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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귀한 말씀

맹자, 이익이 아닌 인의의 정치를 말하다

by 베짱이 정신 2016. 12. 12.

[장현근의 중국 사상 오디세이] 맹자, 이익이 아닌 인의의 정치를 말하다

 [장현근 용인대학교 교수]

 

국정 '농단'으로 온 나라가 흔들리고 있다. 대한민국은 결국 이 아픔을 이겨내고 새 시대를 열 것이다. 농단이란 말의 출처는 <맹자>에서 비롯되었다.

<맹자> 공손추 하편에 이런 말이 있다.

"옛날 시장에서의 교역은 자기에게 남는 물건을 가지고 와서 자기에게 없는 물건으로 바꾸었으며, 담당관은 그것을 감독했다. 그런데 어느 천박한 사내가 나타나더니 바락바락 높은 언덕을 찾아 올라가 좌우를 유심히 살펴 시장에서 생기는 이익을 모두 그물질해 가버렸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천하게 생각하였고, 담당관은 의견을 받아들여 그에게 세금을 매겼다. 상인들에게 세금을 매기는 일은 이 천박한 사내로부터 시작되었다."

원문엔 용단(龍斷)으로 되어 있으나 높은 언덕이란 뜻의 농단(壟斷)이 맞다. 독점으로 이익을 독차지한다는 뜻이다.


이익만 따지는 정치는 망한다

맹자는 사람들이 이익을 따지고 또 독차지하려고 하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문제가 생겨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치 지도자들은 특히 이익 얘기를 꺼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양혜왕 상편에서 맹자는 군주가 인의(仁義)를 중시하면 신하들도 인의를 중시하고 부모형제도 모두 인의를 중시하게 되지만, 군주가 이익을 중시하면 신하들도 이익을 중시하고 부모형제도 모두 이익 때문에 싸우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인의의 정치를 하면 천하를 얻고 이익만 따지는 정치를 하면 망한다는 맹자의 주장은 그 때나 지금이나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이익만이 유일한 가치가 되어버린 오늘날의 몰인정하고 험악해진 세상에서 맹자의 인의 도덕론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만한 중요한 가치가 아닐까.

맹자 당시엔 특히 두 학파가 이익을 따졌다. 하나는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정치와 사상이 전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묵가학파이다. 묵자는 겸애(兼愛), 즉 두루 사랑을 통해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공리를 따지며 일체의 차별을 부정한다. 다른 하나는 자기에게 손해되는 일체의 행위를 거부하는 위아(爲我)주의다. 양주(楊朱)가 그 대표자인데 그는 종아리 털 하나만 뽑으면 온 세상에 도움이 된다고 해도 안 뽑겠다는 사람이다. 맹자는 이 두 부류를 극단적으로 미워했다. 등문공 하편에서 이렇게 말한다.

"양주와 묵적의 주장이 천하를 가득 매우고 있다. 세상의 주장은 양주로 귀결되지 않으면 묵자로 귀결된다. 양주는 자신만을 위하는 위아주의니 군주를 인정하지 않는 셈이며, 묵자는 모든 사람을 친애하는 겸애주의니 부모를 인정하지 않는 셈이다. 군주를 인정하지 않고 부모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짐승이다."

공부를 이룬 맹자가 마흔부터 천하를 주유하며 군주들을 설득하러 다닌 구체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런 짐승 같은 주장을 없애고 공자의 인정(仁政)을 세상에 펼치기 위해서였다.


▲ 왁자지껄한 시장 옆에 있던 맹자의 고택. ⓒ장현근


그런데 놀랍게도 맹자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은 왁자지껄한 시장이었다. 맹자의 현명한 어머니가 이사 갈 생각을 했을 법하다. 맹자고택이라 이름이 붙은 조그만 기와집은 시장에 가까이 붙어 있고, 어떻게 관리를 하고 고증이 된 것인지 아무런 설명도 없다. 가까이 맹모의 무덤이 있는 맹림(孟林)이 있다. 마안산 정상에 오르니 공자의 고향이 멀리 보이고 너른 평야와 단정한 산과 물이 있다. 맹자도 여기에 올라 슬프고 즐거운 인생의 순간들을 회억하고 사람의 선한 심성과 군자의 삶에 대해 고민했을 것이다.

그러다 시장의 모든 이익을 그물질해가는 천한 사내를 보았을 테고 이익에 반대하는 경세가가 되기로 마음을 다잡고 길고 힘든 유세의 길을 기획했을 것이다. 국정을 농단하고 사리사욕을 챙기는 사람들, 빠름과 편리함, 그리고 쾌락, 투쟁, 괴로움은 이익과 짝을 이룬 인간 영혼의 적이다. 돈은 욕망을 키운다. 너른 집에 좋은 옷 입고 더 잘 살려는 저들에게 버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익을 버려야 인의를 얻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느리고 불편한 인의로 세상을 구하겠다는 맹자의 구세 열정을 온 몸으로 느끼며 산을 내려왔다.

