도 더 된 낡은 버스였다. 빠리 인간들 개나 소나 담배를 물고 다니는데 이 운전수 역시 예외는 아니였다. 뭔 놈의 담배를 그렇게도 피워대는지.

 

퇴근길이라 길에 차들이 엄청 많았다. 우리 기업들의 간판도 보이고 우리 수출차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유럽의 차들은 참으로 디자인이 다양하고 멋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실용적이고. 15년 전에 비해 차들이 다 커졌고 디자인 역시 다양해졌다. 거기에 비해 한국차들은 매력을 못 느끼겠더군. 대우차는 그런대로 섞이더군. 그에비해 현대나 기아는 물과 기름마냥 유럽과는 어째....???

 

호텔로 가는 길 주변을 눈에 담으며 피곤을 달랬다.

 

1급호텔 베스트 웨스턴 호텔인데 어째 우리의 모텔 수준과 같은 7층. 나는 존경하는 부인과 단 둘이라 0층에 묵었다. 즉 우리의 1층. 그것도 머슴이 머무는 듯한 헛간 개조같은 방.

창문을 열면 바로 정원의 너무가 보이는 곳이었다.

15년 전에도 빠리 로마 런던 중에 호텔과 음식이 제일 좋았던 기억이 있었는데 우선 방이 작으니 불편했지만 그래도 있을 건 다 갖추어 놓았더군.

 

날씨는 차고 건조했다. 길가에 담배꽁초와 더불어 낙엽이 뒹굴고...

차들이 신호등을 아주 잘 지키더군. 사람이 있건 없건간에. 주위를 둘러보니 CC TV는 보이지 않았는데...

 

아니 그런데 9시 넘었는데도 해가 지지않았다. 10시 10분쯤 되니까 어두어지더군요. 위도가 높아서 그렇다나?

호텔주변을 정찰하니 근처가 주택가이고 조그만 슈퍼가 있어 그곳을 들어가니 인도계 사람들이 점원으로 일하더군. 인종 전시장 같은 빠리. 맥주를 2캔 사서 들어왔다

장시간 불편하게 와서 얼른 자리에 누웠다, 물론 맥주 한잔 마시고. 그런데 이제는 맥주 마시려해도 딱 한모금이니 이거 원 오히려 독주가 더 좋으니...

그나저나 이거 열흘 내내 술마시게 생겼네. 그래야 피로도 풀고 잠도 잘 잘것 아닌가.

집을 떠났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둘쨋날(2010년 7월22일) - 빠리 여행

 

시차로 인해 아침 기상은 현지시각 2시 40분쯤이었다. 시계를 보고 다시 뒤척뒤척 하다가 잠을 다시 청했다. 그러나 쉽게 잠이 올리가 없고 비몽사몽으로 누워있다가 현지시각 6시쯤 일어나 호텔주변을 산책. 주택가에 위치한 이 호텔은 조용했고 주변의 집들은 다들 아기자기하게 꾸며놓고 사는데 높은 집이 없었다. 즉, 아파트가 없었다. 가이드 말로는 아파트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란다. 한국과는 정 반대. 한국은 중산층의 대명사처럼 되어있는데 이제 한국도 서서히 아파트의 대 재앙이 시작되었는데 그게 바로 아파트 가격의 붕괴에 따른 신빈민의 출현과 아파트 탈출 및 슬럼화라는 사실을 다들 알겠지요? 다 같이 망하는 겁니다.

 

집마다 화단이 있고 예쁘게 가꾸어놓고 창마다 덧창이 있어 해빛을 가리고 있더군. 참으로 사람답게 살더군요. 그런데 무궁화를 정원수로 가꾸는 집들이 괘 있더군요. 대한미국의 국화라 그런지 관심이 더 가더군요.

 

7시쯤 아메리칸 스타일의 조식이 시작되었다. 밥이 없고 국물이 없고, 빵으로 시작하는 아침. 포만감이 있어야 되는데그렇지는 못해도 열심히 먹었다.

빵을 갖다 먹었는데그 중 바게뜨가 제일 좋았다. 다른것을 첨가해봐야 맛만 더럽지. 순수한 빵냄새가 좋았다.

치즈 또한 맛이 확실히 달랐다. 맛이 좋았다. 다른 돼지고기 가공식품들(베이컨, 살과 비계가 적당히 섞인 둥근 것) 역시 아주 짭잘했다. 유럽사람들의 아침식사는 아주 간단했다. 차 한잔에 빵이나 비스켓 몇 조각. 그에 비해 밥을 주식으로 하는 동양인의 아침으로는 부적합. 그러니 우리들은 접시마다 산처럼 쌓아놓고 먹을 수 밖에.

이게 바로 문화의 차이라는 것.

열심히 먹고 9시 본격 관광시작.

 

제일 먼저 간 곳이 에펠탑이었다.

현지 가이드가 나왔는데 이 친구 의식도 있고 박학다식하고 유능한 사람이라 느껴졌다.

일찍 갔지만 사람들이 많았다. 얼마 줄을 서지 않아 바로 올라갔다.

이 에펠탑을 세울 때 우리나라는 뭘 하고 있었나? 외세의 침략에 풍전등화.

유압식으로 움직이는 엘리베이터 아직도 운행되고 있으니 참으로 ...

우리 같으면 벌써 다른 것으로 바꿨을텐데. 아니 다 부셔버리고 다시 지었을수도...

2층 전망대에서 시원한 바람 맞으며 빠리 시내 전경을 감상. 세계 각지에서 온 동무들이 만원. 한국인들 역시 바글바글. 중국인들 솰라솰라...

 

에펠탑에서 나의 흔적을 화장실에서 남기고 가려니 줄이 말이 아니게 길더군 그 줄은 여성용 줄. 남성용은 한가 드디어 빠리 에펠탑에서 오줌을 누고 오다. 장하다 베짱이. 사진을 이리 저리 박고.

탑 주변에 에펠탑을 설계한 에펠의 동상이 서 있었는데, 사실은 이 에펠탑은 에펠과 그 일행이 세웠지만 그 공은 에펠에게로 돌아가게 이 사람이 권리를 사서, 그 탑이 서 있는 동안 영원히 이름을 날리게 되어 있다나??

예전(1981년)에 충북 영동의 학산국민학교의 교무실 벽에 이런 글이 붙여있었지. "영광은 상사에게, 책임은 나에게" 얼마나 아름다운 말입니까???? 빌어먹을~~

 

빠리의 날씨는 햇빛은 따가운데 습기가 없어서 마치 가을날씨같이 시원. 그늘에 들어가면 아주 시원 서늘, 밖에 나오면 아주 따가운 햇빛이 내리쬐는 전형적인 가을 날씨 같습니다.

 

다음으로 개선문으로 출발. 여러저러 이야기를 들으며 왔지만 듣는 즉시 기억상실에 빠지니까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는거지 뭐

 

개선문을 중심으로 12방향으로 길이 나있고 샹제리제 거리와 일직선상에 있으며 신개선문과 또한 일직선을 이루고 프랑스 군대 행진도 이 길을 행진한다나??

과거 현재 미래를 향한 그들의 노력은 본받을 만 하다. 그러면 우리의 미래는? 도대체 이 나라가 어디로 갈것인지 뭘 어떻게 하고 살 것인지, 이 험란한 외교전에서 어떻게 견딜런지 다 의문 투성이 아닙니까? 도태되는 나라 뒷걸음치는 나라가 아닌가? 으아~~ㅆ ㅆ

또한 빠리의 가로수는 각지게 나무를 관리하는데 이게 프랑스 정원의 특징이라고 한다. 샹제리제 거리의 가로수를 각지게 깎아서 늘어서 있는 모습 멋있습니다.

신호등없는 개선문 교차로. 그래도 사고없다나. 하긴 그렇지 다들 눈치껏 지나가지. 우리도 신호등 없이 살지 않았나?

한국인들의 단골 관광코스라 역시 바글바글했다.

 

점심먹으러 출발 빠리사람들의 본격 점심시간 1시 전에 우리가 먹고 나오는 것이었다.

가이드 말로는 식당으로 봐서 단체는 돈이 안된다나? 아니 그런게 어디있어 돈 되니까 하는거지.

점심으로 육개장, 그런데 요리사가 보아하니 동남아 사람이라... 육개장 맛이 안나는 것이다. 그냥 밥을 먹었다는 것에 위안을 삼고 먹었다. 반찬은 아주 작은 그릇에 조금씩 조금씩 담겨있었다. 마치 간장그릇같은 작은 접시에. 그래도 남기니까. 역시나 먹고 난 흔적보소. 대단합니다.

이곳까지 와서 자리잡고 사는게 힘들었을텐데... 아주머니 사장님 대단하십니다.

 

점심 후 현지 옵션으로(떠날 때는 아무 말도 없다가) 노틀담 성당과 몽마르뜨 언덕을 1인당 20유로주고 하기로 했다.

입장료없이 다니는 곳이지만 주차니 뭐니 하면서... 그게 현지가이드 수입이 아닐까?

공부하러 왔다가 가이드로 눌러 앉은 사람들이 꽤 되나보다. 이 사람도 공부가 거의 끝나간다고 하는데 한국와도 할게 없으니 전문 가이드로 나서서 먹고 살아야지.

