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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2012년 1월8일~16일 그리스, 터키 유람기

by 베짱이 정신 2013. 1. 28.

 

2012년 1월8일~16일 그리스, 터키 유람기

 

첫날(1월8일 일요일)

 

공항의 집합장소는 1월7일 22시. 공항행 버스를 타고 출발 늦은 시각이라 버스는 텅 비었다. 우리 네식구는 공항 출국장 입구에 내려 모임장소가 있는 곳 까지는 끝이라서 한참을 구경하면서 갔다. 늦은 밤인데도 사람들이 제법 많이 있었다.

 

모임장소에 가니 우리 일행이 전부 관광객 18명, 인솔 가이드 1명. 합해서 19명이다. 그리고 모두 가족 단위로 왔는데 한 남자만이 혼자 왔다. 수속을 밟고 탑승 대기실로 가려니 지하 트램을 타고 간단다. 인천공항에 이런 시설이 있었는지 처음으로 봤다. 이 트램을 탄 것은 중국 베이징 셔우두 공항과 이태리 로마 미켈란젤로공항에서 였다. 공항의 구조를 보니 2군데의 탑승시설이 있었다. 중국같은 경우는 거의 출국장 근처에서 타는데 장거리라서 그런가 아니면 그날 그날의 형편에 다라 그런건지는 모르겠다.

 

우리가 갈 아테네는 아랍에미레이트항공사(에티하드) 비행기로 A-330형으로 약 330명을 태울 수 있는 비행기로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 다니는 비행기 정도이다. 이 비행기로 11시간 정도를 날아간다.

 

한 밤중에 타는 비행기라 몸이 무거워진다. 121번 탑승구를 지나 비행기에 오르니 독특한 승무원 복장의 안내원들이 반긴다. 마치 아라비아의 공주처럼 생긴 아가씨들이...

 

12시 45분 출발. 창가에 앉아 이륙시 주변을 잠깐 보다가 암흑의 세상으로 돌입. 기내식으로 간단한 스낵, 컵라면 등이 나왔다. 컵라면에 맥주(호주산) 1캔, 화이트 와인 1잔을 마시고 잠을 청했다. 서너 시간이 지났을까? 집사람이 갑자기 비행기 멀미를 하는 것이다. 모두들 잠 든 시각에 영어도 각자의 영어를 하고 당황하니까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겼다. 바닥에 담요를 깔고 눕혔다. 맛사지를 하면서 잠시 휴식을 취하니 정상으로 돌아왔다. 내가 자리를 비켜주고 다리를 쭉 뻗고 쉴 수 있게 했다. 대신에 비행기가 만석이라 난 승무원 자리에 앉아서 선잠을 자면서 갔다. 앉아서 자는 잠은 정말로 고통스럽다. 다리가 아프고... 그냥 눕고 싶다.

 

아부다비 도착 전 아침식사를 주는데 삼계탕을 집사람에게 먹이고 나는 인천공항에서 짐을 부칠 때 Sea Food를 주겠다고 하여 그걸 달라고 했다. 음식이 매우 짰다. 1시간 정도 지나니까 아부다비 공항에 도착. 그리 덥지도, 춥지도 않았다.

                                      <아부다비 공항의 환승 대기실> 

비행기에서 내리는데 계단을 발고 땅으로 내려 셔틀버스를 타고 환승 대기소로 갔는데 둥근 모스크처럼 생겼다. 사방에서 들어오고 나갈 수 있게 마치 우주선모양이었다. 둥근 대기실에는 각국의 사람들이 버글버글 많았다. 화장실에 가서 고양이 세수와 이를 닦고 9시 30분 발 아테네행 비행기를기다렸다. 이곳 아랍에미레이트는 우리와 시차가 5시간. 공항의 물가는 엄청 비싸다고 인솔가이드가말했다. 둘러보니 아라비아 냄새가 물씬 풍기는 가게와 면세점들이 있었지만 살게 없으니 그냥 구경만 할뿐.

 

아테네행 비행기는 21번 탑승구. 역순으로 보안검사(거의 형식적)를 받고 셔틀버스를 타고 계류장으로 가서 올라타면서 비행기와 함께 사진을 찍으니 버스기사가 찍지말란다. 그런다고 안찍냐? 내 맘대로 마구 찍으면서 알았다고 했지. 이륙시 창밖을 보니 새벽에 내릴 때와는 달리 공항 근처에는 모래가 지천이고 도시가 잘 정리된 계획도시이고 길이 엄청 넓게 닦여져 있지만 차는 별로 안다녔다. 이 나라는 작은 나라라 기차가 없나보다. 기차길을 설치하면 여러 가지로 관광자원이 되어 좋을텐데... 라는 생각을 혼자 해보았다.

 

비행기를 타니 어김없이 기내식제공. 어류와 닭고기 중 나는 어류를 먹으며 맥주와 와인 한잔도 곁들였다. 4시간을 날아가는 도중에 잠을 청하려고. 그러나 잠은 그리 쉽게 오질 않고 비몽사몽으로 보냈다.

 

아테네 공항에 도착 셔틀버스를 타고 입국장에 들어서 비자 확인을 하려니 내 앞의 인도인인가? 파키스탄인인가가 문제가 생겨 나가지 않는 것이었다. 고집스럽게 지키고 섰다가 다른 줄로 옮겼더니만 이곳도 그 모양이네. 한참을 기다려 입국도장을 받고 나갔다.

 

현지 가이드 김미진의 말에 의하면 아테네는 비가 많이 왔다나? 그래서 장화신고 왔다고 했다. 그리스 소개를 하는데 한반도의 1.5배 정도에 인구는 1100만정도, 국민소득 28000달러, 굴뚝산업이 없는 나라, 인생을 즐기기 위해 사는 민족으로 낙천적이고 대화 하기를 좋아하여 자기 주장을 관철하는 나라, 대학까지 무상교육인 나라, 잘 사는 사람이 더 잘사는 구조가 되어있는 나라인데 367년간 터키의 지배를 받았던 나라로 서로 앙숙이란다.

 

 

첫 코스로 애기나섬 관광. 3000톤 넘는 패리로 1시간 30분쯤 간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부두에 들어가는데 아무런 제지도 없이 그냥 이웃집 들어가듯이 버스고 사람이고 들어간다. 우리 같으면 벌써 철조망에 검문에 검문을 하며 들어갈텐데... 대합실도 없고 표 파는 곳은 조그만 오두막 같은데서 팔고 그 근처에는 둥그런 빵을 팔고. 그 빵이 이 나라 사람들이 즐겨 먹는 식사용이란다. 부두의 바닷물 또한 맑았다. 애기나 섬에 도착하기 전 들은 이야기로 그리스에서는 결혼할 때 여자가 모든 것을 다 준비해서 간단다. 남자는 단지 몸만 가면된다나?...그 이유는 과거 2-3년마다 전쟁이 있기에 시집을 보내기 위해서였다나? 물론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래도 그 풍습은 아직 남아있다고 한다. 애기나 섬은 울릉도만한 섬으로 인구가 5천명 정도 산다고, 반면에 관광객은 수두룩 뻑뻑.

 

아니 세상에 이럴 수가?? 배 안에서 교대 7반 최철영을 만난 것이다. 이런 우연이...한국도 아닌 그리스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며 사진 한방 찰칵. 대전 교육청에서 선생들 인솔해서 왔네그려. 장학사 한다나? 다들 나름대로 잘 사는구먼.

 

섬에 도착 후 자유여행. 선창가를 중심으로 길게 뻗은게 전부지만,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비며 보았다. 집은 작아도 아담하고 깨끗하게 가꾸며 살고있었다. 집마다 과일나무에 오렌지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아름답게 색칠한 집들이 바다와 석양과 어울려 아름답고 멋있었다. 아담한 그리스정교회성당도 있고 그 안에 약간 모자란듯한 사람이 들락거리고, 오토바이 타고 다니는 청춘들도 있고, 섬의 반대쪽으로 가는 차들이 오고 가고, 관광마차 돌아다니고...한편의 평화스러운 그림이었다. 골목 가게에 들어가 견과류와 치즈, 맥주를 샀다.

 

어느 게 그리스 맥주인지는 몰랐지만 미토스, 암스텔 두 상표의 것을 각1병씩 샀다. 점원아가씨와 영어로 이야기 나누고(????) 아무런 불편없이 대화하고 궁금한 것 물어보고, 앗싸~~나는 외국에 살아야 되나봐, 체질인가봐!!!???? 골목길을 다니며 이곳 저곳 구경을 하면서 우리나라도 재개발 하면서 골목길을 없앨것이 아니라 주택과 골목을 살려가며 해야한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꼈다. 몇 년전에 부산 용두산 공원에서 바라 본 부산의 스카이 라인을 봤을 때 다양한 높이의 집과 지붕 색이 매우 아름다웠음을 다시 생각나게 했다. 해변가를 거닐다가 미토스맥주를 마셨는데 맛이 아주 훌륭했다. 우리나라 맥주는 이거 아무것도 아니다. 해지는 애기나 섬의 풍경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6시 15분 배를 타기 위해 선창가에 모이는데 나는 선창가에서 귤을 3킬로 샀다. 3유로. 귤의 맛은 마치 한라봉을 먹는 것처럼 맛있었다. 커다란 봉지로 한 봉지였다.