대장부 정치가가 필요하다

맹자는 천한 사내 대신 대장부 정치가를 주문하고 다녔다. 깊은 학식과 활달한 언변, 놀라운 기지와 자신감 넘치는 행동은 뭇 군주들을 사로잡았다. 현실의 부국강병에 관심이 깊은 대부분의 군주는 맹자가 주장하는 인의를 정책으로 채택하진 않았지만, 이 호방한 학자에게 많은 유세 비용을 대주었다. 그는 수십 대의 수레에 수백 명의 제자와 시종을 거느리고 보무도 당당하게 천하를 주유하였다. 책과 세간을 싣고 존경하는 어머니를 모시고 제자들과 숱한 논쟁을 하며 왕도 정치를 설파하고 다닌 맹자의 행적은 당시에도 많은 이야기 거리였다.

맹자는 사람의 마음 속 깊은 내면을 통절히 깨친 사상가였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성선설은 마음에 대한 그의 깨달음을 표현한 말이다. 맹자는 동물과 달리 사람만이 갖고 있는 선한 도덕적 본성을 알아차렸다. 사람에겐 측은지심, 수오지심, 시비지심, 사양지심이란 네 가지 마음의 단서가 있어서 도덕적인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남을 불쌍히 여기는 어진 마음, 남의 아픔을 차마 참지 못하는 그 마음에 주목했다. 제사를 지낼 희생용 소가 대전 앞으로 끌려가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양으로 바꾸라고 말한 제(齊) 선왕(宣王)을 보고 훌륭한 정치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죄 없이 사지로 끌려가는 동물을 보고도 차마 참지 못하는 측은한 마음이 바로 인술(仁術)을 가능하게 한다는 주장이다. 그렇다. 불쌍한 생령의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겠는가.

자기 가족을 사랑하고 오륜의 사회질서를 지키는 것도 사람의 어진 마음 때문에 가능하다. 맹자는 자기 집 노인을 모시듯이 남의 집 노인을 모시고, 자기 집 아이를 아끼듯이 남의 집 아이를 아끼라고 주장한다. 음악도 사냥도 백성들과 더불어 즐기라고 말한다. 정치 지도자들에게 차마 참지 못하는 마음, 즉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이 있으면 모두 가능한 일이다. 백성의 아픔을 자기 아픔으로 느끼며 은혜를 넓혀나가면 왕도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다.

이루(離婁) 상편 얘기대로 "군주가 어질면 어질지 않는 사람이 없고, 군주가 의로우면 의롭지 않는 사람이 없고, 군주가 올바르면 올바르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의를 해치는 자는 왕이 아니라 도적이니 끌어내려라!

그런데 세상의 군주들 중에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 많다. 살인을 즐기거나 백성의 아픔을 도외시하거나 농단하는 무리와 더불어 이익을 탐하거나 간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맹자는 이렇게 인의를 해치는 자는 왕이 아니라 도적이며 하나의 필부에 불과하니 죽여도 된다고 말한다. 말이 안 통하는 군주라면 권력의 내부에서 왕을 바꾸어버릴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역사상 많은 전제 군주들은 <맹자>를 두려워했다. 대장부 정치는 꼭 군주만 실천하는 것이 아니다. 군주를 보좌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뜻을 얻으면 백성들과 더불어 그 길을 가고,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그 위대한 원칙을 실천한다. 부귀해져도 그 뜻을 어지럽히지 않고, 빈천해져도 그 뜻을 바꾸지 않으며, 어떠한 위협과 폭력에도 그 뜻을 굽히지 않는다. 이 정도는 되어야 대장부라 할 수 있다." (등문공(文公) 하편)

대장부의 반대는 졸장부다. 어질지 못한 지도자와 간언도 못하고 사표도 내지 못하는 그의 부역자들에게 대장부이길 주문하는 것은 사치인가.


▲ 산동성 추성에 있는 맹모의 묘비. ⓒ장현근


중국 산동성 추성(鄒城)시에 있는 맹묘에서는 5월 8일 어머니날 맹자와 맹모의 제사를 함께 올린다. 시내는 온통 맹자의 말씀으로 도배되어 있다. 대표로 참석해 헌화하는 내내 이익을 따지고 부강만 추구하는 시대 조류에 맞서 끝까지 어진 정치를 고집한 맹자를 생각했다. 현실에선 성공하지 못했으나 어진 정치에 대한 꿈과 이상을 역사에 선물한 대장부 정치가를 생각해보았다. 어린 백성의 죽음에 아파할 줄 모르는 사람은 정치할 자격이 없다. 인간만이 갖고 있는 '불인인지심'이 없이 어떻게 정치를 한단 말인가. 바른 정치가 인간을 바로 세운다.




장현근 용인대학교 교수님의 글을 모셔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