그래서 오늘은 몽마르뜨 언덕을 갔다. 빠리에서 제일 높은 언덕? 에게게 이게? 이름만으로 낭만을 느끼는 곳.

 

사실은 우리가 유럽의 식민 지배를 받지 않아서 그런 낭만을 이야기 하지만 유럽의 지배를 받은 나라들은 그런 낭만을 못 느낄 것이다. 아니 이를 박박 갈 것이다. 우리가 일본에게 그러하듯이. 이런 저런 여유로 우리는 유럽에 대한 환상과 낭만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나 싶다.

 

허가받고 그림 그리는 사람도 있지만, 좌판없이 떠돌이 그림쟁이도 있었다. 이제는 가난한 화가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라 관광지라 자리값과 모든 가격이 높을 수 밖에.

 

우리 대한미국에서 외국을 느끼려면 안산으로 오시라. 안산역앞 국제거리 특히 동남아와 중앙아시아의 느낌 확실히 느낍니다.

 

몽마르뜨 언덕의 골목 구석 구석을 둘러보며 눈을 호강시켰다.

 

내려오면서 죽은자를 위한 성심성당에 들어갔다. 사람들로 바글바글. 유럽의 종교가 그러니 어디 성당이든 다 비슷할 수 밖에. 마치 우리의 절이 다 비슷비슷하듯이.

그런데 이 성당에 들어갈때는 모자를 벗고 조용하란다. 우리의 절에서는 모자도 안 벗고 거만하게 떠들던 것들이... 왜그럴까? 이것도 문화 사대주의 일까? 종교가 권력을 가지면 안되듯이 자본 또한 권력을 지니면 이거 인생 인간 고달퍼지는 것 아닌가?

그런 종교, 권력화된 종교 성당앞에서 모두들 순한 양이 되더군. 이런 규모의 성당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고혈이 담겼을까? 물론 그 당시의 생각과 오늘날의 생각이 다르니 즉, 가치관이 다르니까. 그런데 비슷한것이 천당을 가고픈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같으리라.

내려오는 길은 구석 구석 오줌 싼 흔적에 담배꽁초. 으아~~ 냄새 천지~~ 양아치 같이 생긴 애들이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있고 개나 소나 담배 물고 뻑뻑 펴대고... 이래도 잘 굴러가는 사회.

 

그 다음으로 베르사유 궁전으로출발. 30분 걸리더군. 이 지역이 귀족들의 동네라 자부심이 강하다나? 자부심만 강하지말고 사회적 책임이 강해야지. 특히 우리 자랑스런 대~한미국. 이 지역이 비쌌는데 이제는 제3국인들이 들어오면서 집값이 많이 떨어졌다나? 보아하니 공원도 많고 해서 살기는 참 좋게 생겼던데... 가난한 3국인 기피 현상 여기도 예외 아니네. 하지만 어쩌랴 역사는 흐르는데. 고정불변은 없느니라.

이 궁이 미술관으로 되었는데 그 그림이 그 그림같고 다들 열심히 그렸군. 저 그림 그릴려면 돈 많이 들었을텐데 예술가들은 어떻게 해결했을까?

우리도 예전에 행랑채에 과객들(문인, 예술가등)을 접대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해석하면 되리라. 그러고 보면 동서양이 하던 짓들은 비슷.

이곳 역시 관광코스라 한국인뿐만 아니라 외국 관광객들 무지 많았다.

특히 중국인들의 솰라솰라 으아 아름다워라~~

1억명인 중국인 부자들이 해외여행을 나서는 날을 상상해보라.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 눈에 보입니다.

 

중국이 우리에게 외교적으로 까불지 말라고 신호를 자꾸 보내지요? 이거 역사시간에 많이 들어봤던 이야기 아닙니까? 지금이 위대하신 지도자이며 영명하신 인민의 태양이셨던 광해군때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광해군 몰아내고 일방적 외교를 하다가 결국은 우리의 사촌한테 죽도록 얻어맞고 50만이 포로로 끌려가고... 그런 분위기 나지 않습니까?

 

우리가 지금 이렇게 흥청망청 사는것은 중국이라는 거대국가가 옆에 있어서 돈 벌고 식품 싸게 사먹고 공산품값 안정되고 얼마나 고마운 나라입니까? 그런 이웃을 우리는 깔보고 홀대하지요? 이들이 지금 속으로 어떻게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위대한 중국의 지도자 등소평 동지가 그랬잖아요. 50년동안 힘을 기를때까지 아무 말없이 입다물고 살자고. 그런데 금년부터 그게 바뀌었지요. 할 일이 있으면 하겠다. 즉, 적극적으로 대처하겠다는 것이죠. 이번 한미연합 훈련에 대응하는 중국의 모습을 보세요.

 

돌아오면서 저녁을 먹으러 갔다. 현지 식당이지만 보아하니 북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 같았다. 달팽이요리? 이거 원 참 말만 요란하지...오히려 중국요리가 훨씬 좋지요.

 

일하는 아가씨는 다들 그 집안식구들끼리 하더군.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었지. 아니 왜 그리도 영어가 술술 잘 나오는지? 그 아가씨와 농담도주고받고?

맥주도 한 잔에 3.2유로나 주고 마시고. 다들 말도 않고 조용히 밥먹는데 제일 연장자인 이 몸이 영어로 이야기 하고 하니 같이 간 이것들이 이상한가?

 

아주 간소한 현지 저녁을 먹고 세느 강 유람을 위해 세느강으로 출발

배 안에는 한국말로 안내하는 전화기같은 안내폰도 있어 들어가면서 풍치를 구경했지. 세느강도 흐르는 강이 아니라 보를 막아서 저수지를 만들어 놓았다고 하더군. 우리의 쥐박이도 그걸 보고 미친 짓을 하는지... 만국 인종들이 배를 타고 유람하고 하여튼 1시간 정도를 슬슬 구경하면서 보았지.휴가를 못간 사람들을 위한 인공해변을 강가에 만들어 놓고 파란 깃발을 달아 놓은 빠리시. 그것또한 관광자원이 되는 현상. 열려있는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쥐박이와 그 일당들이 보았으면... 하긴 그들은 그걸 보고도 못 느끼겠지만. 배 안의 사람들은 강변사람들을 구경하고, 강변사람들은 배 탄 사람들을 구경하고 서로 서로 구경하면서 유람.

 

1시간의 유람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에펠탑이 잘 보이는 곳에서 증명사진 한 장 박는데 영화속에서 본듯한 인물들이 참 많더군. 외국인들과 즐겁게 사진 찍어달라 이야기 하고 잘 생겼다고 칭찬해주고 하면서 즐겁게 한장 찰칵. 이 곳이 나폴레옹이 사관학교 다닐 때 각개전투 훈련장이었다나.

 

이렇게 관광을 끝내고 호텔로 돌아왔다. 아이구 피곤해라.

 

 

셋째날(2010년 7월 23일)

 

빠리의 날씨는 제법 쌀쌀하지만 하늘은 맑고 습기없는 공기는 가을을 느끼게 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복장을 보니 가죽점퍼도 입고 있다. 아침식사 전 호텔 주변을 둘러보았다. 호텔문을 잠그기 때문에 문을 열려면 꼭 호출을 해야했지만 카운터 직원이 나와있어서 그냥 들어갈 수 있었다.

 

오늘의 일정은 루브르 박물관과 노틀담 성당 그리고 스위스로 떠나는 것.

 

일찍부터 서둘러 루브르박물관으로 출발 그래서인지 순조롭게 입장. 수많은 조각작품과 회화작품을 건성 건성 보며 들으며 관람. 언젠가 기억이 나겠지만 그 많은 이름과 작품을 지금은 나의 녹슨 뇌에 저장 불가. 이 곳은 옛 성을 박물관으로 만든 것이어서 지하에 성의 흔적이 자랑스럽게 있다. 프랑스인의 실용정신과 전통을 이으려는 그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옛 성에 박물관을 그리고 현대 기술까지 접목하여 유리 피라미드로 과거 현재 미래를 조합하여 세계인이 찾는 명소로 만들었으니... 여기서 문제 !.우리 대한미국 같으면 어찌했을까?

 

정답은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마음 속에 있음.

 

이 박물관의 명소는 역시 모나리자 관람방. 사람들로 바글바글. 하도 사진을 찍어대니까 유리 방탄막을 앞에 치고 여전히 우리를 향해 야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또한 비너스 동상 주변 바글바글...사진 한장 박고 앗싸~~!! 프랑스 혁명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관람을 마치고 다음 장소인 노틀담 성당으로 출발. 이곳 주차난이 심해 관광코스로 빠졌다나? 그런데 차를 살짝 돌리며 다른 곳에 주차시켰다가 정해진 시각에 만나 버스를 타고 가면 된다나?

 

어디를 가든 성당이 있는데 이곳은 소설로 유명한 곳이라서 전세계인이 찾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예술가(문학가) 한 사람의 상상력이 수 많은 공장보다도 더 많은 수익을 올리고 수 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인간을 돌아보게 만들고... 참으로 예술은 위대한 것이다. 삽질보다는 예술이 훨씬 생산적이고 인간적이다. 인천도 다른 도시의 영향을 받아 자유공원 아래 창고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갤러리 비슷한 것들을 만들어 하나의 관광자원화 했지. 자발적 생성이 아니라도 이런 노력이라도 기울이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니라.