 

선창가 옆에는 조그만 교회당이 있는데 이게 개인 예배당이란다. 개인이 돈을 벌면 제일 먼저 하는거란다. 어휴~~ 종교가 뭐길레... 사람이 우선이지, 사람이 신을 만들고 그 신에 얽메여 사는 걸보면 참으로 답답하다. 하지만 이게 이 나라 사람들의 생각이니 어쩔 것인가? 그리스 정교가 아니면 사회활동이 불가능한 나라. 아이들이 난장판을 쳐도 그냥 보고만 있는 나라(방임). 인생을 즐기기 위해 사는 나라로 우리네 인생과 비교를 해보니, 나는 어떻게 살아왔나? 반성이 되었다. 나야 물론 베짱이처럼 놀고 먹는게 꿈이니까, 또 놀고 먹으며 살고있으니 그리스인들과 뭐 다를까? 다른게 있지 나는 신에 종속되어 살지 않지. 내가 바로 신인걸? 내가 우주인걸?

 

아테네로 돌아온 후 호텔에서 저녁을 먹는다나? 시내를 벗어나 바닷가 쪽으로 가더니만 해변가 어두컴컴한 곳에 내려 놓는다. 주변에는 가게도 아무것도 없다. 호텔도 불을 다 꺼놓고 있다가 우리가 들어가니 그때서야 불을 키네? 엘리베이터도 두 사람이 들어 가면 딱이고, 손으로 문을 열어야하고, 덜커덩 거리고... 우리같으면 벌써 난리가 났을텐데 아무 탈없이 지내나 봅니다. 음식은 대체로 다 짜다. 저녁을 먹으며 마케도니아산 와인을 조그만 유리병(8잔 나옴)에 담아 8유로 받는데 색은 아주 훌륭했다. 맛은 그저 그랬고. 호텔방에 들어가니 방은 좁고 작았다. 이곳이 특급호텔이라나? 우리나라의 모텔정도 밖에 안되는 것 같던데.... 호텔은 역시 중국이야. 중국이 최고야. 난방을 틀고 잠을 자려는데 어찌 그리 난방기 소리가 큰지, 하여튼 피곤하니 잠을 잘 수 밖에.

 

 

둘째날(2012년 1월9일 월요일)

 

난방기의 요란한 소리도 자장가 삼아 잠을 자고나니 새벽 5시 다시 눈을 감고 누워있다가 호텔주변을 산책하고 7시30분 아침식사를 하러 갔더니만 일행들이 벌써 와서 식사중. 준비된 음식은 어제와 대동소이. 계란찜, 계란후라이, 소세지, 치즈 등을 먹고 과일도 맛있어서 많이 먹었다. 먹어야 힘내서 관광을 하지. 식사 후 호텔 건너편 바닷가로 갔다. 트램(궤도전차)이 지나다니는 곳이어서 조심해서 건너 바다로 가니, 철지난 바다라 쓰레기 천지. 쓸쓸함이 마구 밀려오는 듯 했다. 같이 온 일행 중 신혼인 부부는 연신 나 잡아봐라 하면서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니 즐거웠다.

 

오늘의 관광코스로 수니온곶. 바다의 신 포세이든 신전이 있는 곳이다. 그리스는 완전히 귀신의 나라인가? 왠놈의 신이 그리 많아???? 하지만 가는 길 내내 아름다웠다. 이곳 사람들은 요트가 1~2척은 있다고 하네? 그게 사실인지 거짓이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요트는 구석 구석 많았다. 작은 요트 한척이 1~2억 정도 한다나? 정박료 내야지(월40만원정도?) 뭐 해야지... 돈이 참 많이 들겠다. 그래도 즐기기 위해 사는 사람들이니 이 정도 투자해야지. 오가며 길가의 작은 석등같은 것이 보였는데 이게 그 자리에서 죽은 사람을 위한 교회같은 것이라나? 갑자기 사고로 죽었으니 회개를 못해 천국에 못가니 3년동안 불 밝혀 놓으면 회개가 되어 천국에서 영생 할 수 있다고 이 사람들은 믿는다고 한다. 우리의 미신과 같지??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인간이 신을 만들고 그 신에 예속되어 살아가는 모습이 서글퍼진다. 물론 나는 안그러지, 내가 신인걸?

 

수니온 곶에 가는 도중 영화 페드라에 나오는 휴양마을을 지났다. 이곳이 엄청 비싸다나? 외국의 유명 배우들의 별장이 있는 곳이란다. 그래서 가끔 그들이 이곳에 와서 소박하게 휴가를 즐긴다나?? 이곳 사람들은 산꼭대기에 집을 짓고 사는게 더 좋다고 한다. 신과 더 가까워서라나? 포세이든 신전을 멀리서 조망만 하고 유럽의 최남단이라고 콩크리트 비석을 세워놓은 곳을 지나 낭떠러지 있는 곳까지 가봤다. 유럽 최남단이라면서 콘크리트 기둥 하나 덜렁??? 우리 같았으면 거창한 비석이라도 세웠을텐데, 이상했다. 바람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나무들은 키가 작고 용설란은 자연스레 여기 저기 자리잡고 있고 그 꽃대는 마치 하나의 나무처럼 서있었다. 처음보는 광경이었다. 산과 지중해의그 푸른 바다를 보니 그냥 풍덩 빠지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났다. 이것도 병인가? 바다에 빠지고 싶은 마음이?....

 

바다는 참으로 아름다운 색으로 유혹하고 태양은 강렬하게 비추었다. 시내로 돌아오는 길 양옆으로 집들이 다 높지 않았다. 땅을 파면 유물이 나오기에 함부로 증개축을 못한단다. 그러다보니 도시가 아기자기 하고 아름다울 수 밖에. 길가의 가로수는 오렌지나무로 탐스런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다. 그런데 아무도 따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냥 관상수로 본다나? 영동의 감나무 가로수 처럼...

 

 점심은 조금 일렀다. 한국식당에 가서 쇠고기 볶음, 오징어 볶음 상추쌈. 그 중 상추쌈이 최고였다. 한국 소주도 팔아주고 포도주도 팔아주어야 하는데 모두들 여행 초기라 조심조심하네. 식당은 귀빈식당인데 이 사장님이 그리스 교민회장이 되었단다. 식당에 울려퍼지는 노래는 7080노래들. 자식들 출가시키려니 직함이 필요했나보다. 식당 사장보다는 교민회장이 더 근사하잖은가? 한국식당이지만 중국스타일이 더 많았다. 중국4대미인과 중국등이 걸려 있었다. 하긴 한중일 관광객을 상대해야 하니까.

 

식당이 파르테논 신전 근처에 있기에 잠깐 몇 분 가서 입구에 내려 올라갔다. 가는 도중에 문화유적지 경찰이 보이더군. 지 하고픈 것 다 하고 노는 것 처럼 보이데. 그리스인 가이드가 따라붙고, 개들이 상팔자가 되어 어슬렁 거리고... 먼저 아래오카고스 언덕을 올랐다. 멀리 아고라 광장도 보였고, 아고라 광장에 얽힌 이야기 들으며 민주주의는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다시 확인.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더 치열한 논쟁이 있어야 함. 이 피곤함을 이겨내야 참된 민주주의가 꽃 피우리라 생각되었다.

 

파르테논 신전을 향해 올라가는 중 지금도 공연을 하는 공연장(야니, 파바로티 등이 했던 곳)도 내려다 보고 소리도 질러 보고 신전을 향해 올랐다. 그리스 여가수 해리스 알렉시우가 부른 "기차는 8시에 떠나네"를 그리스어로 불러보고 싶었는데 아 글쎄 기회가 없네. 저 큰 공연장을 놔두고도. 고대 왕들이 돈을 모아 전쟁비용을 대고 궁전을 유지하기 위해 종교를 잘 팔아먹었다는 것을 또다시 확인. 우매한 백성들만 속아 넘어가고 또 넘어가고, 하긴 인생이 고달프니 헛것이라도 메달려야지. 그리스는 완전히 귀신의 나라. 구석 구석 신전이 산재해 있으니... 그 이유는 돈을 걷기 위해 이 신에게 빌면 이런 소원이 이루어지고 저 신에게 빌면 저 소원이 이루어지고....이게 부정부패의 원형이 아닐까? 여러 나라 사람들과 사진을 찍어주고 이야기 나누고 했다. 생존영어는 막힘이 전혀 없었다. 왜 이리 의사소통이 잘 되는겨? 체질인가?

 

그다음으로 무명용사의 탑 관광

그 곳에서는 V자를 그리면 안된다나? 장대같이 큰 그리스군인이 서서 모델이 되어주고 그리스인들이 처음으로 데모를 했던 곳이 바로 그 앞의 거리란다. 데모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인데 처음으로 했다나? 그 데모에서 사람이 한 명 죽었는데 그 이유는 사람들이 데모하는 모습을 난생 처음 보고 놀라 심장마비로 죽었다나??? 참 신기할 뿐이다. 아테네 올림픽을 위해 전기버스를 도입했다고 한다. 걸어서 대통령궁도 지나고 근대올림픽을 했던 경기장도 가보고, 가는 도중 길가에 떨어진 가로수의 오렌지를 주워서 까서 맛을 보았지. 이곳 사람들은 안 먹는다고 하더군.

