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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悠悠自適 베짱이 나라
옛 시조 감상

재 넘어 성 권롱 집에 술 익단 말 어제 듣고

by 베짱이 정신 2013. 8. 20.

재 넘어 성 권롱 집에 술 익단 말 어제 듣고
누은 소 발로 박차 언치 놓아 지즐 타고
아희야 네 권롱 계시냐 정 좌수 왔다 하여라

성권롱(成權農) :권농은 지방에서 농사를 권장하는 유사(有司) 친구였던 성혼을 가리키는 말
언치  안장 밑에 까는 털 헝겊

제 넘어 성 권농네 집이 있는데, 그 집에서 담근 술이 익었다는 기별을 어제 받고,
누워서 반추(反芻)를 즐기고 있는 소를 발로 차 일으켜 언치만 놓아 눌러 타고,
성 권농 집에 이르러 아이를 불러 이르기를 정 좌수가 왔다고 일러라.

유배지의 생활의 일단이 이 시조 속에 역력히 나타나 있다. 말없이 입을 다물고 보내는 세월 속에서도 인간 정철은 우거(寓居)를 걷어 차고, 마을의 지방에서는 유일한 지식인인 권농 벼슬 을 하는 성씨 집 문을 두드리기를 유일한 낙으로 삼은 것 같다.

정 좌수가 왔다고 하인에게 외치는 소리부터가 얼마나 유쾌한가 그만큼 성 권농을 만나는 것이 즐거웠던 것 같다. 권농은 또한 정 철의 인간 됨을 알아보고, 그를 모실 줄 아는 위인이었기에 정 철의 말벗, 술벗 구실을 다 했을 것이 이 시조를 음미 해 보면 저절로 짐작이 되어 우울한 구름이 끼지 않는다.

대문간에 서서 '이리 오너라'를 부르기보다는 '아희야 정좌수가 왔다고 일러라'하는 말씨부터가 정 철의 평민 정신이 스며 나온 흔적이 너무나 뚜렷해서 우선 호감이 가지 않을 수가 없다. 더구나, 마음놓고 아이를 아이라고 부를 만큼 정 철은 인자한데가 있고,아이와 얼마나 다정하게 지냈는가 하는 내력이 그 말속에 묻어 있어서 좋다.

많은 작품을 남겼던 정철은 조선중기 정치가이면서 시인이었다 그의 임금에 대한 남다른 충성은 어릴 때부터 궁중 출입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던, 그래서 궁정에 대한 짙은 향수 때문이라고도 한다. 학식도 뛰어났던 그는 정치에 입문하면서 높은 지위에 올랐으나 결백하고 곧은 성격은 많은 사람들과 부딪쳤고 왕과도 부딪쳤다.
 
의견대립이 있을 때에는 국왕앞이라도 상대방을 가차없이 공격하여 주변에 적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 정치생활은 평탄하지 못했으며 항상 주변이 시끄럽고 그를 모함하는 무리들로 잠잠할 날이 없었다고 한다.

그의 명작.. 관동별곡은 그가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했을 당시 관내를 돌아보며 지은 것들인데 금강산의 빼어난 경관을 그려놓은 것으로 그 아름다움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고전문학의 최고 걸작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또한 그의 주옥같은 노래들..사미인곡, 속미인곡, 성산별곡들은 그가 의지하던 율곡이 세상을 뜨고 나이 50이 되던 해 임금의 총애에도 불구하고 반대파에 의해 추방되다시피 고향으로 돌아와서 쏟아놓은 노래들이다. 말하자면 고관대작(高官大爵) 위에 군림했던 정 철이건만, 한 이웃 할아버지로 아이들과 다정히 지내는 풍모가 있어 이 시조는 정 철의 동심마저 엿보이게 하고도 남음이 있다.