 

우리는 과연 애새끼들한테 상상력을 키워주고 있는가? 아니면 상상력의 싹을 처음부터 싹둑 잘라내는 것인가?

 

여기서 우리 자신을 반성해 보자. 잠시 반성의 시간.......................................................

 

모아니면 도 식의 사회. 너 죽고 나 살자의 사회,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고착화 되가는 의식구조, 이런 숨막히는 구조를 뒤엎어 버려야되지 않나? 그래야 창의력 상상력이 발휘되고 사람사는 공기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내혼자 생각해 봅니다.

 

우리의 춘향전을 잘 이용한 남원시. 그러나 세계적이지는 못하다.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와야 한다. 즉, 세계인이 공유할 수 있는 공감할 수 있는 작품. 그래야 세계인들의 왕래가 빈번해지고 우리 식의 섬나라 의식 구조도 바뀌어 세계평화에 이바지 할 것 아닌가? 지금은 비행기 아니면 기차로는 이 대한미국에 들어올 수 없지 않은가? 곧 우리가 섬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이지. 이 섬을 탈피할 방법은 영원히 없는 것인가? 지금으로 봐서는 더욱 고립화 고착화 되가고 있지.

 

성당 안을 둘러보고 일찌감치 나와서 성당 밖의 풍경을 감상하고 다녔지. 강 옆의 풍경, 뒷모습 등을 성당만 본 것이 아니라 그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풍경을 둘러 보았다. 그 통통하던 참새들 다 어디가고 마른 참새만 이리왔다 저리왔다... 닭둘기들 지들 세상 만난듯 터줏대감 노릇하네.

 

점심은 한식당 “진미”에서 김치찌개를 먹는데 모처럼 얼큰하게 칼칼하게 먹었다. 이곳 역시 우리 관광객들의 독무대. 밥을 먹고 그 주변을 재빠르게 정찰해보니 박카스를 파는 한인식품가게도 있고 조용한 주택가 그렇더군.

 

점심 후 스위스 인터라켄으로 가기위해 기차역으로 출발.

 

가는 길 옆으로는 담배꽁초와 쓰레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개나 소나 담배 펴대고 아~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기차역에는 개찰구도 없고 표만 있으면 시간 맞춰 그 차를 찾아가면 되는 것이었다. 약간의 시간이 있어 기차안에서 먹을 간식을 사러 돌아다녔지만 오잉~~ 내 눈에는 잘 안보이네 가이드 말로는 있다고 했는데... 그리고 프랑스 유명한 맥주도 한번 마셔 보라고 1964인가하는 맥주를 추천하는데 내 눈에는 안보여 그냥 포도주하고 프랑스산 흑맥주 2병을 샀다.

 

14호차를 찾아가는데 전부 크게 2자만 보이는 것이다. 이상하다 했더니만 객차 호수는 밑에 작게 표시되어 있었다. 아이구~~!! 가이드 저는 알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데 이런 때 알려주면 어디가 덧나나? 하긴 자기는 다른 사람들도 다 안다고 생각했겠지.

 

객차 화장실은 출발전까지는 잠궈져 있다가 출발하면 열어 준다고 한다.

 

기차는 영화속에 나오는 그런 기차. 디자인이 참으로 멋있다. 열차 내부는 KTX처럼 반으로 나눠서 서로 마주보게 되어 있었다. 다행히 우리는 진행방향을 보고 있어서 고생을 하지 않았다.

 

4시간 30분 정도 달리는데 5군데 정차하고 달렸다. 차장같지 않게 생긴 사람이 차표검사하러 다니더군. 우리도 예전에는 검사를 했지만 지금은 하지 않지. 에어컨 시설은 별로. 그이유는 날이 건조하니까 우리처럼 세게 틀지 않는다나. 이렇듯 계절과 기후에 따라 사는 방법이 다 다르지.

 

저녁은 도시락으로 기차안에서 해결. 현지시각 6시경에 밥먹기 시작. 도시락도 간단. 그래도 프랑스 기차타고 도시락 먹는 맛 그것 또한 새로운 경험이 아닌가?

 

드디어 종착역 물르즈에 도착. 영어식 발음으로 물하우스. 내려서 주차장에 서있는 프랑스 아가씨에게 여기가 물하우스냐고 물었더니 모른다고 하더군. 그냥 "물르즈" 하더군.

 

같은 목적을 가진 한국인 관광객들이 버스로 3대. 각자의 버스 타고 출발 10시가 넘어도 해가 지지않는 밤을 뚫고 호텔에 도착하니 비가오고 바람불고 춥고... 으아~~거지가 따로없네, 으아~불쌍한 몰골들....

 

가는 내내 스위스 산악국가라 넓은 들이 없을 줄 알았더니만 프랑스와 인접한 곳은 아주 넓은 평야도 있더군. 그곳에 공장들도 많고. 집들은 아지자기하게 깨끗하게 잘 가꾸어져 있어 사진 속의 그모습 그대로였지. 그런데 이런 모습들이 거져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리라. 법적으로 규제가 엄격히 적용되리라. 우리도 이제 슬슬 간판이니 뭐니 하면서 정리를 시작하려 하고 있지만 국토개조가 다 끝나면 우리도 변화없는 세상을 살겠지???!!!이 곳은 10년이 지나도 변화가 없는 곳. 우리는 몇년만 지나도 확 바뀌어 버려 못찾는 숨은 그림찾기의 나라가 아닌가?

 

서둘러 호텔에 들어가니 커피포트도 없고 없는게 더 많더군. 바닥은 그 전에는 대부분 카페트였는데 지금은 나무바닥으로 바뀌었더군. 빠리 호텔도 마루바닥. 우리에게는 익숙한 것이라 맨발로 다니기 편했지.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두배나 더 높은 나라인데 이렇게 대접하나? 유럽연합은 1회용품을 안쓴다나 뭐한다나 그래서 호텔에 그런 물품들을 안 놓는다고 하더니만.. 하여튼 불편한 것은 사실이니까.

 

대충 씻고 내일의 융프라우 등정을 위해 잠자리에 얼른 들기.

 

 

넷째날(2010년 7월24일) -스위스 인터라켄, 이태리 밀라노

 

오늘의 일정은 융프라우를 오르고 오후에는 밀라노로 가는 것이라 새벽부터 서둘렀다. 5시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6시에 호텔에서 출발. 인터라켄 동역으로 출발. 아침은 간단한 샌드위치에 사과 하나로 개인 지급 받고 어둠을 뚫고 아침햇살을 맞으며 떠났다. 이곳 스위스의 철도 시스템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기에 그냥 역 안을 구경하고 보니 개찰구 같은 것도 없고 그냥 제 시간에 제 열차 찾아서 타면 되는 것이었다. 역시 어제 같이 온 한국팀들이 바글 바글. 다들 스위스 프랑으로 커피를 사 마시고 있었다. 스위스는 유럽연합에 들지 않아서 돈 역시 자체 프랑으로 쓴다나. 물론 유로도 받지만 이래저래 환차손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산악열차를 두번 갈아타고 오르는 길은 전에 TV에서 봤던 그대로였다. 아침으로 샌드위치를 먹으며 보는 주변의 풍경은 정말로 그림같이 아름다웠다. 이렇게 살기까지 자연의 도전을 이겨낸 인간의 승리 아닌가 생각된다. 산악열차를 아돌프 머시기 라는 사람이 설계하고 추진했다나? 어째 이름이 정겹지 않습니까? 굴을 파고 길을 내고.... 인간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이 산악열차는 협괘열차로 열차 자체 폭이 좁고 길이도 짧아요. 마치 예전의 수인선 협괘열차처럼. 그렇지만 흔들림은 훨씬 적었지요. 조그만 꼬마열차 같지만 구간 구간 운행하는 차마다 다 디자인이 다르고 색깔이 다르고... 주변과 잘 어울리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9.3Km를 2시간에 거쳐 오르며 가는 도중에 두 군데의 관람포인트가 있는데 이 날은 눈보라가 쳐서 풍경을 볼 수가 없었다. 한여름에 눈보라라니???

 

바람불고 눈보라 치고 한여름에 잠시 추위를 느끼며 계절을 잊었다.

 

마지막 종착역에 도착하니 얼음으로 만든 굴을 지나 007영화에 나왔던 그 전망대에 올랐다. 역시 눈보라로 인해 오래 서 있을 수가 없어 잠시 사진만 박고 실내로 들어와 포도주를 두잔 15유로나 주고 마셨다. 고산지대에서 마시는 포도주 한잔 맛은 있었지만 조금은 어찔 어찔... 그래도 분위기 잡는데는 제일. 가이드는 고산병 등 여러가지 이유로 컵라면을 먹으라고 그러더니만 많은 사람들이 후루룩 쩝쩝 먹고 있었다. 컵라면이 7유로. 젓가락만 2유로. 뜨거운 물만 5유로? 컵라면 가져가나 가서 사먹으나 그게 그거죠? 이 베짱이는 포도주를 마셔버렸지요. 한 여름에 눈을 바라보며

 

이 때 시 한 수 나오는데..앗싸!!