 

오렌지는 엄청 시며 예전에 제주도에도 이런 것들이 있었다. 씨가 반은 되고, 하지만 향기는 아주 훌륭 나름대로 괜찮았다. 나는 원래 신 것을 잘 먹으니까. 그 다음으로 쇼핑센터. 중국같이 아주 커다란 것이 아니라 작다. 그 곳의 물건 값이 비쌌다. 그 곳 주인장 아들이 마치 영화배우 존트라볼타 닮았다. 난 살게 없다. 재래시장이 좋아. 우리 딸들은 이것 저것 작은 소품을 구입. 저녁은 현지식당에서 수불라끼. 전체요리로 빵, 스파케티가 나오고 메인으로 돼지고기를 올리브 나무에 구운 것이 나오고 후식으로 염소요구르트가 나왔다. 아주 음식이 맛있었다. 아니 이 사람들이 이렇게 좋은 음식을 매일 먹고 산단 말여??

 

아쉽지만 그리스의 일정은 안녕. 애기나 섬으로 갈 때 갔던 피레우수 항구로 가서 히오스 섬으로 가는 배를 탄다. 배는 중국 가는 배처럼 아주 컸다. 4인 1실. 배 안에서 최철영을 또 만났다. 터키로 가는 길은 같았다. 배 안을 둘러보니 앉아서 가는 사람. 바닥에 누워서 가는 사람 다양했다. 새벽 3시에 기상 세수하고 하선 준비하란다. 하여튼 잠을 자야한다.

 

셋째날(2012년 1월 10일 화요일)

 

여객선 NEL LINE에서 자는 잠은 선잠. 새벽 3시 30분까지 짐을 다 꾸려서 안내데스크 앞으로 모이란다. 그래서 일찍 기상하여 갑판에 나가 상쾌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몸을 움직여 보고 선내 구경도 했다.

 

밤새 이야기 하는 사람, 누워 자는 사람, 앉아서 조는 사람 등등 다양한 모습이었다. 얼마나 피곤할까? 4시 30분 넘어서 하선하는데 이곳 그리스 사람들 새치기도 잘 한다. 줄과는 상관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더라. 버스를 타고 바닷가 Kim's Chiness Restaurant에 도착하니 한 5시 정도, 아침식사까지는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앉아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나누었다. oo대 OOO 교수와 애기나 섬에서 사온 귤과 아테네에서 주워 온 오렌지를 까서 맛을 보고 나누어 먹었다. OO교육청에서 온 친구들을 보니 벌써 포카를 하면서 시간을 죽이더군. 그래도 고스톱이 아니니... 식당 주인이 인심써서(?) 6시 못되어 아침식사를 하는데 아주 간단한 식사. 쥬스. 빵, 치즈 등등 이걸 먹고 나서 그리스 맥주 중 제일 좋은 게 미토스 맥주라고 하길레 어제 먹어봤지만 다른 일행들은 맛도 못 본 사람들이 있어 2병을 사서 돌렸다. 8유로에. 청주에서 온 두 팀을 제외한 나머지 팀들과 한잔씩 했다. 그리스 맥주 맛도 못보고 갈 뻔했다고 하더군. 그런데 대전서 온 팀들은 컵라면에 김치에 고추장에 뭘 잔뜩 꺼내서 먹었더군. 아니 이런데 와서는 이 곳 사람들처럼 먹는 것도 좋은데... 아쉽더군 세계화를 하려면 입맛도 세계화해야 되는 것 아녀?? 모든 게 다 마음먹기 달린 것을 모르나? 치즈를 먹으면서 아 참 이 치즈 김치같이 맛있다 하면 정말 맛있는 김치가 되는 것을...

 

7시30분 쯤 터키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항구로 출발. 그런데 비바람이 몰아치고 파도가 방파제를 넘어오고... 배가 뜰라나? 걱정했더니만 이건 아무것도 아니란다. 50분 정도 배 타면 터키 체스메 항구. 그리스 히오스 섬에서 출국도장을 받고 승선. 배의 구석 구석 돌아보고 자리 잡고 앉았다. 100~150톤급 배는 흔들흔들 그렇지만 멀미할 정도는 아니었다. 멀어지는 그리스 땅을 보니 경치가 이거 또 장난이 아니네,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림속의 한 장면. 모두들 사진기로 찰칵찰칵.

 

체스메 항구에 도착하여 면세점을 경유하여 밖으로 나오니 현지가이드 최정숙, 터키인 가이드하고 나와 있었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나는 항상 뒷문 열면 바로인 좌석에 앉아서 편하게 다닌다. 에페소로 가는 도중에 산천은 돌, 작은 소나무, 올리브 나무 등이 있으며 이즈미르 라는 도시를 지나며 터키의 일반적 주택은 방3개 화장실 2개로 누구나 그렇게 산다고 한다. 이 도시 또한 아파트가 주종을 이루더군. 그렇다고 고층은 아니고 거의 10층 이하더군. 시골로 가면서 귤밭, 올리브밭이 많았다. 제일 먼저 에페소 시내에 있는 신전 중 기둥 하나만 남아있는 곳을 보았다. 그 말이 그 말이라 이곳에 신전이 있었구나 정도로 여기고 나왔다. 하긴 터키나 그리스나 옛날엔 한 나라 아니었던가? 그러니 신전(귀신터)이 많을 수밖에..

 

점심은 그 근처에 있는 비빔밥집. 터키식인지 뭔지는 몰라도 맛은 있었다. 올리브유를 듬뿍 치고 이상한 고추장(색도 불분명하고)을 넣고 비벼서 맛있게 먹었다. 다른 팀들도 곧 올 모양이었다. 미리 준비해 놓은 걸보니. 점심을 먹고 나오니 구두닦이가 식당 앞에서 있더군. 우리와는 다른 준비물을 갖고. 나는 얼른 시내 쪽으로 나가서 가게를 찾았지. 그곳에 들어가서 유로화 되냐고 묻고 된다고 하여 터키맥주인 EFES를 두 캔 샀다. 그리고 식당으로 돌아오니 출발 준비. 다들 놀라는 눈치 언제 나가서 맥주를 사왔느냐는 듯이...

 

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쯤 지나서 에페스 유적지에 도착. 이곳은 고대도시의 유적이 참 많이 남아 있었다. 큰 도시였다나? 고대 로마를 보는 듯. 원형극장, 목욕탕, 도서관 등등 지금봐도 아주 훌륭한 건축물이었고 고대인들 또한 우리와 생각이 다르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길바닥 돌에 발모양과 여자가 않아서 돈받는 모습을 새긴 것이 유곽을 표시한다나, 아마도 세게 최초의 광고표시판이 아니냐고 말하더군. 나이키의 전신인 나이케 여신을 그린 상도 보고 모자이크 거리 즉, 명품거리도 보고 소나무 숲길로 걸어나오는데 터키 여학생들이 공부나왔는지 곤니찌와 하는 것이었다. 오늘 이곳의 여행객은 거의 한국인인데...일본만 아는 모양이다.

 

나오면서 석류쥬스를 2유로에 금방짜서 마셨다. 색깔이 정말 죽여줬다. 버스로 가는 도중 잡상인이 와서 물건을 파는데 그림상으로 건과일인줄 알고 살려고 했더니만 처음에 1상자에 4유로라고 하더니만 조금 더 가서는 3개에 10유로라고 하고 그냥 탈려니까 2개에 5유로란다. 그냥 잔돈 4.92유로를 주고 샀다. 버스에 돌아와 개봉해서 먹어보니 젤리였다. 으아~~ 바가지썼네~~. 그런데 이 터키인들의 화술이 재미있다.이렇게 말한다나? “나의 영혼 oo”, “나의 전부 OO" 이런식으로 말을 하는데 잡상인에게서도 I love korea, My Friend. 이런 말을 들었다. 이런 인사말 화술은 배울만 하지 않을까? 교실에서 써먹어야지. ‘오! 내 사랑하는 천재들, 나의 영혼, 나의 전부인 친구들아 잘 있었니?’ 이렇게 말하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조금 지나서 가죽제품 판매장을 갔다. 차이 한잔을 주는데 무척 달고 상큼했다. 남녀 모델들이 아주 멋졌다. 또한 값은 비쌌다. 구경만하고 나왔다. 화장실을 들렀는데 그 표시가 재미있었다. 남자는 파이프, 여자는 하이힐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제는 파묵깔레로 가는 일만 남았다. 파묵은 목화란 뜻이고 깔레는 성이라는 뜻 즉 목화의 성이란다. 가는 도중에 눈이 내린다. 시골길이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모습과 풍경이 우리의 시골과 유사. 파묵깔레 가까이 오면서 농토나 개천 근처에서 김이 솟아 오르는 게 보였다. 온천물이 나온다나? 나는 불난 줄 알았지. 호텔에 도착 방에 짐을 풀고 6시 30분에 호텔식 저녁식사. 식사를 하기전에 배란다 문을 닫으려하니 아무리 닫아도 안 닫기는 것이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그 사람도 당황. 일행 모두 다 이 문제로 고민 중이었다. 나중에 그 해결책이 나왔다. 문 손잡이를 위로 재끼면서 아래로 다으면 닫힌다나. 그렇게 해보니 정말로 닫혔다. 하여튼 모르면 무조건 물어보는게 최고.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저녁. 식사는 아주 훌륭했다. 각종 유제품과 다양한 과일과 채소, 모두 다 맛있었다. 올리브 짱아찌도 종류별로 먹어보고 안 먹어본 것을 위주로 먹었다. 식사 후 호텔 근처를 둘러보려다 포기. 웨이터에게 물어보니 근처에 아무것도 없단다. 시내를 나가려면 1Km나가야 한단다. 그것도 한 밤중에. 에이 그냥 말자하고 수영장이 있다길레 가보았더니 우리 큰 목욕탕의 냉탕정도 수준. 물도 온천수라지만 차가웠다. 저녁을 먹고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우나 아저씨가 오라고 호객을 하는 것이었다. 아니 배 잔뜩 부른데 어떻게 목욕을 하나? 그래서 포기하고 방으로 들어갔다가 잠시 누워 있는다는 게 한 잠을 잤나보다. 그것 참 정말로 피곤했었나보다. 깨어나 세면하고 다시 수면에 들었다. 내일을 위하여.

