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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시론, 칼럼

<사설> 상식이 중요하지

by 베짱이 정신 2021. 11. 30.

<사설> 상식이 중요하지

 

참으로 대한민국은 예부터 문과 무과 증에 문과 우대의 전통이 남아있어 오늘날까지 굳건하게 유지되며 또 한편으론 교묘하게 나쁜 방향으로 진화해 나감을 법조계를 통해 알 수 있다. 21세기 급변하는 정보화 시대에는 문과의 역할보다는 이과의 역할이 대한민국의 발전을 선도하여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시민의 의식개혁에 바람직한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요즘은 대한민국의 시대정신과 발전을 저해하는 무리들이 지금은 문과 출신들, 특히 법조계 인사들로서 이들은 한국사회에 부정적인 부와 영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어떻게 된 나라가 대가리 좋다는 놈들은 죄다 법 공부를 하는지... 그 좋은 머리를 과학기술 발전에 쓰면 한층 더 발전된 조국을 만드는 보람을 느낄 텐데, 그런 일은 개나 돼지들이 하고 부와 명성, 영향력 등 알짜배기들만 차지하겠다는 것인가? 인간의 본성 중에는 명예 권력욕이 있는데 이 무리들이 유난히도 많은 듯하다. 사회적 책임과 의무는 등한시하고 자신들의 부와 권력 영향력 확대에만 열을 올리고 사회발전의 디딤돌은커녕 걸림돌이 되고 있다.

 

아무리 대한민국의 국기를 흔드는 큰 사건이 터져도 이 무리들만 개입하면 희한한 논리와 해석으로 요리 빠지고 저리 빠지며 미꾸라지처럼 기가 막히게 법망을 빠져나간다.  그 무리들은 없는 죄도 만들어내고 있는 죄도 없애버리는 초능력을 가지고  우리의 법가치관과 법치를 비웃듯이 참으로 태연하게 나쁜 짓하고 그러고서도 당당하잖은가? 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겠지? 가재는 게 편이라 법조 카르텔이 구해줄 테니까? 나쁜 짓을 해도 쪽팔림은 한순간이고 그로 얻은 부와 잠깐 똥칠한 명예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잊혀 회복되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꿩 먹고 알 먹고 아녀? 이러하니 마음 놓고 못된 짓을 하지 아주 두꺼운 얼굴로. 반면 일반 서민들은 어떤가? 볼 것도 없이 엄한 처벌을 받지 않는가? 이러니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지금껏 통용되는가 말이다. 게다가 더해서 "유권무죄, 무권유죄"라는 말을 창조해내니 참으로 거시기하다.  이게 일반 시민들이 느끼는 법감정이다. 공정과 정의는 어디로 갔는가?

 

법보다 우선인 것은 상식이 아닌가? 상식에 기초해 강제성이 있는 법도 만든 게 아녀? 상식이 통하면 법도 필요 없지만 그보다는 최소한 법은 지켜야 되는 게 아닌가? 법조 무리들에게는 법이란 게 한낮 언어유희인가? 대가리만 좋고 양심도 없는 것들이 법을 악용하면 그 부작용이 얼마나 큰 지 모두 다 아는데도 그들의 좋은 대가리 굴림을 못 당하는 것인가? 이러하니 우리나라가 상식보다는 법에 호소하는 법률소송이 세계 최고 수준이 되는 원인이 되겠지. 법조 사기꾼과 일반 사기꾼의 천국인 대한민국. 변호사 잘 사면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 형량이 낮춰지고 무죄가 되고... 이러니 당당하게 사기 치고 못된 짓 해도 변호사 잘 사면 그 비용보다 사기 치는 게 이익이니 더욱 기승을 부릴 수밖에. 

 

인간이 살면 백 년을 사나? 바른 일 착한 일을 하고 살아도 부족한 판에 그 좋은 대가리로 못된 짓을 교묘하고 교활하게 하여 국민들의 기운을 빼고 사기를 저하시키는 저 무리들을 일벌백계해야 한다. 전관예우로 사전 사후 앞길을 다져놓고 끼리끼리 그 부정하고 부당한 혜택을 주고받으니 없어지겠는가? 법과 제도로 제재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안된다. 법조 무리들의 양심을 일깨우는 운동을 지속적으로 벌이고 또한 감시하여 우리 사회의 건전한 구성원이 되도록 바른 언론과 깨어있는 시민의식이 끊임없이 노력할 수밖에. 그들이 개혁을 못하면 시민의 힘으로라도 개혁시킬 수밖에 없지 않은가.

 

평범한 소시민들은 법보다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 부와 권력의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공정한 법 집행이 되는 사회. 누구도 억울함이 없는 공정한 사회를 원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유권무죄 무권유죄"라는 수치스러운 말은 역사속으로 보내자. 이제 법조 무리들이 말보다는 실천하는 양심과 정의로운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상식이 어디든 통용됨을 보여야 한다.

 

- 베짱이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