 

어허~ 눈보라 날리누나.

한여름에 눈보라라

이태백도 김선달도 한여름에 눈보며 한잔 못했으리니

이 베짱이 신세 최고로세

어허~ 눈보라 날리누나

어허~ 술맛이 절로 나네

 

내려오는 길은 올라온 길과 다른 길로 돌아 가는 것이었다. 이 또한 주변의 경관을 볼 수 있는 멋진 코스다. 그런데 갈아타는 구간 구간 마다 차장이 올라와 표검사를 하는 것이다.

 

이런 높은 곳까지 사람들이 살고... 참으로 인간의 능력은 무한대 임을 실감. 또 한편으로는 우리의 제주도를 이런 식으로 청정 제주를 만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더욱 구체적으로 들었다. 제주에도 버스대신에 협괘 열차를 놓아 관광 및 대중교통 역할을 하게 하는 것. 이제는 생각해 볼 때가 되지 않았나? 내려오면서 다양한 기차를 타고 경치에 빠져 눈을 호강시키며 내려왔다.

 

내려오니 점심시간 점심을 먹기 전에 근처 가게에 가서 엡솔루트 보드카 증정용 조그만 병에 들은 것(미니어쳐)을 자그마치 4유로나 주고 샀다. 껌은 1500원. 살인적인 물가로다. 하긴 여기는 다 수입해다 먹으니 그럴 수 밖에. 한식당 "강촌"에서 비빔밥으로 허기를 달랬다. 추가 반찬은 2유로씩 본인 부담. 점심먹고 주변을 둘러보니 이곳 애들이 하나도 안보이는 겁니다. 산에서 기차타고 내려올때 전통복장 비슷하게 한 어린이 한 명 보고는 도통 보지를 못했다. 다 어디있느겨???? 점심을 먹고서니 면세점을 들렀다. 면세점이지만 기본적으로 3~4배 비쌌다. 여기도 중국인들이 만원. 눈으로 구경하고 그 주변을 둘러봤다. 계곡물이 모이고 모여 강을 이루고 그 강물 색깔은 파스텔톤의 옥색으로 사정없이 흘러가고... 구석구석 다니며 인터라켄의 풍경을 사진속에 담고 눈에도 담았다.

 

이제는 이태리 밀라노로 출발. 5시간 걸린다나? 17.5Km의 긴 터널을 지나고, 그래도 고속도로가 있어 순항. 북쪽에서 이태리로 휴가가는 차량들이 줄 지어 가고...이 스위스 산골에서도 한국차들이 많이 눈에 뜨이더군. 스위스를 종단하면서 내려오는 길옆에 즐비한 호수, 그림같은 집들, 평화로운 광경을 눈에 담으며 남행.

 

언제 다시와보랴....안녕 스위스~~!! 악조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당신들의 노력에 찬사를 보냅니다.

 

이태리 밀라노로 들어오니 넓다란 평야가 펼쳐지고 많은 공장과 다양한 집들이 눈에 익숙하게 들어오며 금새 스위스는 잊은 듯...밀라노 시내로 들어서니 광고에서나 본듯한 구식전차들이 굴러다니고 그 옆으로 신식 트램(전차)이 굴러가고... 아름다운 조화였다. 우리 버스 운전수가 이태리 사람인데 이게 영화배우처럼 생겼어요. 그래서 내가 이탈리안 무비스타라고 불르며 다정히 해줬지요. 칭찬해서 싫다고하는 놈 없느니라.

 

밀라노 첫 코스로 스포르체스크성 겉만 구경. 우리의 성과는 다르지요. 유럽의 성들은 돌로 집같이 높게 쌓아 철옹성처럼 되었지요. 물론 해자(성을 둘러싼 물웅덩이)도 있고. 쓰레기와 담배꽁초, 담배연기와 함께 하는 성 외곽 구경. 옛날 성주들의 후손은 다 무얼할까? 역사는 흐릅니다. 돌고 돕니다.

 

다음코스로 두오모 성당. 여기도 크더군요. 사람들도 많고. 성당 외관 구경후 그 유명한 라 스칼라좌 극장외관 구경. 이곳 역시 사람들로 바글바글. 이태리 분위기가 물씬나는 풍경.

 

여기서 잠깐. 스위스고 이태리고 빠리고간에 하이힐을 신은 여성은 눈을 씻고 봐도 없음.

그 이유?

내 생각으로는 길이 매우 울퉁불퉁(돌로 깔린 길)하여 자칫하면 발목 부지르기 딱 알맞음. 조심해서 걸어야지. 그러니 하이힐을 신을 수 없지요.

 

저녁은 현지식 스파게티. 한국인 단체만 받는 식당인가보다. 여기도 종업원은 동유럽국가 출신 내지는 집시 비슷하게 생겼더군요. 시장이 반찬이라 맛없어도 그냥 먹고 주변을 제빠르게 산책 및 정찰을 하니 가게도 없고 철학자(노숙자)들만 공원에 앉아 우리를 구경하고 있더군. 이태리 사람들은 거의 9시 넘어서 저녁을 먹는다나. 이제 먹었으니 얼른 호텔로 들어가야지. 호텔은 똥냄새나는 곳이더군. 공장지대 한 가운데. 즉, 절해고도. 주변을 봐도 아무것도 없고 물류창고 같은 것만 눈에 보이네. 10시가 넘어도 해가 안지네 이런~~~

 

포도주 마시고 그냥 잠자리에 들었다. 이거 이러다가 열흘 내내 술 먹는거 아녀??

 

 

다섯째날(2010년 7월25일) -베네치아

 

소똥냄새나는 밀라노의 아침은 무척이나햇살 눈부신 구름없는 하늘이었다. 마치 가을 하늘같은 느낌의 아침이건만 호텔 근처가 공단 물류창고 근처라 산책은 생략.

 

3분전 7시에 아침 먹으로 갔더니만 7시가 안되어 입장이 안된다나??? 어허 그것들 시간을 잘 지키나??

 

빠리의 아침에 비하면 질이 낮지만 그런대로 많이 먹었다. 뜨거운 물도 얻어 차를 우려내어 병에 담고 8시 30분에 베네치아(베니스)로 출발.

 

드넓은 평야지대에 공장이 많은 밀라노 중심의 북부와 나폴리 등의 남부와는 경제 격차도 크고 의식도 다르고해서 지역감정이 많다나. 길 옆의 농토에서는 옥수수를 주로 심고 가끔 포도도 심었는데 북부는 백포도주를 담그지만 그 양이 적답니다. 남부지역은 적포도주를 많이 만든답니다. 고로 이태리가 포도주 생산이 제일 많다나???

 

2시간 정도 달려 고속도 휴게소에 도착. 우리의 휴게소와는 구조와 규모도 다르다. 우리의 휴게소가 훨씬 편리하고 규모도 크지요. 조그만 문을 통해 가게를 통해 지하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하게 되어있다. 이런 구조는 이들의 화장실 문화와 관련이 있다나. 즉, 남의 화장실을 잘 이용하지 않는 그들의 오랜 전통???

 

고속도로에는 모터싸이클이 씽씽 달린다. 휴게소에서 쉬고있는 폭주족같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랬더니 시실리 섬까지 휴가가는데 자기 모터사이클로 가는 중이란다. 그것도 할리 데이비슨 모터 사이클. 자기 바이크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더군. 하긴 할리 타는 인간들 다들 프라이드가 있지. 고속도로에 오토바이라? 우리 나라에서는 상상을 못하지. OECD국가 중 유일하게 대한미국만 고속도로 통행금지 국가란다. 바이크가.

 

휴게소에서 약간의 간식거리를 샀다. 작은 포도주 1병을 사고 차 안에서 그냥 다 마셔버렸다. 맛이 훌륭했다. 이태리가 포도주 생산 1위라니까. 햇빛 좋고 그러니 좋은 품질이 나올 수 밖에.

 

베네치아로 들어가기 전 한국식당에서 비빔밥으로 점심먹고 베네치아로 들어가는데 버스당 380유로를 내고 들어가야 한다나. 도시 진입세?

 

베네치아 상주 인구는 6만인데 일년 관광객이 2천만명???? 입이 떡 벌어진다.

 

118개의 섬을 각 다리로 연결하였는데 처음에는 6개의 섬만 있었다고 한다. 이 물의 도시가 만들어진 연유가 알프스 넘어 훈족의 침입을 피해서라나??? 갯벌 위에 나무말뚝을 박고 돌과 흙을 날라다 집을 짓고... 인간의 생존 능력은 어디까지인가? 게다가 베네치아는 옛날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즉, 살아있는 민속촌.

 

지금은 육지와 연결되어 기차도 다니고 버스도 다니지만 보통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20분 정도 들어가면 산마르코 광장이 있는 섬에 도착.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해변을 따라 걸으니 유명하다는 탄식의 다리 옆을 지나고 조금 더 가니 사람들로 버글거리는 산마르코 광장. 화면속에서 봤던 그 광장이 있고 그 중심은 역시 성당이다. 비잔틴양식의 모자이크화로 천장을 장식, 게다가 금박을 입히고... 그러니 이곳이 얼마나 흥청망청? 되었을까 상상해 보았다. 교회의 권위가 아니 권력이 하늘을 찌르고 대단했으리라... 그 좋은 권력을 시민과 왕에게 넘겨주기까지 과정을 상상해보라. 권력은 자식에게도 안 넘겨 준다는데 교회의 그 막강한 힘을 빼앗긴다고 생각하면 성직자들의 마음이 어땠을까? 오늘날도 교회의 권력이 대단하잖습니까? 사람을 위하는 종교가 아니라 사람을 지배하는 종교. 생각해 보셨습니까?