 

넷째날 2012년 1월11일(수요일-밤새 눈내림)

 

밤새 눈이 엄청 내렸다. 5시전에 일어나 뒹굴뒹굴하다가 욕조에 물 받아 놓고 몸을 푹 담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 한 5분 지났나? 온 몸에 땀이 흠뻑 쏟아지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대신에 물은 엄청 좋았다. 미끈 미끈한게 손만 대면 때가 술술??? 땀이 너무도 많이 나오고 온 힘이 쭉 빠져서 잠시 누워서 진정했다. 6시 15분 아침식사시간. 식당에는 벌써 사람들이 가득. 물론 한국인들이지요. 어제 저녁의 진수성찬은 아니고 유럽의 이태리나 영국보다는 훌륭했다. 안 먹어본 것을 중심으로 약간의 포만감을 누리도록 갖다 먹었다. 매일 올리브장아찌는 필수로 먹었다. 특히 토마토를 올리브유에 구워 위에다 고춧가루 살짝 뿌린 것도 좋았다. 우리는 집에서 토마토를 익혀 먹지만, 다양한 요리가 있어 좋았다.

 

7시 15분 파묵깔레(목화의 성)로 출발. 눈이 엄청 쌓였는데도 대형버스는 잘도 달린다. 입구에 내려 눈을 맞으며 들어가는데 인도네시아 관광객들의 행복한 얼굴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눈을 보며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는 젊은 청춘들의 모습,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이곳은 석회석 노천온천으로 고대에 아주 큰 도시를 이루었던 곳이 지진 등으로 인해 폐허가 되어 유적만 남았지만 그래도 신전터, 주거터, 원형극장 등의 흔적이 그 규모를 말해주며 역사적으로 영향을 많이 끼친 인물들이(클레오파트라 등) 다녀갔다나? 눈이 엄청나게 와서 아름다운 장면을 다 덮어 버려 무척이나 아쉬웠다. 사진으로 보고 화면으로만 봤던 곳인데 그 장관을 못 보다니... 그 아쉬움을 이 곳 저 곳 다니면서 눈에 담았다. 하지만 하얀 곳이 하얀 눈으로 덮여있으니 모두가 하얀 세상.

 

다음으로 또 쇼핑센터(MoDal)로 출발. 아웃렛 매장이라면서 현지인들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이 것 저 것 구경하면서 석류 쥬스를 그 자리에서 짜서 샀다. 3달러에 한 잔. 석류 쥬스는 참 맛이 좋았다. 우리 딸들은 자그마한 기념품을 몇 개 샀다.

 

이제부터는 장시간에 걸쳐 안탈랴로 출발. 산맥을 넘어가야한단다. 눈이 많이 와서 체인을 감지 않으면 못 간다고 경찰들이 제지. 다시 체인을 채운 후 출발. 산을 넘으며 보이는 광경, 그런대도 구석구석 안 사는 곳이 없다. 우리와 다른 점이 없다. 사는 게 다 그런거지 뭐~~

 

점심은 가는 도중 휴게소에서 뷔페로 했는데 이곳 음식 역시 훌륭했다. 물론 짜다. 이번 여행에서 1년 동안 먹을 고기를 한꺼번에 다 먹는 기분이다. 양고기도 맛있고 가지도 맛있고, 하여튼 다 맛있다.

 

 

2시간을 달려 안탈랴 해변 광장에 도착. 이곳 남자들의 공통된 모습은 검은 옷에 빵모자를 눌러쓰고 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 걷는다. 여인들은 히잡을 두르고. 유럽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그런 모습들이었다. 터키인의 영웅 안타투르크(무스타파 캐말파샤)의 동상이 서 있는 해변가에서 관광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건 왠 개들의 천국? 개팔자 상팔자라더니 개들이 유유자적 뒹굴고 노네, 쏘크라테스(?)는 어디서 왔냐?, 나는 한국을 사랑한다는 둥 말을 자꾸만 하고... 해변가로 내려가는 계단을 따라가니 자그마한 가게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아기자기한 물품들을 많이 파는게 아주 정겨웠다. 해변가에는 관광객용 통통배가 있었다. 옵션에 있었는데 그걸 안하나보다. 한다고 해도 난 안탄다. 배를 신나게 타고 왔는데 또 타? 이런 바자르(시장)를 걸어 다니는 게 훨씬 낫지. 구석 구석 아름다운 골목들이 잘 정비되어 아름답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만들었다. 이런 골목도 훌륭한 관광거리가 되니, 생각의 차이가 얼마나 중요한가. 우리식으로 다 밀어붙이고 새로 콘크리트로 삭 덮어버리는 식의 개발은 정말 거시기하다.

 

이곳 역시 집집마다 오랜지 나무가 있어 열매가 주렁주렁 어울리게 달려있는 평화스러운 곳이다. 성터가 있고, 옛 모스크(현재는 미술관)가 있고, 기도를 알리는 기둥같은 것을 미나레라고 한다나? 해변가에서 다시 올라오니 시내 중심 번화가. 궤도전차(트렘)가 지나가고 버스 탁시들이 줄지어 지나가는데 그 색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출발점 근처로 다시 돌아와 시계탑 앞에서 자유 시간. 나와 아내는 길 건너 시장으로 들어갔다. 모두들 남자 점원인데 한결같이 담배를 피워대는 모습이라. 뒷골목으로 들어가니 구두,가죽 수선코너가 줄지어 있고, 이곳 저곳 다니다 견과류 파는데서 아몬드 한 봉 2달러에 사서 먹으며 이 골목 저 골목을 다니다 기념품가게에 들어갔다. 아라비아 풍이 물씬 풍기는 앤틱 물병과 주전자를 흥정에 흥정을 하면서 사는데 이게 절대 안 깎아준다. "I love Korea. Oh, My Friend" 이러면서 너는 참 젊게 보인다 네 부인도 참 젊고 날씬하다는 등의 찬사를 늘어놓으며 60달러짜리를 안 깎아 준다는 것이다. 내가 제시한 금액은 50달러였다. 마지막에는 그 상인의 말대로 팔찌2개(지옥의 눈)를 포함해서 55달러에 샀다. 하여튼 장사수완이 참 좋다는 것을 느꼈다. 아내에게 마담하면서 매우 친절하게 하고 나 또한 주인장에게 기분 좋게 칭찬하면서 흥정하고 수다 떨며 터키인과 영어로 이야기 하며 현지 속으로 잠시 들어가 보았다. 집합장소에 가니 사람들이 터키의 맥주를 사서 들고 있었다. 터키는 Efes 이것 하나 뿐인가 보다. 나는 벌써 사서 맛보았지. 우리 맥주보다는 좋았다. 처음 맛보는 맛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런대로 좋았다.

 

숙소로 향하는 길에 보니 버스가 다 미니버스였다. 대형버스는 관광차 아니면 장거리 버스였다. 좁은 버스 속에 많은 사람들이 타고 가는 모습이 우리의 대형시내버스와 대비되었다.

 

호텔은 Vera Club Hotel Mare였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고 휴가철 콘도같은 것들로만 주변이 가득. 저녁식사를 할 때는 파란 표식을 주는데 손목에 차고 가서 보여주어야 한다나? 나는 안 차고 그냥 가지고 가서 보여주고 들어갔다. 이곳 식사 역시 아주 훌륭했다. 다양한 음식과 맛은 필수, 하여튼 유제품은 평생 먹을 것을 다 먹는 기분이다. 그만큼 다양하고 맛도 있고, 아주 짠 것도 있고. 마치 김치 담듯이 다양한 치즈가 어서 잡수세요하고 있었다. 생선은 우리 생선이 최고. 정어리 비슷한 생선인데 퍽퍽해서 영 그랬다. 바닷가 근처인데도 생선이 영 아니다. 에게해는 해초가 없어서 보기는 좋은데 생선이 안 잡힌다고 그리스 히오스 섬 식당 주인장이 말 한 것이 기억났다. 바에서는 멕시코 노래 “Historia De Un Amor(사랑의 역사)”가 달콤하게 흘러나오고, 저녁을 먹다가 일행 중 최고참 나보다 5살 더 먹은 양반이 포도주를 한 병 내는데 계산은 엉뚱한 사람이 했다. 어? 이 사람 이상하네...?? 우리 돈으로 2만원 정도. 맛은 별로고 색은 참 아름다웠다. 청주에서 온 두 팀만 빼고 부부들 중심으로 모여서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며 마셨다. 내일은 6시 기상,7시 식사,8시 출발. 카파도키아로

 

다섯째 날(1월12일-목요일) 안탈랴 - 가파도키아 가는 길

 

절해고도 Vera호텔에서 6시에 일어나 욕탕에 물받아 5분 잠수 후 나오니 상쾌, 땀이 흠뻑. 아침식사는 어제 저녁과는 달리 아주 소박 계란 삶은 것, 올리브 장아찌, 치즈류를 먹었다. 이곳 음식을 먹을 때는 홍차가 좋다. 연하게 타서 마시면 아주 훌륭. 나는 해외 여행 나갈 때마다 그 나라의 홍차를 즐겨 마신다. 터키의 홍차가 좋다는 데 이스탄불 바자르에서 집에 갈 때 사가지고 가야지.