 

길을 거닐 때 서로어깨를 스칠만큼 많았다. 먼저 곤돌라를 탔다. 같이 간 일행 중에 한 가족과 같이 타게 되었는데 아! 이것들 싸가지 없게 지들이 먼저 메인석에 덜컥 앉아 버리네. 이 새끼 생기기도 그렇게 생겼더니 인물값 하네. 그래 앉아라. 6인승이라 나는 뱃머리에 앉아 거꾸로 보면서 갔다.2인승은 연인용???

 

골목골목을 다니며 하수냄새 맡으며 다녔다. 뱃사공은 연신 담배를 피워대고...

 

참으로 인간의 능력은 무한대. 상상은 돈 안들고 우주를 내 품에 안는 것이니...그 상상이 현실로 실현되고 또 꿈꾸고

 

곤돌라를 타고 난 후 유리세공공장 구경. 결국은 물건 사라. 구경만 하고 나왔지요. 유리를 이용해 멋진 예술작품을 만들어내는 그 재주에 감탄을 보낼뿐.

 

다음은 자유시간. 이 골목 저 골목을 다니며 베네치아의 여러 모습을 구경. 광장의 카페에서는 악단을 고용해 연주를 했다. 내가 아는 곡들도 나와 따라부르고 귀를 호사하며 그늘 속으로 다니며 사람구경, 가게 구경, 구경 구경....아이스크림(3유로)도 사먹었는데 아니 왜 이렇게 달아??

현지 옵션으로 수상택시를 타고 그 유명한 수로를 따라 관광하며 그 예산 헤밍웨이가 어떻고 영화배우가 어떻고 이야기를 들으며 TV화면속에 나오던 그 운하를 따라 천천히 달리는데 그 풍경이 일품이었다. 마음이 저절로 열리고 아름다움에 나 또한 착해지는? 느낌?? 웃기네?? 서서히 설명을 들으며 골목 골목을 다니다 선착장으로 출발. 총알택시배가 되어 이리저리 씽씽 앗싸~~!!

 

저녁은 한국인이 경영하는 현지식당인데 어데 주택가에 있더군. 파스타를 매콤하게 만들었는데 마치 떡볶이처럼 만들었더군. 그에 딸린 가게에 가서 베네치아의 가면을 하나 30유로 주고 샀지. 가이드가 베네치아 가판대 것은 차이나는 제품이고 비싸니 식당에 딸린 가게에 와서 사라고 정품이라고... 이 가이드도 왜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공부하러 왔다가 가이드로 눌러 앉은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더군. 목소리 좋고~~이태리 제품으로. 카사노바의 가면을 하나 샀지. 하하하하 카사노바.

 

호텔로 돌아와 여장을 풀었는데 역시 작은 호텔인데 주로 신혼부부가 온다나? 그래서 시설이 좋았나?

 

호텔 주변을 정찰하니 아니 주변에 아무런 가게도 없는거여. 천둥 번개를 뚫고 정찰을 했건만. 아이구 추워라. 비바람 맞으니. 할 수없이 돌아와 포도주 한잔하고 그냥 잘 수 밖에...오늘도 또 술 먹네??? 행복해라???

 

아 오늘은 아름다운 하루였어요~~~

 

 

여섯째날(2010년 7월 26일) - 피렌체

 

간 밤에 천둥 번개 치고 비바람 불더니만 아침은 청명한 하늘이 반겨주네. 포도주의 위력이 밤새 잠을 잘 자게 만들었네 그려. 이태리는 요즘이 건기라 비가 내리는 경우가 드물다는데 비 내리는 건 특별한 일이라고 한다. 겨울이 우기로 습하고 매우 춥다고 하더군요. 오늘도 아침식사 전 호텔 근처 주택가를 산책했다. 이곳 역시 집들이 아담하게 가꾸어 가고 있으며 무궁화를 정원수로 심은 집이 심심찮게 발견되었다. 우리와 위도가 비슷해서 그런가? 이 베짱이도 아파트를 탈출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으니... 주택 살 돈이 있나? 무리를 해서 산다고 쳐, 그러고나면 손가락 빨고 또 거지같이 살아야 되는데 그 짓은 하기 싫고... 하여튼 고민이로세 고민... 어디서 돈벼락 안떨어지나?

 

주택가 길 옆으로 커다란 통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게 바로 분리수거통. 언제든 버릴 수 있게 되었더군. 미쿡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생겼더군요. 혹시나 못된 놈들 지나가다 재떨이로 이용 안할까?

 

아침식사 역시 시원치 않았다. 1급호텔이라지만 이거 원...그래도 먹어야지 그래야 살지.

 

8시 20분 피렌체로 출발 차들이 한산한 고속도로에서도 제한속도 열심히 지키며 오는 도중 어제 밤에 마신 포도주의 여파로 피로가 밀려와 자꾸만 닭 졸듯이 졸면서 왔다. 피렌체에서 합류한 로마 현지 가이드는 이태리에 산지가 10년이란다. 그러다보니 어투가 이태리 말처럼 노래하듯이 들렸다. 유머있고 성질도 있고. 제일먼저 성당 근처에 있는 현지식당에서 스파게티와 닭고기, 사과를 먹었는데 요리 자체가 짭잘했다.아니 이것들 왜 이리 짜게 먹는겨? 노인들이 서빙을 하는데 한 분은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를 닮았다. 성당 근처에는 수 많은 관광객들로 바글바글. 그 사이 사이로 아프리카 계통의 노점상들이 경찰 눈치를 보면서 그림과 가짜 명품 가방을 폈다, 접었다 하며 장사를 하는데 글쎄 사는 사람들이 있을까? 저래가지고 밥먹고 살까? 걱정이 되더군. 짚시 여인들은 구걸을 하고....(피렌체 주요 건물및 관광지는 사진 참조)

 

오늘 여러가지 이야기 중 메디치가문이 피렌체의 중심이었고 그 때 세운 건물들이 오늘날 관공서로 활용되고 있었다. 메디치가문은 몰락해서 후손이 남아있지 않다나? 한 때의 영광도 한 낮의 꿈이려니... 단테의 생가도 복원해 놓았으며 단테가 짝사랑한 베아뜨리체의 무덤이 있는 조그만 교회(한 집안을 위한 교회라나)도 보고... 아니? 조용필의 노래 "슬픈 베아뜨리체"가 바로 여기서 유래되었나? 연구해 봅시다. 시내를 흐르는 강 아르노 강을 건너는 다리인 베키오 다리도 건너보았다. 강물의 색깔은 깨끗하진 못했고 이상한 것은 낚시꾼이 없다는 것이다. 어디에서도 강이 흐르는데 낚시꾼이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물놀이 하는 사람도 없고. 아니 얘들은 물놀이 싫어하나?

 

마지막으로 가죽쇼핑센터를 방문했지만 나는 살게 없으니 그냥 구경하다가 얼른 나와 그 근처의 골목 골목을 다녀보았지요. 광장에는 관광객들로 붐비고 거리의 화가도 있고 잘 생긴 경찰도 폼 재고 걸어다니고... 하여튼 서양사람 엄청 보았다. 어디든 사람 사는 것은 동일. 그러나 가치관과 문화가 다를뿐.

 

이제는 로마로 가는 길만 남았다. 오는 내내 닭 졸듯 졸면서 바깥 경치도 보면서 왔다. 이태리는 우리와 비슷해서 산지가 80% 들 20%랍니다. 그런데 그 산이라는게 구릉같아서 우리와 다른 점이다. 4시간 정도 차를 타고 오니 저녁시간이라 한식당에서 저녁. 된장찌개에 제육볶음. 상추쌈(배추도 아닌것이 상추도 아닌것이 맛있네). 김치를 맛있게 먹었다. 이곳 종업원 역시 조선족 아주머니들 그런데 이들은 중국말로 말하데?? 돈벌러 유럽까지 와서 한국인 식당에 취직. 돈벌기가 그리 쉬운가? 한국에서 일하다가 온 동남아 근로자. 조선족들이 비빌 언덕이 바로 현지 한국인 아닌가? 돈 많이 벌어서 부자되시라요. 아주마니~~!!

 

하여튼 이곳 유럽사람들의 행복한 얼굴을 보면서 이런 글귀가 생각났다.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느냐,

지은자도 너였었고 받을 자도 너이니라.

오는 고통 달게 받고

좋은 종자 다시 심어서

이 몸 받았을 때 즐겁게 가꾸어라

짜증 내고 원망하면

그게 바로 지옥이고

감사하게 받아내면

서방정토 예 있으니

마음 두고

어디 가서 무얼 찾아 헤매는가

열심히 기도 정진하여

우리 모두 해탈하세

 

 

일곱째날(2010년 7월27일) - 로마 폼페이유적지와 쏘오렌토

 

고속도로 옆의 외진 곳에 위치한 호텔 주변을 산책하려니 돌아볼 곳이 없네. 사방이 철망으로 쳐진 고속도 주변이라 집도 없고...유배왔나? 그렇지만 아침햇살은 여전히 따갑고 건조하여 가을같은 아침을 맞았다. 6시 30분부터 식사시간인데 3분전에 들어가도 되냐고 물었더니만 안된다고 딱 잘라 말하데요. 어허 이것들 참????? 그래도 오늘을 즐겁게 지내려면 아침을 든든히 먹어야지. 역시나 다 짜더군요. 소금기 겁나게 많이 섭취하네요.

 

7시 폼페이 유적지로 출발. 주변의 환경이 우리와 거의 흡사. 어젯밤의 포도주로 인한 여파가 있어 비몽사몽 하다가 그래도 정신을 차려 주변을 자세히 보면서 갔다. 폼페이 유적지에 가니 개인 관광객들이 표를 사기 위해 긴 줄을 섰는데 단체인 우리는 곧바로 입장. 현지인 가이드(마피아???)를 대동하고 2000년 전의 고대인들이 화산재에 묻혀버린 모습, 기타 생활공간(목욕타, 술집, 가정집, 대부자집 등)모습이 생생하게 타임캡슐이 되어 오늘날 관광지가 되었네요. 서양의 기원전 역사는 믿으면서 우리네 기원전 역사는 신화니 뭐니 하면서 안 믿는 것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서양만 이런 문명된 역사가 있었을까요? 아니지요? 우리도 우리의 역사를 폄하하니 있는 것도 못찾지요.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만 바뀌었지 하는 행태는 비슷하지요. 세상은 돌고 도는 것.

 

1시간 반 가량 서둘러 관광 후 폼페이 역 부근 현지 식당에서 해물스파게티로 점심(바지락 몇개 들어있는) 아이구 그냥... 웃으며 먹어야지. 밥먹는 도중 가수들이 나와 기타치면서 이태리 민요가 아닌 나폴리노래를 들려준다. 각 팀마다 한곡씩 불러주고는 모자들고 팁을 받으러 다니더군요. 밥먹고 나오면서 유창한 영어(?)로 당신 이태리 사람이냐고 물었지요. 마치 남미사람같아서 물어본 것인데, 자기는 이태리인이 아니라 나폴리사람이라고 힘주어 말하더군요. 이태리도 남북간의 지역감정이 있다고 하더니만...하긴 이태리가 통일되기 전까지는 각 왕국이 지배하고 있었으니 자신들의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리라.

 

점심을 마치고 폼페이 기차역까지 조금 걸어서 쏘오렌토행 전철을 타기로 했다. 기차 외관은 낙서인지 뭔지 지저분하고 출입문에 끼면 단두대처럼 목이 잘려질 것 같은 철커덕 소리를 내며 쾅하고 닫히는게 이거 선진국 맞아?

 

쏘오렌토 상주 인구는 2500명인데 관광객이 더 많더군요. 조그만 동네에 성당도 많고. 쏘오렌토 절벽을 가는데 시장을 지나서 갔다. 좁은 골목에 많은 가게들이 있고 넘치는 관광객들이 ?라?라 해대며 걸어가고...

 

이 베짱이의 복장좀 보소?? 어 새로운 패션인가? 아 이몸이 완전히 관광품이 되어 시내를 다니니 다들 바라보며 수군수군 거리더군요. 그러거나 말거나 이게 바로 새로운 패션아이가? 너희들 팔토씨 차봤어? 그럼 조용히 감상하고 감상문이나 발표해라 이~잉.

 

오늘 일정이 원래 카프리섬 선택관광(120유로)인데 다들 안 한다고 하여 쏘오렌토 해변 휴식(40유로)으로 변경되었다.

 

쏘오렌토 절벽에서 바라본 지중해는 바다 색깔이 정말로 아름다웠다. 고요와 평화가 넘치는 바다였다. 멀리 크루즈선이 떠 있고 얼마 되지도 않은 해변에는 벌거벗은 서양인들이 피부를 마구 태우고 있고. 아이고 이 몸은 햇빛이 따가워 가능하면 그늘로만 돌아 다니는데 저것들은 신나게 햇빛을 만끽하네요. 해변가 비치의자는 돈 내고 사는 것, 다 구역마다 임자가 있어 돈을 받더군요. 위에서 본 물과 막상 내려가보니 물에 쓰레기가 둥둥 떠 다니고 깨끗하지 못한 바다였다. 그래서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조금 텀벙 거리다가 여기서 시간 죽이는 것 보다는 시내 구경을 더해야겠다 싶어 구석 구석을 돌아보기로 했지요. 유람선 가는 곳을 지나 가파를 고갯길을 올라 절벽을 오르고 현지인들이 사는 주택가 골목도 다녀보고 이런 구경 저런 구경을 다 하고 나니 약속시간이 다 되어 기차역으로 갔다. 그런데 기차역에 공중화장실이 폐쇄. 할 수 없이 카페에 가서 맥주 한잔(2.5유로) 먹으며 화장실 해결. 이렇게 화장실 인심이 박한것은 중세의 흑사병과 관계가 있다나?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독일 고등학생들을 만났다. 아 이놈들 대여섯이 여행을 떠나온것이죠.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니 우리의 학생들이 참으로 불쌍타.... 해변에서 수영하는 고등학생하고도 이야기 해보고. 역시 우리 학생들이 불쌍. 예네들은 돈을 모아 유럽 어디든 마음만 먹으면 견문을 넓히는 여행을 하지 않는가? 우리는 어때? 섬에 갖혀 세상밖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로만 듣지요? 다니다 보니 단체 학생들도 많이 보이는데 팀당 많아야 30명 정도. 여행은 그렇게 하는게 좋지요. 우리처럼 때거지로 다니지 말고. 개혁해야 합니다. 수학여행문화를.

 

유럽아이들 참으로 부러웠습니다.

 

그 다음으로 세계 3대 미항으로 불리는 나폴리 항구로 갔지요. 들어가는 입구부터 쓰레기 날리고 자동차 홍수. 길은 울퉁불퉁. 가이드 말로는 나폴리는 부도난 콘도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그 명맥은 유지한다고.

 

아무리 봐도 아름답기는 부산항만 못한 것 같던데... 산타루치아 근처 로엔섬에서 사진 찰칵. 다들 길가에서만 사진 찍는데 이 몸은 성이 있는 곳까지 가서 주변을 둘러보았지.

 

노래 한곡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와 봐야 별 것 아닌데... 하여튼 결론은 사람이다. 사람을 키워야 한다. 틀에 박힌 사람보다는 자유로운 사람. 흔히 괴팍한 사람이라고도 하지요.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존중해 주는 그런 사회 분위기도 반드시 필요하고. 그러나 우리 사회는 어떤가요?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은 얼라~~ 폼페이 갈때보다 더 빨리 가네. 그러다보니 휴게소도 안들르고 곧장 가네. 휴게소에서 포도주 한 병 사서 밤에 마시려했더니만... 호텔 근처에는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인데... 에이 남은 술 먹고 자야지 방법 없네. 저녁 역시 어제 저녁에 먹던 그 집 "초원의 집" 육개장에 쇠고기 볶음. 상추쌈. 하루 중 제일 잘 먹는 끼니였다. 이태리 운전수한테 저녁 먹었냐 물었더니 자기네는 보통 9시 반에 먹는다나. 이태리 무비스타라고 불른 이 이태리 버스기사와는 안녕. 아주 잘 생기고 성실하고... 모두들 호감. 하여튼 잘 생기고 봐야됩니다. 뿅뿅~~

 

어느덧 여행도 막바지. 아이구 피곤해라. 칡즙에 양파즙을 매일 먹어가며 다니는데도 어쩔 수 없네. 동무들 양파즙 아주 좋습니다. 피로회복에 끝내줘요. 많이들 드시라요. 양파즙. 몸에 좋은 양파즙. 건강원 가면 한 5만원이면 한달치 살 수 있을걸?

 

 

여덟째 날(2010년 7월 28일) -로마 시내관광

 

포도주의 위력은 대단하다 밤새 푹 자게 만들었으니. 하긴 여행 3일만에 입술 부르트고 아이고~~ 밤마다 한잔씩 마시고 잤으니 피곤할수 밖에...

 

5시 30분 기상 6시 30분 아침식사 7시20분 출발.로마 외곽 변두리에 위치한 호텔이라 시내까지는 출근시간 감안 1시간 30분 정도라나? 그런데 예상보다는 빠르게 1시간 만에 도착하니 트레비 분수 영업시작 전. 분수 바닥에 있는 동전을 수거하는데 흡입기로 빨아들이더군요. 동전 자루가 한 열자루 나오데요. 공무원이 나와 확인하고 차에 싣고 가는데 그 돈은 좋은 일에 쓰인다고 하더군요. 믿거나 말거나. 분수가 시작되려면 9시까지 기다려야 되어 그 때까지 자유시간. 이 몸은 그 주변 골목 골목을 다 누벼보았지요. 로마시청과 독립기념관까지 여러 군데를 둘러 보았지요. 여전히 날씨는 쾌청. 햇빛은 따갑고 그늘에 들어가면 가을이고... 관광객들은 동전 던지기 준비하며 븐수의 영업 재개를 기다리고 로마인들은 출근 중이고 부지런한 관광객들과 식당의 주인들은 각자의 길을 묵묵히 열심히 하고...