 

오늘은 가파도키아로 가는 날 주구장창 달리는 일만 남았다.

토레스(타우르스산맥)을 가로질러 가는데 콘야 대평원을 지난다.

정말 끝도 없는 내륙의 한 가운데에 있는 대 평원이다. 그래도 군데 군데 마을이 있고 이곳에서 생산되는 농작물로만으로도 터키국민이 다 먹고 남는다나?? 얼마나 복 받은겨??먼저 들릴 데린쿠유(깊은 우물)를 가는 길에 산맥에 들어서니 소나무들이 듬성듬성 자라고 해발 3000m넘는 산도 있고 하얀 눈이 덮여있는 모습이 초록과 잘 어울렸다. 그런데 이 산속에 비닐 움막을 치고 사는 사람들이 보였는데 이들이 계절마다 이동하며 품 팔고 사는 계절 이동노동자들이란다. 11시 20분 쯤 휴게소에 들러 잠깐의 휴식을 취하며 물건을 구경하고 있는데 나는 마른 살구를 11달러에 1Kg을 샀다. 버스로 돌아와 1인당 2개씩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다. 나 또한 살구 흥정을 하면서 터키인들처럼 "I love Turky, My Friend" 등의 말을 하면서 즐겁게 덤도 얻고 했다. 1시간을 더 달려 콘야 공단내에 있는 휴게소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갈수록 음식의 질이 떨어지네??? 여기서도 안 먹어본 것을 중심으로 치즈류와 함께 먹었다. 우리 식구들은 다 잘 먹는다. 체질인가 보다.

 

점심을 먹고 출발. 가도 가도 끝없는 대 평원이다. 하지만 구석구석 사람의 손길이 다 닿아 있었다. 참으로 부러운 광경이었다. 우리도 남북이 통일되고 중국의 동북3성, 몽골과 연합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보았다. 말을 달리는 광경을 상상해보라, 얼마나 멋있는가.

 

1시간 반 정도를 달려 실크로드 대상무역상들이 쉬어가는 호텔 유적지에 도착, 이곳 화장실은 1달러에 3명이 입장가능하다나? 서유럽에서나 화장실에서 돈 받지, 휴게소에서 돈 받는 것은 좀???? 가이드 말로는 터키도 한국식 공중화장실 시스템을 도입하려 준비한다고 한다. 외국인에게 과잉 친절한 한국의 시스템도 쓸모가 있구나. 차에서 내려 그 숙소를 구경하는 문이 열려 있길레 들어가려니 3리라를 내란다. 터키돈이 없어 그냥 열려진 문 사이로 그 흔적들을 살짝 들여다보고 나와 사진을 찍었다. 옆 모습을 보려 다가가니 아이들이 한국인이냐고 묻더니 캔디, 쵸콜렛 아니면 1달러를 달라고 한다. 아니 이것들이 왜 이래? 의아하게 생각하며 돌아서서 나오며 아이들인데 왜 이렇게 늙어 보이는지... 쯧쯧...

 

2시간 30분을 더 달려 데린쿠유(깊은 우물) 지하마을에 도착해 내리니 바람이 무척 차가웠다. 종교가 뭐길레 지하에 땅을 파고 들어가 살았을까? 종교가 밥 먹여주나? 어차피 종교란 인간이 만든 것인데... 아니 달리 말해서 내가 신이고 내가 우주인데 그걸 몰랐을까? 삶이 하도 팍팍해서 그 삶을 한 방에 날려줄 뭔가가 필요해서일까? 36개 지하마을이 있었고 약 2만명의 사람들이 지하에 살고 있었단다. 그러다보니 구루병에 걸려 사람들이 고생했을 것이고 비밀스럽게 살아야하니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그런데 이곳에도 행정력이 미쳤다나? 지상위의 집 밑에 굴이 파져있고 그 흔적이 구석 구석에 널려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고 그 탐욕의 끝이 어디며, 인간의 능력은 어디까지일까, 지하 8층에 해당하는 곳에서 자신의 종교를 위해 숨어 지내는 고대인들, 지금과 견주어도 똑같지 않은가? 이 지하도시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종교란 사람이 있고 난 후에 있는 것이고,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절대 아님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았다.

 

지하에서 빠져나오니 잡상인들이 허름한 차림에 여러 관광품과 사과를 들고 팔고 있었다.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화를 내지 않고 가더군. 그들이 믿는 신의 말대로 “인샬라!!” 신의 뜻대로인가???

 

40분 달려 호텔에 도착. 방은 작으마했지만 나름대로 청결과 꾸며놓았다. 저녁은 2층에 있는 식당에서 해결. 이곳 또한 한국인 관광객들이 반. 역시나 유제품을 중심으로 식사. 맛은 참 좋다. 다 짜서 그렇지. 식사 후 밖에 나가서 터키 리라로 환전한 돈으로 터키맥주 2병과 카파도키아산 포도주 1병을 샀다. 이곳 상인 역시 장사를 잘 한다. 마구 마구 물건을 내 놓으며 좋다고 한다. 역시 담배를 입에 물고. 이 곳은 직업이 거의 대물림된다고 봐야 하나보다. 아버지와 아들이 장사를 하더군.

 

식사 후 옵션으로 되어있는 밸리댄스를 구경하러 차를 타고 20분 정도 달려 지하공연장에 들어갔다. 동굴을 만들어 운치있게 만들었다. 이곳 역시 한국인이 4/5. 포도주(적,백) 무한 리필, 터키 전통주 라키(라키에 물을 타면 우유빛이 나며 여러 한약재 냄새가 남- 마치 중국냄새)도 한 잔. 포도주는 다 맛보았지만 맛이 떨어졌다. 대신에 귤을 까먹으며 보았다. 이슬람 신자들이 신과 접신하는 방법 중 춤을 통해 하는 새마 춤을 보았다. 아휴 보기만 해도 빙글빙글 어지럽다. 다음으로 유목민들이 처녀 총각 결혼하는 듯한 모습을 흉내낸 춤, 뒷부분에서는 관광객들을 선택하여 자기들의 춤을 흉내내게 해보는 참여의 시간도 만들더군, 역시 한국인 여성들은 용감했다. 부끄럼없이 다 따라했다. 이 춤은 티브이에서 본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춤이 연상되었다. 하긴 돌궐의 후예이니까. 그 다음으로 밸리댄스, 여자 무희 한명이 나와 풍만한 몸(가슴과 엉덩이)을 흔들며 춤을 추고 난 후 역시 남녀 여러 명을 선택하여 따라 해보게 하였다. 한명만 외국인이고 나머지는 한국인으로 시범과 흉내 내는 것을 반복. 웃음을 주는 시간이었다. 그리고는 잠시 휴식시간. 그런데 한국인들이 모두다 우루루 다 나가는 것이었다. 전에 한 번 봤나? 아니면 뭔가? 그래도 우리 팀은 끝까지 앉아서 구경을 했다. 이 광경을 보면서 저 댄서와 무용 팀을 한국에 불러다 공연시키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여러 가지 복잡하겠지? 업소 사장들은 한번 생각해 볼만한데....

 

그런데 말이 밸리댄스지 거의 민속무용 수준이다. 밸리댄스는 한 여인만 나오고 나머지는 민속무용으로 채워진 것인데 이걸 옵션으로 70유로나 주고 본다면 난 절대 말리겠다. 이건 그 정도 수준이 아니다. 많이 주어도 2만원이면 뒤집어 쓰는 공연이다.

 

구경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잘 준비를 하는데 일행 중 나이든 사람들 3팀이 한잔 하자고 우리 방으로 온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게 싫은데... 하여튼 오시라고 해서 내가 사온 맥주 2병(유리병)을 따고 가져온 맥주 2캔을 해서 그냥 여러 가지 이야기 나누며 마셨다. 주로 해외 여행지 중 좋았던 곳을 이야기 하는데 나는 중국만 자주 다녔지. 그래서 중국에 가서 살란다고 말했다. 청도에 가서 살 거라고. 아휴 피곤 얼른 자야지~~!!