 

9시가 되니 분수가 영업 시작. 영화 한 편(로마의 휴일)이 명소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을 모으고 다양한 이야기로 동전을 던지게 만들고, 그리하여 희망을 갖게하고...참으로 인간의 상상력은 무한대입니다. 다들 동전을 던지고 소망을 빌었지만 나는 안던졌다. 다시 로마에 안와도 상관없음.

 

오전 중에 로마시내 벤츠택시 투어로 60유로씩을 지불한터라 다음 코스로 가기위해 벤츠를 탔다. 워낙 길이 돌조각으로 만들어진 곳이라 승차감을 별로더군요. 흔한 택시 탄것이랑 다를 바 없음. 그러나 이태리 기사의 웃는 얼굴로 마담 하면서 문을 열어주고 하는 그 덕에 여자들은 잠시 공주가 되었으리라.

 

그 다음은 스페인 계단. 사실 그 계단은 프랑스에서 돈을 대서 만들었다는데 그 주변에 스페인 대사관이 있어 공짜로 스페인이 홍보되고 프랑스는 돈만대고 억울하겠죠? 프랑스. 이게 다 세상 살이 아니겠습니까? 이곳 역시 영화 한 편으로 아침부터 사람들로 북적북적. 다들 영화속의 한 장면처럼 기념사진 박고

 

다음은 판테온 신전 관람. 물론 무료입장. 돔의 지름이 46m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의 돔보다도 몇 미터 더 크다나? 자연채광으로 조명. 로마의 각종 신들이 모셔졌던 곳이 지금은 보살님들이 차지하고 있더군요? 판테온 주변의 집들은 마치 그림 속에 나오는 것처럼 색들이 바래진 곳도 있고 그렇고..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다음은 대전차 경기장으로. 영화 벤허의 무대였다나? 무슨 제방 같더니만 그 곳이 그런 곳이었다니. 지금은 일부 유적만 남아 있더군요. 아주 조금. 지금은 카레이서들이 세계 각국 도로에서 레이싱을 벌이지요 다양한 마차들로(오토바이, 승용차,화물차). 독일의 아우토반 한국의 고속도로. 등등

 

다음으로 진실의 입 관광. 다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기기라도 하는양 기념사진 박기 경쟁. 줄을 서서 기다려 행복한 미소 지으며 찰칵. 사실은 저게 하수도 뚜껑이었다나 뭐라나???? 영화속의 주인공 되보는 것도 좋으리라.

 

다음은 로마시청 건물 관람. 2800년전의 건물을 계속 살려 현재도 사용중. 대단합니다. 로마의 기원전 역사는 역사로 받아들이며 우리의 기원전 역사는 신화로 계속 남아있어야 하는 것인가? 남은 유물이 없어서? 중국의 사서에는 다 기록이 남아있는데? 그래도 안되는겨? 우리 자신들에게 자꾸 의문점을 던져 봅니다. 로마시청 뒷편이 고대 로마의 흔적이 남아있는 포로로마노 거리. 고대인들이 북적거리며 삶의 흔적을 남겼던곳. 개선장군과 그와함께 딸려오는 노예들의 비참한 모습, 제판을 하던 곳, 등등. 생생하게 흔적이 남아있네. 왜? 아직도 남아있을까? 그곳이 시궁창처럼 진흙으로 뒤덮여 있어서 그렇게 오늘날 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답니다.

 

콜로세움 관광. 으아~~사람들 무지하게 많네~~ 사진찍으라고 로마병정 복장을 한 친구들이 동양인과 3국인을 향해 액션배우 노릇을 열심히 하더군. 그 무더운 햇빛아래 투구와 복장을 하고서리... 바티칸 성당을 지으려고 콜로세움의 돌을 다 뜯어다 지었다지요. 세상에서 제일 큰 성당을. 교회의 권력과 파워는 대단했으리라. 하긴 지금도 세계를 움직이지요. 세계만여? 우리나라 보세요. 교회가 제일 많은 나라아닙니까? 불가사의여~~ 불가사의. 불가사리 사촌인가?

 

벤츠를 타고 바티칸 근처의 중식당으로 가는데 약간의 드라이브. 무슨 언덕을 꼬불꼬불 조금 올라가더니만 아랍계 대사관이 있는 곳에서 어느 대문 앞에서 내려 구멍을 통해 바라 보라는데 무언고 했더니만 바티칸 성당의 돔이 보이더군. 주변은 군인들이 총을 들고 지키고 섰고. 가이드 말로는 우연히 발견한 곳이라나? 우리가 들여다 보니 다른 사람들도 들여다 보더군 뭔가~~하고서리.

 

점심은 중국식으로 먹는데 예네들 목소리 톤이 높아 마치 싸우는 듯한 말소리에 어째그리 쌀쌀맞은지...기름에 뒤범벅된 둘둘 볶은 4가지 요리로 점심 해결. 여기도 한국인 단체 전문인가보다.

 

점심 후 걸어서 바티칸 박물관으로 출발.

 

으아~~ 엄청 뜨겁네 사람은 왜 그리도 많은지. 이 놈의 종교때문에 전쟁이 나고, 분쟁의 씨앗이 되고 종교의 권력화로 피해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은 생각이나 하는지...??? 교황이 뭐야 도대체? 아니 바티칸이 하나의 나라여? 뭇솔리니와 교황의 적절한 합작품인가? 어떻게 교황제가 현재에도 존재하는가? 영원히 인간 위에 군림하고 싶은 것인가 종교를 핑계로? 많은 조각품과 그림을 보니 그게 그것같고 하여튼 지금까지 실컷 본 것들이 거기에도 잔뜩 있었다. 박물관을 지나면 천지창조 천장벽화가 그려진 커다란 방에 들어가니 사람들이 전부다 고개 쳐들고 천장을 바라보다 1분도 못되 그냥 앉아서 휴식. 한 10분정도 앉았다가 나왔다. 서양사람들은 저렇게 천지가 탄생했다고 믿고 우리 동양은 음양 오행설로 믿고 서로 생각하고 믿는 바가 다르니 다름을 인정해야지.

 

로마에서의 마지막 관광코스를 마치고 저녁 먹으러 이동. 식당 근처에는 작은 공원비슷한 것들이 있는데 이곳 역시 소크라테스 사촌들(노숙자)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고 열심히 피워대고 있더군. 개나 소나 다 피우니까 담배를.

 

이 한식당에는 동남아 근로자 출신인데 수원 안양에서 일했다고 하더군요. 한국말도 정확히 잘하고 예의바르고 거기다 일도 잘 하고...한국 덕에 먹고 사네. 돈 많이 버셔요. 아저씨.

 

마지막 목적지인 런던을 향해 가려면 비행기 타고 가야한다. 로마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으로 갔더니만 모노레일도 타고 엘리베이터도 타고 복잡하게 출국장까지 도착. 공항에는 다국적 사람들이 참 많더군. 알이탈리아 비행기를 탔지요. 로마 가이드 말로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항공사라나? 아주 불친절의 대명사라고 하더군요. 한 두시간을 날아가는데 간단한 음료만 주더군요. 아니 15년전에는 밥도 주고 그러더니 지금은 국경이 없어졌다고 그러는가? 늙은 스튜어디스와 그래도 볼만한 남자 승무원의 음료 서비스를 받고 영국 히드로 공항에 도착. 출입국 절차가 간단하더군요. 영국은 미국의 2중대라 보안 문제를 철저히 한다고 하더니만. 그래도 쉽게 끝.

 

호텔은 히드로공항근처 프리미어 인 호텔. 비즈니스 호텔로 조종사 등 승무원 기타 사람들이 많이 묵는 간단하지만 객실은 많은 듯한 호텔. 아 글쎄 이 놈의 호텔이 ㅁ 자로 되어있고 방키 없이는 엘리베이터도 못타게 되었더군요. 한참을 헤매다가 방 찾아 들어갔지요. 호텔엔 12시가 다 되어 도착해서 모든 시설들이 12시 30분까지만 영업한다나? 간단히 씻고 로마에서 산 돼지고기 뒷다리 소금에 절여 숙성시킨 것(하몽)을 안주삼아 포도주 한 잔하고 잠자리에 쑥. 아이고 피곤해라. 어 이거 집에 돌아가면 하몽 맛 못 잊겠네? 입술 불어튼 것 안 없어지네. 내일은 런던 시내 관광 후 집으로 가는 일만 남았어요.

 

 

아홉째날(2010년 7월 29일-마지막 날) - 런던

 

아침에 일어나 밖을 산책하니 하늘은 흐리고 날은 매우 선선하고... 가을 날 같으네. 호텔 주변을 둘러보니 길 건너 주택가들이 보이고 차들이 씽씽 달리고... 집들은 아기자기하게 아름답게 꾸며놓고 사람답게 살더군. 아파트에서 사는 이 몸은 생각만 하는 그런 집들이 길 양옆으로 늘어서 있는 모습 다 단층 내지는 2층이 고작.