 

여섯째날(2012년 1월13일 - 금요일)

 

매일 기름진 음식을 먹다보니 배변이 시원치가 않다. 이런 일이 없었는데??그래도 일찍 일어나 아침식사전에 호텔 주변을 산책. 황량한 느낌을 주는 길을 따라 걷다보니 집들 모양이 모두 같다. 전부 새로지어 모양이 거의 같음. 윗동네를 거쳐 아랫동네로 걷다가 히잡을 둘러쓴 여인네를 만나 인사를 나누고(메라바!!). 검은 히잡을 둘러써도 볼것은 다보고 지나가더라. 한결같이 뚱뚱한 아줌마들이었다. 하긴 음식을 보면 달고 짜고 고기먹고 그러니 살이 찔 수 밖에 없으리라. 이곳의 주연료가 연탄이라 골이 띵한 연탄까스 맡으며 산책을 계속했다. 멀리서 열기구가 한 두개 올라간다. 열기구 옵션가격이 170유로(근 30만원)인테, 우리 팀에서는 신혼부부와 의사부부만 갔다. 다들 식구를 대동하고 왔으니 4명이면 얼마??? 그냥 눈으로만 봐도 모든게 신기하고 아름다웠다. 산책 후 아침식사 시간 이곳 역시 아침 상차림은 간단했다. 역시 유제품과 안 먹어본 것을 중심으로 먹었다.

 

9시30분 가파도키아 명소를찾아 출발. 가는 길 양옆으로 기이한 모습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낙타모양 처럼 생긴 바위, 뭐처럼 생긴 바위 등등이 있는 곳에서 자연의 위대함과 신비함에 놀라 사진 한 장 찰칵 찍고, 바위를 파고 사람들이 들어가 살았던 괴레메 골짜기에 들어가 장관을 보고, 만화영화 스머프의 무대인 버섯지붕같은 것이 있는 곳에서 멋진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또한 그 바위산에 굴을 파서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군데군데 다 있다. 참으로 인간의 능력과 상상력이 어디까지인지 다시한번 생각하게 했다. 언덕에서 장관을 보며 내려오니 울산에 사는 의사선생이 끓인 포도주를 한 집에 한 잔씩 사주는 것이다. 추운데 뜨거운 포도주를 마시니 어제 먹은 술이 확 올라오는게 기분이 좋다. 우리도 예전에 추우면 막걸리를 끓여 마시지 않았나. 바로 그것이었다.

 

이곳도 역시 쇼핑센터로 출발, 터키석을 파는 곳인데 반지 하나에 2200달러나 한다. 할인해서 1100달러. 미쳤냐? 저런 돌맹이를 사게? 우리 식구들은 안 산다. 그냥 즐기지. 나는 일찌감치 둘러보고 나와서 그 집 근처 동네를 둘러보았다. 모스크에서는 기도시간을 알리는 귀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사원 안으로 아무도 안 들어가더라?? 그냥 고요~~~

 

다음으로 비둘기집으로 가득한 우치사르 관광, 조그만 구멍이 많았다, 그게 다 비둘기집 구멍이란다. 그리고 외군이 쳐들어오면 이곳이 방어선이라나? 그 안으로 다 숨어버린다. 여기도 어김없이 노점이 있는데 관광객들이 오니 어디서 나오는지 뚱뚱한 아줌마가 숨을 헐떡이며 뛰어 온다. 하도 미안해서 1달러짜리 그림엽서 1매를 샀다. 화장실 근처에 관광기념품을 파는 곳이 있고 그곳에서 아이스크림을 파는데 이 놈이 장난을 친다 줄랑 말랑 하면서. 우리 아이들이 아이스크림 한개를 사서 먹길레 나도 한 입 먹었다. 그냥 아이스크림이다. 이곳 가파도키아는 어디를 가든 다 구멍이 뻥뻥 뚫려있고 멋진 장면이 연출된다. 이곳 가파도키아 옵션관광이 열기구 타는 것(30만원)인데, 그런 일을 하는 집들이 여러 군데 보였다. 물론 나는 안타지, 돈도 주고 공짜로 타라고 해도 안타!! 절대 안타!!

 

다음 장소는 도자기 공장 쇼핑. 말로는 문화체험이라면서 결국은 도자기 엄청 비싼 것을 사라는 거지. 도공이 나와서 그릇 하나 뚝딱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고 전시실로 대려가서는 아름다운 광경에 비싼 것을 사게 만드는거지. 우리 큰 딸이 작은 소품을 하나 샀지. 비싸게. 이곳 도자기는 보기에는 좋지만 실용적으로 쓸 것은 못됨. 터키 어디를가도 이런 것들은 분명히 있을테니까. 가족사진을 찍으려니까 그 곳 안내인이 가족끼리 사면 할인해 주니 사라고 마구 끌고 가려길레 단호히 “No, Thank You!”했지.

 

다음으로 점심은 항아리캐밥. 뭐든지 캐밥이라나? 항아리에다 고기를 넣고 요리한 것. 아니 왜 이리 짠거여? 여기도 한국인 천국. 가이드 말로는 그리스터키를 관광하는 사람은 대한민국 사람의 1%라나 뭐라면서 추켜 세우더구만. 이 말은 즉, 돈에 능력이 있으니 마구 써라???? 난 빈민층인데 아끼고 아껴 여행온 것여~~~이 양반아!!!

 

가파도키아의 멋진 광경을 뒤로 하고 앙카라로 출발. 콘야를 지날 때 그 넓은 대 평원을 다시 보면서 피곤하지만 두 눈을 부릅뜨고 졸지도 않고 다 눈 속에 담으려 노력했다. 어느 마을을 지날 때 우리의 지붕과 똑같은 모습을 보니 엄청 반가웠다. 몇 시간을 달리니 바다같은 것이 보이는데 이곳이 소금호수란다. 하늘과 호수가 맞닿아 멋진 광경을 이루었다. 도중에 운전수가 차를 멈추길레 왜 그러나 봤더니만 견과류를 사더군. 하긴 졸릴만도 하지 그 넓고 긴 거리를 달리니 뭐라도 씹으며 가는게 좋겠지. 앙카라 진입 1시간 전에 휴게소에 들렀다. 이곳 역시 우리 어려서 먹던 과자가 있더군, 반갑더군, 하지만 우리는 그런 과자류가 다 사라졌지. 한 봉에 4리라(약 2500~3000원정도). 나이든 사람들이나 추억에 젖어 맛을 볼라나?? 드디어 앙카라 진입. 터키의 수도이고 퇴근길과 맞물려 교통이 대단히 혼잡. 날은 어두워지고 귀는 멍멍해지고... 한국공원을 들렀다. 한국식 탑이 덩그러니 있고 한국전 참전 사망자 명단이 있는 아주 작은 공원. 그 위치가 노른자 땅이라나? 문은 굳게 닫쳐있어 밖에서만 보았다. 사진 한 장 박고 터키의 건국대통령인 안타 투르크의 영묘를 지났다. 마치 파르테논 신전처럼 해 놓았더군. 터키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것 이거 스탈린, 김일성 이런 부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성 싶었다. 묘를 대공원처럼 엄청 넓은 부지에 자리 잡은 게 터키인들의 존경심을 엿볼 수 있었다.

 

숙소는 빈켄트호텔. 지금까지의 호텔 중 가장 훌륭했다. 물론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나갈 수도 없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호텔 입구에 검색대가 설치되어있어 보안요원이 소지품 검색을 하는 것이다. 대학가 근처라서 그런다나?? 저녁은 뷔패가 아닌 1층 식당에서 웨이터의 서빙을 받으며 먹었다. 미리 인원수에 맞춰 음식을 접시에 날라 오는 것이다. 오늘이 일행 중 OO대 OO수교수의 생일이라 나이든 양반이 포도주를 내는 것처럼 하면서 2병을 시켜 축하의 인사를 나누며 마셨다. 물로 나는 중국말로 축하인사를 했지 “쭈니셩르콰일러!!” 그리고 술 분위기가 올라 내가 포도주 2병을 더 시켰지. 내가 낸다고 하면서, 시조 한수도 읊어주고, 그 시조는 이러하니 “술을 취게 먹고 두렷이 앉았으니 억만시름이 가노라 하직한다. 아이야 잔 부어라 시름전송 하리라.” 모두들 웃으며 한잔. 그런데 파장에 이게 무슨 일? 처음 두병과 나중 두병 모두 4병값을 O산 의사선생이 내는 게 아닌가? 두병 값은 내가 낸다고 해도 막무가네일세? 할수없이 파하고 옆 빠로 향해서 맥주 한잔 씩 더 하기로 했지. 이번에는 OO대 O교수가 내고. 이 양반이 나와 동갑이라네..어허~~ 이거 술 한잔 내기도 어렵네... 빠의 분위기는 유럽의 빠와 동일. 간접조명으로 은은하게, 탁자에는 각자의 스탠드가 있어 분위기 만들기 아주 좋더군. 방으로 들어와 곯아 떨어져 자야지. 내일은 새벽부터 출발이니까. 오전 내내 간다나? 이스탄불로. 하여튼 지금까지 터키를 한바퀴 도는 것과 같이 엄천나 거리를 달려왔지만 내일은 7시간을 달려야 하니, 잠을 자야 살지.

 

일곱째날(1월14일-토요일) 앙카라에서 이스탄불로

 

오늘은 4시 기상, 5시 아침, 6시 출발이라 바쁘네. 어제의 음주로 피곤하더군. 오늘 일정은 이스탄불로 가는 일. 눈이 와 하얗게 덮인 산과들을 지나며 6시간 넘게 달린 것 같다. 가는 도중에 휴게소 두군데를 들렀다. 그 중 한 곳에서 터키딜라이트(젤리같은 것) 2상자를 11리라에 샀고 가파도키아산 씨있는 난쟁이건포도를 1Kg샀다. 가파도키아에서 환전한 50달러를 모두 다 썼다. 터키돈은 없음. 동전이나 지폐남으면 처치 곤란아닌가?

 

드디어 바다가 보이고 배들이 보이고, 흐린 하늘 아래 비가 뿌리는 우울한 유럽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스탄불 입구에 들어섰다. 모두들 기대에 찬 모습으로 차안에서 사진 찰칵찰칵. 가이드는 여전히 카페트를 선전하고 그녀의 말을 건성으로 들으며 이스탄불은 어떨까? 영화속에서 보던 그 광경을 상상해 보면서 보스포러스해협의 바다를 횡단하는데 길은 좁고 사람과 차는 넘쳐나고 그 긴 현수교를 지나 유럽 쪽의 이스탄불로 들어섰다. 그림같은 장면들이다. 비는 내리는데 사람들은 모자를 뒤집어 쓰고 비를 맞으며 걷고 있었다. 갑자기 내린 비라서인지 우산을 쓴 사람보다는 안 쓰고 걷는 사람이 더 많은 듯하다. 생김새는 중앙아시아스타일보다는 유럽쪽 즉, 그리스 쪽이 더 가깝게 보인다.

 

이곳도 역시 제일먼저 바닷가 근처에 있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쇼핑센터에갔다. 올리브유, 장미유 등등을 묶어서 파는 데 엄청나게 비싸다. 아무도 안산다. 나는 얼른 나와 맥주 2캔을 샀다. 그런데 이 가게 주인의 눈초리가 영 거시기하다. 그 놈 참 인상 더럽네... 그런데 이 쇼핑센터의 물건값이 그리스에서 본 가격이 있는데 엄청난 바가지라 아무도 살 수가 없는 것이다. 한 두개 팔아줄래도 이건 아니니 살 수가 있나?제일 먼저 이스탄불에 도착했다면 가격을 몰라 살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거는 너무 했다.

 

그 다음으로 그랜드 바쟈르에 갔다.

사방팔방 골목골목 가게가 있었다. 그러나 중앙통로만 찾으면 언제든 다시 찾아 나올 수 있는 곳. 이곳 상인들이 장난을 친다고 가이드가 말했다. 이 골목 저 골목 다니며 견과류와 홍차를 사려고 다녀보니 그런 곳이 별로 없었다. 어떤 곳은 터무니 없이 비싸고, 어떤 인상 좋은 할아버지 가게에 가서 사과차를 물어보니 정상가격을 부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곳에서 4개를 샀다. 담아주는 비닐봉지가 무척 단단했다. 몇 년을 써도 될듯하다. 사진도 찍고 하면서 다니는데 시장 안에서 젊은 놈들이 수작을 부리는것이다. 화가 났지만 잠시 인상을 긁다가 그래 그래 하면서 웃어 버렸다. 그랬더니 그놈들도 미안했는지 무안한 표정을 지었다. 물건을 사는 사람보다는 관광객들이 훨씬 더 많은 듯했다. 이곳 가게 중 은제품을 취급하는 곳만 인산인해를 이루네? 은 팔러왔나? 가게 종류를 알려주는 표지판이 천장에 메달려 있는데 가죽제품, 무슨 제품 등등, 그것만 봐도 찾을 수 있다.

 

눈으로 멋진 광경들을 담고 점심먹으러 갔다. 이 골목 저 골목을 지나 아주 허름한 식당으로 갔다. 3층으로 올라가 공갈빵과 그냥 빵에 닭고기 캐밥을 먹었다. 역시 짜더군. 갈수록 식사가 저질로 변질. 여기서 일하는 놈이 터키인이냐 불가리아인이냐고 물었더니 쿠르드인이라고 하더군. 아니 그런데 이 놈이 우리 작은 아이 별이에게 관심이 있는지 쓸데없이 서성대는 것이다. 그냥 보고있었지 이 놈이 어떻게 하나 보는 것도 재미있으니까. 그러면서 웃고 말았지. 이 때 전기불이 나가서 안그래도 눈,비오고 을씨년스러운데 캄캄하니 기분이 묘했다. 일반 터키인들도 와서 점심을 먹는데 아주 검소하고 간단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아주 잘 먹고 사는거로구나. 잘 먹고 안 움직이니 비만에 성인병에 현대병이 마구 생기지.

 

점심을 먹고나서 톱카프 궁전을 갔다. 유럽쪽 궁전이 그렇듯이 이곳 또한 석조건물로 아름답게 지어졌다. 왕이 좋은 것 같지만 사실은 교도소에 갖힌듯 한게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요리실 굴뚝이 여러개 나와 있는데 유럽의 굴뚝, 특히 영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속에 나오는 그런 굴뚝들이다. 궁전 가운데에 정원이 간결하게 있고, 빗속에 보는 방 속에 전시된 터키왕궁의 보석을 보고 여러 유물을 보았다. 금빛 휘황찬란한 모습이 왕실의 위엄을 보이려 그런 것 일 것이다. 옷은 팔의 길이가 다리 길이만큼 길었다. 유목민들 의상 특징 중의 하나이다. 대체적으로 옷의 형태는 우리의 한복과 비슷.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톱카프 궁전을 나와 성소피아 성당으로 이동. 이스탄불 하면 대표적인 장소인데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안에 들어가 왕들이 기도하던 곳도 보고 내려다 보니 그 건물의 위세에 눌려 경견해 질 수 밖에 없는 듯했지만 나는 안 그랬다. 기독교 성당이었다가 모스크로 변했다가 참으로 사연많은 곳이다.

 

소피아 성당을 나와 블루 모스크로 갔다. 우산장사도 나와 소리치고 짜이(차(茶)장수), 크고 둥그런 가락지 빵 장수 등이 소리 지르는 곳을 지나 길거리가 멋있는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인 곳을 지나 블루 모스크로 들어갔다. 이곳은 지금도 사원으로 활용 중. 그래서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치마나 반바지 입은 여성은 긴 보자기 같은 것으로 가리고 들어가게 했다. 이곳은 소피아 성당보다는 간결했다. 규모도 조금 작고 현재 사용중이라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슬람이나 기독교나 다 똑같은 신을 모시는데 왜 싸우는겨? 사원을 나와 멋있는 거리를 다시 걸었다. 오벨리스크가 있고 우물터가 있는 곳까지 걸어서 다녀오고 사진도 찍고, 어두운 거리에 비 맞으며 가로등 조명을 보며 내가 영화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정말 여화속에 나오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어둠이 내리고 가로등이 들어오며 비가 내리는 거리.

 

날은 어둡고 비는 내리고, 저녁을 먹으러 근처에 있는 한국식당을 찾았다. 천기와 식당이다. 주인장이 천씨라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고등어 조림과 익힌 양배추 쌈, 닭개장이 나왔다. 쌈에 국에 맛있게 먹고 호텔로 출발. 호텔은 우리의 모텔 수준. 이곳 역시 엘리베이터는 2인용이라 좁고 덜컹거림. 짐을 풀고 남자들끼리 야간 거리 구경을 나섰다. 터키 사람들은 우리가 예전에 그랬듯이 신호를 자기위주로 지킨다. 차가 안오면 신호무시하고 그냥 건너간다. 어떻게 보면 합리적이지 않은가? 하여튼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의 옛모습을 많이 간직한 것을 느낄 수 있다.

 

주변을 둘러보며 길을 걷는데 음식점 종업원들의 호객과 궤도전차(트램) 지나는 소리, 검은 옷에 빵모자 눌러쓰고 걷는 사람들을 보면서 터키의 펍(Pub)을 찾았다. 한 곳을 봐두고 이 곳 저곳을 둘러보며 다니다가 결국은 처음 찾았던 펍에 들어가 맥주 500짜리 두 잔을 마셨다. 이 맥주잔 또한 옛날에(한 30년 전에) 우리나라에서도 썼던 둥그런 잔이다. 아주 정감이 갔다. 술맛 또한 순하고 그냥 좋았다. 아니? 그런데 이 인간들 펍 안에서 뭔놈의 담배를 그렇게 피워대는거야? 온 몸에 담배 냄새가 절여지겠네... 이곳에서도 역시나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는데 주로 관광지 이야기를 했다. 나이든 양반의 남미여행 이야기 중 쿠바가 제일 좋았다는 이야기가 귀에 솔깃했다. 나 또한 멕시코와 쿠바는 꼭 가보고 싶은 곳이니까. 마리아치의 연주 속에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장면을 상상하면 행복하다. 그래서 내가 멕시코 가수인 Trio Los Panchos의 노래를 열심히 익히지 않는가? “베싸메 무초”, “키싸스 키싸스”, 쿠바의 부에나 소셜 클럽의 여가수 노래 “베인떼 아노스” 아! 그런데 하나 더 익혀야겠다. Historia De Un Amor(사랑의 역사).