 

아침식사는 먹을게 참 많았다. 세계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자기식대로 아침을 먹는데, 하몽은 없네? 그 맛있는 하몽(돼지고기 뒷다리 염장하여 발효시킨 것). 생각만 해도 맛있는 것.

 

아침을 먹고 짐 싸들고 나와 버스를 타고 제일 먼저 출발한 곳은 국회의사당과 빅벤이 보이는 템즈강변. 런던 현지 가이드는 여성동무. 부부가 다 가이드 한다나? 말솜씨 좋고. 하긴 손님들의 취향을 보면서 말을 맞춰야 하니까. 귀신이 되어야지. 날씨가 으스스하여 긴팔, 긴바지를 입고 관광. 강물은 흙탕물이지만 뭐? 1급수에 가깝다나? 바닥이 진흙이라 그렇게 보인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영국의 수도를 흐르는 강물이 1급수라? 우리 한강은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도 2급수 이상은 안올라 가는데... 하긴 눈에보이는 곳에 치중하니 그럴 수 밖에. 하여튼 그렇다니까 부럽지요. 1급수.

 

강건너 바라다보는 건물은 운치가 있었다. 영국의 특징 중 하나는 건물외관은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내부는 아주 화려하다나? 이곳도 한국말로 그득, 마치 중국말처럼 들리던데 내 귀에는... 독일에서 온 고등학생 둘과 사진 찍어달라 이야기 하고 나도 찍어주고 그랬다. 아니 얘들이 여학생 둘이 여행을 떠나 온 것이다. 얼굴이 빨개지며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소녀들이었다. 우리 고등학생들은 찜통 더위에 죽어라 공부할 시간에 얘네들은 세상 구경을 하니 누가 더 인생을 풍요롭게 살것인고? 우리도 섬을 탈피하면 기차타고 만주벌판, 시베리아를 누비며 여행을 할텐데...그러면 애들이고 어른이고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져 겸손하고 인생을 멋지게 살기위해 사람답게 살기위해 살것인데...언제나 가능할꼬? 남북의 꼴통들이 있는한 불가능!!!

 

다음은 중학교 영어책에 나온 우리의 상식을 넘어선 편견을 깨뜨린 그 아름다운 다리 타워브릿지. 잘 보이는 곳에서 사진 한 방. 옛것만 울궈 먹고 사는게 아니라 앞으로도 먹고 살려고 새로운 관광거리를 만들었네. 뾰족한 모양의 유리빌딩. 엄지 손가락 모양의 건물. 이게 또 관광명소가 되리라. 상식을 뛰어넘는 건축(사진 참조). 이 건물들이 현대 건축계에 주목을 받는 유명한 건축물이랍니다. 인간의 상상력을 구체화시킨 건물.

 

다음은 여왕이 산다는 버킹검 궁 근위병 교대식관람. 사람들로 바글바글. 화면속에 보던 그모습 그대로지만. 우리도 덕수궁, 경복궁 수문장 교대식을 하지요. 다른 곳도 하면 어떨까? 꼭 군인만 해야하나 뭐? 상상력을 발휘하고 일자리도 늘리고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을텐데... 하여튼 이 궁앞에 모인 세계인들 인종 전시장.

 

다음은 웨스트민스터 사원, 이게 왕실 사원인가봅니다. 겉모습만 보고 사진 찰칵. 안에 들어가 봤으면 좋았을텐데... 이곳도 돈내서 안들어가나? 아니면 다음에 런던 구경 다시 오라고 그러나? 하여튼 아쉬움이 남네요. 이것들 사원(교회가 아닌 사당 개념)이 어떻게 구성되었나 궁금했지만 할 수 없지. 그 앞으로는 런던의 명물 빨간 2층버스 지나다니고 빨간 우체통, 빨간 전화박스 등 런던의 빨갱이 삼총사가 다 있네요. 경찰들도 왔다갔다 모델이 되어주고.

 

다음은 점심시간 이집트 출신같은 주인과 루마니아 출신 종업원이 정신없이 왔다갔다. 식당 구조는 매우 복잡. 이 곳도 한국인 단체 전문. 이곳 점심 또한 간소함. 기본적인 점심값이 우리돈으로 만원~만오천원 정도 되더군요. 우리가 봤을 때는 먹을 것은 없지만. 우중충한 날씨에 술 한 잔 딱 생각나는데 영국도 지금은 대중적인 펍(술집)이 사라지고 있답니다. 술값을 자꾸 올리니까 운영이 안된다나요. 집에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으라나 봅니다. 음주운전의 피해를 막기위해 술값을 고공행진 한답니다. 아 이거 영국 주당 친구들 살맛 안나게 생겼네. 날씨 드러운데 술집에 모여 한 잔 하면서 인생을 논하고 예술을 행하고 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런 권리마져 빼앗아가는 영국정부?

 

점심먹고 잠시 하이드 파크로 나들이. 프라타나스 우거진 공원에 아이들이 뛰어 놀고 군데 군데 공원이 많은 도시. 길 건너 로얄 오페라하우스가 보이고. 관중석이 2100석 정도. 이곳은 방학 중에 매일 값싼 음악회가 열린다나? 왜 부유층만의 음악이 아닌 학생,서민들도 향유하라고. 이런 사회적 약자 배려가 정말 필요한 것이 우리 나라 아니요? 물론 우리나라도 했었지. 한 십년되었나? 서울 시향이 토요일에 세종문화회관 소강당 같은데서 입장료 천원받고 고급 음악을 들려주던 행사. 나도 몇 번 가서 행복한 시간을 가졌었지만. 진정한 민주국가와 사이비 민주국가의 차이가 이런 것에서도 나타나는군. 에라이 썩을 거시기야~~~@@!!!말로만 서민 서민.

 

다음은 마지막 코스로 대영박물관. 세계의 문화재를 무료로 전시해 놓는 곳. 아 이놈들 참 많이도 훔쳐왔지요?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이집트의 미이라 등등...15년 전에는 한국관이 탱화 몇 점에 불상 몇개 이렇게 계단 옆에다 전시했었는데 이버에 보니 냉난방 습도조절시설을 갖춘 독방을 만들었더군. 아무도 문화재에 대한 가치를 몰랐을 때 이들은 그 가치를 알고 무슨 수단이든 해서 긁어 모았고 그걸 무료로 전 세계 인민들에게 공개하는 그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동서양 고금을 통틀어 영생하고픈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으니 미이라를 통해 스핑크스를 통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 다 부질없는 욕심이니라. 영생불멸하려던 그 노력들이 지금은 박물관에 같혀 한낮 관광물로 남았으니... 동무들 이 세상을 뜰 때는 미련없이 흔적없이 가는 게 어떠리오? 아, 이세상 재미있게 살다가 갔으면 되었지 또 뭔 미련이 남겠소이까? 인생 일장춘몽이로다. 사는 동안 남에게 피해주지말고 도움주는 삶, 매일 매일이 소풍인 삶이 정말 행복한 삶이 아니겠소? 거저 이루어 지는 건 아니지만. 그러니 열심히 일하고 즐기고 놀고.

 

관광을 끝내고 공항으로. 길게만 느껴졌던 이번 유럽 여행이 이제는 다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만 남았네. 공항에 들어서니 사람들로 바글바글. 한국행 비행기는 당일 왔다가 당일 떠나는 것이더군요. 면세점에는 다양한 술이 유혹을 하더군. 생각같아선 다 한잔씩 맛보고 싶지만 참을 수 밖에. 승객은 거의가 한국인. 가끔 외국인들이 보이는데 이들은 다 환승객. 서울을 거쳐 다른 도시로 가는 사람들. 오늘도 만석. 나의 자리는 거의 뒷꽁무니. 한 시간 정도 지나니까 음료수도 주고 밥도 주고 술도 주고. 올때와 마찬가지로 신선이네 구름위에 떠서 시중 받으며 한 잔하는 이 몸 어찌 기쁘지 않으리오. 밥머고 한 숨 자기 위해 포도주와 맥주(호주산, 미국산- 둘다 다 맛없음) 마셨지. 덕분에 그 힘을 빌어 잠시 잠을 잤지요. 또 밥먹고 그러다가 서해바다를 가로질러 한국에 들어옴. 아니 그런데 공항내에 매쾌한 냄새는 뭣이당가?

 

이렇게 유람은 끝났습니다.

 

결론은 사람입니다. 그것도 제대로 된 인간. 다양한 생각을 지닌 인간을, 또한 그것을 다 함께 수용하고 즐길 줄 아는 인간. 늘 새로운 생각 엉뚱한 생각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듭니다. 집장만하고 넓은 집으로 옮기고 돈을 저축하고 이런 것 다 의미있지만 나는 어디에?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불편하면 불편한대로 나름의 행복과 기쁨이 다 있는 것이니 모두 다 행복하다 생각하시고 즐겁게 사십시오. 제 정신 갖고 살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남은 기간 즐겁고 행복하게 복을 만들면서 삽시다. 고로 술도 마시고 춤도 추고 즉, 음주가무에 능통하시며 즐기시고 패가망신의 지름길 노름,오입질 이런거 하지 맙시다.입만 열면 진실만 말하시고 행동하면 착한 일만 하세요. 그래도 모자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