 

맥주 안주로 견과류와 채소를 시켰는데 추가하면 이것 또한 돈 내야 한단다. 당근을 먹고 또 주문했지. 다들 얼근히 마신 후 호텔로 들어와 내가 한 잔 산다고 바에 들어가 맥주 1병씩을 시켜 마셨다. 이 바에 우리가 첫 손님이자 마지막 손님인 것 같다. 값은 10달러하고 5리라를 줬다. 20달러 주니까 터키리라로 거슴름돈을 준다고 하길레 달러로 달라고 했더니만 안된다나? 그래서 O교수가 가지고 있던 터키 리라를 쓴 것이지.

 

아 오늘도 술 속에 살았군. 여행 일행과 친하게 지내는 것도 좋지만 도가 지나치면 언제나 씁쓸. 자꾸만 사생활을 알려고하는 버릇이 거시기하다. 그냥 자기 방식대로 즐기다가 가면 될것을...나는 호텔주변을 다니며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오늘은 완전히 술 먹기 위해 주변을 돌았군.

 

좁은 방이지만 그래도 몸을 누이고 잘 수 있어서 행복. 터키에서의 마지막 밤을 술과 함께했네.

 

 

여덟째 날(2012년 1월 15일-일요일)

6시반 기상 7시반 식사 8시반 출발이라 여유있다. 아침에 일어나 마지막 짐을 정리하고 아침식사 전에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동네에 있는 작은 호텔이라 그 주변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 조금만 나가도 주택에 가게들이 있다.

 

일요일이라 사람과 차들의 통행이 적어 사진 찍기가 좋았다. 멀리 불르모스크가 보이고 둘러보는 곳곳이 어제 밤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풍경이라 발품을 팔며 구경 후 아침식사 하러 갔다. 역시나 간단한 식사, 그래도 올리브 짱아찌에 유제품 요구르트 등을 먹고 짐을 갖고 프런트로 나왔다가 시간이 조금 있길레 동네를 다시 다녔다. 아이들이 차를 타고 와서 학원같은 곳에 내려 들어가더군. 그래서 아이한테 물었지 학원이냐고 그랬더니 터키말로 뭐라고 하는데 표정이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애들 교육은 동서양이 다들 난리. 나보다는 편하게 살라고, 즐겁게 살라고 부모들이 그러는 거지 뭐. 그런데 그게 뜻대로 되나? 내가 하는 것 애들이 그대로 따라하는걸... 그러니 애들을 보면 그부모가 보이고, 그 부모를 보면 애들이 어떨까 상상이 되지않는가. 이스탄불의 아침은 연탄냄새와 같이 시작

 

마지막 관광코스로 이스탄불 유람선을 타고 가는것이다. 아주 작은 배였다 이른 아침이라 우리가 처음인가 보다. 얼음이 살짝 얼어있고 미끄러웠다. 노인들은 위험해서 어디 타겠나? 그런대도 유람선 직원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유유자적. 이것들이 서비스 정신이 있는겨 없는겨? 작은 유람선을 타고 항구를 빠져나가 보스포러스해협 중 유럽 이스탄불 쪽으로 갔다. 다리 위에는 아침부터 낚시꾼들이 좋은 자리 차지해서 열심히 낙시중. 지나는 곳 모두 그림같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터키의 부자들이 살 만한 그런 곳이었다. 반대로 건너편 아시아 쪽 이스탄불은 회색이었다. 해가 뜨는 곳이라서 그런가? 햇살이 비치는 유럽 이스탄불은 그림이었다. 이곳 저곳을 보느라 찬 바람도 모르고 1시간 30분 내내 밖에서 서서 구경했다. 내가 언제 이곳을 다시 오랴 생각하니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을 보면서 한강을 생각했다. 콘크리트 아파트숲 밖에 안 보이는 한강. 참으로 안타깝다. 이야기가 있는 강, 삶이 살아있는 강이 아닌 콘크리트로 뒤덮인 강. 참으로 한탄스럽다. 문화의 혜택을 입은 사람과 무식한 놈들의 차이가 얼마나 많은 피해를 주는것인가? 그런대도 그런 걸 모르고 때만 되면 무조건 찍어주는 한심한 인민들. 모두다 불쌍하다.

 

 

유럽 쪽 이스탄불 항구 내에는 해파리가 말도 못하게 많았다. 반면 아시아 쪽 항구에는 해파리가 없네? 관광선이 더가고 거대한 화물선 유조선이 유유히 흘러가는 보스포러스 해협. 이 좁은 해협을 차지하기 위해 많은 전쟁을 치렀을 이곳 사람들. 역사는 되풀이 된다.

유람을 마치고 항구로 돌아오니 고등어를 구워 빵에 넣어 파는 배가 보이네, 고등어 굽는 냄새와 연기가 코를 자극하지만 배가 부르니 사먹을 수가 있나. 안타깝지만 그냥 눈으로 구경. 호객을 하지만 누구도 안 사네. 꼭 맛을 보고싶었는데... 아쉽다.

 

3시간 전에는 공항을 가야한다고 해서 관광을 마치고 공항으로 출발. 공항은 유럽쪽에 있어 해안도로를 따라 가더군. 다행히 일요일이라 차들이 없어 바로 공항에 도착. 점심 도시락을 받아들고 공항으로 들어갔다. 도시락에는 사과와 캐밥, 음료수가 들어있었다. 짐을 부치고 탐승구로 갔다. 시간이 약 1시간 정도 남아서 점심 도시락을 조금 나누어 먹었다. 비행기 타면 또 줄텐데 많이 먹어 뭐하랴. 안 먹은 도시락을 하나 호주 아줌마에게 준다고 했더니만 싫다고 하더군 배탈이 났다고 하더군, 그래서 내가 손 지압법을 알려줬더니만 스트레스라고 하면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아줌마가 우리 짐이 없냐고 묻더니만 그러면 자기 핸드백을 검색대 통과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난 처음에는 자기가 화장실 다녀 올 테니까 봐달라고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미안하지만 안되겠다고 했다. 혹시 무슨 일이 나면 그 피해를 내가 뒤집어 써야 하니까. 멜버른 까지 가는데 아부다비에서 갈아탄다고. 아부다비에서 13시간을 간다나? 발음이 이상해서 또 물어봤더니만 도틴 도틴하는거다 가만히 들어보니 우리 발음으로 13을 말하는 것 같아서 Thirteen? 하니까 맞다고 한다. 영어도 지방마다 사투리가 있지만 이거이 처음 느꼈네. 아이들은 면세점 구경하고 온다고 해서 보내고 앉아서 호주 아줌마랑 이야기도 나누다가 나도 면세점을 잠깐 구경했다. 혹시 터키 홍차가 있나 해서. 그냥 돌아와 검색대를 지나 아부다비행 비행기에 탑승.

오늘 아부다비행 비행거리는 3시간반 정도인것 같더군. 갈 때가 되니까 그다지 멀리 느껴지지 않더군. 시간을 아부다비 시간에 맞추고 기내식 주길레 역시 맥주 2캔을 마시고 잠깐의 오수를 즐겼지. 비행기에서의 음주는 잠을 부르는 명약이야. 아부다비에 내려 셔틀버스 타고 환승장에 도착 후 잠시 휴식 후 갈아타기 위해 탑승구를 향해 가는데 아니 이런??? 검색대에 왠 사람들이 시장바닥같이 많은겨? 차례대로 가면 제 시간에 비행기를 못타니까 공항요원에게 말해 급행쪽으로 가서 검색대 통과 탑승. 아이고 이제 집에 간다는 안도감에 저절로 웃게 만들더군. 우리의 자리는 맨 뒤에서 두 번째. 이 비행기는 A -300형으로 중형기 정도 되는듯하다. 올 때는 만석이라 빈 자리없이 꽉 차서 왔는데 갈 때는 7자리 정도 비어서 간다. 의자를 뒤로 맘껏 저칠 수도 있어 좋다고 했다. 이륙 후 기내식으로 컵라면을 주더군, 거기다가 위스키, 드라이진, 보드카 각각 1잔씩을 마셨더니만 잠을 부르는 명약이라 그대로 잠에 들었다. 아무 생각없이 내처 잤다. 기내 면세품으로 술을 샀다. 아 술을 맞이하는 이 행복???

 

아홉째 마지막 날(2012년 1월16일-월)

안내방송이 나온다. 아침 기내식 서비스가 있다고. 그 소리에 깨서 기지개를 켜고 상쾌함을 느끼며 삼계탕 죽으로 간단히 요기. 비행기가 착륙하자 어디선가 박수소리가 마구 들려왔다. 집에 와서 좋아 그런가 보다. 나 또한 웃었다. 이제부터는 현실로 돌아가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그게 좋은가 보다. 박수를 치는걸 보니...지하 트램을 타고 입국장으로 갔다. 여러 군데에서 오는 비행기 승객과 어울려 순서를 기다렸다. 한 학생이 있길레 어디서 오냐고 했더니 중국에서 온다고 했다. 물어보니 그곳에서 학교 다닌지가 5년이란다. 그래서 내가 하는 표현이 중국말로 “장거리 여행에 수고했습니다” 인데 맞는 표현이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내 성조가 이상해서 못 알아 듣겠다고 하더니만 그래도 알겠다고 하더군. 우리가 중국을 모르면 큰 코 다치는데 이런 인재들이 쑥쑥 자라나서 잘 되길 바랄뿐. 이제 현실로 돌아왔으니 잘 살아보세~~ 다음 여행을 기약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